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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세력의 집권 교두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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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3-12-26 00:00 조회1,5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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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세력의 집권 교두보를 마련하겠다"

민주노동당 성남 수정지구당 김미희 위원장


성남시 수정지구당 김미희위원장은 민주노동당의 대표적인 여성정치인이다.
95년 기초의회의원 당선을 시작으로 7년동안 시의원을 지낸 바 있는 김미희 위원장은 2004년 총선에서 출사표를 던졌다.

6911-1kimmhr.jpg"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함에서 시작했습니다. 시의원 생활을 하면서 기존 정치인들이 주민을 발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만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이런 정치인들에게 우리 민중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죠. 주민을 위해서 일할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출마의 변을 이야기하는 김 위원장의 눈빛과 목소리는 당차다.
처음 시의원 선거에 나왔을 때도 그는 지역민들에게 변화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했고 시의원 생활 7년동안 김위원장은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왔다. 지금도 지역구내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주민들의 평가는 젊고 당당한 사람, 깨끗하고 발로 뛰는 사람으로 깊게 뿌리박혀있다.

기득권을 버리고 뒤늦게 시작한 학생운동

김미희위원장은 서울대 약대를 졸업한 이른바 한국사회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기득권을 버리고 학생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86년 김세진,이재호 열사의 분신이었다. 80년대 대학사회가 그랬듯이 그도 잘못된 사회구조와 역사적 진실에 분노하면서 "양심적인 대학교수"가 되어 사회를 바꿔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86년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김세진, 이재호 열사의 분신소식을 접하고 자신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약대 학생회장으로 출마하였다.

"당시 사회를 바꿀려면 다수가 참여하는 대중적인 운동이 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게 안타까웠습니다. 그런 극한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게 하려면 저부터 나서야 된다고 생각했죠. 저도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에서 학생회장으로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86년 건대항쟁과 87년 6월 항쟁을 겪으면서 학생운동의 지도부로서의 책임감과 민중의 힘을 체득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386들이 운동의 길을 접은 반면 그가 계속 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힘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품"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주민속에 지혜가 있고 문제해결의 열쇠가 있다


그가 처음 정치를 시작한 것은 95년 시의원선거를 통해서다.
지역에서 작은 약국을 운영하던 그는 그곳에서 접한 주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바꾸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정치를 바꾸기 위한 첫 시작으로 시의원선거에 도전했다.

"민중을 주인으로 내세우는 우리식 정치가 절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치를 바꾸지 않고서는 한국민중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출마를 하게 되었죠."

7년동안의 시의원생활동안 그는 뇌물받지 않고 이권개입하지 않는 깨끗한 정치인으로 지역민들에게 인정받았다. 그런 그의 모습은 동료시의원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현 시의원들사이에서 해외연수를 가지 않는 모범을 따라 배우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김미희 위원장은 모든 문제의 답은 주민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다. 문제해결의 방법도 주민들에게 나오고 그 의사를 집약하면 정책이 생산되고, 그 힘을 결집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그 대표적인 예로 성남 푸른학교를 이야기했다.

"97년 실업으로 인해 주민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무엇인가 실태조사를 하다 교육문제를 가장 어려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해결방안으로 푸른학교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에서 시작했던 푸른학교는 실업극복운동본부의 성금을 받아서 인건비와 급식비를 해결하고 주민들의 힘으로 장소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결국 주민들의 힘으로 실업문제를 해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남지역에서 시작된 푸른학교는 주민들의 실업문제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편의를 앞세우는 공무원들과 이해관계를 따지는 정치인들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은 시의원이라는 신분을 최대한 이용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시청과 협상을 하고 후원을 받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푸른학교가 여러 개인과 단체의 후원으로 지역내에서 자리잡게 된 데는 그의 이런 적극적인 활동의 성과였다. 기존 정치인들과 달리 혼자서 새로운 정치를 일궈온 김위원장의 시의원시절은 어려움도 많았다.

그를 가장 어렵게 만들었던 것은 다수결로 진행되는 시의회에서 기존 정치권의 입장대로 집행하는 50명의 시의원들과 맞서야 하는 것이었다. 당의 입장이나 개인의 이익을 앞세워 시민들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하는 시의회에 분노했지만 한 사람의 힘으로는 의회내에서 해결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주민들의 힘을 얻는 것 뿐이었다.

6911-2kimr2.jpg의회내에서 시정질문을 통해 여론화시키고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답을 찾고 여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섰다. 앞서 이야기한 푸른학교 외에도 성남시장의 개인적이 이해관계로 인해 사라질 뻔 했던 모란시장이전계획을 철회시킨 경험이나 미군기지 성남이전을 반대하는 주민운동을 벌이는 등 그의 활동은 왕성했다.


그의 활약은 지역사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진보진영내 기성정치권안에 진출한 사람이 적었던 그 시절 그는 진보진영의 시의원이라는 역할을 다하기 위해 ‘김형찬 대책위’나 ‘전동록대책위’,‘북한동포돕기 운동본부’등 전국적 사안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가 7년동안의 시의원생활에서 성과점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진보진영의 의원이 극소수인 상황에서 진보진영의 정치인은 어떤 활동을 해야하는가 고민이 많았죠. 시의원이라고 단순히 지역사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진보진영을 대표할 수 있는 일에는 어디에나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제 활동이 여러 대책위 활동을 성과적으로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게 시의원 생활의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일본의 ‘독도망언’이 있었을 때 성남시의회에서 시의원들의 만장일치 규탄성명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지역민과 함께하는 시립병원건립운동

최근 그가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는 일중 하나는 성남에서 시립병원을 설립하는 문제이다.

이 지역에는 준종합병원이 세 곳이 있었으나 최근 경영상의 이유로 두 곳이 문을 닫았고 한 곳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하나남은 병원마저 지역내의 응급의료체계를 책임지기에는 의료기술에 많은 한계가 있어 주민들의 불만이 높다.

지난 8월 성남 인하병원이 폐업을 결정하면서 병원내 노동자들이 ‘인하병원 살리기 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김위원장은 병원노동자들과 함께 해왔다.

실제 지역내에서 종합병원이 없음으로 인해 불편을 호소하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시립병원을 건립하는 것이 유일한 방안이라는 판단을 하고 이를 주민들의 힘으로 해결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시장이 이미 공약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예산의 문제를 들어 발뺌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주민들의 힘으로 밖에 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지구당 사업에 일손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지구당 사무국장을 대책위 상근간사로 파견하는 결단을 내리고 지역의 여론을 모으고 주민들의 힘을 모으는 데 노력했다.

현재 성남에서는 시립병원건립을 위한 주민발의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주민발의 운동은 성남시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주민발의제도의 절차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일주일만에 7천명이 서명했을 정도로 주민들의 관심과 호응은 크다.

“72년 광주대단지 투쟁을 했을 때와 87년 6월항쟁때 대규모 투쟁을 조직했던 이후로 하나의 사안으로 이렇게 많은 주민들이 힘은 모은 것은 처음입니다. 실제로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인하병원 폐업이후로 꾸준히 싸워온 80여명의 조합원들 덕입니다. 어려운 조건속에서도 개인의 삶을 포기하고 노력해온 그분들의 정성이 아니었다면 이 문제가 이렇게 공론화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김위원장은 함께 싸우고 있는 병원노동자들에게 그 공을 돌렸지만 그 중심에는 민주노동당이 있음을 지역내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이 사안이 좀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현 지역국회의원들과 다른 당의 정치인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가 모두 망라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호소했다는 것을 보더라도 그가 이 문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시의원에서 국회의원으로, 썩은 정치를 갈아엎겠다

"시의원생활을 할 때는 50명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국회로 가게되면 300명중에 한 명이 됩니다. 현재 민중들의 고통받는 생활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정권을 잡는 것입니다. 그 전 단계까지는 국회에서 법을 만드는 것이죠. 집권을 위한 교두보를 만들기 위해서 국회의원이 되려는 것입니다."

시의원생활을 하면서 주민을 위한 정치가 무엇인지 배웠다는 김 위원장은 이제 더 넓은 공간에서 주민들과 함께하는 정치를 일구기 위해 국회로 진출하려고 한다.

"우리가 국회의원이 되려는 이유는 줏대있는 나라를 만들고 민족 주권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정상적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또 민중의 편에 서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민중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것입니다."

이정미기자

[출처; 민중의 소리 12-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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