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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에 백을 곱하면 만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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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5-08-19 03:13 조회1,9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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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군사외교평론가 김명철씨는 한국에서 <김정일의 통일전략>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책에서 1950년대의 전쟁을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북조선의 험한 기후와 준험한 산들이 북조선국민을 도왔다. 산천은 어떤 의미에서 천연의 요새였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파괴할수 없는것이였다.” 산이 반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지형특징은 방어에 유리한 면이 있는 동시에 싸움이 일어나면 군대의 연락이 끊어지기 쉬운 약점도 지니고 있다. 지휘체계가 흐트러지고 탄약과 다른 물자들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기 쉬운 것이다. 조선인민군의 상당히 유별난 특징인 중대중시가 생겨난 이유의 하나가 바로 이런 지형특징이라고 필자는 여긴다.

중대의 특별한 지위

1991년 12월 25일 밤, 필자는 중국 중앙TV에서 방송한 뉴스를 보았다. 전날 평양에서 열린 대회장면이 나왔다. 김일성주석이 김정일동지가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었다고 선포하자, 엄청 큰 회장에 꽉 들어찬 군인들이 환호하는 것이었다. 그 회의의 정확한 명칭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하지 않은데(중국어로 번역된 뉴스를 보았기에), 전군중대정치일꾼회의였다고 기억된다.

정치간부의 배비가 공산군대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더라도 공산군대에서는 다른 성질의 군대가 비길 수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군대의 경우, 군대가 싸울 수록 강해진 이유의 하나를 “당의 지부를 중대에 세웠다(黨支部建在連上)”으로 꼽는다. 이로써 총대를 당이 지휘한다는 원칙이 관철되었고, 군대가 확실한 인민의 군대로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 구조는 변하지 않았으나, 중국인민해방군의 어느 중대지도원이 총사령격인 군사위원회주석을 만날 기회는 지극히 적다. 그리고 전군적으로 중대지도원회의를 열어 국가수반을 우러러볼 기회도 없다. 그만큼 중대의 지위가 낮다는 말이다. 중대는 어디까지나 기층의 한 단위일 따름이고 중대장이나 지도원도 값이 많이 떨어졌다. 특히 현대화무기를 늘여가는 지금에 와서는 작전단위가 점점 커지고 전략적인 차원의 대결을 중시하다보니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까 조선에서 갖가지 이름으로 열리는 남다른 회의에서 중대정치일꾼회의도 꼽아야겠다.

인민군에서 중대의 특별한 지위는 선군정치에서 각별히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1995년 1월 1일 김정일최고사령관이 다박솔초소라는 곳을 지키는 한 중대를 시찰한 것이 선군정치의 시작으로 꼽히지 않는가? 그후 10년 동안 김정일위원장이 부지런히 군부대시찰을 다니면서 중대를 직접 찾아본 실례가 엄청 많다. 최고사령관의 부대시찰상례로 망원경(쌍안경)과 기관단총(자동소총)을 기념으로 주는데, 사진들에도 늘 나오다시피 중위정도 되는 사람이 김정일위원장의 곁에 서서 망원경을 들 곤 한다. 조선에서 김일성주석이나 김정일위원장이 보내준 물건은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성스러운 물건으로 간주된다. 이런 성물(聖物)을 갖춘 중대가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왜 중대가 유별한 지위를 갖고 있는가?

중대는 결코 약하지 않다

김일성주석이 생애의 후반에 두고두고 후회한 것이 광복 후 5년동안 항일유격대의 전통이 제대로 선전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 많은 저서와 연설, 그리고 만년에 발표한 <세기와 더불어>에서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그런 잘못의 대가로 백성들이 피할 줄 모르고 어물거리다가 참살당한 것(황해도 신천대학살이 대표적이다), 일부 부대가 후퇴시기에 흐트러진 것 등등이다.

유일사상체계가 확립된 다음 김일성주석의 혁명역사가 조선혁명의 유일한 뿌리로 굳어지면서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연구가 깊어졌다. 따라서 문학예술작품에서도 반드시 항일유격대전통에 맞게 싸운 내용들만 다루기 시작했다. 여러 나라의 전쟁소설들을 두루 살펴보아도 중대장정도의 주인공들이 많기로는 단연 조선이 첫손 꼽힌다. 그것도 중대장이 그저 위의 명령을 받드는 정도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독자적인 지휘를 한다. 실제로 진지전단계에서 중대단위로 공격, 방어전을 펼친 사례가 많기는 하나 소설에서는 과장을 좀 보태 상급단위를 무시할 지경으로 그려진다.

다시 항일무장투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현재의 한 개 중대 즉 100여 명 정도(김정일위원장의 중대시찰사진에는 60여명만 나온 경우도 있는데, 여기서는 너무 세세히 따지지 않기로 한다)의 부대는 얕볼 수 없는 존재였다. 잘 이용하기만 하면 매복전, 습격전으로 짭짤한 전과를 올릴 수 있었고, 유능한 지휘관이면 일부를 유인에, 일부를 공격에 일부를 방차(防遮, 적의 지원병을 막아 침)에 갈라 써서 적들이 종잡을 수 없게 하면서 위력을 떨칠 수 있었다.

지금 조선의 방어체계에는 초소가 엄청 많다. 어느 고지나 어느 바다가, 어느 산골을 지키는 상황에서 부대의 단위는 작기 마련이다. 또 위에서 쓰다시피 일단 싸움이 일어나면 위와 연계가 끊어질 가능성이 많다. 아무리 지하광케이블로 연락을 하더라도 전시에 완벽한 보장이란 없다. 그러니 중대를 얼마나 잘 써먹는가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

만이 백으로 갈라지면 만 보다 더 세다

1950년대에 흐루시초프는 원자탄이 터지기만 하면 사단이 암만 많더라도 다 재로 된다고 주장했다. 회고록에서 혼자 잘난 척 불어댄 그의 눈에는 중대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한데, 통이 큰 듯 하나 정말 엉터리다. 사단이 개활지에 집결해 원자탄이 터지기를 기다린다면 몰라도 사단-만 명을 넘는 인간-이 잿더미로 될 리는 없다.

사실 1970년대에 중국에서 핵전쟁에 대비하면서 핵무기가 터질 때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영화와 책으로 많이 알렸듯이 보호법만 알면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다. 필자는 지금도 그런 방법과 동작, 자세들이 기억에 남는다. 핵무기가 폭발하면 우선 엄청 센 빛이 생기니 보지 말아야 하고, 그 다음 폭발음이 요란하니 듣지 말아야 하고, 셋째로 충격파가 몰려오니 피해야 한다. 두 손으로 눈과 귀를 막고 땅바닥에 엎드리면 이 세 가지는 피할 수 있다. 그 다음에야 방사능이 문제로 나서는데 그걸 피하자면 특별한 장소와 기술이 필요하다.

가장 위력이 큰 무기라는 핵무기도 이처럼 한계가 많다. 히로시마와 나카사키가 원자탄의 위력을 발휘하는데 유리했기에 미군의 목표로 선정되었고, 원래 세 후보지의 하나였던 고쿠라(小倉)상공이 흐렸으므로 하늘이 개인 나카사키가 재수 없이 원폭을 당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날 나카사키도 흐렸더라면, 그리고 피해자들이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원폭의 피해는 훨씬 줄었을 것이다.

제일 무섭다는 핵무기도 이러할 진대 상규무기(재래식무기)의 한계는 더욱 많다. 미군의 조선타격계획이나 방안을 떠드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 인민군의 대형화기를 어떻게 박살내어 작전능력을 없애버린다는 것이 기본이다. 그럴 듯하지만 인간의 요소가 빠졌다. 이라크의 경우를 보더라도 대형화기에 죽은 미군은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어려우나, 전쟁승리가 선포된 다음 저격무기나 박격포, 폭탄에 죽은 미군이 더 많지 않은가?

소련군의 이른바 “화력만능주의”를 참조해 강한 화력을 숭상하는 인민군이 강타를 할 때에는 당연히 사단이나 군단, 연합부대를 단위로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주적으로 간주하는 미군의 반응속도나 타격력으로 미루어보면 오랫동안 그런 큰 단위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억지로 대집단행동을 하다가는 참혹한 손실을 입기 쉽다. 불필요한 손실을 줄이려면 부대가 갈라져 중대, 심지어 소대를 단위로 싸워야 한다. 만 명 정도되는 사단단위로 움직일 때에는 미군이 자랑하는 정밀유도무기로 지휘부를 치는 것이 가능하다. 이라크에서 써먹은 참수(斬首)전술이다(사담 제거는 당시 성공하지 못했지만). 허나 사단이 중대규모로 흩어져 백 개로 갈라지면 그 많은 단위들을 다 없애기는 엄청 힘들다.
뭉치면 주먹이오, 흩어지면 그물이라. 전날 항일전쟁에서 유격대가 이렇게 뭉쳤다 흩어졌다 하면서 싸웠다. 반도의 지리특성상 유격전이 오래 끌 가능성은 적으나, 그 어떤 적수라도 골치를 앓지 않을 수 없다.

싸움이 길어지면 싸우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2년 전 미군이 바그다드로 다가갈 때, 일부 이라크군이 미사일, 대포 등을 고스란히 내버리고 철수했었다. 미군에 매수된 이라크군 고위급장교가 철수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비화가 뒷날 알려졌는데, 미군이 이런 재미를 인민군과의 싸움에서는 다시 보지는 못하리라 보인다.

인민군은 미군과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를 수없이 교육받았기에 전투의 원칙이 빤한 상황에서, 만에 하나 어느 군관이 미군에게 유리한 명령을 내린다면 통하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맛이 다른 명령은 시장을 잃게 된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밀어낼 때와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을 몰아낼 때처럼 금전으로 누군가를 매수하더라도, 실효를 보기는 어렵다고 보인다.

말단 군인들이 최고사령관의 명령만 받든다고 여길 때, 어느 상사의 명령을 거역했다 해서 “하극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물무기”를 받은 중대의 경우라면 아마 더욱 한사코 최고사령관의 명령만 새겨둘 것이다. 또한 그 어떤 교묘한 심리작전도 먹혀들기 힘들다. 미군이 설사 100%사실을 공포하더라도 한동안은 전혀 통하지 않을 것이다.

10여년 동안 인민군이 10만 정도 늘어났다고 하는데, 그저 무슨 특수부대나 신식무기에만 눈길을 돌린다면 판단을 정확하게 할 수 없다. 특별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최고사령관과 밀접히 이어졌다고 생각하는 보통 군인들이 더 중요하다. 김정일위원장은 끊임없는 부대시찰은 최고사령관-말단군인들을 단단히 이어주는 것이다.

한때 유명했던 일이지만, 1994년 12월에 미군 헬기 한 대가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가 격추된 사건이 있었다. 잠깐 건너왔다가 다시 넘어가려는 헬기를 인민군의 어느 분대장이 단방에 떨궜다는데(조선에서는 사건을 보도하면서 사용한 무기를 말하지 않았는데, 어떤 사람들은 화승(火繩)지대공미사일이라 이야기한다), 그 잠깐사이에 한층한층 위에 보고가 올라가고 다시 한층한층 명령이 내려와 발포되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여기서 무기의 성능보다는 이 사건이 시사해주는 제도와 원칙-“적을 보면 소멸하라”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1990년대 초반이던가? <소속없는 부대>(영문제목: An Unattached Unit)라는 영화가 나왔다. 필자의 기억에는 처음 공수부대와 싸우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그 줄거리는 전쟁시기 후방병원으로 후송되여가던 부상병들이 적항공육전대가 투하된다는 정보를 받자 지나가던 군인들과 마을사람들을 집결하여 항공육전대를 소멸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알기로는 1951년에 미군이 공수부대를 투하했다가 정규부대의 반격에 걸려 패배한 적이 있는데, 임시로 무어진 부대의 경미한 화력으로 어떻게 공수부대를 전멸시키겠나 의문을 가졌었다. 아무튼 영화 이야기는 그렇게 엮어졌고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일단 적을 발견하면 누구의 명령을 기다리지 말고 싸우라는 원칙이다. 이런 식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부대편제가 헝클어져 다른 부대와 뒤섞이더라도 임시로 조직되어 싸우게 된다.

중대장은 맏형, 중대지도원은 맏누이로 되어 병사들을 대하라. 김일성주석, 혹은 김정일위원장의 말이라고 기억된다. 이른바 “탈북자”들의 말에 의하면 중대간부들이 한심하기 그지없는데, 중대간부들이 하도 많으니까 한심한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나, 국부현상으로 전체를 흙칠해서는 안된다. 또 “탈북자”들이 한심하게 여기던 중대간부라 해서 싸움에서 무능하거나 비겁하리라는 법은 없다.

근자에 옛날 갱도의 골탕을 먹은 미군이 벙커를 부시는 소형핵무기를 개발하려고 애쓴다는 보도들을 보면서 필자는 솔직히 은근히 감탄했다. 중국의 군사전문가들은 미군의 장점으로 그 무기갱신속도를 지적한다. 일단 어느 싸움에서 어떤 이유로 손실을 입으면 다음 싸움에서는 벌써 그런 손실을 피하고 적수를 타격할 새 무기를 내놓는다는 것이. 무기만이 아니라 전법, 전술에서도 미군은 새로운 상황에 근거해 새로운 수법을 강구한다.

그러나 미군이 똘똘 뭉친 중대들을 깨는 “묘수”를 찾아낼 수 있을까? 필자는 어렵다고 본다. 2.10 핵무기보유선언 전에 조선에서는 항상 우리에게는 핵무기보다 더 강한 무기가 있다. 그것은 일심단결이다 라고 이야기해왔다. 네 달이 지나 김정일위원장이 핵무기를 모조리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한 말에는 강한 자신감이 비쳐지는데 바로 군인과 국민들을 믿기 때문이다. 외부의 압력에 밀려 물러섰다고 여긴다면 오판이다.

핵무기가 있으면 물론 좋지만 없어도 좋다. 단순한 배짱이 아니다. 단기 싸움에서는 화력과 무기가 주도를 하더라도, 일단 싸움이 길어지면 싸우려는 의지가 무기보다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기나긴 역사는 이 점을 충분히 증명했고 지금도 이라크에서 증명하고 있다.(2005년 8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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