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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전동록씨 1주기 추모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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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3-06-16 00:00 조회1,4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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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신 종합 7일 오전1시> "돈 있는 사람은 모금으로, 힘 있는 사람은 투쟁으로"

4630-11.jpg"추모순례단과 함께하는 미 2사단 인간띠잇기"를 한 참가자들은 미 2사단 캠프 레드클라우드부대 앞에서부터 의정부역까지 행진했다.

"불평등한 한미소파 전면 개정하라" " 기만적인 소파 개선안 철회하라"
"100만의 힘으로 여중생의 한을 풀자!" "6월 13일 촛불의 힘으로 자주평화 실현하자"
비가 그쳐 맑게 개인 하늘과는 대조적으로 땅은 흙탕물로 멍울졌지만 행진하는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6시 30분 참가자들과 함께 의정부 역앞에 도착한 광화문 자봉단 허지희양 (은광여중 3학년)의 발랄한 목소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정부 역 광장으로 모았다.

"경찰들의 폭력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오랜만에 의정부에 찾아 온것인데 역시 의정부 경찰들은 틀리구나를 느꼈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때리는 것을 보니...어쩌겠습니까. 대한민국 짭새인 것을" 수줍은 듯 하면서도 자기의 이야기를 당차게 말하는 여중생은 "양키들이 광화문에 모인 우리의 함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말을 마쳤다.

23차 의정부 촛불집회를 겸한 정리집회는 민주노총 경기북부 지구협의회 송정현씨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6131주기 준비위원으로 9천 3백명이 가입한 경기 북부 지구는 자신감에 넘쳐있었다.

덕정고 노래 동아리 "신록"의 조용준 학생과 의정부 학생으로 구성된 랩 그룹은 노래와 춤으로 미선이효순이 1주기 추모에 대한 마음을 담았다.

영어를 열심히 배워서 미군에게 유창하게 욕을 해주고 싶다는 조용준 군은 미선이와 효순일르 보고싶어서 "보고싶다"라는 노래를 선곡했다며 광화문의 촛불에 참가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1주기 준비위원으로 가입을 했으며 자신도 열심히 서명을 받았다고 전했다.

공부를 그리 잘하진 못하지만 "아무리 무식해도 사람을 아무런 이유없이 죽이는 건 죄라는 것은 안다"라고 나선 7명의 남녀학생들은 미선이와 효순이에게 바치는 추모곡 "촛불"을 불러 참가자들의 환호성과 박수를 받았다.

"돈 있는 사람은 모금으로, 힘 있는 사람은 투쟁으로, 청소년은 춤과 노래로"라는 사회자의 마지막 발언처럼 각계각층의 참여로 1주기 추모대회가 백만이 모일 수 있다는 현실임을 느끼게 했다.

<2신: 오후 9시 30분> 미 2사단 캠프 레드클라우드 앞 인간띠잇기

4시 20분 경, 진혼굿의 여운이 다 가시지 않은 채 2부가 시작되었다.

4630-4jun.jpg2부의 제목은 ‘SOFA 전면개정! 한반도 전쟁위협 반대! 오만한 미국 규탄! 미 2사단 인간 띠 잇기 대회’.
인간 띠 잇기 대회가 시작해서였을까. 2부가 시작된 지 얼마 안되어 거세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점차 잦아들더니 이내 그쳤다.

첫 번째 순서인 정치연설에서 마이크를 잡은 진관 스님은 지난 달 13일에 출발한 전국 촛불순례 대행진단 중간 보고를 했다. 진관 스님은 “25일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녀봤지만 대여섯 먹은 어린 애들까지 미군이 이 땅에서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 알고 있더라”며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에서 6 13 추모대회에 많은 이들이 참석해줄 것을 당부했다.

다음 순서로 6 13 문예단의 촛불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한국에 사는 노 대감이 미국 부시 대감을 만나러 가면서, 촛불에게 “사진만 찍고 올게”라고 약속하고 떠났으나 정작 부시 대감을 만나서는 “전쟁이 나도 모른 척 하겠다”는 약조를 하고 돌아온다. 한국에 돌아온 노 대감은 “차라리 사진만 찍고 올 것이지”라는 비난을 들으며, 굴욕 외교를 한 대가로 촛불로부터 혼쭐이 난다는 내용이다.

이어 무대에 오른 한국청년단체협의회 동대문 청년회 소속 방종옥 씨는 동대문 근처에서 6 13 1주기 준비위원을 모집하며 겪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떤 사람이 지나가며 “사고가 난 지 1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며 그만두라고 하더란다. 방씨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맘이 참 아팠다며, “다시는 미선이, 효순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이러는 것 아니냐”고 참가자들에게 되물었다.

4시 50분 경, 진행자들이 스티로폼으로 만든 1m 정도 높이의 부시 머리 인형을 가져다 놓고 상징의식을 마악 진행하려고 할 때, 난데없이 경찰이 난입하기 시작했다.

집회장소 한쪽에 나란히 서 있던 경찰 2,30여 명이 갑자기 방패를 들고 뛰어들어 부시 인형을 빼앗아가려 했으나, 집회 참가자들이 이를 간신히 막았다.

집회 참가자들이 다 함께 “폭력 경찰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고 강한 항의를 10여분간 한 끝에 경찰은 물러났고, 다시 상징 의식이 진행되었다.

‘열화우라늄탄’, ‘집속탄’이라는 ‘뿔’을 머리에 꽂은 부시 인형은 성조기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앞에서 부시 인형이 재가 되는 동안 무대 위에서는 노수희 촛불순례단장이 ‘주한미군에게 전달하는 항의서한’을 낭독했다.

“60만원! 60만원! ......”하는 노 단장의 목소리는 힘찼지만 한없이 떨렸다. 노 단장은 분을 참지 못하겠는듯 서한을 낭독하는 중간중간 미 2사단 철조망을 향해 “양키 고 홈”을 외치곤 했다.

낭독이 끝난 후 노 단장과 진관 스님이 서한을 전달하러 부대 정문으로 향했다. 그 뒤를 집회 참가자 전원과, 25일 동안 순례단과 함께 전국을 순회한 촛불이 따랐다.

정문 옆 안내실 문을 여러 차례 두드렸지만 미군들은 철조망 너머 멀찍이서 바라만 볼 뿐 나오지 않았다. 결국 항의서한은 철조망 너머로 던져질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이날 행사의 마지막 순서인 인간 띠 잇기가 진행됐다. 300여 명의 참가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높은 철조망 담 주변을 둘러쌌다. 경찰은 인간 띠 잇기 행사를 극구 막으려 했으나 행사를 성사시키려는 참가자들의 의지를 다 ‘진압’하지는 못했다.

4630-6ame.jpg인간 띠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철조망 안쪽에서는 미군 병사들이 이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스무 명 쯤 되어보이는 미군들은 세퍼드 두 마리를 대동하고 중무장을 하는 등 상당히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 중 몇몇은 웃고 있기도 했다. ‘한국’ 경찰이 자신들을 위해 ‘한국’ 국민들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인간 띠 잇기 성공입니다.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방송차로부터 흘러나오는 사회자의 정리 발언과 함께 추모대회는 마무리되었다. 이후 참가자들은 깃발을 들고 의정부역 쪽으로 행진했다.

경찰 과도한 폭력, 분말소화기 사용 등으로 시민부상


이날 집회에서는 경찰의 과도한 폭력 사용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경찰은 집회 장소가 미군 부대 앞인 것을 의식한 듯 행사 내내 참가자들을 과도하게 밀어붙이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상징 의식을 시작할 무렵 갑자기 난입한 것을 시작으로, 참가자들이 몰려서 있는 곳에 분말 소화기를 뿌려대는가 하면 참가자들이 준비한 계란을 탈취하려는 시도까지 벌였다.

계란을 탈취하려던 1010 부대 소속 전경은 이를 저지하려는 경기동부청년회 소속 김 모씨를 헬멧으로 내리쳐 김 씨의 눈 주위가 2,3cm 가량 찢어지는 부상을 입히기도 했다. 또 인간 띠를 끊으려는 여러 차례에 걸친 경찰의 시도로 많은 시민들이 방패에 맞고, 부상을 입었다.

한 집회참가자는 상징의식을 미쳐 시작하기도 전에 경찰이 먼저 난입한 것에 대해 "오늘 집회를 불법 폭력집회로 만들려는 경찰의 의도적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추모대회 시작 전 대회장소 앞에 서 있던 경찰차에는 경찰이 걸어놓은 “평화시위 정착하자”는 현수막이 참가자들을 맞고 있었다.


주한미군에게 보내는 항의서한


오늘 우리는 작년 6월에 돌아가신 고 전동록씨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1주기 추모대회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다시 모였다.
기억하는가?
일년 전, 바로 오늘 죽음을 맞이한 전동록이라는 이름을!
주한미군 너희들이 설치해놓은 고압선에 감전되어 사지가 절단된 채로 일년간을 버텨가며 힘겨운 삶을 이겨내던 전동록씨는 수술 후 혈관 파열로 끝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너희는 책임 있는 사과나 진상규명은커녕 단돈 60만원으로 목숨에 대한 댓가를 치르겠다고 했다. 60만원!
한 사람의 몸뚱아리를 그렇게 처절하게 짓밟아놓고도 모자라서 마지막 남은 인간으로서의 자존심마저 빼앗아간 너희들을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전동록씨가 숨져간 병원 영안실에서, 그리고 장례식을 치르던 6월 6일 비 오던 거리에서 눈물을 뿌리며 다짐했었다. 다시는, 다시는 이런 처절한 죽음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3일 뒤, 미선이와 효순이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고 말았다.

4630-3dance3.jpg피가 거꾸로 솟는다.
너희들이 짓밟은 죄 없는 생명 얼마이고
너희들이 앗아간 우리 민족의 강토가 도대체 얼마인가!

각오하라!
전동록씨의 이름으로! 미선이 효순이의 이름으로!
그 동안 너희들로 인해 이유없이 사라져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으로!
너희들을 반드시 처벌하고야 말겠다.
더 이상은 이 땅에서 활보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겠다.
우리 민족의 분노가 얼마인가를 너희 앞에 똑똑히 보여주겠다.

주한미군 너희에게 엄중히 경고한다.
전동록씨에 대한 피해보상 실시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미군범죄 온상 미2사단 폐쇄하라!
기만적인 소파 개선안 철회하고 불평등한 한미소파 전면 개정하라!

- 2003년 6월 6일 오만한 미군 규탄 미2사단 인간 띠 잇기 대회 참가자 일동 -



<1신: 오후 5시 30분> "내리는 비는 전동록씨의 눈물"

6월 6일.
이날은 故전동록씨가 미군 고압선에 의해 사지가 잘려 1년간의 투병생활을 하다 죽은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이에 "613 효순미선 1주기 추모대회 국민 준비위원회"는 의정부 미 2사단 캠프 레드크라우드 앞에서 오후 3시 반부터 "故전동록씨 1주기 추모대회 및 인간띠잇기 대회"를 가졌다.



작년 전동록씨가 죽던 날에도, 또 49제를 지내던 날에도 비가 왔었는데 1주기가 되는 이날도 역시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내리는 비에도 불구하고 300여명의 시민들과 학생들은 안타깝게 죽은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속속들이 모여 들었다.

추모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미군부대 안에는 미군들이 소방호수와 철조망을 준비해 놓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긴장된 모습을 보였고, 한국의 경찰은 겹겹이 진을 치고 있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 맞춰 1부 행사인 추모제가 시작되었다.

추모사에 나선 문대골 목사는 "주한미군이 물러가는 것은 역사적으로 당연한 것이며 끊임없이 한반도의 위기를 조성하는 미국은 국가가 아니라 폭력집단이다"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그는 "전동록씨를 죽인 게 미국"이라며 "그는 죽었어도 한을 풀지 못해 구천을 떠돌고 있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 "미국이 물러가는 날 전동록씨의 한은 풀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사건 경과를 보고하기 위해 무대차에 올라온 이소희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전동록씨 부인이 전해 준 꿈 이야기를 하며 "죽은 사람이 자주 꿈에 나타나는 것은 이승을 떠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재판에서 재판부는 전씨에게 70%, 미군에게 30%의 과실이 있다며 미군이 전씨 가족에게 약 1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할 것을 판결했으나, 미군은 액수가 너무 많다며 반발해 6천 5백 정도를 제안하고 있다고 전했다.

끝으로 이 사무국장은 이날 내리는 비를 보며 "이 비를 통해 전동록씨는 남은 우리들에게 자신의 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며 말을 마쳤다.


유가족 대표로 나온 전씨의 큰 아들 전민수(27세, 직장인)는 작년 6월을 회상하며 말을 꺼냈다.

"작년에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으로 인해 광화문을 붉게 물들였을 때,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토하는 붉은 피를 보며 괴로워 했습니다. 작년에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월드컵을 즐길 때, 우리는 길 한복판에서 전경과 싸우며 억울함을 호소했었습니다."

전민수씨는 이어 "이 비는 여러분의 싸움에 감사해서 흘리는 아버지의 눈물일 것"이라며 아직도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정부를 비난하고 "어디에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괴로움을 토로했다.

끝으로 전씨는 "주한미군은 결코 대한민국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며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날 우리나라는 진정한 자주국가로 서는 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추모제의 마지막 순서는 고인을 추모하는 퍼포먼스였다.
하얀 한복을 입고 흰 국화꽃을 양손에 쥔 춤꾼 이삼헌씨는 정태춘의 "더 이상 죽이지 마라"라는 구슬픈 노래에 맞춰 격정적인 춤을 추었다.

퍼포먼스를 끝으로 1부 행사를 마친 이들은 곧바로 2부 행사인 미 2사단 인간 띠잇기 행사를 진행했다.


"팔,다리 절단한 값이 고작 60만원?"


46301.jpg2001년 7월 16일, 평범한 건설일용노동자로 살아가던 전동록(당시 53세)씨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당시 전동록씨는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뇌조리 미 2사단 캠프 하우즈 후문 뒤 공장 증축 현장에서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공장 지붕에서 인부들이 남겨둔 철판 조각을 정리하던 전씨는 22,900볼트나 되는 미군고압선에 감전되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이 사고로 인해 전씨는 양쪽 팔과 두 다리 모두를 잘라내야만 했다.

우연한 사고인 것처럼 보이는 이 사고는 그러나 이미 예고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던 사고였다.

문제의 고압선은 미2사단이 관리하는 특고압 전선으로, 일반적으로 한전이 관리하는 고압선과는 달리 절연피복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고, 안전표지판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더구나 건물 지붕위 2~3 미터 정도의 높이로 낮게 지나가고 있어 평소에도 사고 위험이 많았다. 공사 전에 마을 이장과 건물주가 사고발생을 우려, 고압선을 이전하거나 공사기간중 일시적으로 단전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2사단측은 이를 묵살했다.

특히, 사고가 나기 3일 전에는 미군 전기 담당자 3명이 공사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는 "별일 없으니 일단 공사를 진행하라"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이들은 막상 사고가 발생하자 "미군 규정상에는 고압선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발뺌을 했다. 오히려 미군측은 전씨가 부주의한 탓에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떠넘겼다.

주한미군측은 사고가 발생하자 입원치료를 받고 있던 전씨를 찾아와 가족들에게 위로금 명목의 60만원과 배상 서류만을 남겨두고 사과 한마디 없이 돌아갔다. 그 뒤로 미군측으로부터는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다.

미군에게 있어서 전씨가 사지를 절단한 값은 고작 60만원이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잘려나간 팔과 다리 보다도 단란했던 가정의 행복이 무너졌다며 허탈해했고, 사람들은 미군의 이런 무책임한 행태에 분노했다.

입원치료를 받았던 전씨의 치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2002년 3월까지 치료비는 무려 7천만원에 육박했다. 가족들은 사채를 끌어오고, 카드 빚을 져가며 이를 해결해야만 했지만 이 소식을 접하고 결성된 공동대책위 회원들의 노력과 시민들의 정성어린 모금으로 대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

팔다리가 모두 잘려나가서 혼자 힘으로는 물 한 잔 마실 수 없었던 전씨지만 낙천적인 성격에 걸맞게 불행중에도 낙관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모든게 허사였다.

2002년 4월 12일 전씨는 수술했던 다리의 혈관들이 썩어들어가면서 이를 인조혈관으로 교체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담당 의사조차도 성공여부를 장담하지 못했던 대수술 끝에 가까스로 전씨의 상태가 호전되는 듯했다.

그러나, 불행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전씨는 사고 발생 10개월여만인 2002년 6월 6일 "어지럽다"는 말을 남긴 채 쓰러졌고, 영영 눈을 뜨지 못했다.

"이렇게 고생하다 갈거면 차라리 팔다리 다 있을때 가지.."
미망인 이명화씨가 오열을 했지만 이미 전씨는 저세상으로 떠난 뒤였고, 노자 돈 쥐어줄 손조차 없었다.

장상종 / 임은경 기자
[출처; 민중의 소리 6-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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