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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대통령은 사회주의로 안정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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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7-02-09 03:55 조회4,1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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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민족통신 종합]유태영 범민련고문(77 은퇴 목사)은 미국과 인접한 남미 나라들의 진보흐름을 진단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지난 번에도 민족통신에 특별기고를 통해 세계 관심을 모아 온 베네주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국내외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이번에 또다시 남미의 볼리비아 모랄레스 대통령에 대해 분석하면서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안정적 정치를 펼쳐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8순을 바라보는 재미통일운동의 원로 유태영 목사의 특별기고를 전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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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는 300년 동안 스페인의 통치 밑에 있다가 1825년에 스페인의 통치에서 부터 버서나 자주 독립을 했다. 볼리비아가 독립을 하게 된 것은 베네수엘라의 영웅 볼리바르 장군이 남미 식민지 나라들에게 혁명적 독립정신 을 적극 장려 했음으로 그의 영향을 받은데 있다. 페루, 에과도르, 베네수엘라 등 여러 다른 식민지 나라들도 역시 보리바르 장군의 혁명 정신을 이어 받아 일제히 일어나 스페인의 통치에서 버서나 자주독립을 쟁취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불리비아는 자주독립을 쟁취 하기는 했지만 같은 시기에 독립을 쟁취한 여러 신생국 이웃 국가들 중에서 제일 문제가 많은 나라가 됬다.

<##IMAGE##> 볼리비아는 1825년에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 한후 2000년 까지 이르는 165년 동안에 쿠테타가 무려 150번이나 발생 했다. (어떤 기록에는 200번 )
그뿐만 아니라 볼리비아는 165년 동안에 헌법을 16번이나 제정으며 그리고 그 헌법을 6번이나 개정 했다.

백년대게 라는 말이 있는데 165년 동안에 쿠테타가 150번 이나 발생 했고 헌법을 16번이나 제정 했다는 사실은 볼리비이가 독립을 쟁취한 후에 정치적 혼란이 그 얼마나 극심했던가 하는 것을 잘 말해 준다.

그뿐만 아니라 1964년에서 부터 1989년 까지 25년 동안에 볼리비아에서
대통령이 모두 19명이 취임을 했는데 그 중에서 임기를 완전히 맟인 대통령은 단 두 사람 뿐이다. 그리고 이들 19명의 대통령들 중에서 13명은 군인 장성들 이였다고 하니 미국의 개입 없이 어떻게 군인들이 대통령이 되겠는가?

과거 수세기 동안의 스페인의 침략과 착취를 당했고 그리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침투가 날로 날로 거세게 가속화 되고 있는 불안한 현실 속에서 모랄레스 대통령이 볼리비아 민중의 절대적 다수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여 21세기 사회주의나라를 건설 하겠다고 선포한 것은 실로 놀라운 기적중의 기적이다.


1.볼리비아의 지하자원 착취

1545년에 볼리비아 북서지방 포토시 (Potosi)에 정착한 스페인 침략자들에게는
어머어마한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행운이란 세계 최대의 은(Silver) 탄광을 처음 발견하고 탈취 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다음 두번째 행은은
새로 탈취한 탄광에서 은을 채굴하기 위하여 8백만명(8 Million) 의 원주민 인디언 들을 탄광노예 로 삼아 무보수로 강제 노동을 시킬 수 있었다는 사실

“The open veins of Latin America” 라는 책에 의하면 8백만명의 원주민 노예들 은 스페인 침략자들의 모진 채찍의 매를 맞아가면서 죽는 날까지 탄광에서 노동을 했다고 한다. 스페인 침략자들이 말하는 행운은 8백만 인디안 원주민 들의 피에 젖은 행운이였으며 인디언들의 생존권을 빼앗은 한 맻인 비극적인 운명의 대가로 얻은 행복 이였다.

포토시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던 초창기 스페인 침략자들은 본국에 있는 스페인 황제에게 지극한 충성심으로 경제적 지원을 아낌 없이 보냈다. 포토시는 그 당시 영국과 스페인의 양대 식민지의 중요한 전략지로서 유럽의 산업발전의 시발점의 역활을 했다.

포토시는 해발 4200m나 되는 높은 고원 이지만 스페인은 이 고원지에 총력을
기우려 유럽식 스페인풍의 거대한 도시를 건설 했다. 침략자들은 포토시에 화려한 스페인식 Catholic 교회를 80개나 세웠으며 스페인의 예술 조각물 들로 장식한 화려한 건물들을 가득히 세웠다.
1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200년 동안에 세게에서 제일 큰 광산지로 알려진 이곳 포토시를 향하여 세계적인 탐험가, 종교인 , 상인, 탑사자 그리고 Catholic 사제등 유명한 사람들이 물 밀듯 줄을 이어 찾아 왔다.
16세기 말경에 포토시에는 유럽에서 건너 온 12,000명의 잡다한 침략자들이 호화 롭게 살고 있었으며 남미에서 제일 큰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포토시 외에 다른 지역에도 침략자들이 볼리비아에 왔는데 15484년에 la Paz 로, 1574년에 Cochabamba 로, 1604년애 Oruro로 많은 유럽인들이 떼를 지어 볼리비아로 행운의 꿈을 꾸면서 찾아 왔다.

1825년에 안토니오 장군이 Colombian Troop을 창설하고 총지휘자가 되여 스페인 주둔군과 맹열한 격전을 벌린 끝에 스페인 주둔군을 패망시키고 승승 장군이 되여 볼리비아의 독립을 선포 했다.
1826년에 안토니오는 볼리바르 장군이 제시한 헌법을 성실히 참작하여 새나라의 헌법을 제정 했으며 또한 나라의 이름을 볼리비아(Bolivia) 라고 선포 했는데 남미의 영웅 해방자 Bolivar 장군을 존경하여 그의 이름을 따라서 새나라의 국명을 볼리비아로 명명했던 것이다.


2.누구를 위한 독립 인가?

<##IMAGE##> 볼리비아가 스페인 통치 에서부터 자주독립을 쟁취한 후 오늘까지 180 년의 세월이 흘러 갔다. 그런데 오늘에 있어서 볼리비아의 현실은 과연 어떻한가?

우연히 몇일 전에 포토시 (Potosi)를 관광하고 돌아 온 Butler 씨가 쓴 기행문을
읽어 보았다. 이 기행문을 읽으면서 볼리비아의 지난 역사와 오늘에 와서 모랄레스 대통령이 출현 하게된 사건등을 연상해 보면서 볼리비아의 어제와 오늘의 현실에대한 나의 궁금증을 풀어 보았다.

볼리비아의 오늘의 수도는 La Paz 이다. 침략 초창기에는 포토시가 볼리비아 의 수도 이였으며 그 때 화려했던 포토시는 엣날의 추억 으로만 남아 있는 옛 성토가 되고 말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포토시에 옛날에 있던 유명한 탄광만은 아직도 여전히 남아 있어 외국자본가들의 노다지의 역활을 오늘도 게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현재 12,000명의 광부들이 매일 지하 50m
깊은 땅속에 네려가 고된 노동을 하고 있는데 그 광부들은 전원이 원주민
인디언들 이라는 사실이다.

12,000명의 광부들은 누구들인가?
450년전에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처음 노예가 되였던 그때 인디언 원주민 노예 8백만 중에서 살아 남은 자들의 후손들이다.

50m 지하의 작업장은 숨이 막히는 열과 철광 부스러기와 먼지로 견딜 수 없는 생지옥 이다. 안내자는 관광객들에게 절대로 무엇이던 혀에 닿는 일 없도록 조심하라고 일러 준다. 페와 심장에 위험 하다고 주의를 주는 것이다.

광부들은 직업병으로 나이 50세를 넘기는 사람이 없는데도 기업주는 광부들을 위한 facemasks 나 손장갑등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 만일 사고로 부상을 당하면 걸어서 혹은 업어서 박으로 나아가야 할 뿐 별 방법이 없다.

기구도없이 모든 일을 손으로 일 하면서 10시간 노동에 항상 배고픔을 참고
견디어야 하며 고된 노동을 일생동안 하고 있다. 정부는 이득의 6%를 명목상으로 존재하는 노조에게 지급해 줄뿐 그외에 어떤 정부의 헤택이나 보호는 하늘의 별따기 이다.
명목상의 어영노조 이지만 그래도 이 노조의 회원이 되는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4년 동안 무사고 노동을 한후에야 겨우 노조회원이 될 수 있다. 노조 회원이 되기 위한 경쟁 으로 서로 싸우는 일이 항상 게속된다고 한다.

백인 침략의 500년 찰란한 역사 속에서 인디언 원주민들의 후손들은 오늘도 서양문명의 끝 없는 짓밟힘을 당하고 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살아저 가고 있는 포토시 옛 성토의 외진 탄광 깊은 땅속에서 12,000명의 원주민 노예의 후손들은 21세기 문명 사회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간 이하의 환경과 악족건 속에서 여전히 백인 소수의 엘리트들에게 노예로 착취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지면상 제한으로 그 관광객이 폭로한 인종주의적 비참 하고도 가혹한 학대와 그리고 수세기가 지난 오늘 까지도 고독한 원주민들의 영혼들이 울부짔고 있
는 그들의 기막힌 사연들을 여기에 다 기록 할 수 없음이 유감이다.

1825년에 남미의 원주민들은 그렇케도 갈망하던 스페인 제국의 통치 로부터
자유독립을 하였다고 기뻐는 했다. 하지만 백인 침략자들과 그들의 후손인
백인 2세들이 임이 주류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 하에서 백인들이 주장하고 있는 자유독립이 원주민들에게는 하나의 그림의 떡이 되고 말 뿐 이였다.

라틴아메리카의 독립을 론 함에 있어서 항상 두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첯째는 토착원주민들과 흑인들을 위한 독립인가?
둘째는 라틴아메리카에서 태어난 백인 2세 농민과 노동자들을 위한 독립인가?

토착원주민들은 독립한 후에도 여전히 고원지대나 밀림속으로 쪼껴 가야만 하는 비운에 처해 있을 수 박에 없었다.
제아무리 좌파 사회주의 혁명을 외친다해도 토착원주민을 그대로 방치한 혁명
은 참된 혁명의 길에서 이탈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다행이도 2000년대에 이르러서 볼리비아에서 사회개혁운동 바람이 세차게 일기 시작 했다. 특히 인디언 원주민들의 자각적 여론이 고조되여 민중의 자유와 평등, 사회적 윤리와 정의를 외치는 소리가 비록 오랜 세월 후 이지만 드디어 점점 커지고 있는 갓이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 원주민 인디언 민중들이 외친 함성은 볼리비아의 역사를 일부분 뜯어 고치자고 하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그들의 외침은 아예 볼리비아를 근본적으로 새로 탄생 시키자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그들의 외침은 “독립에서- 재독립” 을 원하는 새 역사 창출을 위한 외침 이다.

볼리비아의 독립 전쟁은 백인들끼리 싸운 독립전쟁에 불과 했다.
“유럽의 백인” 들과 “라틴아메리카의 백인” 들이 신대륙의 이권을 놓고 서로 줄당기기 싸움을 한 것에 지니지 않았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본래의 주인이며 당당한 터주인 원주민들은 백인들이 서로 이권 싸움을 하고 있는데 당사자가 되지 못 하였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볼리비아에서 강력한 사회정의와 사회개혁을 위한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기 시작 됬는데 이 운동에는 인디언 원주민 민중들이 대거 궐기
하는 것은 물론이고 “ 백인 농민” 들과 무산 계급에 속하는 “백인노동자” 들도 모두 다 항쟁에 동참 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 무르익어 가던 2005년에 진보주의적 개혁주의를
주장하면서 나섰던 대통령 후보자 모랄레스는 수도인 La Paz 에 뫃인 군중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크게 외쳤다;
“ 오늘 볼리비아가 당면한 과제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침투에 대항하여 싸워야 할 투쟁의 과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옛날에 뿌리에서 부터 잘못 된 국가적 형태와 그리고 오늘에 있어서 부페한 사회적 제도를 개선 하기
위하여 민중은 싸워야 한다. 그리고 부끄러운 침략의 역사를 아직도 청산 하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 원인에 대하여 새로운 개혁이 시급 합니다”

볼리비아가 독립을 쟁취하여 형식적으로는 노예제도가 페지 되였다고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인디언 원주민들이 조상 때 부터 대를 이어 가면서 착취를 당하는 것은 독립된 나라의 법에 의하여 하등의 보호와 헤택을 받지 못 하고 있다. 독립된지 200년이 된 오늘 에도 그들은 옛 날의 노예 생활을 여전히 변함 없이 게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옛 날의 노예제도를 그대로 유지 할 수 있도록 뒤에서 작용을 하고 있는 소수의 백인 엘리트 기득권 세력들과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서로 굳게 결탁고 있는 자본주의적 제도 때문이다.
이 소수의 엘리트 기득권 게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볼리비아에서 그 어떠한 변화도 용납 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민중을위한 개혁과 변화를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라는것, 자유 무역주의 라는 것 들이 바로 이런 역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모랄레스 대통령은 볼리비아 원주민들의 절대적으로 단합된 지지와 그리고 다양한 여러 분파적 민중들이 탄탄히 뭉친 절대적 지지를 받음으로 대통령이 되였다. 그의 대통령 당선은 볼리비아 역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고 있으며 그뿐만 아나라 21세기형 사회주의 혁명을 주창할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이 마련 되였다.

그럼으로 모랄레스 대통령은 볼리비아의 “ 독립역사 다시 쓰기” 개혁 운동을 과감하게 전개할 수 있는 역사적 사명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볼리비아 민중을 위한 “산 역사의 증인” 이 될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와 전세계의 억압된 민중을 위해서 진실과 정의, 인권과 존엄, 사회의 정와 평화를 일깨워 주는 민중의 해방자의 역활을 넉넉히 해 나아갈 것을 바라 마지 않는다.


3.맨발의 토착원주민 대통령의 지휘봉

2006년1월21일, 대통령 공식 취임식 바로 하루 전날에 La Paz 의 넓은 광장에서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좌파정권이 탄생 하는데대한 이정표를 제시하는 축하 예식이 잉카원주민의 전통적 풍속 속에서 성대하고 이색적으로 거행 되였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맨발로 단상에 등장을 했으며 인디언 전통을 상징하는 붉은 걷옷을 걸치고 나왔다. 인디언 부족인 Aymara족의 지도자는 모랄레스
대통령에게 토착원주민의 상징인 은과 금으로 장식된 지휘봉을 증정 했다.
한 적은 맨발의 원주민 대통령에게 주어진 이 지휘봉은 눈부신 꿈의 상징으로
많은 원주민들에게 소망을 제시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1월 22일 대통령에 취임한 모랄레스 대통령은 볼리비아 국민들과 취임식에 참석한 대중을 향하여 눈물겨운 장면을 연출 했다.
“나는 오늘 이 성스로운 자리에서 우리의 조상 잉카제국의 마지막 혁명전사인
뚜빡 아마루에 대한 묵념을 제안 합니다”
모랄레스의 이와 같은 제안은 몇백년 동안 한 맻인 토착원주민들의 심금을
울리고 또 울렸다.

모랄레스는 한 때 인디언 원주민들의 주업인 Coca 농장에서 농장노조의 회장 이 되였다. 그후에 그는 볼리비아 좌파정당 (MAS)의 당 위원장으로 활약 했는데 모랄레스는 자기자신이 인디언 토착원주민의 후손인것을 항상 잊이 안았다.
모랄레스 대통령의 취임 축하 행사를 토착원주민의 전통예식에 따라서 행사를 진행 했다는 사실은 볼리비아 500년 역사에 있어서 처음 있는 일 이였다.

대통령 선거에서 좌파 후보자인 모랄레스는 White House가 직접 지원해 주는 전직 대통령 Jorge Quiroga (2001-2002) 와 치열한 경쟁을 했다.
하지만 모랄레스는 그 막강한 강적을 여유있게 물리치고 득표율 54% 로 당당
하게 승리를 거두 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볼리비아 인구 8,857,870을 대표하는 대통령 이다.
하지만 동시에 총인구의 2/3 에 해당하는 Aymara, Queechuaemd 등 기타 여러 원주민 종족 들을 위한 대통령 이기도 하다. 이 절대다수의 원주민 종족들 은 극빈층에 속해 있으며 빈부 격차의 양극화로 인한 뿌리 깊은 사회문제에 항상 노출되고 있다

그럼으로 토착원주민의 후손으로서 대통령이된 모랄레스 대통령은 집권 초기 부터 실질적으로 정책을 수행 해 나아가는데 있어서 심리적 부담과 마음의 결단이 요구되는 크고 무거운 짐이 양 어께에 지워저 있는 것이다.

이제 모랄레스 대통령의 초기 집권 1 년이 지나 갔다. 그의 1년집권의 성적은 과연 어떻 한가?

우선 1년후에 모랄레스 대통령 에대한 국민의 지지도를 살펴 보자.
2005년에 그를 대통령으로 당선 시킨 지지율은 53.7% 이였다. 그런데 오늘 모랄레스 대통령 에대한 지지도는 높이 상승하여 59%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상승의 이유가 무엇 일까?
모랄레스 대통령이 최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나타난 1년동안의 정치활동
을 보면 전적으로 경제와 사회봉사 영역에서 매우 뛰여난 활동을 했다. 그의 선고 공약 들이 말뿐의 공약이 아니라 그의 큰 꿈의 공약 이였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형 사회주의 혁명을 내세우면서 권력기반을 공고히 굳치고 있는 모랄레스 대통령의 성공을 바라 보는 볼리비아 민중들의 관심은 지대하다

모랄레스 대통령 에대한 민중들의 지지율 상승 에대하여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Gas 의 국유화 이다. 선거 공약 중에서 제일 우뚬가는 공약 이였는데 집권 1년안에 선거공약의 82%를 실현 했으니 지지율 상승은 당연 하다.
전직 대통령들이 두번씩이나 실패하고 쪼겨난 Gas 국유화 과제를 모랄레스 대통령은 집권 후 즉시 실현하는데 성공을 했다.

둘째, 농지개혁을 과감하게 추진 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뿌리 깊은 대지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디 첬다. 하지만 반대에 고전하는 대통령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전체 농업민중들의 힘이 있기떼문에 대통령은
꾿건히 서서 절대로 구피지 아니하고 추진하여 농지개혁을 곧 완성 하게 될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셋째, 마약과의 투쟁을 빙자하여 볼리비아의 내정 간섭을 서슴치 않는 미구에 대하여 모랄레스 대통령은 볼리비아의 문제는 우리식대로 우리가 스스로 해결 할것이니 미국은 간섭 말라 라고 강하게 맛서고 있다. 볼리비아는 Coca의 원산지 이기 때문에 오래전 부터 마약문제가 있다.

네째, Oil의 국유화 이다. 볼리비아에는 석유 매장량이 440 Million Barrel 이
매장 된 것으로 추정 한다. 하지만 1990년대 이전의 정권들이 석유의 이권을 몽땅 외국자본들에게 팔아 넘겼다. 그럼으로 모랄레스 대통령은 외국 자본들과 싸워 임이 있는 게약을 조정하여 재게약을 추진할 수 박에 없는 처지에 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2006년 5월에 일단 석유 국유화 정책을 선포 해 놓고, 2006년 11월 까지 재게약을 위한 잠정 기간을 설정을 했으나 아직은 지연 상태에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그는 기여히 그의 목표를 달성 할 것이다.

다섯째, 볼리비아 광업의 2005녇도 수출액은 $1 .1 billion 이였다. 하지만
볼리비아 정부의 국고에 입금된 수익은 1.5% 뿐이였다. 외국 자본이 볼리비아의 광업 전체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우선 광물 수출 수익의 50%는 정부에 돌아오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외국 투자가 들에게는 철광의 수출 품목도 제한하도록 지시 했다.

여섯째, 모랄레스 대통령은 볼리비아 에서 모든 사회 운동당체들의 총연합체
조직 구성을 제안하고 있다. 16개의 사회 단체들의 여합체 조직은 백인 중산층 세력들이 조직적으로 모랄레스 정권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볼리비아 국회상원의 우익 세력은 사사거건 모랄레스 대통령이 개혁을 위한 법안을 제출하면 이에 대하여 봉쇠와 거부로 맛대응 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개혁법안을 지지하는 민중의 세력이 총집결하여 세력화가
되여야 하기 때문에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와 같은 언합체 결성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일곱째, 모랄레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상승의 결정적 요인은 빈민들을 위한 사회복지 실천과 향상에 있다.

모랄레스 대통령의 Gas 국유화 정책으로 인하여 $1.3 billion 을 획득 했으며, 국회 의원들의 감봉에서와 기타 여러 재원에서 얻은 자금등으로 정부의 거시적
경제안정 정책이 가능 해 진것을 국민들은 감지하고 있다.

모랄레스 매통령은 지난 1년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순회하면서 빈민들에게 직접 접근하여 구제, 의료, 교육 향상을 위하여 정부의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 했다.
Cuba 에서 2000명의 의사들을 초빙하여 20개의 병원을 신설 헸으며, 문맹퇴치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여 30만명이 참가 했는데 벌서 첯해에 73,000명이 졸업을 하여 문맹의 눈을 떴다. 초등학교 하생들에게 교육 보조비
제공, 농부들에게 Tractor 무료 제공등 집권 초기 1년 동안에 펄친 사회복지
정책과 그 결실은 막대 하다.

여덜째, 볼리비아의 인구중 37% 나 되는 원주민들은 아직도 16세기에 스페인 침략자들이 오기 이전의 언어를 그대로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그럼으로 모랄레스 대통령 행정부 교육부에서는 교육지침 Pamphlet 을 발행하여 모든 정부 공무원들은 원주민 언어를 습득하여 해화를 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다.
한 Taxi 운전수는 말 하기를 “우리는 왜 우리의 언어를 버리고 외래어 Spanish
를 사용 해야만 하는가?” 라고 하면서 모랄레스 대통령의 언어 정책을 대환영 한다 고 말 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스페인 언어의 공용어 페지를 주장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민족의 귀중한 문화적 유산인 언어를 보존 하는 것과 원주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뜻으로 스페인 말과 원주민의 말을 동시에 존중히 여기는 이중언어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홉째, 모랄레스 대통령은 현재 The World Social Forum 의 회장 이다. 그리고 그는 Nobel 평화상 후보자 명단에 올라 있기도 하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의미 심장한 말을 회의에서 발언 했다.

“ 어떤 나라는 사람들은 죽이기 위해서 군대를 외국에 보내고, 다른 나라들은
반대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군대를 보낸다. 어떤 나라는 주도권 때문에
전쟁을 시작하고, 다른 나라들은 평화를 위하여 그곳에서 전투를 하고 있다.
그러하니 우리는 어느 편에 서야 하겠는가?”

모랄레스 대통령은 나라와 나라들과의 동맹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라들의 민중과 민중들 사이에 맺은 “민중의 동맹” 이 더 중요하다 라고 역설 했다.

결론적으로 말을 한다면 모랄레스 대통령이 꿈 꾸는 것은 볼리비아에서 토착원주민들이 빼앗긴 조상들의 전통을 다시 찾고, 스페인과 기타 유럽게 침략자들의 후손들이 볼리비아에서 수세기 동안 살아 온 백인들의 전통도
소홀이 여기지 않고, 이 두개의 전통이 어떻게 하면 서로서로 존중히 여기고 조화와 화해를 이루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 아니겟는가?

하지만 오늘 이 양대 전통은 서로 숨을 죽여 가면서 모랄레스 대통령의 정치적
역량을 저울질 하며 눈치를 보고 잇다.
지난 1월24일에 볼리비아 국회 상원에서는 3개의 야당들이 연합하여 대표자 한 의원을 선출 헸다.
이 야당들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과거 독재정권의 잔당들이며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이다. 그리고 볼리비아 동부 지역 백인 에리트 들을 대표하는 정당 들이다. 이들은 모랄레스 대통령의 모든 개혁정책을 무조건 결사 반대 하는
“악의 축” 들이다.

미국이 뒤에서 적극 도와주고 있는한 이 야당 세력은 절대로 쉽게 물러가지
않을 것이다. 볼리비아 역사에 유명한 미국이 지원하는 쿠테타의 가능성을
이들은 또 다시 기다리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한 신문 보도에 의하면 이 야당 의원들은 모랄레스 대통령이 임이 통과시킨
“토지 개혁법안” 을 다시 번복시켜 원상복귀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 야당 의원들은 모랄레스와 차베스 두 대통령의 연결고리에 대하여
의심의 눈을 가지고 보고 있다고 했다.

토지개혁 법안과 Gas 법안을 이미 통과 시킨바 있는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들 야당 의원들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매우 단호 했다.

“우익과 신자유주의자들, 그 경매쟁이들은 저들끼리 똘똘 뭉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있겟는가”[끝]

2007년 2월 7일 뉴욕 유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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