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 간 미군<푸른 눈의 평양시민> 다룬 기록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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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7-08-20 02:11 조회3,820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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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종합]1960년대 20대 미군 4명이 잇따라 북한으로 망명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영국 감독 대니얼 고든(36)이 기록영화로 제작했다.〈푸른 눈의 평양 시민〉이라는 제목의 기록영화는 지금도 여전히 북한에 살고 있는 제임스 조지프 드레즈녹(66)을 주인공으로 삼아 제작되어 오는 8월 23일 서울서 역사적으로 개봉된다. 이에 대해 한겨레 신문이 특별기획으로 다뤘다. 전문을 소개한다.
북으로 간 미군 “이북 사람처럼 살았시요” 다큐멘터리 ‘푸른 눈의 평양시민’ 김소민 기자 김명진 기자 <##IMAGE##> 60년대 동료 3인과 북한 망명한 드레즈녹의 파란만장 40년 담아 ‘특별한 선택’ 속 ‘평범한 삶’ 공감 1960년대 20대 미군 4명이 잇따라 북한으로 망명한다. 왜 그들은 배신자라는 오명을 무릅쓰고 휴전선 지뢰밭을 넘어 북녘으로 갔을까? 다큐멘터리 연작 〈천리마 축구단〉 〈어떤 나라〉로 북한을 담아온 영국인 감독 대니얼 고든(36)이 그들의 자취를 좇았다. 그의 북한 다큐 세번째 작품인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은 유일하게 여전히 북한에 살고 있는 제임스 조지프 드레즈녹(66·오른쪽 사진)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고든의 전작처럼 이 다큐멘터리도 누가 옳다 그르다 판단을 내리지 않고 특별한 삶에서 평범한 공감을 끌어낸다. 젊은 시절, 그들에게 목숨을 걸 만한 정치적 신념은 없어 보인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희망을 잃었을 뿐이었다. 키가 190㎝를 넘는 거구 드레즈녹이 대동강변에서 낚시를 한다. 그 옆에 앉은 평양 노인들이 물고기를 굽다 드레즈녹에게 술을 권한다. “좋지 않은데….” 심장이 안 좋아 술을 삼가야 하는데 드레즈녹은 유창한 북한 억양으로 중얼거리며 한 잔을 게 눈 감추듯 꺾는다. 평양 시민들은 그를 “아서 선생”이라고 부른다. 북한의 선전용 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에 그가 포로수용소 소장 ‘아서’로 나와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드레즈녹은 “내가 연기를 잘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같은 영화에 출연했는데 끝까지 연기가 서툴렀다는 미군 망명자 래리 앨런 앱셔, 제리 웨인 패리시는 병으로 숨졌다. 드레즈녹과는 개와 고양이 사이였던 찰스 로버트 젱킨스는 북한으로 납치됐던 일본인 아내를 좇아 2004년 일본으로 떠났다. <##IMAGE##>한 명쯤 싫은 녀석은 있게 마련이다. “젱킨스 그 녀석은 영화에 악당으로 나왔는데 아주 잘했어. 왜냐하면 연기할 필요도 없이 자기를 보여주면 됐거든.” 드레즈녹은 젱킨스 이야기만 나오면 꼬인다. 젱킨스가 하사관 출신이라고 으스대 드레즈녹이 주먹을 날린 적이 있다. 북한을 빠져나온 뒤 미국 정부의 처벌을 앞둔 젱킨스는 언론에 자신이 북한에서 학대당했다고 밝혔다. “내가 말을 안 들을 때마다 드레즈녹을 시켜 나를 때리게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드레즈녹은 “이런 ××”라며 열불을 낸다. 거짓말쟁이가 드레즈녹인지 젱킨스인지 고든 감독은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은 이런 국제적인 논란거리도 장기판 노인들 싸움 구경하듯 개인적인 차원에서 바라본다. 이념 문제보다 보편적 감성인 시기와 질투, 사람 사이 반목이 도드라진다. 네 명의 사정은 오십보백보였다. 드레즈녹은 어린 시절 친척 집을 전전하다 도피하듯 먹여주고 입혀주는 직업군인을 선택했다. 결혼한 뒤 안정을 찾은 듯했지만 부인은 2년 만에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며 떠나버렸다. 한국에서 그는 방탕하게 세월을 허비했다.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에 전환점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무단 외출로 군사법정에 설 처지에 놓이자 드레즈녹은 무작정 휴전선을 넘었다. 드레즈녹을 알던 미국 친구들은 모두 그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드레즈녹의 답변은 이렇다. “배운 것도 없는 내가 미국에 남았다면 하루벌이 노동으로 겨우 살며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지도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제 아들은 여기서 대학을 다니고 나중에 외교관이 되겠대요.” ‘고난의 행군’ 기간에도 드레즈녹에게는 꼬박꼬박 나왔던 양식, 취미인 낚시와 볼링, 아이들의 장래…. 드레즈녹이 자신의 선택을 긍정하는 평범한 이유들이다.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에서 23일 개봉.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진진 제공 -------------------------------------------------------------------------------- ‘북한 다큐 3부작’ 만든 대니얼 고든 감독 <##IMAGE##>영국 감독 대니얼 고든(36·사진)의 북한 다큐멘터리 3부작은 축구에서 시작됐다. 그는 아홉살 때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꺾으며 8강 신화를 만들어냈던 북한 축구대표팀의 활약상을 비디오로 접한 후 어른이 된 뒤 그 선수들을 직접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2001년 북한에 들어가 첫 다큐 〈천리마 축구단〉을 만들었다. 이 작품을 찍다 집단체조하는 소녀들의 일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어떤 나라〉로 나왔고, 망명한 미군들에 대해 듣게 되면서 기획 6년 만에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을 내놨다. “미군이 거기 살고 있다니 믿기 힘든 이야기였어요. 북한에선 뭘 하건 시간이 필요해요. 신뢰를 쌓아야 하거든요. 겨우 취재 허가를 얻었는데 찰스 로버트 젱킨스가 일본으로 떠난 뒤 촬영을 거부하는 바람에 고생했어요.” 망명자 4명을 모두 담으려던 계획을 바꿔 제임스 조지프 드레즈녹을 주인공 삼았다. “드레즈녹도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란 걸 알고 적극적이었어요. 미국 고향 사진을 보여주니 더 솔직해지더라고요, 몸은 크지만 아이같이 연약한 면이 있었죠. 6~8주 정도 촬영하며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친해졌죠.” 그는 20여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처음엔 누구나 비슷한 인상을 받아요. 여기저기 찬양글이며 회색 도시…. 그런데 같은 거리를 50번씩 지나다 보면 식당이며 술집이며 사람들의 일상이 보이죠. 그러면 동의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는 있게 돼요.” 〈어떤 나라〉의 주인공인 소녀들이나 드레즈녹은 ‘위대한 수령님’을 말끝에 붙인다. “교회 주일학교 다니는 아이들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저는 소녀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보다 고무줄놀이 하는 게 더 놀라웠어요. 북한 하면 보통 전체주의적인 이미지만 떠올리는데 평범한 삶이 있으니까요.” 그가 북한의 신뢰를 얻은 비법은 뭘까?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르지 않으면 돼요. 같은 편이란 걸 알려주고 개인적으로 친해지는 거예요. 북한 영화사 사람들이 이번에도 자료도 찾아주고…. 북한에 갈 때마다 제 영웅인 축구 선수들과 식사하는 게 무척 즐거워요.” 그는 “지금은 우간다의 육상선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며 “다루고 싶은 소재가 생기면 북한에서 다시 작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 김소민 기자,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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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제임스 드레스녹은 진짜 미국보다는 북한에서 오래오래 사는것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을 해봐라~ 만약에 제임스 드레스녹이 미국에서 살았더라면 두아들은 중학교도 겨우 졸업하고 막나가는 날라리로 살았으니까! 북한은 제임스 드레스녹을 진정으로 인간으로 우대했으니 얼마나 보기좋은 나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