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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신보, 창간60돌 맞아 3차례 기획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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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5-10-01 01:29 조회1,9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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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들과 더불어 60년〉 《조선신보》의 궤적 -상-
험난한 초행길을 헤치고

1945년 10월 10일에 창간된 《조선신보》는 올해 창간 60돐을 맞이하게 된다.

《조선신보》가 걸어온 60년의 로정은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극진한 사랑과 배려속에서 걸음마다 애족애국의 력사를 수놓아온 자랑차고도 영광에 넘친 로정이였다.

매 시기마다 재일조선인운동의 휘황한 앞길을 밝혀주시고 구체적인 방도까지 밝혀주시는 그 사랑과 령도를 떠나서 《조선신보》의 어제와 오늘, 래일을 생각할수 없다.

또한 《조선신보》의 60년은 세계해외교포운동력사속에서도 례를 찾지 못하는 쾌거이며 금자탑이라고 할수 있다.

시련과 격동속에서도 언제나 동포들과 더불어 60년의 력사를 새겨온 《조선신보》의 발자취를 더듬는 련재글 《동포들과 더불어 60년-〈조선신보〉의 궤적》을 3번에 걸쳐 소개한다.

인재난, 자재난, 자금난속에서

일제의 식민지통치로부터 조국이 해방된 소식에 접하여 환희와 희망으로 가슴부풀던 재일동포들에게 자기들의 목소리를 담은 신문이 발간되였다는 소식이 전해진것은 광복의 날로부터 불과 두달남짓한 때였다.



1960년에 진행된 조선신보사 신축락성모임
《조선신보》의 전신인 《민중신문》의 출발은 등사판인쇄였다. 다른 부문도 마찬가지이지만 신문제작의 전문가도 없고 자재와 자금도 없는 어려운 조건속에서 《조선신보》는 초행길을 헤쳐나가야 했다.

정자로 또박또박 씌여진 당시의 《민중신문》을 보면 관계자들의 뜨거운 정열을 느낄수 있다. 그것은 식민지망국노의 처지로부터 해방된 기쁨, 신생독립국가의 공민된 긍지의 뜨거운 분출이였다.

해방직후의 복잡다단한 정세속에서 어중이떠중이들이 저마다 《애국자》로 둔갑하고 우리 운동을 그릇된 길로 끌어가려 하고있을 때 《민중신문》은 재일조선인운동을 고무추동하는 무기로 자못 중요한 역할을 놀았다.

당시의 관계자는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을 조련에서 일소하자!》는 취지의 기사를 실은 《민중신문》이 조련결성대회장에서 배포되여 대회성공에 크게 기여한 사실을 회고하였다. 우리 신문은 첫걸음부터 내외반동들과의 치렬한 대결전에서 강력한 무기였다.

《민중신문》은 13호까지 등사판인쇄로 나오다가 14호(46년 3월 25일호)로부터 활판인쇄로 넘어갔다. 이에 대하여 《결속, 열성, 투쟁의 소산》이라고 당시의 신문은 그 기쁨을 표시하였다.

그후 《민중신문》은 오사까에서 발행되는 《대중신문》과 합동하여 조국해방 1돐을 맞는 뜻깊은 날에 제호를 《우리 신문》으로 고치고 2호까지 발행되였으며 9월 1일부터 《해방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었다.

당시 신문은 《…내외의 모든 정세는 더욱더욱 언론의 사명을 중대화하고있는 관계로 우리 신문도 민주주의적언론의 지도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발전적으로 〈해방신문〉이라고 개편하게 되였습니다.》고 썼다.

동포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아

이 기간에 《조선신보》는 완전독립을 위한 조국인민들의 투쟁을 상세히 소개하고 조련두리에 굳게 뭉쳐 싸우는 재일동포들의 투쟁을 생활권옹호, 교육권의 확립, 문화예술활동 등 다양한 각도에서 널리 소개선전하였다. 한편 해방후에도 계속 차별정책과 적대시정책에 매달리는 일본당국에 대한 투쟁자세도 선명히 하였다.

신문은 8.15, 3.1절, 로씨야혁명기념일 등 매개 기념일에 앙양되는 동포들의 투쟁을 폭넓게 전하고 내외반동들의 파괴와해책동을 까밝히고 견결히 투쟁하였다.

갓 출발한 우리 신문은 며칠이나 지탱하는가 두고보자고 야유하던 내외원쑤들의 방해책동도 과감히 물리치고 험난한 초행길을 간고분투의 정신으로 헤쳐나갔다.

또한 1946년 1월 5일에는 민중신문사 제1차 지분국장 및 열성자회의를 가지고 여기에서 신문의 활판인쇄를 위해 100만엔 깜빠운동을 벌릴것을 제기하였다. 당시 《민중신문》의 값이 1부 20전이란것을 감안할 때 100만엔 깜빠운동이 얼마나 엄청난것이였던가를 짐작할수 있다. 두달후에 활판인쇄가 실현되였다는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였다.

동포들의 극진한 사랑과 지원이 《조선신보》의 원동력이였다는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조선신보 sinbo@korea-np.co.jp)

200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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