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대한 미제국의 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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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25-09-12 16:58 조회35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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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대한 미제국의 횡포
(민족통신=김범 기자)
미국 조지아주에서 현대와 LG가 미국의 요청으로 세운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일하던 수백 명의 한국 노동자들, 미국은 그들을 체포하고 족쇄를 채웠다
배신의 역사는 뼛속까지 각인돼 있다
민족의 운명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외세의 손에 의해 갈라지고 짓밟힐 때다. 지난 120여 년 동안 겪어온 굴곡은 바로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미국의 배신.”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그 출발점이었다.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는 대가로 조선을 일본 지배 아래 넘겨주었다. 우리나라는 주권국이었지만, 전혀 다른 대륙 두 강대국에 의해 거래되었다. 태프트 미 육군장관은 “일본이 군사력으로 조선을 지배하는 것은 필연적”이라며 침략을 합리화했다. 이 순간부터 미국의 대(對)코리아 정책에는 배신의 DNA가 깊이 새겨졌다.
일본과의 차별 - 가해자는 용서, 피해자는 종속
해방 후 미국 태도는 더 명확했다. 일본의 A급 전범들은 사면되어 정계에 복귀했고, 미쓰비시·미쓰이·스미토모 같은 전범 기업들은 그대로 살아남아 전후 경제성장의 주축이 되었다. 731부대마저 생체실험 자료를 미국과 거래한 대가로 면죄부를 얻었다.
반면 조선인 B급 C급 전범들은 혹독한 처벌을 받았다. 가해자는 용서하고, 피해자는 끝까지 희생시키는 모순이었다.
조약에서도 차별은 뚜렷했다. 미일안보조약은 ‘시설 사용(use)’을 명시했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군대 배치의 권리(right)’를 보장했다. 일본은 파트너로, 대한민국은 방패막이로 규정되었다.
코리아전쟁 진실은 감춰져 있다
미국은 1950년6월25일의 전쟁을 두고 지금까지도 “이북에서 남침”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다르다. 전쟁의 불씨는 이미 전쟁 발발 이틀 전, 1950년 6월 23일 옹진반도에서 울려 퍼진 포성에서 시작됐다.
대한민국 국군 제1사단장 김석원 장군의 지휘 아래 부대는 북측을 향해 대규모 포격을 가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북측 민간인과 군인들이 희생되었다. 북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렸고, 자위적 대응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코리아전쟁은 북의 일방적 남침이 아니라, 남측과 미국의 북침 도발에 대한 자위적 반격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 진실을 은폐한 채 자신들을 “구원자”라 포장했다.
전후 복구 원조라고 불린 것도 대부분 빚이었다. 1953년 이후 미국이 제공한 원조금액 중 75%는 차관 형식이었고, 이는 대한민국 경제 구조를 미국의 자본과 제도에 종속시키는 족쇄가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희생은 누구였는가? 코리아전쟁에서 한국군 전사자는 13만 명, 민간인 희생자는 200만 명을 넘었다. 미국은 전쟁을 “우리가 지켜줬다”는 식으로 독점했지만, 정작 가장 많은 피를 흘린 것은 이 땅의 민중이었고, 전쟁 특수로 경제적 이득을 챙긴 것은 일본이었다.
미국의 각본과 대한민국의 희생
옹진반도의 포성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었다. 이미 미국은 애치슨 라인을 통해 코리아반도를 방위선에서 제외한다고 선언한 상태였다. 이는 북측의 자위적 반응을 유도하고, 전쟁을 일으켜 개입할 명분을 마련하기 위한 정치적 각본이었다.
1949년부터 이미 남과 북 사이의 무력 충돌은 2,000회 이상 벌어졌고, 그중 상당수는 남측이 먼저 도발한 것이었다. 옹진반도 포격은 그 정점이었으며, 전쟁 발발의 기폭제였다. 그러나 그 모든 책임은 북에게 떠넘겨졌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각본 속에서 희생양이 되었고, 미국은 ‘구원자’로 무대에 등장했다. 이 얼마나 교묘한 배신의 시나리오인가.
끝나지 않은 청구서 - 70년 종속의 굴레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은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지 못했다. “조건 미충족”이라는 구실 아래, 전쟁이 나면 한국군은 자동으로 미군 대장의 지휘 아래 들어가야 한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종속 구조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도 심각하다. 미국은 GDP가 두 배인 일본보다 더 많은 분담금을 한국에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이 낸 돈 중 수조 원은 쓰지도 않고 쌓아두면서도, 계속 추가금을 강요한다. 이는 동맹이 아니라 끝나지 않는 청구서에 불과하다.
2025년 9월 조지아 사건 - 가면이 벗겨진 순간
이러한 구조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2025년 9월, 미국 조지아주에서 현대와 LG가 미국의 요청으로 세운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일하던 수백 명의 한국 노동자들이 쇠사슬에 묶여 끌려 나갔다.
그들은 테러범도, 마약조직도 아니다. 말하자면 동맹국 국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대규모 무력작전을 동원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말하는 ‘동맹의 품격’이다.
이 사건을 두고 대한민국 정부는 ‘72시간 만의 외교 승리’라 자평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미국은 한국의 투자와 기술, 지정학적 가치를 잃을 수 없었기에 서둘러 봉합했을 뿐이다. 그것은 외교의 승리가 아니라 미국의 필요였다.
달라진 세계, 그러나 변하지 않은 미국
세계는 변했다. 대한민국은 일본을 넘어서는 경제력을 가졌고, 반도체·배터리·방산에서 세계적 강국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미국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제국주의적 습성에 기대어, 트럼프의 거래주의와 한국 보수세력의 맹목적 추종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
힘과 존엄의 관계
힘은 단순히 경제 규모나 무기 수출액의 수치로 정의되지 않는다. 힘은 존엄을 지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져도, 자주적 정신을 세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종속의 도구일 뿐이다.
미국이 여전히 한국을 함부로 대하는 이유는, 한국이 스스로를 ‘을’로 두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결코 ‘혈맹’이 아니다. 필요할 때는 이용하고, 불리하면 버린다. 120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역사는 또한 우리에게 가르친다. 외세의 배신을 직시하고, 자주와 존엄의 길을 택한 민족만이 자기 운명을 개척한다는 것을.
코리아반도 북쪽나라, 조선은 이미 그 길을 선택했고 자주와 존엄을 지켜왔다. 이제 대한민국 또한 미국의 미제국 짓거리를 냉정히 바라보아야 한다. 강해진 힘에 자주적 정신이 결합될 때, 코리아반도는 비로소 새로운 역사를 열 수 있다.
그날이 올 때, 미국은 더 이상 한국을 지배하거나 길들일 수 없으며, 진정한 동등한 관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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