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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green>[인물]민민원로 신창균옹(96)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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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3-12-24 00:00 조회1,6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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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한세기 우리역사의 산증인이며 1948년 김구 선생과 함께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 참석했던 민족민주운동의 원로 신창균 옹(96세)은 97세를 한달 앞둔 2일 국내 언론들과 공개유언 대담을 가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통일뉴스 보도를 싣는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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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속히 통일정부 이룩하길"
96세 노 애국자 신창균 옹 공개유언(1)


항일독립운동가와 조국통일운동가.
일생을 오직 한길만 걸어온 노 애국자가 있다.
그것도 올해 만 96세.


1948년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 한독당 대표로 김구선생을 모시고 참석했던 신창균 옹이 기자들이 배석한 가운데 공개유언을 했다.

37866_10.jpg▶97세를 한 달 앞두고 공개유언을 하고 있는 신창균 옹. 가슴에 범민련 뱃지를 달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2일 오후 3시 경기도 과천 자택에서 신창균 옹은 "내가 한 달만 있으면 97셉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장례식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라고 운을 뗀 뒤 자신의 사후 장례절차와 통일에의 열망을 담은 공개유언을 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감색 정장차림에 단정한 모습으로 기자들을 따뜻하게 맞은 신 옹은 기자를 알아볼 정도로 의식이 또렷으며, (사)백범정신실천겨레연합 홍원식 사무처장의 도움을 받으며 공개유언을 진행했다.

신창균 옹은 "첫째는 홍원식 처장이 사회를 보고, 또 교회 장로이기 때문에 교회의 모든 행사를 같이하고, 통일운동하시는 분하고 같이 장례식에 참여하도록 하고, 또 여러 가지 순서에 대해서는 설교와 성경 봉독하고 그 다음에 설교는 우리교회 목사가 하고, 한명수 목사가 기도를 하고 또 통일운동 하던 사람들 몇 사람이 조사를 하고 그렇게 교회하고 통일운동 하는 사람하고 합해서 장례식을 추진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장례절차에 관해 유언했다.

신창균 옹은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세상을 떠나야 한다"며 정동감리교회에서 57년 동안 장로로 봉직해온 삶과 통일운동가로서 일생을 바쳐온 삶을 이렇게 마무리해달라고 부탁했다.

신 옹은 이어 "김대중 대통령하고 이북의 김정일 국방위원장하고 만날 적에 국가보안법은 죽었다. 송장이 썩어서 냄새가 나는 국가보안법을 왜 철폐 못하느냐. 그게 한이 된다"며 "그러나 앞으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범민련을 중심으로 통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고 유언해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으로서 국가보안법에 의해 이적단체로 규정된 범민련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전했다.

37866_11.jpg▶신 옹은 한 평생을 항일독립운동과 조국통일운동에 몸바쳐 왔으며, 지금도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과 (사)백범정신실천겨레연합 수석대표를 맡고 있다.[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또한 마음에 가장 걸리는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백범 공연을 정부에서 3억원, 정주영씨가 3억을 댔는데 민예총의 방해로 상해, 이북, 동경, 미국에 가서 순회하기로 했는데 그걸 못한 게 한이 된다"며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공연을 각지에 가서 할 것을 소원하고 죽기 전에 그걸 시행해야겠고, 만일 일찍 세상을 떠나면 홍원식 처장을 중심으로 반드시 이루도록 해달라"고 유언했다.

홍원식 사무처장의 부연설명에 따르면 백범서거 50주기를 기념해 98년 국회의결까지 거쳐 공연기금을 마련해 99년 서울에서 공연을 진행했는데, 민예총의 일부 인사들에 의해 서울 공연에만 모든 자금을 소진해버려 순회 공연을 못했다는 것이다. 이후 2001년 다시 국회가 2억원의 기금을 의결했으나 다시 문광부가 민예총과 공동으로 이 행사를 치를 것을 요구해 진전이 없는 상태라고 한다.

37866_12.jpg▶거실에는 통일맞이가 수여한 제7회 늦봄통일상을 비롯해 몇 년전까지 즐긴 테니스 모임에서 준 상패 등이 보인다.[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신창균 옹은 일생의 마지막 소원으로 "58년 동안 미국 때문에 서로 갈라놓고 원수를 만들어놓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고 하루속히 남북이 통일돼서 화해하고 통일의 정부를 이룩하길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고 평생의 소원인 통일을 염원했다.

통일운동을 하는 후배들에게는 "우리 젊은 후배들이 통일하는데 좀 괴롭지만 어떠한 탄압이나 어떠한 외로움도 극복하고 반드시 통일을 완수하도록 투쟁하고 힘쓰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하고 "통일은 하나님의 뜻이고 7천만 민족 대다수의 뜻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

또한 최근 추진중인 남북공동의 백범 55주기 추모행사와 관련해 "북이 초청한다면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국가보안법이 철폐되지 않으면 갈 수 없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강력한 방북의사를 표명했다.

신 옹은 이 행사의 실무접촉을 위한 방북을 신청했지만 통일부는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승인되지 않았으며, 내년 6월 북에서 열릴 남북 공동의 55주기 추모행사에는 (사)백범정신실천겨레연합의 수석대표 자격으로 방북을 신청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신 옹은 상해 임시정부 시절부터 한독당, 진보당 시절 활동과 6.15이후의 군사독재시절 등 긴 인생여정을 회고하기도 했다.

특히 한독당 8인대표의 한 명으로 48년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 참석해 김일성 당시 인민위원장을 단독면담한 사실과 김구와 조봉암 선생과 가까이에서 활동한 내용 등에 대해서 증언하고 이후 통일운동을 하면서 겪은 고초와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 등도 전했다.

2시간 30분여간 진행된 이날 신창균 옹의 공개유언은 통일뉴스, KBS, 민족21이 취재했으며, 통일뉴스는 이 내용을 연재할 예정이다.

신창균 선생 약력

■ 충북 영동 출생 (1908)
■ 상해 임시정부 마카오 연락책 (1940)
■ 한국독립당(당수 김구) 중앙집행위원 및 재정위원장 (`46 -`50)
■ 남북지도자연석회의(남북협상) 남측 대표 중 1人 (`48.4.19, 평양)
■ 평양 체류 중 김일성 북조선인민위원장(당시)과 단독회담
■ 백범 김구 주석 국민장 장례 실무 총책임자 (`49)
■ 이승만 독재 체제 이후 반독재와 통일운동의 평생을 살아 옴
■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및 범민족대회 의장.대회장.고문 (`90 - 현재)
■ 백범추모공연위원회 위원장 (`98 - 2000)
■ 6.15 공동선언 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토론회(2001.6) 최고령참가 (주석단 예우)
■ 제7회 `늦봄 통일상` 수상 (2002.6)

<저서 >
■ 가시밭길에서도 느끼는 행복 (도서출판 해냄, 1997)


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

[출처:통일뉴스:200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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