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red>정식여권으로 고국찾는 한통련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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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4-10-10 00:00 조회1,54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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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에대한 자부심 안겨준 4.19묘역 참배하러 갑니다.”
작년 9월 송두율 교수의 귀국 방문과 국보법 위반 구속수감으로 한국 사회가 떠들썩할 즈음, 40여년 만에 벅찬 감격을 안고 고국을 방문한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송두율 교수의 유명세에 묻혀 세상의 이목을 많이 끌지는 못했지만 당시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고국방문 추진단’의 노력으로 재일 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회원 30여명이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이들이 오는 10월 10일부터 12일까지 2차로 한국을 방문한다. 이번에는 숫자도 훨씬 늘어 150명의 회원이 한국을 찾는다.
1973년 "한국의 민주화 및 조국통일 운동"을 목적으로 재일 한국인들이 설립한 한통련은 김대중 구출운동, 유신독재 반대운동, 해외 민주민족통일한국인연합 결성, 6·15남북공동선언 지지운동 등 민주화, 통일운동을 벌여왔다.
그러나 1978년 대법원에 의해 "반국가단체"로 규정된 이래 한통련 회원들은 고국 땅을 밟을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고, 이같은 금지조치가 수십년만에 가까스로 풀리게 된 것이다. 더구나 작년에는 한국 정부가 내준 임시 여행증명서로 방문했지만, 이번에는 정식 여권을 발급 받고 오는 것이라 더욱 그 의미가 크다.
한통련은 설립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초대 의장으로 시작해, 현재는 5대 김정부 의장이 의장직을 맡고 있다. 추석을 눈앞에 둔 25일 아침 일본 오사카의 한통련 사무실에 출근한 김 의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김정부 한통련 의장
“작년은 첫 방문이라 그런지 참 힘들게 이루어졌는데, 올해 행사 준비는 그래도 덜 힘든 편입니다. 특히 한국 여권을 받았다는 것은 정부가 우리를 한국 국민으로 정식 인정한다는 것이므로 더 의미가 크지요. 이제야 비로소 한통련 사업에 대한 옳은 평가가 내려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고국을 방문하는 한통련 회원 150명 중에는 2~30년, 길게는 40여년 만에 한국 땅을 밟는 사람이 많다. 특히 한통련 간부들에 대한 정부의 입국 금지는 엄격했다. 김 의장은 작년 9월 방문 당일날 심장질환 발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고국 땅을 밟지 못한 곽동의 상임고문(73, 4대 한통련 의장)이 이번 방문단에 낀 것이 참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일본에서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한 곽 고문은 이제 고령인데다 건강도 좋지 않아 한국 방문을 더더욱 고대해왔다고 한다. 곽 고문은 44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다.
“한국에 오시면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하고 싶으신가요?”
“방문 첫날 4.19 묘지를 참배하는 일정이 있습니다. 4.19는 일본 동포들에게도 아주 의미있는 일입니다. 4.19를 계기로 일본에서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이 출범했지요. 저도 일본에서 태어나 민족의식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라다가 한청 활동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민족의식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4.19 묘지를 참배한다는 것은 우리 민족 의식의 시발점에 가 보는 것이고, 저로서는 정말 감개무량한 일입니다.”
일본에서의 재일 한국인 사회의 위치는 다른 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아무에게나 시민권을 주는 미국과는 달리 일본은 완전한 일본인이 되어야만 국적을 부여하는 까다로운 곳이다. 때문에 식민지 시절 일본으로 강제 이주를 당한 한국인들은 일본 국민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떠도는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2세, 3세를 낳아도 상황은 변함이 없다.
이들의 국적은 엄밀히 따지자면 한국이지만 한국 정부로부터도 이렇다할 보호조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여권조차 발급받지 못해 일본 바깥으로 나가는 것도 자유롭지 못했다. 지금은 많이 완화되었지만 과거에 재일 한국인들은 일본인들로부터 암암리에 차별이나 따돌림을 받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저도 어렸을 때는 조선인임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70년대 민주화 운동을 겪고 일본에서 그 운동에 함께 참여하면서 내 조국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처럼 사안 있을 때 집회도 하고 기자회견도 하고 가두 선전전이나 서명운동도 해요.”
일본 한인들은 한국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많이 한다고 한다. 그러다 일본 전경들하고 싸우기도 하고 닭장차에 실려 연행되기도 한다. 한국이 독재 정권 시절이었을 때는 한국 독재정권에 항의하는 수만명 규모의 노동자 대회가 열린적도 있었고, 일본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 일본 노동조합 등에 동참을 호소하기도 한다고 한다.
전태일 열사정신 계승 집회나 추도식이 있을 때는 전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도 자주 일본을 방문해 참석하기도 했다. 이들의 집회 문화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이번에 방문하는 한통련 회원들은 공식일정을 마치고 난 후 14일 오전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특히 곽동의 상임고문으로서는 몇 십년만에 옛 동지인 김 전 대통령을 만나는 일이 큰 의미가 될 듯하다.
한통련 회원들은 김 전 대통령을 만나 615 남북 정상회담과 615 선언 등 김 전 대통령이 통일 운동을 위해 기여한 많은 일에 대해 감사와 격려의 뜻을 전할 것이라고 김 의장은 말했다.
이번에 입국하는 주요 인사는 곽동의 상임고문을 비롯해 김정부 의장, 곽수호 부의장, 송세일 사무총장, 김지영 재일한국민주여성회 회장 등이다.
임은경 기자
[출처:민중의 소리 2004년09월25일]
작년 9월 송두율 교수의 귀국 방문과 국보법 위반 구속수감으로 한국 사회가 떠들썩할 즈음, 40여년 만에 벅찬 감격을 안고 고국을 방문한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송두율 교수의 유명세에 묻혀 세상의 이목을 많이 끌지는 못했지만 당시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고국방문 추진단’의 노력으로 재일 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회원 30여명이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이들이 오는 10월 10일부터 12일까지 2차로 한국을 방문한다. 이번에는 숫자도 훨씬 늘어 150명의 회원이 한국을 찾는다.
1973년 "한국의 민주화 및 조국통일 운동"을 목적으로 재일 한국인들이 설립한 한통련은 김대중 구출운동, 유신독재 반대운동, 해외 민주민족통일한국인연합 결성, 6·15남북공동선언 지지운동 등 민주화, 통일운동을 벌여왔다.
그러나 1978년 대법원에 의해 "반국가단체"로 규정된 이래 한통련 회원들은 고국 땅을 밟을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고, 이같은 금지조치가 수십년만에 가까스로 풀리게 된 것이다. 더구나 작년에는 한국 정부가 내준 임시 여행증명서로 방문했지만, 이번에는 정식 여권을 발급 받고 오는 것이라 더욱 그 의미가 크다.
한통련은 설립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초대 의장으로 시작해, 현재는 5대 김정부 의장이 의장직을 맡고 있다. 추석을 눈앞에 둔 25일 아침 일본 오사카의 한통련 사무실에 출근한 김 의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작년은 첫 방문이라 그런지 참 힘들게 이루어졌는데, 올해 행사 준비는 그래도 덜 힘든 편입니다. 특히 한국 여권을 받았다는 것은 정부가 우리를 한국 국민으로 정식 인정한다는 것이므로 더 의미가 크지요. 이제야 비로소 한통련 사업에 대한 옳은 평가가 내려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고국을 방문하는 한통련 회원 150명 중에는 2~30년, 길게는 40여년 만에 한국 땅을 밟는 사람이 많다. 특히 한통련 간부들에 대한 정부의 입국 금지는 엄격했다. 김 의장은 작년 9월 방문 당일날 심장질환 발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고국 땅을 밟지 못한 곽동의 상임고문(73, 4대 한통련 의장)이 이번 방문단에 낀 것이 참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일본에서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한 곽 고문은 이제 고령인데다 건강도 좋지 않아 한국 방문을 더더욱 고대해왔다고 한다. 곽 고문은 44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다.
“한국에 오시면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하고 싶으신가요?”
“방문 첫날 4.19 묘지를 참배하는 일정이 있습니다. 4.19는 일본 동포들에게도 아주 의미있는 일입니다. 4.19를 계기로 일본에서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이 출범했지요. 저도 일본에서 태어나 민족의식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라다가 한청 활동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민족의식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4.19 묘지를 참배한다는 것은 우리 민족 의식의 시발점에 가 보는 것이고, 저로서는 정말 감개무량한 일입니다.”
일본에서의 재일 한국인 사회의 위치는 다른 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아무에게나 시민권을 주는 미국과는 달리 일본은 완전한 일본인이 되어야만 국적을 부여하는 까다로운 곳이다. 때문에 식민지 시절 일본으로 강제 이주를 당한 한국인들은 일본 국민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떠도는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2세, 3세를 낳아도 상황은 변함이 없다.
이들의 국적은 엄밀히 따지자면 한국이지만 한국 정부로부터도 이렇다할 보호조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여권조차 발급받지 못해 일본 바깥으로 나가는 것도 자유롭지 못했다. 지금은 많이 완화되었지만 과거에 재일 한국인들은 일본인들로부터 암암리에 차별이나 따돌림을 받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저도 어렸을 때는 조선인임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70년대 민주화 운동을 겪고 일본에서 그 운동에 함께 참여하면서 내 조국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처럼 사안 있을 때 집회도 하고 기자회견도 하고 가두 선전전이나 서명운동도 해요.”
일본 한인들은 한국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많이 한다고 한다. 그러다 일본 전경들하고 싸우기도 하고 닭장차에 실려 연행되기도 한다. 한국이 독재 정권 시절이었을 때는 한국 독재정권에 항의하는 수만명 규모의 노동자 대회가 열린적도 있었고, 일본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 일본 노동조합 등에 동참을 호소하기도 한다고 한다.
전태일 열사정신 계승 집회나 추도식이 있을 때는 전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도 자주 일본을 방문해 참석하기도 했다. 이들의 집회 문화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이번에 방문하는 한통련 회원들은 공식일정을 마치고 난 후 14일 오전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특히 곽동의 상임고문으로서는 몇 십년만에 옛 동지인 김 전 대통령을 만나는 일이 큰 의미가 될 듯하다.
한통련 회원들은 김 전 대통령을 만나 615 남북 정상회담과 615 선언 등 김 전 대통령이 통일 운동을 위해 기여한 많은 일에 대해 감사와 격려의 뜻을 전할 것이라고 김 의장은 말했다.
이번에 입국하는 주요 인사는 곽동의 상임고문을 비롯해 김정부 의장, 곽수호 부의장, 송세일 사무총장, 김지영 재일한국민주여성회 회장 등이다.
임은경 기자
[출처:민중의 소리 2004년09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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