김기대 목사 등 8명 미주동포 목회자들 방북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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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6-04-23 11:58 조회4,71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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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심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김기대 목사(로스엔젤레스 지역 평화의 교회 담임목사)를 비롯한 미주동포 기독교인들 8명은 22일 중국 심양을 거쳐 고려민항 155편으로 평양으로 들어갔다.
이날 방북한 목회자들은 미국거주 신영순 전도사가 인도하는 등대복지회 사업 일환으로 평양에 방북하게 되었다고 한 관계자가 밝혔다. 이들은 방북기간 동안 이북 돕기사업을 마치고 유적지 몇군데를 돌아보고 29일 평양을 떠날 계획이라고 한다.
<##IMAGE##> 이번 방북 기독교인들은 김대평 목사를 비롯하여 김기대, 성현경, 장윤기, 노반석, 양인 목사 등 6명의 목사들은 로스엔젤레스 거주 목회자들이고 정재흥 목사 부부는 노드 캐롤라이나 거주동포이며, 신영순 전도사는 미주동포이면서 등대복지회 사업으로 주로 남한에서 남편과 함께 활동 중이다.
신영순 선교사는 현재 대북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사단법인 등대복지회 상임이사로써 두 달에 한번 꼴로 이북을 방문해 육아원(고아원)과 콩우유 공장을 지원하여 왔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그의 남편인 아더 킨슬러 (한국명 권오덕)목사는 1928년부터 평양에서 신학교육으로 일생을 바친 프란시스 킨슬러(한국명 권세열)선교사의 아들이었다. 시아버지는 평생 코리아를 사랑했고 평양 숭실대학 교수와 장로회신학교 교수를 지내셨고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성경구락부’를 창설한 인물이다.
<##IMAGE##> 숭의학교를 다니던 신영순 선교사는 우연히 오르간 반주자인 친구를 따라서 미8군내 교회를 방문했다. 그 교회에는 권 목사가 부목사로 시무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던 권 목사와 신 선교사는 이것이 인연과 계기가 되어 결혼을 하게 된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 결혼을 반대하던 친정 아버지도 시아버지를 만난후 결혼을 승낙했다는 것.
신 선교사는 자연스레 시부모와 남편에게서 평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평양은 신 선교사의 시부모가 사역했던 땅일 뿐만 아니라 결혼식을 치른 장소며 남편 고향이기도 했다. 1998년 신 선교사는 미국인 신분으로 결핵 약 후원차 평양을 방문했다.신 선교사가 갈길은 먼것 같다. 그는 "우리 민족의 평화 통일은 기독교인의 숙제"라고 밝히며 그 일을 위해 오늘도 뛰고 있다.
이날 방북한 목회자들은 미국거주 신영순 전도사가 인도하는 등대복지회 사업 일환으로 평양에 방북하게 되었다고 한 관계자가 밝혔다. 이들은 방북기간 동안 이북 돕기사업을 마치고 유적지 몇군데를 돌아보고 29일 평양을 떠날 계획이라고 한다.
<##IMAGE##> 이번 방북 기독교인들은 김대평 목사를 비롯하여 김기대, 성현경, 장윤기, 노반석, 양인 목사 등 6명의 목사들은 로스엔젤레스 거주 목회자들이고 정재흥 목사 부부는 노드 캐롤라이나 거주동포이며, 신영순 전도사는 미주동포이면서 등대복지회 사업으로 주로 남한에서 남편과 함께 활동 중이다.
신영순 선교사는 현재 대북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사단법인 등대복지회 상임이사로써 두 달에 한번 꼴로 이북을 방문해 육아원(고아원)과 콩우유 공장을 지원하여 왔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그의 남편인 아더 킨슬러 (한국명 권오덕)목사는 1928년부터 평양에서 신학교육으로 일생을 바친 프란시스 킨슬러(한국명 권세열)선교사의 아들이었다. 시아버지는 평생 코리아를 사랑했고 평양 숭실대학 교수와 장로회신학교 교수를 지내셨고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성경구락부’를 창설한 인물이다.
<##IMAGE##> 숭의학교를 다니던 신영순 선교사는 우연히 오르간 반주자인 친구를 따라서 미8군내 교회를 방문했다. 그 교회에는 권 목사가 부목사로 시무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던 권 목사와 신 선교사는 이것이 인연과 계기가 되어 결혼을 하게 된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 결혼을 반대하던 친정 아버지도 시아버지를 만난후 결혼을 승낙했다는 것.
신 선교사는 자연스레 시부모와 남편에게서 평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평양은 신 선교사의 시부모가 사역했던 땅일 뿐만 아니라 결혼식을 치른 장소며 남편 고향이기도 했다. 1998년 신 선교사는 미국인 신분으로 결핵 약 후원차 평양을 방문했다.신 선교사가 갈길은 먼것 같다. 그는 "우리 민족의 평화 통일은 기독교인의 숙제"라고 밝히며 그 일을 위해 오늘도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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