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식 ‘송환’ 용어를 처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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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5-10-03 19:08 조회2,09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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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2차 송환대상자인 장기수 정순택 선생의 시신이 역사상 처음으로 북측으로 인도되었다.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회장이자 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 상임공동대표로서 평소 비전향장기수들의 2차 송환을 위해 노력해왔으며, ‘통일애국열사 정순택선생 민족통일장 장례위원회’ 장례위원장으로 이번 장례를 치른 권오헌 선생을 3일 오후 통일뉴스 사무실에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통일뉴스 : 정순택 선생의 장례와 송환을 마치고 난 소감은?
<##IMAGE##>■ 권오헌 : 살아 생전에 가시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자손들에게 유해를 인도하게 된 것을 너무 안타깝게 생각하고 유감스럽다. 또 송환추진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도 선생께 그리고 자손들에게 죄송한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송환’이라는 이름으로 유해송환이 이루어진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을 계기로 앞으로 2차 송환 희망자들이 빠른 시일안에 고향을 찾고 가족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 북에 있는 고인의 가족들에게 병문안을 위한 방문을 요청했는데, 어떤 경위로 이루어졌나?
■ 원래는 선생께서 암진단을 받은 뒤 지난 9월 13일 기자회견을 통해서 송환을 촉구하는 한편, 송환되기 전이라도 북녁 가족들이 문병을 할 수 있도록 요구한 바 있다. 특히 북녘 가족의 문병을 강조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대한접십자사를 방문해서 총재가 부재중이라 남북관계운영위원장을 만나 인도주의적 측면에서라도 빠른 시일안에 송환해 줄 것과 당일이라도 북측과 협의해서 가족들이 문병할 수 있도록 강조해서 촉구했다.
□ 고인이 돌아가신 날에서야 가족 문병초청이 전달됐는데.
■ 병세가 점점 악화돼서 지난 1일에 또 급히 송환추진위 대표들은 접십자사 한완상 총재와 통일부 관계자를 면담했다. 그 자리에서 인도주의 측면에서 송환할 것과 가족 문병도 적극적으로 알아보겠다는 매우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돌아가시기 전날이었다.
그날 병원에 돌아와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예감이라도 했는지 정 선생이 아주 상태가 좋아 눈을 뜨고 사람을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손을 잡고 말씀하는 등 이제까지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마지막에 다음에 오겠다고 가려고 하는데 몸을 일으켜 세우려하고 손을 흔들고... 오면서 좋지 않은 징조로 마지막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됐다. 새벽 5시경 병실에서 위독하시다는 전화가 와서 달려갔다.
통일부를 방문하고 그 다음날 중태라는 것을 알려 그날로 북측에 한완상 총재 이름으로 전통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는 남측이나 북측에서 서로 시간을 끌거나 한 일은 없었다. 시간상 촉박하기도 했고.
□ 북측의 시신 송환 통보는 어떤 경위로 이루어졌나?
■ 돌아가신 하루 종일 장례 절차라든가 장례 명칭, 내용을 논의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북측에서 혹시라도 장례식에 가족이 오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지막 저녁까지 소식이 없어 안타깝기도 했다.
그 다음날 장례식이 이루어진 날 아침 일찍 통일부로부터 북측과 협의해서 북측에서 시신송환을 받아들이겠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알려왔다. 그전에 노진민 집행위원장한테 통일부 담당관이 상당히 긍정적인 답변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줬고 정식으로 9시 40분경 병원에 갔을 때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장례일정을 전부 취소했다. 화장과 보광사 영면지에 모시는 문제를 전부 취소하고 바로 북녁으로 인계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진행했다.
통일부에서는 영구차를 인천접십자사에서 보내겠고 했고 앰뷸런스가 11시 40분경 도착했고, 통일부 관계자들이 와서 인수인계를 하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직접 5-6명 정도로 인수인계를 하려고 생각했지만 통일부 쪽에서 상당히 어렵다고 해서 직접 인수인계는 참여하지 않고 통일부 당국자가 하게됐다.
□ 임진각까지 함께 가신 것으로 알고 있다.
<##IMAGE##>■ 11시에 영결식을 하고 나서 앰뷸런스와 같이 갔다.
친족도 있고 송환추진위와 장례위원회도 있는데 정식으로 직접 인계해주지는 못하지만 선생을 외롭지 않게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통일광장 권낙기 공동대표와 송환추진위 노진민 집행위원장, 범민련남측본부 김영옥 선생과 같이 같이 갔다. 언론 기자들도 함께 갔다.
직접 만나고 직접 인계를 않는다 하더라도 함께 보내드리는 의미로 거기까지 갔다.
□ 보도된 바에 따르면 북측 가족 대표들이 시신을 인계한 것으로 안다.
■ 정말 안타깝다. 미군 관할이라 절차가 복잡해서 민간인 출입이 어렵다 했는데, 분단의 현실, 외국군대가 민족문제를 좌우하는 현실에 분노와 개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인륜에 관한 문제까지 분단 논리에서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것에 분노하고 안타까웠다.
북의 가족을 만나 잘 모시지 못했다는 죄송스런 말씀도 드리면서 살아 생전 가시지 못하게 한 우리들의 모자람 같은 것도 말씀드리면서 넘겨드리려고 했는데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그냥 온 것이 너무 한스럽다.
그전에 이인모 선생이 가실 때에는 양아들이었던 김상원 선생이 판문점까지 북측 관계인에게 인수인계한 전례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에 관계 당국에서는 미8군에서 관할한다는 이유만으로 민간인 출입이 갑작스러워서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분단현실의 어려움이 이런 데까지 미치고 있구나 생각돼 안타까웠다.
하루빨리 자주적 통일이 되어야 하고 우리 민족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주독립국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2차 송환 대상자의 현황은?
■ 다 보도된 것과 같이 2차 송환 희망자중 다섯 분이 돌아셔서 28명이 남았다. 그동안 정부 당국이 냉전논리와 상호주의라는 억지 논리속에서 이렇게 고향을 찾지 못하고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돌아가셔서 너무나 안타까운 문제다.
당연히 가야 할 그분들을 붙잡아뒀는지 뒤늦게나마 조건을 붙이지 않고 송환하겠다는 인상을 깊이 줬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5년동안 당국의 잘못된 억지논리 때문에 다섯 분이 돌아가셔서 분노하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정순택 선생말고도 강담 선생이 전립선 암으로 투병중이고 전주 맹기남 선생이 고령인데다 오랜 옥고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 벌써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하셨고 매우 허약해 언제 돌아실지 모른다. 대구의 김종하 선생, 대전의 이찬근 선생, 낙성대 만남의집에 계신 문상봉 선생이 모두 감옥 후유증과 고령으로 상당히 건강이 나쁘고 질환속에 고통을 받고 있다.
특히 민족민주운동을 해왔던 분들이 나이가 많은데 따라 최근에 잇따라 돌아가시고 있다.
바로 얼마 전에는 남조선해방전략당과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 범민련 사건등으로 오랜 옥고를 치뤘던 김병권 선생이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오늘(3일) 또다시 전민가협 공동대표이고 양심수후원회 부회장을 역임한 조만조 어머님이 돌아셨다.
조만조 어머님은 오늘 새벽 3시 45분 향년 84세로 한일병원에서 간암으로 돌아가셨고 빈소는 수유1동 성당 영안실에 모셔져 있다. 장례는 10월 5일 오전 6시 장례미사후 발인할 예정이다.
딸인 민향숙 씨는 7년 옥고를 치르고 양심수 석방운동을 같이 했고, 사위인 이철씨는 재일 유학생 사건으로 14년간 옥고를 치렀다.
□ 2차 송환대상자는 28명 외에는 없는지?
■ 이제까지 송환추진위에서 명단으로 관리해왔던 분들은 이제 28명으로 줄어들었지만, 사실은 이것이 절대적인 수자는 아니다. 본격적으로 송환된다고 하면 더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할 것같다.
원래 기준은 장기구금 양심수로서 북녘에 고향을 두고 가족이 북쪽에 있는, 북에서 온 분들로서 구금 연한에 관계없이 보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일정하게 장기수 개념에 속하는 그런 분들이다.
다른 한 부류는 전쟁포로로서 이 경우는 아무 조건없이 보내야 한다는 원칙이다. 전쟁포로는 처음부터 전향이라는 인격적 모독을 할 수 없다. 국제법상 전쟁포로 대우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 2차 송환 전망은?
■ 미리 앞서나가는 것은 뭐하지만 적십자사 총재와 통일부 관계자를 만났을 때 그전 같은 뭔가 상호주의라든가 조건을 붙이는 것이 아닌, 보내야 한다는 방침이 세워진 것으로 본다. 방침이 세워진 이상 그렇게 멀지 않고 가까운 시일안에 발표가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 평양 6.15통일대축전과 서울 8.15민족대축전이 성황리에 마무리됐고 6자회담도 합의에 도달했는데, 평양방문단의 일원으로 장기수 선생들도 방북할 계획은 없는지?
■ 최근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등 여러 남북관련 민간 단체들이 ‘아리랑’ 공연 관람을 비롯한 평양시내 명소를 찾아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비전향장기수를 비롯해 오랜 옥고를 치른 분들이나 통일운동 원로들, 민족민주운동에 헌신한 분들이 찾아본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송환은 송환이고 공연이라든가 평양을 가볼 수 있는 것은 별개 문제지만 어쨌든 송환될 때 송화되더라도 그분들도 다 상당히 세계적으로 알려져있는 뛰어난 민족의 예술공연을 참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2차 송환이 이루어진다면 이후의 활동 계획은?
■ 사실은 1차 송환이 끝나고 나서 3가지 과제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주장한 바 있다. 첫째 비전향장기수로 미처 1차 신청을 못한 분들의 송환 문제, 둘째 정순덕, 정순택 선생처럼 전향을 이유로 제외됐던 강제 전향당한 분들의 송환문제, 셋째 북녁에 가신 분 가족들의 가족 재결합 문제를 남은 과제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 당시 통일부 관계자들도 암묵적으로 인정했던 문제들이다.
가족 재결합 문제가 남은 과제가 되고 생전에 신념의 고향을 찾고 가족을 찾으려 했으나 이곳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유해 송환도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남은 과제이다.
□ 이번 정순택 선생의 시신 송환의 의미는?
■ 송환이라는 의미는 반드시 원래있던 자리로 원상회복하는 것이다. 전쟁포로를 보통 송환한다고 하는데 전쟁이 끝나고 원적지로 보내지는 것이다.
이인모 선생이나 1차 송환 63명 때는 북한방문 형식으로 갔다. 지금에는 정식으로 송환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썼다는 의미가 있다.
송환의 의미가 확보된 이상 송환의 당위성은 더욱 분명해졌다. 이제까지 주장해온 송환의 정당성이 드러났다. 더 이상 정부는 가야 할 사람을 보내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 이번 시신 송환은 정부의 전향적 조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 송환이라는 용어도, 어떤 조건을 붙이지 않겠다는 방침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환영한다. 정부가 뒤늦게라도 전향적 자세를 취했다는 것은 6.15통일대축전과 8.15민족대축전을 통해 드러났듯이 6.15공동선언을 이행하려는 우리 민족의 강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화해협력 단계로 가는 또 하나의 디딤돌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사상.이념과 정견의 차이, 지도체제 때문에 가로막혀있던 것에 비한다면 이번 조치는 인도주의의 승리이기도 하다.
□ 우리 사회에서는 납북자 문제나 국군포로 문제도 제기되고 있는데.
■ 뭐라 얘기하기는 좀 어렵다.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일정한 비전향장기수 송환이라는 제한된 과제를 실천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걸 떠나서 다른 것을 연계시키기는 어렵다고 본다.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6.15공동선언 합의사항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문제와 연계시키는 것을 반대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만약 남과 북 사이에 다른 인도주의적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남과 북이 다시 합의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다.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회장이자 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 상임공동대표로서 평소 비전향장기수들의 2차 송환을 위해 노력해왔으며, ‘통일애국열사 정순택선생 민족통일장 장례위원회’ 장례위원장으로 이번 장례를 치른 권오헌 선생을 3일 오후 통일뉴스 사무실에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통일뉴스 : 정순택 선생의 장례와 송환을 마치고 난 소감은?
<##IMAGE##>■ 권오헌 : 살아 생전에 가시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자손들에게 유해를 인도하게 된 것을 너무 안타깝게 생각하고 유감스럽다. 또 송환추진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도 선생께 그리고 자손들에게 죄송한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송환’이라는 이름으로 유해송환이 이루어진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을 계기로 앞으로 2차 송환 희망자들이 빠른 시일안에 고향을 찾고 가족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 북에 있는 고인의 가족들에게 병문안을 위한 방문을 요청했는데, 어떤 경위로 이루어졌나?
■ 원래는 선생께서 암진단을 받은 뒤 지난 9월 13일 기자회견을 통해서 송환을 촉구하는 한편, 송환되기 전이라도 북녁 가족들이 문병을 할 수 있도록 요구한 바 있다. 특히 북녘 가족의 문병을 강조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대한접십자사를 방문해서 총재가 부재중이라 남북관계운영위원장을 만나 인도주의적 측면에서라도 빠른 시일안에 송환해 줄 것과 당일이라도 북측과 협의해서 가족들이 문병할 수 있도록 강조해서 촉구했다.
□ 고인이 돌아가신 날에서야 가족 문병초청이 전달됐는데.
■ 병세가 점점 악화돼서 지난 1일에 또 급히 송환추진위 대표들은 접십자사 한완상 총재와 통일부 관계자를 면담했다. 그 자리에서 인도주의 측면에서 송환할 것과 가족 문병도 적극적으로 알아보겠다는 매우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돌아가시기 전날이었다.
그날 병원에 돌아와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예감이라도 했는지 정 선생이 아주 상태가 좋아 눈을 뜨고 사람을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손을 잡고 말씀하는 등 이제까지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마지막에 다음에 오겠다고 가려고 하는데 몸을 일으켜 세우려하고 손을 흔들고... 오면서 좋지 않은 징조로 마지막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됐다. 새벽 5시경 병실에서 위독하시다는 전화가 와서 달려갔다.
통일부를 방문하고 그 다음날 중태라는 것을 알려 그날로 북측에 한완상 총재 이름으로 전통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는 남측이나 북측에서 서로 시간을 끌거나 한 일은 없었다. 시간상 촉박하기도 했고.
□ 북측의 시신 송환 통보는 어떤 경위로 이루어졌나?
■ 돌아가신 하루 종일 장례 절차라든가 장례 명칭, 내용을 논의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북측에서 혹시라도 장례식에 가족이 오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지막 저녁까지 소식이 없어 안타깝기도 했다.
그 다음날 장례식이 이루어진 날 아침 일찍 통일부로부터 북측과 협의해서 북측에서 시신송환을 받아들이겠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알려왔다. 그전에 노진민 집행위원장한테 통일부 담당관이 상당히 긍정적인 답변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줬고 정식으로 9시 40분경 병원에 갔을 때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장례일정을 전부 취소했다. 화장과 보광사 영면지에 모시는 문제를 전부 취소하고 바로 북녁으로 인계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진행했다.
통일부에서는 영구차를 인천접십자사에서 보내겠고 했고 앰뷸런스가 11시 40분경 도착했고, 통일부 관계자들이 와서 인수인계를 하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직접 5-6명 정도로 인수인계를 하려고 생각했지만 통일부 쪽에서 상당히 어렵다고 해서 직접 인수인계는 참여하지 않고 통일부 당국자가 하게됐다.
□ 임진각까지 함께 가신 것으로 알고 있다.
<##IMAGE##>■ 11시에 영결식을 하고 나서 앰뷸런스와 같이 갔다.
친족도 있고 송환추진위와 장례위원회도 있는데 정식으로 직접 인계해주지는 못하지만 선생을 외롭지 않게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통일광장 권낙기 공동대표와 송환추진위 노진민 집행위원장, 범민련남측본부 김영옥 선생과 같이 같이 갔다. 언론 기자들도 함께 갔다.
직접 만나고 직접 인계를 않는다 하더라도 함께 보내드리는 의미로 거기까지 갔다.
□ 보도된 바에 따르면 북측 가족 대표들이 시신을 인계한 것으로 안다.
■ 정말 안타깝다. 미군 관할이라 절차가 복잡해서 민간인 출입이 어렵다 했는데, 분단의 현실, 외국군대가 민족문제를 좌우하는 현실에 분노와 개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인륜에 관한 문제까지 분단 논리에서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것에 분노하고 안타까웠다.
북의 가족을 만나 잘 모시지 못했다는 죄송스런 말씀도 드리면서 살아 생전 가시지 못하게 한 우리들의 모자람 같은 것도 말씀드리면서 넘겨드리려고 했는데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그냥 온 것이 너무 한스럽다.
그전에 이인모 선생이 가실 때에는 양아들이었던 김상원 선생이 판문점까지 북측 관계인에게 인수인계한 전례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에 관계 당국에서는 미8군에서 관할한다는 이유만으로 민간인 출입이 갑작스러워서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분단현실의 어려움이 이런 데까지 미치고 있구나 생각돼 안타까웠다.
하루빨리 자주적 통일이 되어야 하고 우리 민족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주독립국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2차 송환 대상자의 현황은?
■ 다 보도된 것과 같이 2차 송환 희망자중 다섯 분이 돌아셔서 28명이 남았다. 그동안 정부 당국이 냉전논리와 상호주의라는 억지 논리속에서 이렇게 고향을 찾지 못하고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돌아가셔서 너무나 안타까운 문제다.
당연히 가야 할 그분들을 붙잡아뒀는지 뒤늦게나마 조건을 붙이지 않고 송환하겠다는 인상을 깊이 줬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5년동안 당국의 잘못된 억지논리 때문에 다섯 분이 돌아가셔서 분노하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정순택 선생말고도 강담 선생이 전립선 암으로 투병중이고 전주 맹기남 선생이 고령인데다 오랜 옥고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 벌써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하셨고 매우 허약해 언제 돌아실지 모른다. 대구의 김종하 선생, 대전의 이찬근 선생, 낙성대 만남의집에 계신 문상봉 선생이 모두 감옥 후유증과 고령으로 상당히 건강이 나쁘고 질환속에 고통을 받고 있다.
특히 민족민주운동을 해왔던 분들이 나이가 많은데 따라 최근에 잇따라 돌아가시고 있다.
바로 얼마 전에는 남조선해방전략당과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 범민련 사건등으로 오랜 옥고를 치뤘던 김병권 선생이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오늘(3일) 또다시 전민가협 공동대표이고 양심수후원회 부회장을 역임한 조만조 어머님이 돌아셨다.
조만조 어머님은 오늘 새벽 3시 45분 향년 84세로 한일병원에서 간암으로 돌아가셨고 빈소는 수유1동 성당 영안실에 모셔져 있다. 장례는 10월 5일 오전 6시 장례미사후 발인할 예정이다.
딸인 민향숙 씨는 7년 옥고를 치르고 양심수 석방운동을 같이 했고, 사위인 이철씨는 재일 유학생 사건으로 14년간 옥고를 치렀다.
□ 2차 송환대상자는 28명 외에는 없는지?
■ 이제까지 송환추진위에서 명단으로 관리해왔던 분들은 이제 28명으로 줄어들었지만, 사실은 이것이 절대적인 수자는 아니다. 본격적으로 송환된다고 하면 더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할 것같다.
원래 기준은 장기구금 양심수로서 북녘에 고향을 두고 가족이 북쪽에 있는, 북에서 온 분들로서 구금 연한에 관계없이 보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일정하게 장기수 개념에 속하는 그런 분들이다.
다른 한 부류는 전쟁포로로서 이 경우는 아무 조건없이 보내야 한다는 원칙이다. 전쟁포로는 처음부터 전향이라는 인격적 모독을 할 수 없다. 국제법상 전쟁포로 대우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 2차 송환 전망은?
■ 미리 앞서나가는 것은 뭐하지만 적십자사 총재와 통일부 관계자를 만났을 때 그전 같은 뭔가 상호주의라든가 조건을 붙이는 것이 아닌, 보내야 한다는 방침이 세워진 것으로 본다. 방침이 세워진 이상 그렇게 멀지 않고 가까운 시일안에 발표가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 평양 6.15통일대축전과 서울 8.15민족대축전이 성황리에 마무리됐고 6자회담도 합의에 도달했는데, 평양방문단의 일원으로 장기수 선생들도 방북할 계획은 없는지?
■ 최근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등 여러 남북관련 민간 단체들이 ‘아리랑’ 공연 관람을 비롯한 평양시내 명소를 찾아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비전향장기수를 비롯해 오랜 옥고를 치른 분들이나 통일운동 원로들, 민족민주운동에 헌신한 분들이 찾아본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송환은 송환이고 공연이라든가 평양을 가볼 수 있는 것은 별개 문제지만 어쨌든 송환될 때 송화되더라도 그분들도 다 상당히 세계적으로 알려져있는 뛰어난 민족의 예술공연을 참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2차 송환이 이루어진다면 이후의 활동 계획은?
■ 사실은 1차 송환이 끝나고 나서 3가지 과제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주장한 바 있다. 첫째 비전향장기수로 미처 1차 신청을 못한 분들의 송환 문제, 둘째 정순덕, 정순택 선생처럼 전향을 이유로 제외됐던 강제 전향당한 분들의 송환문제, 셋째 북녁에 가신 분 가족들의 가족 재결합 문제를 남은 과제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 당시 통일부 관계자들도 암묵적으로 인정했던 문제들이다.
가족 재결합 문제가 남은 과제가 되고 생전에 신념의 고향을 찾고 가족을 찾으려 했으나 이곳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유해 송환도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남은 과제이다.
□ 이번 정순택 선생의 시신 송환의 의미는?
■ 송환이라는 의미는 반드시 원래있던 자리로 원상회복하는 것이다. 전쟁포로를 보통 송환한다고 하는데 전쟁이 끝나고 원적지로 보내지는 것이다.
이인모 선생이나 1차 송환 63명 때는 북한방문 형식으로 갔다. 지금에는 정식으로 송환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썼다는 의미가 있다.
송환의 의미가 확보된 이상 송환의 당위성은 더욱 분명해졌다. 이제까지 주장해온 송환의 정당성이 드러났다. 더 이상 정부는 가야 할 사람을 보내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 이번 시신 송환은 정부의 전향적 조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 송환이라는 용어도, 어떤 조건을 붙이지 않겠다는 방침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환영한다. 정부가 뒤늦게라도 전향적 자세를 취했다는 것은 6.15통일대축전과 8.15민족대축전을 통해 드러났듯이 6.15공동선언을 이행하려는 우리 민족의 강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화해협력 단계로 가는 또 하나의 디딤돌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사상.이념과 정견의 차이, 지도체제 때문에 가로막혀있던 것에 비한다면 이번 조치는 인도주의의 승리이기도 하다.
□ 우리 사회에서는 납북자 문제나 국군포로 문제도 제기되고 있는데.
■ 뭐라 얘기하기는 좀 어렵다.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일정한 비전향장기수 송환이라는 제한된 과제를 실천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걸 떠나서 다른 것을 연계시키기는 어렵다고 본다.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6.15공동선언 합의사항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문제와 연계시키는 것을 반대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만약 남과 북 사이에 다른 인도주의적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남과 북이 다시 합의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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