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6.15 순례단 황선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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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3-07-01 00:00 조회1,47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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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엄한 여름,
조국과 민족의 희망 청년.학생들이
6.15로 몰아쳐가자
-6.15 순례단 황선 단장을 만나
지난 6월1일부터 15일까지 6.13 1주기 추모대회와 6.15 통일대축전 성사를 위해 반도 남쪽을 누벼온 6.15시대 신념의 강자들이 있다. ‘6.15공동선언 기치 높이 민족공조로 자주와 평화를 지키자’는 기치를 들고 전국을 누벼온 6월의 통일선봉대, 그들은 바로 ‘6.13 1주기 추모대회 및 6.15 민족통일대축전 성사를 위한 반미반전평화수호 청년학생 전국순례단(6.15순례단)’이다.
이라크전쟁의 불씨를 한반도로 옮기려는 미국의 음모에 맞서 반미반전, 평화수호를 기치를 높이 든 6.15순례단, 한미공조가 망친 나라 민족공조로 되살리자고,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실현하자고,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하고 주한미군 철수시켜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자고 호소하며 전국을 누빈 그들은 시대의 영웅들이었다.
그들의 투쟁과 활동, 모범의 전부를 담아내지는 못하겠지만, 6.15순례단 단장을 맡은 황선 6.15공동선언 실천 청년학생연대(6.15청학연대) 대변인을 통해 그 영웅들의 일면이라도 들어보고자 한다.
황선 단장은 순례단 활동 5일을 남겨둔 6월11일부터 5일간 단식을 진행하며 순례단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다.
-먼저 이번 순례단을 꾸리게 된 이유부터 들어봤으면 한다
=정세적 요구가 청년, 학생들의 헌신적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 6.13과 6.15는 단순히 추모할 날, 기념할 날이 아니다. 올 여름은 북과 미국의 진검승부가 벌어질 것이며, 지금의 시기는 진검승부를 앞둔 시기이다. 이번 진검승부에서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뭘까? 북과 미국이 이번 승부의 항수라면, 변수는 이남민중들의 6.15공동선언 이행 의지와 반미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6.13과 6.15는 특히나 더 중요했다. 그러나 정세의 요구만큼 청년, 학생들이 기세 높게 준비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6.13과 6.15로 몰아쳐가기 위해 이번 순례단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주로 어떻게 활동했나
=15일 동안의 활동이라 청년들과 학생들의 결합에 힘든 조건이 있었지만 학생들은 시험을 포기하고 학사경고까지 결의하고 결합했다. 또 지역마다에서 청년회들이 결합했고 연휴 때는 직장인들까지 결합해 함께 활동했다. 전국의 주요 도시들을 순회하며 서명운동, 선전전, 지역단체들과의 간담회 등을 진행했다. 새벽에 지역 대학에 들어가서 오전에는 아침선전전과 대자보 선전 등을 했고, 오후에는 거점 마당사업과 서명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저녁에는 지역의 청년, 학생들과 문화제나 집회를 만들고 밤에는 지역 단체 사람들과의 간담회와 강연 등을 진행했다. 그후 12시쯤 고속버스를 타고 다음 지역으로 출발하곤 했다.
자기 활동에서 여지는 없는지 매일 점검?혁신
“내가 결심하면 결심한 대로 된다”
-활동하면서 중점을 뒀던 부분이 있다면
=활동에 대한 사명감과 자각력을 높이는 것에 중점을 뒀다. 통일선봉대와 같이 대규모가 아니기 때문에 대원 한명 한명의 높은 역할이 요구됐다. 노래와 율동, 집체극은 물론이고 지하철과 버스에서의 선동연설과 정치연설도 해야 했고, 유인물도 돌리고 서명도 받았다. 상황이 열악하고 적은 인원이라도 하더라도 ‘결심하면 된다’는 각오를 자각하고 높여가는 과정으로 만들었다. 단위운동이 어렵다고들 말을 많이 하는데, 결심하고 실천하면 불가능한 것이 없었다. 어느 지역에서는 순례단과 지역 일꾼들이 뭉쳐서 몇 년 만에 최초로 반미집회를 열기도 했는데, 모두들 느끼는 바가 많았다.
-각오와 결심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소개해달라
=단원들이 서명운동을 많이 했는데, 반드시 하루 2시간 정도는 진행했다.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과 미군 철수에 대한 서명이었는데 개인목표를 정하고 활동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한두 시간 만에 50명 서명받기에 급급했다. 사실 이것도 평소 활동을 놓고 생각해보면 적게 받은 건 아니다. 이렇게 하면서 50명 이상은 불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만도 한데 우리 대원들은 오히려 목표를 100명으로 높였다. 6.13과 6.15의 거족적 성사를 위해 우리가 꼭 해내야만 하는 몫이라고 생각하고 달라붙었다. 실제로 그렇게 결심하고 달라붙었더니 하루에 1천6백명, 한 사람이 2백명까지도 받아왔다. 줄 세워놓고 받은 것도 아니고 일일이 만나고 해설하면서 받은 것이다.
단원들은 매일매일 자기 활동에서 여지는 없는지, 소극성은 없는지 검토하고 혁신했다. 진짜 열심히 하는데 왜 50명 수준을 넘지 못할까 고민해봤더니 자신의 행동에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 서명받고 나서 다음엔 누구한테 받을까 고르지도 않고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로 가서 서명받기 시작했고, 이 사람은 해 줄 것 같다 저 사람은 안 해 줄 것 같다는 식의 가늠도 하지 않았다.
-각오와 결심이 대단했던 것 같다
=학생단장(권순영 홍익대 부총학생회장)이 어느날 ‘순례단은 자체정화작용이 너무 훌륭하다’고 평한 적이 있다. 하루 활동을 하다 보면 어떤 날은 서명에 치우치고 어떤 날은 추모위원 모집에 치우치고 하는 경향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단원들 자체가 다음날에는 이런이런 지점들을 혁신하자고 ‘정화’해 나갔다. 이 점을 지적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도 스스로 총화하고 고쳐나가는 모습이었고 나날이 발전하는 과정이었다.
-날이 갈수록 힘들었을 텐데 오히려 활동이 더 좋아진 원인이 있다면
=그 이유를 02학번 한 대원에게 물어봤다. 그 친구는 작년에 통일선봉대를 갔다 왔는데, 이후 너무 못 살았다고 하더라. 이번에도 순례단 가겠다고 하니까 선배들이 갔다 와도 소용없다고, 작년에 통선대 갔다 와서 변한 게 뭐가 있냐며 만류했다고 했다. 이번에는 꼭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4시간 동안 울면서 조른 끝에 순례단에 왔는데, 그 단원이 ‘순례단 활동이 너무 좋다’고 했다. 이전에는 하루하루 지나면 몸이 힘들어짐과 동시에 마음도 힘들어졌는데, 지금은 오히려 더 즐겁고 좋아진다고 하더라. 뭐가 좋으냐고 물었더니 ‘내가 결심하면 결심한 대로 된다. 너무 신기하고 기쁘다’고 했다. 다른 단원들도 이 말을 자주 했다.
순례단이 공연한 ‘2003 신춘향전’은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상황과 한미정상회담, 그리고 미국의 간섭 등을 신랄하게 풍자해 관중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신춘향전은 미국의 간섭과 전쟁위협을 민족공조와 북미불가침조약 체결로 극복하자는 내용을 잘 형상화했다
‘나라망친 한미공조, 나라살릴 민족공조’
불가침조약 체결 1만명 서명 … 국민 지지
-요즘 민족공조와 외세공조에 대한 논란이 많다
=우리가 계속 외치고 선전하고 다닌 표어 가운데 하나가 ‘나라망친 한미공조, 나라살릴 민족공조’였다. 이게 함축적으로 드러낸 말인 것 같다. 이것은 양 다리를 적절히 걸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과 미국이 어떻게 공조할 수 있나? 공조는 서로 서로가 도움을 적절히 줘가며 이득을 같이 취할 수 있는 평등한 관계에서 가능하지 않은가. 현재의 일방적인 주종관계에서 공조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반미감정을 무력화시키려는 이데올로기 공세의 핵심이 바로 한미공조이다.
-북미불가침조약 체결 서명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시민들 반응은 어떠했나
=북미불가침조약 체결이 쉽지 않은 내용 아니냐는 질문을 일꾼들한테 많이 들었다. 실제로 서명을 받아보면 너무 잘해주신다. 물론 방법적으로 ‘북미불가침조약 체결촉구 서명받고 있습니다’라고 하면 쉽지 않지만, ‘북미간에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있는데, 이 전쟁을 막기 위해서 북과 미국이 서로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국제사회를 향해서 하라고 하는 북미불가침조약 체결을 촉구하고 있습니다’고 얘기하면 100명 가운데 99명이 다 해 주셨다. ‘이건 좀 힘든데’라고 얘기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주눅드는 경우인 것 같다. 북이 먼저 얘기한 거 아니냐는 비난을 많이 받다보니까 스스로 먼저 한계지어 놓은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강원지역을 갔을 때 일이다. 불가침조약 서명운동을 같이 하기 위해 일꾼들을 만났는데, 일꾼들이 ‘6.13 선전만 했다. 불가침조약 체결을 촉구하는 의식흐름을 만들지 못해서 시기를 놓쳤다’며 지역정서가 보수적이라 걱정된다고 말하더라. 흐름이야 지금부터 만들면 되니까 시작하자며 비가 많이 오는 날 서명판 하나 들고 모두 나갔다. 그런데 그날 1천6백명 기록을 세웠다. 의식흐름은 서명판 하나 들고 적극적이고 자세하게 해설선전하고 다녀도 만들어질 수 있음을 모두가 깨달았다.
-활동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없었는데… (웃음).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좀 힘들었다.
항상 조국과 민족의 기쁨이었던 청년, 학생
우리민족과 미국간의 진검승부의 맨앞에 서자
-기억에 남는 단원이 있다면
=전부 모범이라서 한 명을 꼽을 수가 없는데… (난감) 원광대 02학번 친구가 기억에 남는다. 광주지역에 가서 간단하게 결의다지는 자리가 있었다. 지역별로 일어나서 결의도 밝히고 장기자랑도 했다. 맨 마지막에 ‘전북총련 오셨습니까?’라는 말에 혼자 ‘투쟁’하고서 일어나 많이 울었다. 자기는 어디 가서 전북총련이 불려본 적이 없다고 하면서. 그 친구는 전북지역에서 순례단에 결합했는데, 그 친구를 보내면서 버스 밖에서 몇 명의 선배들이 전북총련 찬가를 부르며 눈물흘리는 모습이 모두들에게 크고 소중한 감동으로 남았다. 순례단이 다녀간 이후 원광대에서 6.13추모 촛불집회가 있었는데 너무 성대하게 잘 치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편 너무 너무 힘들어서 잠수하는(?) 심정으로 온 단원도 있다. 처음에는 너무 냉소적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왔다고 하더라. 그런데 활동하면서 이 친구가 너무 밝아졌다. ‘이거 누가 할래요?’라고 물으면 항상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나섰다. 농담이라도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녔고, 실제로 자기가 다 하더라.
-한반도에 핵전쟁의 위험이 엄습해오는 현재 청년, 학생들의 투쟁이 더욱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올 상반기 전체 운동진영이 열심히 했으나 정세가 요구하는 수준에 못 미치면서 반통일세력들의 6.15공동선언 파기 공세를 심하게 받았다. 지금은 온 민족이 공조해서 반미투쟁을 폭발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10월 제네바합의 만료시간이 다가오면서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올 여름 남다른 기세로 반미투쟁을 일구지 않으면 우리 민족과 미국과의 진검승부에서 우리 때문에, 항상 조국과 민족의 기쁨이었고 자랑이었던 청년, 학생들이 그만큼 투쟁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조국과 민족이 근심에 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보수세력들의 기세를 보라. 3.1절, 4.19, 다가올 6.25까지 모든 계기와 조건을 살려 전세를 역전시키려 하고 있다. 그들도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기세와 헌신성에서 밀리면 안 된다. 모든 계기와 조건을 살려 헌신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마당사업이든 집회든 선전사업이든 뭐든지 해보려고 달려들고 꾸준하게 밀어붙이는 자세가 절실하다
[출처;월간 우리 6-23-03]
조국과 민족의 희망 청년.학생들이
6.15로 몰아쳐가자
-6.15 순례단 황선 단장을 만나

이라크전쟁의 불씨를 한반도로 옮기려는 미국의 음모에 맞서 반미반전, 평화수호를 기치를 높이 든 6.15순례단, 한미공조가 망친 나라 민족공조로 되살리자고,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실현하자고,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하고 주한미군 철수시켜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자고 호소하며 전국을 누빈 그들은 시대의 영웅들이었다.
그들의 투쟁과 활동, 모범의 전부를 담아내지는 못하겠지만, 6.15순례단 단장을 맡은 황선 6.15공동선언 실천 청년학생연대(6.15청학연대) 대변인을 통해 그 영웅들의 일면이라도 들어보고자 한다.
황선 단장은 순례단 활동 5일을 남겨둔 6월11일부터 5일간 단식을 진행하며 순례단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다.
-먼저 이번 순례단을 꾸리게 된 이유부터 들어봤으면 한다
=정세적 요구가 청년, 학생들의 헌신적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 6.13과 6.15는 단순히 추모할 날, 기념할 날이 아니다. 올 여름은 북과 미국의 진검승부가 벌어질 것이며, 지금의 시기는 진검승부를 앞둔 시기이다. 이번 진검승부에서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뭘까? 북과 미국이 이번 승부의 항수라면, 변수는 이남민중들의 6.15공동선언 이행 의지와 반미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6.13과 6.15는 특히나 더 중요했다. 그러나 정세의 요구만큼 청년, 학생들이 기세 높게 준비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6.13과 6.15로 몰아쳐가기 위해 이번 순례단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주로 어떻게 활동했나
=15일 동안의 활동이라 청년들과 학생들의 결합에 힘든 조건이 있었지만 학생들은 시험을 포기하고 학사경고까지 결의하고 결합했다. 또 지역마다에서 청년회들이 결합했고 연휴 때는 직장인들까지 결합해 함께 활동했다. 전국의 주요 도시들을 순회하며 서명운동, 선전전, 지역단체들과의 간담회 등을 진행했다. 새벽에 지역 대학에 들어가서 오전에는 아침선전전과 대자보 선전 등을 했고, 오후에는 거점 마당사업과 서명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저녁에는 지역의 청년, 학생들과 문화제나 집회를 만들고 밤에는 지역 단체 사람들과의 간담회와 강연 등을 진행했다. 그후 12시쯤 고속버스를 타고 다음 지역으로 출발하곤 했다.
자기 활동에서 여지는 없는지 매일 점검?혁신
“내가 결심하면 결심한 대로 된다”
-활동하면서 중점을 뒀던 부분이 있다면
=활동에 대한 사명감과 자각력을 높이는 것에 중점을 뒀다. 통일선봉대와 같이 대규모가 아니기 때문에 대원 한명 한명의 높은 역할이 요구됐다. 노래와 율동, 집체극은 물론이고 지하철과 버스에서의 선동연설과 정치연설도 해야 했고, 유인물도 돌리고 서명도 받았다. 상황이 열악하고 적은 인원이라도 하더라도 ‘결심하면 된다’는 각오를 자각하고 높여가는 과정으로 만들었다. 단위운동이 어렵다고들 말을 많이 하는데, 결심하고 실천하면 불가능한 것이 없었다. 어느 지역에서는 순례단과 지역 일꾼들이 뭉쳐서 몇 년 만에 최초로 반미집회를 열기도 했는데, 모두들 느끼는 바가 많았다.
-각오와 결심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소개해달라
=단원들이 서명운동을 많이 했는데, 반드시 하루 2시간 정도는 진행했다.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과 미군 철수에 대한 서명이었는데 개인목표를 정하고 활동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한두 시간 만에 50명 서명받기에 급급했다. 사실 이것도 평소 활동을 놓고 생각해보면 적게 받은 건 아니다. 이렇게 하면서 50명 이상은 불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만도 한데 우리 대원들은 오히려 목표를 100명으로 높였다. 6.13과 6.15의 거족적 성사를 위해 우리가 꼭 해내야만 하는 몫이라고 생각하고 달라붙었다. 실제로 그렇게 결심하고 달라붙었더니 하루에 1천6백명, 한 사람이 2백명까지도 받아왔다. 줄 세워놓고 받은 것도 아니고 일일이 만나고 해설하면서 받은 것이다.
단원들은 매일매일 자기 활동에서 여지는 없는지, 소극성은 없는지 검토하고 혁신했다. 진짜 열심히 하는데 왜 50명 수준을 넘지 못할까 고민해봤더니 자신의 행동에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 서명받고 나서 다음엔 누구한테 받을까 고르지도 않고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로 가서 서명받기 시작했고, 이 사람은 해 줄 것 같다 저 사람은 안 해 줄 것 같다는 식의 가늠도 하지 않았다.
-각오와 결심이 대단했던 것 같다
=학생단장(권순영 홍익대 부총학생회장)이 어느날 ‘순례단은 자체정화작용이 너무 훌륭하다’고 평한 적이 있다. 하루 활동을 하다 보면 어떤 날은 서명에 치우치고 어떤 날은 추모위원 모집에 치우치고 하는 경향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단원들 자체가 다음날에는 이런이런 지점들을 혁신하자고 ‘정화’해 나갔다. 이 점을 지적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도 스스로 총화하고 고쳐나가는 모습이었고 나날이 발전하는 과정이었다.
-날이 갈수록 힘들었을 텐데 오히려 활동이 더 좋아진 원인이 있다면
=그 이유를 02학번 한 대원에게 물어봤다. 그 친구는 작년에 통일선봉대를 갔다 왔는데, 이후 너무 못 살았다고 하더라. 이번에도 순례단 가겠다고 하니까 선배들이 갔다 와도 소용없다고, 작년에 통선대 갔다 와서 변한 게 뭐가 있냐며 만류했다고 했다. 이번에는 꼭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4시간 동안 울면서 조른 끝에 순례단에 왔는데, 그 단원이 ‘순례단 활동이 너무 좋다’고 했다. 이전에는 하루하루 지나면 몸이 힘들어짐과 동시에 마음도 힘들어졌는데, 지금은 오히려 더 즐겁고 좋아진다고 하더라. 뭐가 좋으냐고 물었더니 ‘내가 결심하면 결심한 대로 된다. 너무 신기하고 기쁘다’고 했다. 다른 단원들도 이 말을 자주 했다.

‘나라망친 한미공조, 나라살릴 민족공조’
불가침조약 체결 1만명 서명 … 국민 지지
-요즘 민족공조와 외세공조에 대한 논란이 많다
=우리가 계속 외치고 선전하고 다닌 표어 가운데 하나가 ‘나라망친 한미공조, 나라살릴 민족공조’였다. 이게 함축적으로 드러낸 말인 것 같다. 이것은 양 다리를 적절히 걸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과 미국이 어떻게 공조할 수 있나? 공조는 서로 서로가 도움을 적절히 줘가며 이득을 같이 취할 수 있는 평등한 관계에서 가능하지 않은가. 현재의 일방적인 주종관계에서 공조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반미감정을 무력화시키려는 이데올로기 공세의 핵심이 바로 한미공조이다.
-북미불가침조약 체결 서명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시민들 반응은 어떠했나
=북미불가침조약 체결이 쉽지 않은 내용 아니냐는 질문을 일꾼들한테 많이 들었다. 실제로 서명을 받아보면 너무 잘해주신다. 물론 방법적으로 ‘북미불가침조약 체결촉구 서명받고 있습니다’라고 하면 쉽지 않지만, ‘북미간에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있는데, 이 전쟁을 막기 위해서 북과 미국이 서로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국제사회를 향해서 하라고 하는 북미불가침조약 체결을 촉구하고 있습니다’고 얘기하면 100명 가운데 99명이 다 해 주셨다. ‘이건 좀 힘든데’라고 얘기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주눅드는 경우인 것 같다. 북이 먼저 얘기한 거 아니냐는 비난을 많이 받다보니까 스스로 먼저 한계지어 놓은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강원지역을 갔을 때 일이다. 불가침조약 서명운동을 같이 하기 위해 일꾼들을 만났는데, 일꾼들이 ‘6.13 선전만 했다. 불가침조약 체결을 촉구하는 의식흐름을 만들지 못해서 시기를 놓쳤다’며 지역정서가 보수적이라 걱정된다고 말하더라. 흐름이야 지금부터 만들면 되니까 시작하자며 비가 많이 오는 날 서명판 하나 들고 모두 나갔다. 그런데 그날 1천6백명 기록을 세웠다. 의식흐름은 서명판 하나 들고 적극적이고 자세하게 해설선전하고 다녀도 만들어질 수 있음을 모두가 깨달았다.
-활동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없었는데… (웃음).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좀 힘들었다.
항상 조국과 민족의 기쁨이었던 청년, 학생
우리민족과 미국간의 진검승부의 맨앞에 서자
-기억에 남는 단원이 있다면
=전부 모범이라서 한 명을 꼽을 수가 없는데… (난감) 원광대 02학번 친구가 기억에 남는다. 광주지역에 가서 간단하게 결의다지는 자리가 있었다. 지역별로 일어나서 결의도 밝히고 장기자랑도 했다. 맨 마지막에 ‘전북총련 오셨습니까?’라는 말에 혼자 ‘투쟁’하고서 일어나 많이 울었다. 자기는 어디 가서 전북총련이 불려본 적이 없다고 하면서. 그 친구는 전북지역에서 순례단에 결합했는데, 그 친구를 보내면서 버스 밖에서 몇 명의 선배들이 전북총련 찬가를 부르며 눈물흘리는 모습이 모두들에게 크고 소중한 감동으로 남았다. 순례단이 다녀간 이후 원광대에서 6.13추모 촛불집회가 있었는데 너무 성대하게 잘 치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편 너무 너무 힘들어서 잠수하는(?) 심정으로 온 단원도 있다. 처음에는 너무 냉소적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왔다고 하더라. 그런데 활동하면서 이 친구가 너무 밝아졌다. ‘이거 누가 할래요?’라고 물으면 항상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나섰다. 농담이라도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녔고, 실제로 자기가 다 하더라.
-한반도에 핵전쟁의 위험이 엄습해오는 현재 청년, 학생들의 투쟁이 더욱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올 상반기 전체 운동진영이 열심히 했으나 정세가 요구하는 수준에 못 미치면서 반통일세력들의 6.15공동선언 파기 공세를 심하게 받았다. 지금은 온 민족이 공조해서 반미투쟁을 폭발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10월 제네바합의 만료시간이 다가오면서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올 여름 남다른 기세로 반미투쟁을 일구지 않으면 우리 민족과 미국과의 진검승부에서 우리 때문에, 항상 조국과 민족의 기쁨이었고 자랑이었던 청년, 학생들이 그만큼 투쟁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조국과 민족이 근심에 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보수세력들의 기세를 보라. 3.1절, 4.19, 다가올 6.25까지 모든 계기와 조건을 살려 전세를 역전시키려 하고 있다. 그들도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기세와 헌신성에서 밀리면 안 된다. 모든 계기와 조건을 살려 헌신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마당사업이든 집회든 선전사업이든 뭐든지 해보려고 달려들고 꾸준하게 밀어붙이는 자세가 절실하다
[출처;월간 우리 6-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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