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green>[대담]한통련 신임 김정부 의장</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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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4-04-08 00:00 조회1,42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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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민주화운동단체의 맏형으로 30년에 걸쳐 해외 민족민주통일운동에 큰 기여를 해온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이하 "한통련")은 2월 29일 제10차 대의원대회를 열어 김정부(56) 본부기획실장을 제4대 한통련 의장으로 선출했다.
이후 한 달여 동안 업무파악과 대외활동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밝히는 그는 4월 3일 오후 기자를 만나자마자 "이런 것도 기사거리가 되냐"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기자를 따뜻하게 맞았다. 곽동의 전임 의장(75·현 상임고문)도 "오마이뉴스에서 탄핵과 관련한 국내정치소식을 생생하게 바로바로 인터넷에 올려주어 잘 읽고 있다"며 기자의 인터뷰 동석 요청을 기꺼이 허락했다.
▲ 시종일관 한통련의 정신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진지하게 답변해 준 한통련 김정부 신임의장
김정부 신임 의장은 한 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번 의장 선출은 곽동의 의장님의 건강을 고려한 것이고, 또 1세대가 아닌 재일동포 2세가 해외민주화 운동의 최선봉에 섰던 선배들의 정신을 중단없이 계승하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밝히면서 "한통련은 변하지 않을 것"을 강조했다.
특히, 곽동의 전임 의장은 "한국의 민주화는 많이 진전되었으나, 아직도 해외동포들이 왜 조국통일을 열망하는지에 대해 잘 느끼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우경화 되어가는 일본사회의 차별과 핍박을 받으면서 투쟁하고 있는 재일동포들이 왜 그렇게 싸우고 있는지에 대해 한번씩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며 자신이 평소 생각했던 것을 천천히 풀어내었다.
15년간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은 곽동의 전임 의장을 그림자처럼 곁에서 보좌해온 김정부 신임 의장. 정세 관련 회의시 불같이 화를 내는 곽동의 의장님이 정말 무서웠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그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짓는 곽동의 전임 의장.
이번 총선의 결과에 따라 "한통련은 반국가단체"라는 누명을 덧씌우고 있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기대해볼 수도 있지 않겠냐며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고 있는 두 분과의 이취임 인터뷰 전문을 수록한다.
- 먼저 축하드립니다. 의장 선출은 언제 이루어진 것입니까?
김정부(이하 김) "올해 2월 29일 제10차 대의원대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의장에 선출되었습니다. 대의원대회는 한통련의 최고의결기구인데 중요한 사안은 거기서 결정을 내리거든요. 대의원대회에서는 각 지부의 재정보고, (대의원 임기) 2년 동안의 총괄, 장차 운동의 정세 논의 등을 하는데, 이번에는 한통련의 대사도 치러낸 셈입니다."
- 15년간 해외민주화운동단체의 선도적 역할로 한통련을 이끈 전임 곽동의 의장님의 소회도 남다를 것같습니다만.
곽동의(이하 곽) "제가 한청, 민단유지간담회, 자주수호위원회 등 과거 민단의 어용화를 막기 위해 활동한 시기부터 생각한다면 민주화운동을 벌써 반세기에 걸쳐 한 셈이 되지요. 그 전의 박정희 독재정권 때부터 최근까지 당한 고초나 음해 등은 이루 말할 길이 없지만, 그래도 한통련이 절대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일편단심의 마음가짐으로 조국의 자주민주평화통일을 위해 투쟁해왔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 제가 조그마한 기여를 했다는 것이 보람이죠."
▲ 병원에서 갑상선 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 이제 좀 움직일만 하다면서 밝은 미소로 인터뷰에 응해주신 곽동의 전임의장
- 이제부터는 상임고문직을 맡는 걸로 들었는데, 건강도 생각하시면서 편히 쉬시게 되는 것인가요?
김 "그런데, 그게 오해를 하면 안 되는 게 의장이 바뀌고, 상임고문으로 올라가고 그러면 꽤 많은 사람들이 은퇴하나보다라고 지레짐작을 하던데요. 이번 의장선출건은 그게 아니고, 사실은 저희끼리 의장님 몰래 모의를 한 것입니다(웃음)."
- 곽동의 의장님 몰래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것입니까?(웃음)
김 "하하, 그건 아니고요. 작년에 왜 해외민주화인사 고국방문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때 의장님께서 협심증이 재발하여 못 가셨었는데, 그 이후에 꽤 심각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의장님께서 입원하는 횟수도 늘어나시고, 수술도 받으시고. 지금도 약을 매일 복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다보니, 한국의 민주화단체를 비롯하여 저희 내부에서 의장님 건강을 생각하셔야 된다라는 의견이 많이 나왔었던 거죠. 그리고, 그런 의견을 나중에 의장님께서 아시고, 그렇다면 이번 기회(제10차 대의원대회)에 공식적으로 의장직을 교체하는 게 어떻겠나 라는 의견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 그렇다면 은퇴하시는 것은 아니고….
곽 "민족통일운동에 은퇴가 있을 수 없지요. 일반 기업체야 정년퇴직이니 뭐니 하지만, 통일운동은 죽는 것이 곧 은퇴지요. 다만 제가 이제 건강이 별로 좋지 않으니까 몸조리도 할 겸, 그리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우리 신임의장이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게 보기도 좋을 것 같고."
김 "그것보다는 의장님께서 좀더 큰일을 해주시길 바라는 마음도 있지요. 한통련 조직의 일도 중요하지만 조국과 민족을 위해 큰 어른으로서 활동해주셨으면 좋겠다 의견도 많았고."
- 김정부 신임 의장님께서 한민통(한통련의 전신)으로 들어온 계기가 7.4 남북공동성명 당시라고 들었습니다.
김 "네. 그리고 결정적으로 투신하게 된 계기는 역시 김대중 선생님의 납치사건입니다. 중앙에서의 활동은 1989년 한민통이 한통련으로 조직개편이 되면서부터였고요. 한통련에 들어오기 이전에는 민족의식이고 뭐고 아무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재일 2세였지요. 오사카 촌놈이었죠(웃음)."
- 가까이서 지켜본 곽동의 의장님은 어떻든가요?
김 "너무 엄격하세요. 조직에 관련된 것이라면 한치의 착오도 용납치 않죠. 매일 아침회의를 하는데, 간혹 정세에 대한 토론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정세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참석자에게 막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 어떤 불호령이죠?
김 "이를테면 다 때려치자는 식인데요. 회의고 뭐고, 공부도 안하고 정세에 대해 고민도 안 한 채 형식적으로 이런 거 할 바엔 뭐하러 하냐는 식이죠."
곽 "정세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변하는 정세의 본질에 대해 적확하게 꿰뚫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특히, 중앙에서 잘못 정세판단을 해버리면 하부조직이 혼란스러워하니까. 그 부분에서 엄격하지 않으면 조직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거든요."
김 "아! 물론 사적으로는 너무나 부드럽고, 잘 챙겨주십니다. 꼭 이 부분 넣어 주세요(웃음)"
- 한통련하면 민족통일운동에 큰 기여를 한 조직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우경화되어가는 일본사회에서 한통련이 어떤 식으로 투쟁해나갈 것인지 그 방향성에 대해 한마디해주십시오.
김 "저는 재일교포 2세입니다. 차세대가 대외적으로 의장직을 수행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고, 갈수록 2,3세들의 민족의식이나 교육 등이 부족해져가는 현실을 직시하여 일차적으로 우리 2,3세들이 조선민족의 아이덴티티를 가질 수 있는 민족교육에 힘을 쏟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제가 취임인사 때도 언급했습니다만, 지금 재일동포가 일본땅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이유는 <조국의 분단>과 <일본정부의 대 한반도 외교정책> 때문에 그렇습니다. 식민지시대와 조국분단의 가장 큰 피해자인 재일동포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을 자각하고 민족통일을 위해 잘못된 한반도 정책을 펴고 있는 일본정부를 압박해나가지 않으면 이 "차별"은 계속 지속되고, 또 차별에 못이긴 2,3세들은 귀화를 하게 되고 그런 것이죠. 그러니까 전부 연결되어 있는 것이죠.
한통련은 앞으로도 민족교육과 일본정부에 대한 압박을 통해 재일동포들의 권리신장, 민족의식 고취, 그리고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실천해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 제2차 고국방문 계획은 아직 없습니까?
김 "아무래도 선거가 끝난 후가 되겠지요. 지금은 다들 정신도 없고, 또 정치적으로도 이용되는 등의 우려도 있으니까요."
- 지금 고국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급속도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의 지지율 상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곽 "아직까지 거품이 있니 마니하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일단 한국정치도 무언가 바뀌는 듯한 느낌이 있기도 하고. 민주노동당도 이번엔 국회에 확실히 들어갈 것 같더군요.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는 상당한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열린우리당이 진짜 개혁정당인가 하는 것은 총선 이후의 정책들을 봐야 할 것 같아요. 국가보안법 철폐 논의에서 열린우리당이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 하는 것."
김 "곽 의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국가보안법은 희대의 악법이고, 또 그 법이 철폐되는 순간 2차 고국방문이니 하는 거창한 수식어가 없더라도 자동적으로 한통련에 덧씌워진 반국가단체라는 누명이 사라지게 되니까 저희로서도 명예회복이 되는 것이죠. 앞으로 눈여겨 지켜볼 생각입니다."
- 긴 시간 감사드립니다. 항상 오마이뉴스를 애독하신다는 말씀을 들었는데요. 본국과 해외의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곽 "저는 통일운동에 일생을 바쳐온 사람으로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본국에 계신 모든 분들이 항상 6.15 남북공동선언의 의미를 느끼고 또 모범적인 실천자가 되어 주시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이라는 것을 항상 유념해주십시오."
김 "조국과 조국의 동포들과 함께 살아가는 재일동포의 미래는 통일조국과 일본의 새로운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항상 통일된 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조국통일과 변화될 한일관계에 한통련이 변함없이 자리잡고 있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tetsu_160795_1[195520].jpg](http://image.ohmynews.com/down/images/1/tetsu_160795_1%5B195520%5D.jpg)
▲ 앞으로도 조국의 자주민주평화통일과 동포 2,3세의 민족의식 고취을 위해 투쟁해 나갈 것이라며, <오마이뉴스> 독자들도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잊지 않기를 당부하는 두 분.
한통련 김정부 신임 의장은 누구?
7.4 남북공동성명에 즈음하여 본격적으로 민족민주운동에 투신
김정부 신임의장은 1949년 11월생으로 재일동포 2세(양친은 1930년대말에 도일). 본적은 제주도이며, 오사카의 동포 밀집지역인 이쿠노쿠에서 자라나 일본학교(초/중/고)를 다님. 교토의 류코쿠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으나, 학생운동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둠.
스스로 민족의식이 없는, 그저 그런 재일2세에 불과했다고 밝히는 그는, 1969년 일본정부의 출입국관리법개악안 반대투쟁에 처음으로 민단 산하의 재일한국청년동맹(이하 한청) 맹원으로 참가, 그리고 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뒤, 한청과 재일조선청년동맹의 공동대회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민족의식에 대해 느꼈다고 한다.
이후 73년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을 계기로 직업적 활동가의 길에 들어섰으며, 74년에는 민단산하 한청오사카본부 이쿠노지부 위원장을 맡게 되지만,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의 입맛에 따라 어용화되어가는 민단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표하면서 78년 현재 한통련의 기원이기도 한 민단자주수호위원회에 참가한다.
그후, 83년 한민통 오사카 본부를 결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면서 초대 사무국장을 맡아 투쟁의 최전선에 나서게 된다. 89년 한민통이 한통련으로 바뀌면서 중앙본부의 조직국장을 맡아 이후 범민족대회 실무회담(1차 독일, 2차 서울, 3차 평양)에서 능력을 발휘한다.
93년에는 중앙본부 사무총장, 그리고 2001년에는 중앙본부 기획실장을 맡아보면서 국내의 한통련 대책위 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 2003년 가을 한통련 결성이래 최초로 고국방문을 성사시키는 등의 결실을 맺는 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함. / 박철현
[출처:오마이뉴스 2004/04/03]
이후 한 달여 동안 업무파악과 대외활동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밝히는 그는 4월 3일 오후 기자를 만나자마자 "이런 것도 기사거리가 되냐"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기자를 따뜻하게 맞았다. 곽동의 전임 의장(75·현 상임고문)도 "오마이뉴스에서 탄핵과 관련한 국내정치소식을 생생하게 바로바로 인터넷에 올려주어 잘 읽고 있다"며 기자의 인터뷰 동석 요청을 기꺼이 허락했다.
![tetsu_160795_1[195518].jpg](http://image.ohmynews.com/down/images/1/tetsu_160795_1%5B195518%5D.jpg)
김정부 신임 의장은 한 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번 의장 선출은 곽동의 의장님의 건강을 고려한 것이고, 또 1세대가 아닌 재일동포 2세가 해외민주화 운동의 최선봉에 섰던 선배들의 정신을 중단없이 계승하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밝히면서 "한통련은 변하지 않을 것"을 강조했다.
특히, 곽동의 전임 의장은 "한국의 민주화는 많이 진전되었으나, 아직도 해외동포들이 왜 조국통일을 열망하는지에 대해 잘 느끼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우경화 되어가는 일본사회의 차별과 핍박을 받으면서 투쟁하고 있는 재일동포들이 왜 그렇게 싸우고 있는지에 대해 한번씩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며 자신이 평소 생각했던 것을 천천히 풀어내었다.
15년간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은 곽동의 전임 의장을 그림자처럼 곁에서 보좌해온 김정부 신임 의장. 정세 관련 회의시 불같이 화를 내는 곽동의 의장님이 정말 무서웠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그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짓는 곽동의 전임 의장.
이번 총선의 결과에 따라 "한통련은 반국가단체"라는 누명을 덧씌우고 있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기대해볼 수도 있지 않겠냐며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고 있는 두 분과의 이취임 인터뷰 전문을 수록한다.
- 먼저 축하드립니다. 의장 선출은 언제 이루어진 것입니까?
김정부(이하 김) "올해 2월 29일 제10차 대의원대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의장에 선출되었습니다. 대의원대회는 한통련의 최고의결기구인데 중요한 사안은 거기서 결정을 내리거든요. 대의원대회에서는 각 지부의 재정보고, (대의원 임기) 2년 동안의 총괄, 장차 운동의 정세 논의 등을 하는데, 이번에는 한통련의 대사도 치러낸 셈입니다."
- 15년간 해외민주화운동단체의 선도적 역할로 한통련을 이끈 전임 곽동의 의장님의 소회도 남다를 것같습니다만.
곽동의(이하 곽) "제가 한청, 민단유지간담회, 자주수호위원회 등 과거 민단의 어용화를 막기 위해 활동한 시기부터 생각한다면 민주화운동을 벌써 반세기에 걸쳐 한 셈이 되지요. 그 전의 박정희 독재정권 때부터 최근까지 당한 고초나 음해 등은 이루 말할 길이 없지만, 그래도 한통련이 절대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일편단심의 마음가짐으로 조국의 자주민주평화통일을 위해 투쟁해왔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 제가 조그마한 기여를 했다는 것이 보람이죠."
![tetsu_160795_1[195519].jpg](http://image.ohmynews.com/down/images/1/tetsu_160795_1%5B195519%5D.jpg)
- 이제부터는 상임고문직을 맡는 걸로 들었는데, 건강도 생각하시면서 편히 쉬시게 되는 것인가요?
김 "그런데, 그게 오해를 하면 안 되는 게 의장이 바뀌고, 상임고문으로 올라가고 그러면 꽤 많은 사람들이 은퇴하나보다라고 지레짐작을 하던데요. 이번 의장선출건은 그게 아니고, 사실은 저희끼리 의장님 몰래 모의를 한 것입니다(웃음)."
- 곽동의 의장님 몰래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것입니까?(웃음)
김 "하하, 그건 아니고요. 작년에 왜 해외민주화인사 고국방문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때 의장님께서 협심증이 재발하여 못 가셨었는데, 그 이후에 꽤 심각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의장님께서 입원하는 횟수도 늘어나시고, 수술도 받으시고. 지금도 약을 매일 복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다보니, 한국의 민주화단체를 비롯하여 저희 내부에서 의장님 건강을 생각하셔야 된다라는 의견이 많이 나왔었던 거죠. 그리고, 그런 의견을 나중에 의장님께서 아시고, 그렇다면 이번 기회(제10차 대의원대회)에 공식적으로 의장직을 교체하는 게 어떻겠나 라는 의견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 그렇다면 은퇴하시는 것은 아니고….
곽 "민족통일운동에 은퇴가 있을 수 없지요. 일반 기업체야 정년퇴직이니 뭐니 하지만, 통일운동은 죽는 것이 곧 은퇴지요. 다만 제가 이제 건강이 별로 좋지 않으니까 몸조리도 할 겸, 그리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우리 신임의장이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게 보기도 좋을 것 같고."
김 "그것보다는 의장님께서 좀더 큰일을 해주시길 바라는 마음도 있지요. 한통련 조직의 일도 중요하지만 조국과 민족을 위해 큰 어른으로서 활동해주셨으면 좋겠다 의견도 많았고."
- 김정부 신임 의장님께서 한민통(한통련의 전신)으로 들어온 계기가 7.4 남북공동성명 당시라고 들었습니다.
김 "네. 그리고 결정적으로 투신하게 된 계기는 역시 김대중 선생님의 납치사건입니다. 중앙에서의 활동은 1989년 한민통이 한통련으로 조직개편이 되면서부터였고요. 한통련에 들어오기 이전에는 민족의식이고 뭐고 아무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재일 2세였지요. 오사카 촌놈이었죠(웃음)."
- 가까이서 지켜본 곽동의 의장님은 어떻든가요?
김 "너무 엄격하세요. 조직에 관련된 것이라면 한치의 착오도 용납치 않죠. 매일 아침회의를 하는데, 간혹 정세에 대한 토론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정세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참석자에게 막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 어떤 불호령이죠?
김 "이를테면 다 때려치자는 식인데요. 회의고 뭐고, 공부도 안하고 정세에 대해 고민도 안 한 채 형식적으로 이런 거 할 바엔 뭐하러 하냐는 식이죠."
곽 "정세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변하는 정세의 본질에 대해 적확하게 꿰뚫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특히, 중앙에서 잘못 정세판단을 해버리면 하부조직이 혼란스러워하니까. 그 부분에서 엄격하지 않으면 조직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거든요."
김 "아! 물론 사적으로는 너무나 부드럽고, 잘 챙겨주십니다. 꼭 이 부분 넣어 주세요(웃음)"
- 한통련하면 민족통일운동에 큰 기여를 한 조직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우경화되어가는 일본사회에서 한통련이 어떤 식으로 투쟁해나갈 것인지 그 방향성에 대해 한마디해주십시오.
김 "저는 재일교포 2세입니다. 차세대가 대외적으로 의장직을 수행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고, 갈수록 2,3세들의 민족의식이나 교육 등이 부족해져가는 현실을 직시하여 일차적으로 우리 2,3세들이 조선민족의 아이덴티티를 가질 수 있는 민족교육에 힘을 쏟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제가 취임인사 때도 언급했습니다만, 지금 재일동포가 일본땅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이유는 <조국의 분단>과 <일본정부의 대 한반도 외교정책> 때문에 그렇습니다. 식민지시대와 조국분단의 가장 큰 피해자인 재일동포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을 자각하고 민족통일을 위해 잘못된 한반도 정책을 펴고 있는 일본정부를 압박해나가지 않으면 이 "차별"은 계속 지속되고, 또 차별에 못이긴 2,3세들은 귀화를 하게 되고 그런 것이죠. 그러니까 전부 연결되어 있는 것이죠.
한통련은 앞으로도 민족교육과 일본정부에 대한 압박을 통해 재일동포들의 권리신장, 민족의식 고취, 그리고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실천해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 제2차 고국방문 계획은 아직 없습니까?
김 "아무래도 선거가 끝난 후가 되겠지요. 지금은 다들 정신도 없고, 또 정치적으로도 이용되는 등의 우려도 있으니까요."
- 지금 고국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급속도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의 지지율 상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곽 "아직까지 거품이 있니 마니하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일단 한국정치도 무언가 바뀌는 듯한 느낌이 있기도 하고. 민주노동당도 이번엔 국회에 확실히 들어갈 것 같더군요.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는 상당한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열린우리당이 진짜 개혁정당인가 하는 것은 총선 이후의 정책들을 봐야 할 것 같아요. 국가보안법 철폐 논의에서 열린우리당이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 하는 것."
김 "곽 의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국가보안법은 희대의 악법이고, 또 그 법이 철폐되는 순간 2차 고국방문이니 하는 거창한 수식어가 없더라도 자동적으로 한통련에 덧씌워진 반국가단체라는 누명이 사라지게 되니까 저희로서도 명예회복이 되는 것이죠. 앞으로 눈여겨 지켜볼 생각입니다."
- 긴 시간 감사드립니다. 항상 오마이뉴스를 애독하신다는 말씀을 들었는데요. 본국과 해외의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곽 "저는 통일운동에 일생을 바쳐온 사람으로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본국에 계신 모든 분들이 항상 6.15 남북공동선언의 의미를 느끼고 또 모범적인 실천자가 되어 주시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이라는 것을 항상 유념해주십시오."
김 "조국과 조국의 동포들과 함께 살아가는 재일동포의 미래는 통일조국과 일본의 새로운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항상 통일된 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조국통일과 변화될 한일관계에 한통련이 변함없이 자리잡고 있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tetsu_160795_1[195520].jpg](http://image.ohmynews.com/down/images/1/tetsu_160795_1%5B195520%5D.jpg)
▲ 앞으로도 조국의 자주민주평화통일과 동포 2,3세의 민족의식 고취을 위해 투쟁해 나갈 것이라며, <오마이뉴스> 독자들도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잊지 않기를 당부하는 두 분.
한통련 김정부 신임 의장은 누구?
7.4 남북공동성명에 즈음하여 본격적으로 민족민주운동에 투신
김정부 신임의장은 1949년 11월생으로 재일동포 2세(양친은 1930년대말에 도일). 본적은 제주도이며, 오사카의 동포 밀집지역인 이쿠노쿠에서 자라나 일본학교(초/중/고)를 다님. 교토의 류코쿠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으나, 학생운동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둠.
스스로 민족의식이 없는, 그저 그런 재일2세에 불과했다고 밝히는 그는, 1969년 일본정부의 출입국관리법개악안 반대투쟁에 처음으로 민단 산하의 재일한국청년동맹(이하 한청) 맹원으로 참가, 그리고 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뒤, 한청과 재일조선청년동맹의 공동대회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민족의식에 대해 느꼈다고 한다.
이후 73년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을 계기로 직업적 활동가의 길에 들어섰으며, 74년에는 민단산하 한청오사카본부 이쿠노지부 위원장을 맡게 되지만,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의 입맛에 따라 어용화되어가는 민단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표하면서 78년 현재 한통련의 기원이기도 한 민단자주수호위원회에 참가한다.
그후, 83년 한민통 오사카 본부를 결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면서 초대 사무국장을 맡아 투쟁의 최전선에 나서게 된다. 89년 한민통이 한통련으로 바뀌면서 중앙본부의 조직국장을 맡아 이후 범민족대회 실무회담(1차 독일, 2차 서울, 3차 평양)에서 능력을 발휘한다.
93년에는 중앙본부 사무총장, 그리고 2001년에는 중앙본부 기획실장을 맡아보면서 국내의 한통련 대책위 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 2003년 가을 한통련 결성이래 최초로 고국방문을 성사시키는 등의 결실을 맺는 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함. / 박철현
[출처:오마이뉴스 200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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