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green>[대담]평양 교원대 김혜경씨</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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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3-10-13 00:00 조회1,59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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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자주민보 김영준 기자는 최근 청년학생 유적답사단 방북을 취재하는 중에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응원단으로 참가했던 여대생을 만나 짤막대담 시간을 가졌다. 전문을 싣는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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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생각에 요즘에 자다가 깬다"
짤막기사 2 - 대구 U-대회 갔다온 김혜경(평양교원대3)
김영준기자
청년학생 유적답사단의 안내를 맡은 북측 대학생 가운데는 대구 U-대회 때 남측에 왔던 학생들도 몇 명 포함돼 있어 남측답사단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번에 응원단으로 왔던 김혜경(평양교원대 3)씨를 만나 방남 소감에 대해 들어보았다.
대체로 말수가 적은 북측 여대생들과는 달리 활발한 성격의 김혜경 씨는 남측 청년학생에게 쉴새없이 질문들을 해가며 시종일관 테이블 분위기를 사로잡았다. 편집자
[사진]김혜경씨(왼쪽)가 "조국은 하나"는 의미로 손가락 하나를 세워보이고 있다
U-대회 때 남측배구단 응원하다 목 쉬기도
-대구에 갔다 왔는데 좋았는지
=대구시민들이 반갑게 맞아줘서 너무 고마웠다. 경기장에서 남측 동포들을 만날 때 오고가는 혈육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북과 남 동포들이 공동응원을 하면서 "우리는 하나다" "우리 민족끼리 조국통일"의 구호를 외칠 때와 "통일기차 놀이"를 할 때가 제일 기뻤다.
-내려올 때 어떤 심정이었나
=하루 빨리 남측동포(대학생)들을 만나서 북측 청년, 학생들의 통일결심과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만나 보니) 눈빛도 같고 생김새도 같고 언어도 같은 한겨레 한동포임을 다시 한번 알게 됐다.
-남측생활을 보며 다른 점도 느꼈을텐데
=크게 느끼지 못했고 여기도 우리 땅이구나 하는 생각을 들었다. 섭섭했던 게 하나 있었는데, 조선말로 된 게 하나도 없더라. 과자도 "비스켓"이라고 하고 빵도 "소보루"라고 하고…. 그리고 (대구) 공기가 답답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남측) 안내원한테 물어봤더니 "분지라서 그렇다"고 하더라.
"조선말도 된 게 하나도 없어 섭섭해"
[사진]U-대회 때 미국과의 배구경기를 이긴 남측 배구단이 열띤 응원을 보내준 북측 응원단 앞으로 다가가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통일뉴스 자료>
-남측과 미국의 남자배구경기에 나와 남측을 응원했는데
=북이나 남이나 한 동포이고 통일된 강산에서 모여 살아야 할 한 동포인데 북과 남이 따로 있을 수 있나. 더군다나 미국과 하는 경기인데…. 그때 하도 열심히 응원해서 목이 다 쉬었다. 경기가 이겨서 너무 기쁘더라. 남측선수들이 (우리한테) 인사할 때 우리도 일어나서 손 흔들어주고 박수 쳐주고 했다.
-대회 기간 반북시위가 있었는데
=(밝게 웃던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지며) 몹시 기분 나빴다. 한나라당 때문이다. (동포들을) 만나보니까 모두가 통일하자고, 시민단체들도 통일하자고 그러던데 한줌도 안 되는 보수세력들 때문에…. 지금도 화가 난다.
-그때 숙소 안에서 뭘 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약간 머뭇거리며) 뭘 하긴…. 그냥 우리 할 일 했다. 응원연습 하고 뭐 그런 거….
"한나라당 생각하면 지금도 화난다"
-돌아갈 때 아쉽지 않았나
=헤어질 때 가지 말라고, 다시 만나자고 하던 남측 동포들이 아직도 생각난다. 헤어질 때 아쉬움이 너무 커서 요즘도 가끔씩 자다가 깨곤 한다. 너무 서운했고 우리가 왜 헤어져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뼈저리게 들었다.
-돌아와서 친구들과 남측 얘기는 좀 나눴는지
=남측동포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따뜻한 인사도 전하고 통일열기도 전해줬다. 웃는 모습도 똑같고 모든 것이 우리와 똑같더라고, 한민족이라고 얘기해줬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이제 통일이 멀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평양교원대 다닌다고 했는데 공부는 잘 하나
=(짧게) 성적은 좋다.
-북측 여성들은 결혼을 일찍 하던데
=(쑥스러운 듯) 애인 없다. 아직은 그런 생각 안 한다. 통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 교원대 학생이니까 교육사업을 잘 해서 내가 키운 후대들이 더 큰 일을 하게 될 때 그때 (시집)가고 싶다.
[출처:인터넷 자주민보 10/8/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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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생각에 요즘에 자다가 깬다"
짤막기사 2 - 대구 U-대회 갔다온 김혜경(평양교원대3)
김영준기자
청년학생 유적답사단의 안내를 맡은 북측 대학생 가운데는 대구 U-대회 때 남측에 왔던 학생들도 몇 명 포함돼 있어 남측답사단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번에 응원단으로 왔던 김혜경(평양교원대 3)씨를 만나 방남 소감에 대해 들어보았다.
대체로 말수가 적은 북측 여대생들과는 달리 활발한 성격의 김혜경 씨는 남측 청년학생에게 쉴새없이 질문들을 해가며 시종일관 테이블 분위기를 사로잡았다. 편집자

U-대회 때 남측배구단 응원하다 목 쉬기도
-대구에 갔다 왔는데 좋았는지
=대구시민들이 반갑게 맞아줘서 너무 고마웠다. 경기장에서 남측 동포들을 만날 때 오고가는 혈육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북과 남 동포들이 공동응원을 하면서 "우리는 하나다" "우리 민족끼리 조국통일"의 구호를 외칠 때와 "통일기차 놀이"를 할 때가 제일 기뻤다.
-내려올 때 어떤 심정이었나
=하루 빨리 남측동포(대학생)들을 만나서 북측 청년, 학생들의 통일결심과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만나 보니) 눈빛도 같고 생김새도 같고 언어도 같은 한겨레 한동포임을 다시 한번 알게 됐다.
-남측생활을 보며 다른 점도 느꼈을텐데
=크게 느끼지 못했고 여기도 우리 땅이구나 하는 생각을 들었다. 섭섭했던 게 하나 있었는데, 조선말로 된 게 하나도 없더라. 과자도 "비스켓"이라고 하고 빵도 "소보루"라고 하고…. 그리고 (대구) 공기가 답답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남측) 안내원한테 물어봤더니 "분지라서 그렇다"고 하더라.
"조선말도 된 게 하나도 없어 섭섭해"

-남측과 미국의 남자배구경기에 나와 남측을 응원했는데
=북이나 남이나 한 동포이고 통일된 강산에서 모여 살아야 할 한 동포인데 북과 남이 따로 있을 수 있나. 더군다나 미국과 하는 경기인데…. 그때 하도 열심히 응원해서 목이 다 쉬었다. 경기가 이겨서 너무 기쁘더라. 남측선수들이 (우리한테) 인사할 때 우리도 일어나서 손 흔들어주고 박수 쳐주고 했다.
-대회 기간 반북시위가 있었는데
=(밝게 웃던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지며) 몹시 기분 나빴다. 한나라당 때문이다. (동포들을) 만나보니까 모두가 통일하자고, 시민단체들도 통일하자고 그러던데 한줌도 안 되는 보수세력들 때문에…. 지금도 화가 난다.
-그때 숙소 안에서 뭘 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약간 머뭇거리며) 뭘 하긴…. 그냥 우리 할 일 했다. 응원연습 하고 뭐 그런 거….
"한나라당 생각하면 지금도 화난다"
-돌아갈 때 아쉽지 않았나
=헤어질 때 가지 말라고, 다시 만나자고 하던 남측 동포들이 아직도 생각난다. 헤어질 때 아쉬움이 너무 커서 요즘도 가끔씩 자다가 깨곤 한다. 너무 서운했고 우리가 왜 헤어져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뼈저리게 들었다.
-돌아와서 친구들과 남측 얘기는 좀 나눴는지
=남측동포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따뜻한 인사도 전하고 통일열기도 전해줬다. 웃는 모습도 똑같고 모든 것이 우리와 똑같더라고, 한민족이라고 얘기해줬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이제 통일이 멀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평양교원대 다닌다고 했는데 공부는 잘 하나
=(짧게) 성적은 좋다.
-북측 여성들은 결혼을 일찍 하던데
=(쑥스러운 듯) 애인 없다. 아직은 그런 생각 안 한다. 통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 교원대 학생이니까 교육사업을 잘 해서 내가 키운 후대들이 더 큰 일을 하게 될 때 그때 (시집)가고 싶다.
[출처:인터넷 자주민보 10/8/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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