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민주화운동 원로 홍남순 변호사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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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6-10-13 23:14 조회3,06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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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산증인이자 재야 원로인 홍남순 변호사가 14일 오전 2시10분께 지병인 뇌출혈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전남 화순 출신인 고인은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보낸 뒤 1930년대 학업을 위해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상공학교를 졸업한 후 37세의 나이로 1948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IMAGE##> 중년의 나이로 한국전에 참전한 그는 휴전 이후 광주지법 판사, 광주고법, 대전지법 판사 등을 거친 뒤 1963년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30여년간 고인은 양심수 무료 변론 등을 도맡으며 광주,전남 지역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반독재 투쟁과 시국사범 변론에 앞장서온 그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내란수괴 혐의로 체포돼 1년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송기숙 교수는 "대인 홍남순"이라는 논총집을 통해 "공군 감방에서 지켜본 홍 변호사는 갖은 협박과 구타 속에서도 결코 기죽은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고 회고한 바 있다.
"광주 5.18 구속자협의회" 회장으로 추대된 후에도 그는 군부 독재와 반민주에 맞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1988년에는 "광주민주항쟁"이라는 명칭이 "광주의거"로 바뀌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가톨릭인권상(1985년)과 대한변호사회 인권상(1986년), 국민훈장 무궁화장(1993년) 등을 수상했다.
2년 전에는 윤보선, 장준하 등과 고락을 함께 하며 인권 변호사 차원을 넘어 민주변호사로 활동해온 고인이 투병중인 사실을 안타깝게 여긴 지인들이 그의 기개있는 삶을 한 데 모아 최초의 평전인 "영원한 재야 대인 홍남순"을 펴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13,14대 국회의원인 홍기훈씨(53)를 포함해 5남 2녀가 있고, 부인 윤이정씨는 14년전 먼저 생을 등졌다.
고인은 2001년 11월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전남대 병원과 광주시립인광치매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아왔으나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결국 투병 5년만에 숨을 거뒀다.
영결식은 "광주시민장(葬)"으로 치러질 것으로 보이며, 빈소와 발인 방식 등은 유족과 5.18기념재단, 광주시가 협의를 거쳐 결정할 계획이다.
박상수기자 sspark@newsis.com
송창헌기자 chang@newsis.com
전남 화순 출신인 고인은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보낸 뒤 1930년대 학업을 위해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상공학교를 졸업한 후 37세의 나이로 1948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IMAGE##> 중년의 나이로 한국전에 참전한 그는 휴전 이후 광주지법 판사, 광주고법, 대전지법 판사 등을 거친 뒤 1963년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30여년간 고인은 양심수 무료 변론 등을 도맡으며 광주,전남 지역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반독재 투쟁과 시국사범 변론에 앞장서온 그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내란수괴 혐의로 체포돼 1년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송기숙 교수는 "대인 홍남순"이라는 논총집을 통해 "공군 감방에서 지켜본 홍 변호사는 갖은 협박과 구타 속에서도 결코 기죽은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고 회고한 바 있다.
"광주 5.18 구속자협의회" 회장으로 추대된 후에도 그는 군부 독재와 반민주에 맞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1988년에는 "광주민주항쟁"이라는 명칭이 "광주의거"로 바뀌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가톨릭인권상(1985년)과 대한변호사회 인권상(1986년), 국민훈장 무궁화장(1993년) 등을 수상했다.
2년 전에는 윤보선, 장준하 등과 고락을 함께 하며 인권 변호사 차원을 넘어 민주변호사로 활동해온 고인이 투병중인 사실을 안타깝게 여긴 지인들이 그의 기개있는 삶을 한 데 모아 최초의 평전인 "영원한 재야 대인 홍남순"을 펴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13,14대 국회의원인 홍기훈씨(53)를 포함해 5남 2녀가 있고, 부인 윤이정씨는 14년전 먼저 생을 등졌다.
고인은 2001년 11월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전남대 병원과 광주시립인광치매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아왔으나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결국 투병 5년만에 숨을 거뒀다.
영결식은 "광주시민장(葬)"으로 치러질 것으로 보이며, 빈소와 발인 방식 등은 유족과 5.18기념재단, 광주시가 협의를 거쳐 결정할 계획이다.
박상수기자 sspark@newsis.com
송창헌기자 ch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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