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인민들의 평양참관 보장, 평양고속도로려객자동차사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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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7-01-31 02:53 조회2,76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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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발 리태호기자】 평양고속도로려객자동차사업소의 종업원들은 지방사람들의 평양참관을 보장하고있다. 이들은 자기 사업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일감을 찾고 또 찾고있다.
사업에 대한 보람
박철진지배인(42살)은 《평가를 받으면 기뻐하고 더 열심히 하는 아이들처럼 우리 사업소에서는 모든 종업원들이 이것 합시다, 저것도 합시다 하면서 일을 재미나게 하고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사업소가 세운 계획을 하나씩 수행하는 과정에 종업원들은 일하는 재미와 보람을 더욱 느끼게 되였다고 박철진지배인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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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고속도로려객자동차사업소는 1979년에 창설되였다. 평양-원산고속도로가 주된 사업구간이였다. 종전에는 기차를 오래 타고 가야 할 구간이였는데 이곳 사업소의 뻐스가 고속도로를 달리게 되여 평양-원산간의 소요시간이 2시간으로 단축되였다.
1980년대에는 국제행사나 국제경기를 보장하는 사업도 진행하였고 최근년간은 《아리랑》공연참관사업에도 동원되여있다.
현재 사업소의 뻐스는 사리원, 남포, 안주, 원산과 평양사이를 달리고있다.
합심으로 난관극복
뻐스가 달리면 휘발유와 다이야를 소비하게 된다. 그런데 1990년대의 경제적시련의 시기에는 연료난을 겪었다. 다이야도 제대로 교체할수 없었다. 사업소에서 겨우 두대의 뻐스만을 운행하는 시기가 있었다.
박철진지배인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다른 나라라면 종업원들이 의욕을 상실하고 사업소의 운영자체가 힘들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종업원들은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사업소를 살리자면 우선 뻐스를 갖추어야 한다며 여기에 온갖 힘을 돌렸습니다.》
당시 종업원들은 텔레비나 랭장고 등 자기 집의 재산을 바치면서 뻐스를 구입하는 자금을 조달하였다. 결혼기념으로 받은 옷장까지 바친 종업원도 있었다.
박철진지배인은 《시련의 시기였지만 바로 그때 우리 종업원들은 나라가 잘 살아야 자기가 잘 산다는 정신, 래일을 사랑하는 정신을 체현하게 되였지요.》라고 말한다.
종업원들이 합심하여 마련한 뻐스가 달렸다. 그를 통해 얻은 자금으로 다시 뻐스를 마련하였다. 사업소의 규모는 착실히 확대되여갔다. 그 과정에 사업소의 경영일군들은 뻐스운행을 보장한 수리공들에게는 전기제품을 선물해주는 등 종업원들의 생활상 애로를 풀어주는데 많은 관심을 돌렸다.
《두몫, 세몫 일하자》
《우리의 사업에서 중요한것은 뻐스를 움직이기전에 사람을 발동시키는것입니다. 종업원들의 사상의식을 바꾸고 그들의 열의를 불러일으키면 못해낼 일은 없습니다.》
박철진지배인에 의하면 지금 종업원들속에는 전문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학습의 기풍이 확립되여있다고 한다. 차장들은 《수리공 겸 운전조수 겸 차장》의 3역을 수행하고있다.
《적은 인원수로 더 많은 일을 해내자.》
그것이 이곳 사업소의 지향이라고 박철진지배인은 설명한다.
(리태호기자 leeteho@korea-np.co.jp)
사업에 대한 보람
박철진지배인(42살)은 《평가를 받으면 기뻐하고 더 열심히 하는 아이들처럼 우리 사업소에서는 모든 종업원들이 이것 합시다, 저것도 합시다 하면서 일을 재미나게 하고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사업소가 세운 계획을 하나씩 수행하는 과정에 종업원들은 일하는 재미와 보람을 더욱 느끼게 되였다고 박철진지배인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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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고속도로려객자동차사업소는 1979년에 창설되였다. 평양-원산고속도로가 주된 사업구간이였다. 종전에는 기차를 오래 타고 가야 할 구간이였는데 이곳 사업소의 뻐스가 고속도로를 달리게 되여 평양-원산간의 소요시간이 2시간으로 단축되였다.
1980년대에는 국제행사나 국제경기를 보장하는 사업도 진행하였고 최근년간은 《아리랑》공연참관사업에도 동원되여있다.
현재 사업소의 뻐스는 사리원, 남포, 안주, 원산과 평양사이를 달리고있다.
합심으로 난관극복
뻐스가 달리면 휘발유와 다이야를 소비하게 된다. 그런데 1990년대의 경제적시련의 시기에는 연료난을 겪었다. 다이야도 제대로 교체할수 없었다. 사업소에서 겨우 두대의 뻐스만을 운행하는 시기가 있었다.
박철진지배인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다른 나라라면 종업원들이 의욕을 상실하고 사업소의 운영자체가 힘들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종업원들은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사업소를 살리자면 우선 뻐스를 갖추어야 한다며 여기에 온갖 힘을 돌렸습니다.》
당시 종업원들은 텔레비나 랭장고 등 자기 집의 재산을 바치면서 뻐스를 구입하는 자금을 조달하였다. 결혼기념으로 받은 옷장까지 바친 종업원도 있었다.
박철진지배인은 《시련의 시기였지만 바로 그때 우리 종업원들은 나라가 잘 살아야 자기가 잘 산다는 정신, 래일을 사랑하는 정신을 체현하게 되였지요.》라고 말한다.
종업원들이 합심하여 마련한 뻐스가 달렸다. 그를 통해 얻은 자금으로 다시 뻐스를 마련하였다. 사업소의 규모는 착실히 확대되여갔다. 그 과정에 사업소의 경영일군들은 뻐스운행을 보장한 수리공들에게는 전기제품을 선물해주는 등 종업원들의 생활상 애로를 풀어주는데 많은 관심을 돌렸다.
《두몫, 세몫 일하자》
《우리의 사업에서 중요한것은 뻐스를 움직이기전에 사람을 발동시키는것입니다. 종업원들의 사상의식을 바꾸고 그들의 열의를 불러일으키면 못해낼 일은 없습니다.》
박철진지배인에 의하면 지금 종업원들속에는 전문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학습의 기풍이 확립되여있다고 한다. 차장들은 《수리공 겸 운전조수 겸 차장》의 3역을 수행하고있다.
《적은 인원수로 더 많은 일을 해내자.》
그것이 이곳 사업소의 지향이라고 박철진지배인은 설명한다.
(리태호기자 leeteho@korea-np.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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