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조선의 백년숙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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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3-09-19 00:00 조회1,51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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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조선인민의 백년숙적(1)
(평양 8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일제의 군사적강점으로부터 조선이 광복된지 58년이 되여 온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죄악에 대하여 청산은커녕 조선에 대한 재침야망을 더욱 드러 내 놓고 있다.
수백년전부터 조선을 침략한 일본
일본의 조선침략은 13세기 초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시작되였다.
당시 고리대자본이 장성함에 따라 몰락한 일본의 하층무사들은 쯔시마,북규슈해안을 비롯한 조선(당시 고려)과 가까운 섬들과 해안에 근거지를 두고 조선반도에 침략의 마수를 뻗치였다. 놈들은 수백척의 배를 타고 조선반도에 침입하여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죽이고 재물을 략타하였다.
왜구의 침략은 1350년이후 더욱 본격화되여 16세기까지 계속되였다.
16세기 말 조선침략의 우두머리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권세욕과 일본 봉건령주,상인들의 령토와 재부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조선침략계획을 세우고 1591년 8월부터 병력동원과 전함건조에 날뛰였다.
침략준비가 완료되자 도요도미는 1592년 가또 기요사마,고니시 유끼나가 등의 통솔하에 20여만의 침략군을 조선에 내몰았다.
도요도미는 침략군 병사들에게 <사람의 귀는 둘이고 코는 하나다.죽인 조선사람의 코를 잘라 소금에 절여서 보내라.병사 한명당 코 한되씩 책임이다.>(남조선도서 <다시 쓰는 임진왜란사> 178페지)라고 명령하고 코를 많이 바친 병사들에게 <코감사장>까지 주었다.
일본 교또에 있는 조선사람 21만 4,752명의 <코무덤>은 일본침략자들의 잔인성과 야수성을 그대로 실증 해 주고 있다.
임진조국전쟁(1592-1598)시기 일본침략군은 당시 평안도와 함경도에까지 침입하여 살인,방화,략타 등 야수적만행을 감행하였지만 조선인민의 완강한 항전에 부딪쳐 참패를 면치 못하였다.(끝)
(평양 8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일제의 군사적강점으로부터 조선이 광복된지 58년이 되여 온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죄악에 대하여 청산은커녕 조선에 대한 재침야망을 더욱 드러 내 놓고 있다.
수백년전부터 조선을 침략한 일본
일본의 조선침략은 13세기 초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시작되였다.
당시 고리대자본이 장성함에 따라 몰락한 일본의 하층무사들은 쯔시마,북규슈해안을 비롯한 조선(당시 고려)과 가까운 섬들과 해안에 근거지를 두고 조선반도에 침략의 마수를 뻗치였다. 놈들은 수백척의 배를 타고 조선반도에 침입하여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죽이고 재물을 략타하였다.
왜구의 침략은 1350년이후 더욱 본격화되여 16세기까지 계속되였다.
16세기 말 조선침략의 우두머리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권세욕과 일본 봉건령주,상인들의 령토와 재부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조선침략계획을 세우고 1591년 8월부터 병력동원과 전함건조에 날뛰였다.
침략준비가 완료되자 도요도미는 1592년 가또 기요사마,고니시 유끼나가 등의 통솔하에 20여만의 침략군을 조선에 내몰았다.
도요도미는 침략군 병사들에게 <사람의 귀는 둘이고 코는 하나다.죽인 조선사람의 코를 잘라 소금에 절여서 보내라.병사 한명당 코 한되씩 책임이다.>(남조선도서 <다시 쓰는 임진왜란사> 178페지)라고 명령하고 코를 많이 바친 병사들에게 <코감사장>까지 주었다.
일본 교또에 있는 조선사람 21만 4,752명의 <코무덤>은 일본침략자들의 잔인성과 야수성을 그대로 실증 해 주고 있다.
임진조국전쟁(1592-1598)시기 일본침략군은 당시 평안도와 함경도에까지 침입하여 살인,방화,략타 등 야수적만행을 감행하였지만 조선인민의 완강한 항전에 부딪쳐 참패를 면치 못하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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