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주 한총련 의장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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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3-07-15 00:00 조회1,50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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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경화 투병중인 김영인씨를 만나
-김형주 10기 한총련 의장(2002년) 아버지
“아들 걱정으로 타버린 간세포
올해안에 빈 자기방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아! 하늘도 무심하다. 하늘에 대고 원망이라도 해야 하나.
작년 한총련 10기 의장이었던 김형주씨의 아버지 김영인(55)씨가 간경화 말기로 접어들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2001년 감옥에서 아버지의 임종을 맞아야 했던 6기 한총련 의장 손준혁씨의 아픔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듯 했다.
작년 아들 구속 이후 급격히 악화
95년 간염증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김영인씨는 2001년 간경화 판정을 받았고 작년부터 급속하게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오후만 되면 몰려오는 피곤 때문에 회사일을 제대로 하기도 힘들어졌다. 동료들 눈치도 보이고 나이 먹어서 매번 아프다는 소리도 할 수가 없어서 다니던 직장을 작년에 그만 뒀다. 현재는 집에만 있기 심심해서 조금씩만 활동하자는 생각으로 월, 수, 금 일주일에 세 번씩 YWCA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요즘은 꾸준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안정을 되찾았으나 처음 간경화 판정을 받았을 때는 무척 힘들어했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몇 번이나 유서를 썼다가 찢곤 했어.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억울하기도 했고 다 포기하고 싶었지. 그러다가 형주가 구속되고 나니까 건강이 더 안 좋아진 것 같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봐”라며 힘들었던 당시의 심경을 토로했다.
작년 5월28일 김형주씨가 한총련 의장으로 당선된 지 두 달도 채 못 돼 구속되자 김영인씨의 병은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반세기 이상 우리를 괴롭혀온 ‘그놈의 국가보안법’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한 평생을 살겠다던 스물여섯 열혈청춘을 구속한 것도 모자라 그 아버지의 간세포마저 말려버린 것이다.
“사람다운 사람, 사람을 위한 사람
막내아들 형주는 그런 아이”
막내아들인 형주를 감옥에 보내고 나서 가족들의 맘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막내아들이 집에 오지 못한 게 올해로 3년째가 되지만 아들 생각은 한시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버지 김영인씨는 “나는 남자니까 괜찮은데 엄마가 맘고생이 많지.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는 형주가 자리잡고 있으니까. 추울 때 어떻게 지내는지, 운동은 잘 하고 있는지, 날마다 이야기하다시피 하지”라고 말했다.
김형주씨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항상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던 활달한 성격이었고, 귀여움도 많이 받은 막내였다.
“막내니까 아무래도 형보다는 활달하고 친구가 많았어. 어릴 때부터 형 따라다니며 놀고, 형이 못 따라오게 때려도 쪼르르 따라가 축구하고 같이 놀았지. 그리고 항상 친구들이 많이 따르곤 했는데 사람을 포용하고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라고 막내아들을 회고했다.
김형주씨는 얼마 전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가훈인 ‘인위인(人爲人)’에 대한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고 한다. 김영인씨는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가훈인 ‘인위인’에 대한 얘기를 해주곤 했는데 막내아들이 편지로 이 얘기를 한 것이다.
“인위인의 뜻은 사람다운 사람, 사람을 위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야. 형주가 편지에서 우리집 가훈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고 그 가훈대로 큰 사람이 되겠다고 했어. 나도 형주가 그렇게까지 가훈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편지를 받고야 알게 됐다”며 “항상 심지가 곧았고 한번 마음먹으면 무엇이든지 꼭 하고 마는 애가 우리 형주였다”고 말했다.
“학생들 주장은 언제나 옳았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여태까지 학생운동을 돌아보면 학생들의 주장이 잘못된 주장이 아니었거든. 지나고 보면 다 맞아. 지금도 마찬가지야. 미국을 반대한다고 해서 그게 잘못된 일이 아닐 뿐 아니라 통일하기 위해 김정일 위원장도 만나야 된다, 학생들 간에 교류도 해야 된다고 하는 게 무슨 잘못이야.”
그러면서 김영인씨는 “한총련의 주장보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의 주장이 더 강하다”며 “지금 우리 사회가 학생들을 수용하지 못할 만큼의 사회가 아니다”고 말했다.
얼마든지 관용으로서 학생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강경일변도로 학생들을 몰아붙이는 것은 잘못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김영인씨는 여태까지 학생운동을 돌아보면 학생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 없다며 정치권이 많이 변해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한총련 합법화에 대해 요란하게 떠들었지만 5.18 행사를 핑계로 학생들의 행동이 잘못됐다며 합법화를 유야무야시켜버린 정부당국에 대해 실망을 금치 못했다.
“결국 그렇게 됐어. 실망이 컸지. 지금은 8.15 때에 희망을 가져보려고 하는데, 이석기씨를 보니까 형주도 8.15 때는 어렵게 생겼고, 연말 성탄절이나 어떻게 가능하려나 하는 희망을 가져보는데 모르겠어”하고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김영인씨는 정치권이 많이 변해야 한다며 보수세력에 대해 일침을 놓았다.
“보수세력들이 하는 꼴을 보면 울화통이 터져. 사실 특검 자체를 받지 말았어야지. 전쟁이 일어나서 입게 될 피해를 생각하면 몇 억 달러 준 건 아무것도 아니잖아. 많은 이익과 좋은 점은 생각지도 않고 몇 억 달러 들여 정상회담 구걸했다고 매도하니 답답할 때가 너무 많아. 한나라당에서 계속 발목잡기를 하고 있는데 무조건 미국말만 들어야 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돼지.”
이사한 새집과 비어있는 아들 방
“올해 안에는 나왔으면 좋겠는데…”

자신의 건강이 안 좋은 터라 큰아들이 결혼하면 같이 살려고 평수를 좀 더 넓혀 이사했다는 김영인씨는 비어있는 막내의 방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려온다고 한다.
이사 내내 막내아들 생각에 허전한 맘을 감추지 못했던 어머니 유영순씨는 “형주가 목소리가 커서 한 번 웃으면 집이 쩌렁쩌렁 했는데 지금은 집이 조용해. 작년 겨울에 그렇게 얼굴이 안 좋았는데 올 겨울 안에는 나와야 할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사한 새집 곳곳에서 막내 형주씨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거실 한 가운데에는 단란한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고, 탁자 위에는 한총련 의장 출마 때의 사진이 고운 액자에 넣어져 놓여 있었다. 그의 방 책장에는 어렸을 때 사진부터 중고등학교 때 사진, 군복무 때 찍은 짧은 머리의 사진, 그리고 대학교 때 사진까지 증명사진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그러나 가족들이 정작 보고픈 것은 사진이 아닐 것이다. 온 집안을 쩌렁쩌렁 울리게 하는 그의 웃음과 빈방을 채우는 그의 온기가 필요하다. 그 웃음과 온기가 타버린 아버지의 간세포를 다시 소생시키는 명약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믿음 -“난 항상 아들 편”
“형주는 개인 아닌 한총련 대표
상고 취하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
인터뷰 내내 막내 김형주씨에 대한 아버지 김영인씨의 신뢰와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병세가 악화된 상황에서 한시라도 아들이 빨리 석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하지만 아버지 김영인씨는 아들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항상 아들 편”이라고 말했다. 이 마음을 대법원 상고와 관련한 아버지의 생각을 통해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올 1월 광주고법에서 열린 2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김형주 10기 한총련 의장에게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의 실형을 선고했고, 이와 관련해 김형주씨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상고 논란’이 있기도 했다. 전남대 총학생회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정부당국에서 상고를 취하하면 선처를 베풀 수도 있다는 식의 제안을 한 바가 있다”고 한다. 이 문제는 한총련 내부에서도 논의가 있었다.
이에 대해 김영인씨는 “나도 그 얘기를 알고 있었고, 형주는 그런 식으로 구걸하지는 않겠다고 하면서 취하하지 않았다”며 당시 얘기를 들려주었다.
“면회갔을 때 형주가 그 얘기를 했어. 몇몇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한 적도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형주가 전혀 그런 마음은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개인이 아니라 한총련 대표라는 말도 했다. 아픈 아버지를 앞에 두고 그런 말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감옥에 있는 게 죄송해서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나도 형주 뜻에 동조했고 상고 취하라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어.”
대학교 1학년 때 아들이 학생운동 하는 걸 알고 말리기도 했던 아버지였지만 ‘내 자식이 죄 지은 건 없다’는 확신과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사람다운 사람, 사람을 위한 사람이 되자’는 가훈을 새기고 사는 아버지와 ‘그 가훈대로 큰 사람이 되겠다던’ 아들 김형주, 이들은 승리할 것이다.
김영준기자
[출처; 월간 우리 6-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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