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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오 일본 하나부사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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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1-03-09 00:00 조회1,6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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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째 한국관련 엔지오활동 펴는 일본 하나부사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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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존엄 앞에 민족이 따로 없지요
동지에서 부부로 또 동지로, 하나부사 도시오(57)와 하나부사 에미코(52)는 그렇게 손을 맞잡고 걸어왔다.

후쿠오카에 살고 있는 이들은 함께 2차대전의 한국인 징용·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관부재판" 지원모임에서 일하고 있다. 베트남전 반전투쟁 세대인 남편 도시오와 전공투 세대인 부인 에미코는 `운동권" 선후배로 만났다. 도시오는 “대학 입학뒤 처음 뛰어든 것이 한일회담 반대운동이었는데 지금도 한국과 관련된 시민운동을 하고 있으니 대단한 인연”이라고 웃는다.

이들은 채식 요리 전문점을 운영하면서, 재판 때가 되면 할머니들을 초청해 히로시마 각지에서 증언집회를 하고, 재판을 방청하느라 바빠진다. 재판이 끝나면 재판내용을 정리한 <뉴스>와 홈페이지를 통해 홍보활동을 벌인다. 또 전후보상 입법을 위해 의회로비와 캠페인도 한다. 요즘에는 최종판결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두 사람을 한국과 이어준 것은 87년의 한 신문 기사, 후쿠오카에 사는 재일한국인 청년이 국적 때문에 일본 교원자격 시험을 칠 수 없어 소송을 제기했다는 내용이었다. 두 사람은 그 재판을 지원하는 데 뛰어들었고 결국 그 청년은 교사가 됐다. 에미코는 “그 때 궁금한 게 있었다. 일본 정부가 솔선해 재일 한국인에 대한 취직차별한 이유는 뭘까? 일본이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았다”고 말한다.

92년 봄 후쿠오카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증언집회가 열렸을 때, 에미코는 그 일을 준비하는 실행위원을 맡아 `종군위안부를 생각하는 모임"을 꾸리게 됐고, 그해 가을 관부재판을 준비하던 변호사의 부탁을 받고 남편과 함께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도시오는 “에미코는 아, 이건 내가 하지 않으면 안돼 하고 느끼면 뒷일 생각 안하고 시작해 버린다. 그러면 나는 뒷수습을 하러 뛰어든다. 사람과 사회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부인이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그해 크리스마스에 시모노세키에 온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처음 만났다. 그 자리에서 박두리 할머니가 울기 시작했고 깜짝 놀라 “왜 우시냐”고 물으니 “일본 사람들은 다 귀신같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렇게 자상한 일본 사람이 있는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일본인은 귀신같다고 생각하게 만든 역사도 아팠지만 자상한 일본인도 있다며 우시는 할머니의 순수한 마음도 충격이었다.

그것은 이들이 일본사회를 깊이 볼 수 있는 돋보기가 됐다. “재판과 특히 아시아여성국민기금을 보면서 일본정부가 할머니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은 것은 민족차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일본 정부가 개인의 존엄성을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았다. 일본 정부는 원폭이나 미나마타병 피해자에게도 국민기금처럼 눈가리고 아웅하는 보상을 했다.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싸움은 일본 사회가 인간 하나하나의 존엄을 배우도록 바꿔가는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처럼 일본의 시민운동은 대체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사안이 있을 때마다 모이는 형태다. 뜻을 같이 하는 10명 정도가 모여서 단체를 만들고 재능이든 돈이든 시간이든 자기가 있는 것을 내놓는다. 도시오는 “강한 조직이나 사회적 힘이 없는 것은 안타깝지만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열심히 꾸준히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에미코는 “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 위안부 체험을 증언했을 때 일본 언론은 센세이셔널하게 반응했다. 지금은 역사 교과서 왜곡 등 우익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은 줄었지만 야당 중심의 국회의원 162명이 나서서 전후보상 입법운동을 벌이게 되는 등 조용한 변화도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관부재판에서 승소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들은 진상규명과 사죄·보상을 위한 입법과 독일처럼 국가차원의 배상기금을 만드는 목표를 위해 또다시 나아갈 계획이라고 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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