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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진보정권 창출한 <과테말라>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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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7-11-19 12:54 조회3,4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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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영 박사는 이번에 <과테말라>에 대한 역사를 특별기고로 보내왔다. 남미의 나라, 과테말라의 역사도 제국주의자들의
희생물이었다. 지난 11월 4일 과테말라 독립(1839)이후 66년만에 최초로 민선에 의한 진보성향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스페인 등 유럽지역의 제국주의 나라들에게 시달리던 과테말라가 1954년 민선 대통령이 미국에 의한 군부쿠테타로
친미사대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또다시 비극이 시작된 나라였다. 이제 3수만에 당선된 진보세력인 알바로 콜롬 대통령이
정치지형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태영 박사의 특별기고문을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카리브에 부는 진보 바람, 과테말라 진보정권 탄생


1. 20세기의 인종말살의 현장 과테말라


<##IMAGE##> 남미를 <라틴아메리카> 라고 부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스파노아메리카> 라고도 부른다. 왜 그런가? 15세기 말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하고 처음 유럽의 식민지로 삼았을 때 부터 시작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세 나라가 유리한 호칭을 붙여 놓았기 때문이다.

영국계 침략자들은 신대륙을 무조건 <북아메리카 – 남아메리카> 라고 불렀다.
하지만 1800년대에 이르러서 불란서 게통의 지식인들은 미국의 영향권이 남북 아메리카 전역에 팽창하는것을 시기하고 반대하여 새로운 이름을 고안해 냈다. 불란서게 침략자들은 남아메리카 만은 별도로 구분하여 <라틴아메리카> 라고 부를것을 주장했다.

이에 질세라 스페인 계통의 에스파냐 지식인들은 미국과 불란서의 주장에 대하여 분개하여 맞 대항을 하면서 독자적인 호칭을 고안해 냈는데 스페인은 남아메리카를 <이스파노 아메리카> 라고 부를 것을 역설했다. 스페인은 남미를 재일 먼저 점령했고 제일 많이 식민지를 확보한것을 그들의 역사적 우선권으로 생각하고 있다.

불란서와 스페인 두 나라가 미국을 대항하여 제각기 각자가 서로 다른 목소리와 다른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불란서와 스페인 두 나라가 서로 같은 목소리를 내고 또 같은 침묵을 함께 지키면서 미국에 전적으로 동조하고 언행에 있어서 세 나라가 일치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국이 과테말라에서 벌리고 있는 <마야족 인종말살 정책> 에 대하여서는 그들이 미국에 대항하여 반대하지 않는 태도이다. 이들 두 나라는 공통된 무관심과 공통된 침묵으로 과테말라에서 미국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는 토착원주민 인종말살정책에 대하여서는 어느 나라 이던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그저 서로 침묵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국과 쏘련이 대립하던 냉전시기의 절정기인 1960년대에 있어서 과테말라에서는 < 좌익 뿌리뽑기> 라는 명분하에서 과테말라 원주민들에대한 <마야족 뿌리뽑기작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1960년대 초부터 시작하여 1996년까지 계속된 피 비린내 나는 악몽의 34년동안에 과테말라의 토착 원주민 마야족은200,000명이 비참하게 살해 되었다. 좌익소탕작전이라는 명분으로 살해된 수는 전체 사망자 중에서 불과3%뿐이고, 97%의 사망자는 좌익 게릴라 운동과 전혀 관련이 없는 오로지 <인종말살정책> 에 의하여 토착원주민 마야족을 집단으로 살해 했다.

34년동안의 과테말라의 폭정과 분쟁을 종식 시키기 위하여 1996년에 UN의 감독하에 독일인 변호사, Christian Tomuschat와 과테말라인 변호사, Edugar Balsells 그리고 마야인 교사, Otilia Coti세 사람으로 구성된 <분쟁종식 위원회>가 발족됐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3인 위원회는 <마야족 인종말살행위>는 전적으로 미국의 책임이며, 미국의 하수인격인 반공주의적 친미 독재 정권이 저지른 역사상 최악의 범죄 행위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3인 위원회는9,200명의 생생한 목격자들을 증인으로 채택했으며, 42,000명의 사망자들이 죽음을 당하는 형장의 모습을 생생히 전헤주는 기록들을 확보한것을 보고했다. 200,000명의 사망자 중에서 단3%만이 좌익 게릴라 활동에 실제로 가담했던 사람들이였다고 UN에 보고했다.

과테말라의 비극은 1954부터 시작되었다. 민선 대통령인 Jacobo Arbenz대통령은 미국이 지원하는 군사 쿠테타에 의하여 쫓겨났다. 정권을 잡은 군정은 미국이 피송한 군사고문단의 지휘 하에서 이른바 <공산게릴라 소탕작전> 이라고 하면서 쓸만한 농토를 전부 기업매수 하여 토지를 황폐화 시켰다. 베드남전에서 미군이 사용한 작전법과 똑 같은 수법이다.

농사가 생명인 토착 원주민들은 갑짜기 실향민이 되고 말었다. 원주민들이 땅과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슬픔은 곧 학살로 이여졌다. 1980년대 초에 있어서 학살의 비극이 절정 에 이르렀을 때는 미국은 공화당의 Ronald Reagan 대통령 이 집권할 시기 이였다.

그리고 과테말라의 원주민 학살이 계속되던 1980년대에 있어서 Reagan대통령 정권은 동시 다발적으로 Nicaragua, El Salvador, Panama등 카리브 지역에 있는 모든 나라들에게 반공친미 군사독재정권을 강압적으로 세우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2003년 6월에 과테말라 고지에 있는 한 적은 마을에서 몰사한 75세대의 가족들의 해골들을 파내서 다시 안장하는 집단행사가 있었다. 그 후부터 과테말라 전역에 흩어져 있는250개의 비밀공동묘지에 파묻쳐 있는 유골들을 발굴하는 작업이 시작 되였다.

관계자들의 말에 의하면 적어도 앞으로 10년은 걸여야200,000 유골들의 발굴 작업이 어느 정도 진전이 있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 91년에 이락전쟁을 처음 시작할 때 침공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허위로 주장한 것 이외에 사담 후세인이 양민을 대량 학살 했다고 주장하면서 살인마 후세인을 타도하기 위하여 이락 전쟁을 한다고 변론을 했다.

그러면서 미국 CIA는 후세인이 쿠르드족을 대량 학살한 증거로 땅속에 묻혀 있는 해골 수백을 파내고 이것을 전세계에 선전하면서 소동을 부렸다.하지만 오늘 미국은 과테말라에서 10년동안 발굴해도 끝을 모를 200,000의 마야족의 유골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2. 비극의 나라 과테말라



유럽인들이 침략하고 정복하기 전에 과테말라 땅에는 마야족을 비롯한 여러 부족들이 고대문명 역사속에서 평화롭게 오래오래 살고 있었다.

하지만 1524년에 스페인 침략의 선봉자 Pedro De Alvarado에 의하여 과테말라는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고 말었다. 315년 동안 과테말라는 스페인 정부의 식민통치하에 있다가 현지에서 출생한2세,3세,4세 후손들이 본국 스페인정부의 가혹한 식민통치에 견디다 못해 항거하고 반항하여 1839년에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드디어 과테말라의 독립을 쟁취했다.

독립을 쟁취했지만 과테말라에 또다시 새로운 봉건주의적 독재정권이 등장하여 험난한 역사는 끊임 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1898 - 1920년에 독재자 Cabrera가 통치 했고, 1931년에는 Castaneda 장군이 집권하면서 무서운 군사독재 정권이 1943년까지 계속 되고 있었다.

독립을 하든 말든 그것은 백인 지배자들끼리 하는 이야기 이지 토착원주민들에게
는 독립이라는 말은 하나의 그림의 떡이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독립된 나라에서 원주민에대한 정책은 오히려 더 엄하고 가혹해 질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과테말라에서 마야족 원주민에 대한 무서운 학살은 독립전이 아니라 오히려 독립 후에 있었다.

역사의 어두운 쥐구멍에도 햇빛이 드는 날이 있었던가?

1944년에 과테말라 에는 <창세역사>이래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낯선 단어들이 등장하여 새로운 말이 들여 오기 시작했다.

“민중 혁명”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의 좌경화운동” “자유민주주의단체연합체”
“가난한 빈곤층 근로대중 해방”
그들에게는 들어보지 못한 낯선 말들 이였다.

도대체 이런 낯선 단어들은 과테말라 역사 이래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순진
하고 평생 눌려만 살던 토속적인 민중들에게는 신기하고 어리둥절 할 뿐 이였다.

1944년10월에 Juan Arevalo가 이끄는 좌경 학생들과 사회적으로 의식화된 지식인들이 이끄는사회주의 혁명운동이 일단 성공하였다. 무서운 독재자 Castaneda 장군은 혁명세력에 의하여 권좌에서 축출되고 끝이 보이지 않던 암흑의 시대는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하여 1945년 - 1951년에Juan Arevalo가 대통령이 되여 역사 이래 처음으로 과테말라에 민주주의 정부를 창설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1951년 - 1954년에 Jacobo Guzman 대통령이 집권 했다. Jacobo Guzman대통령은 과테말라에 진보적 민주주의 나라와 만민 평등의 나라를 건설하여 노동자 농민들을 노예와 착취로부터 해방시키는 새 나라를 건설한다고 선포했다. 과테말라에 거대한 역사적 큰 발걸음을 내 딛기 시작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과테말라가 시작한 거대한 발걸음은 하나의 허무한 꿈으로 살아지고 말았다.

미국이 동남 북 아시아에서 모든 나라들을 친미사대주의적 예속 국가로 만들고 있던 그 때에 카리브의 적은 나라 과테말라에서 사회주의적 자유민주주의 나라가 등장 하는것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미국은 드디어 1954년에 Calos Armas육군 대령을 등장시켜 쿠테타를 일으켰다.쿠테타에 성공한 군사정권은 과테말라의 좌경 사회주의자 Jacobo Guzman 대통령을 축출하고 그를 Mexico로 망명을 시켜 돌아 오지 못하도록 처리 했다. 그리고 미국은 쿠테타를 일으켜서 군사 독재정권을 세워 놓은 후 뒤에서 계속적으 로 관리하고 지원을 해 줌으로 과테말라 군사독재정권은 끄떡 없이 34년을 계속할 수 있도록 했다.

쿠테타를 일으킨 Calos Armas 대령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7년동앙 무서운 독재를 하면서 추방과 학살로 과테말라를 피로 물들게 했다.

그의 후임으로 1982 - 1985년에 역사상 최악의 살인마 Rios Montt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 두 대통령이 집권하는기간에 그 무시무시 한 살인 행각이 계속 되었는데 이른바 좌익 분자5,000명을 살해했고, 무죄한 마야족 인디언 200,000명을 살해 했다.

1977년에 미국은 국제 여론때문에 체면상 과테말라 군부에대한 군사원조를 일부 삭감하는 연극을 연출하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에 군부독재가 물러나지는 않았다.

역시 미국의 체면 때문에 군인 독재자들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1986년부터는 형식적인 민주선거를 통한 우익 독재정권을 창출하는 방법을 통하여 미국은 계속
하여 과테말라를 지배 통치 했다.

세계 여론으로 인하여 사면초과에 이르게 된 과테말라 정권은 1996년12월에 Alvado Irigoyen 대통령이 UN의 승인과 미국의 동의를 얻어 UN의 감시하에 과테말라의 내란을 종식시키는 평화조약(Peace Agreement)에 서명했다.

UN은 3인의 <분쟁종식 위원회>를 임명하여 과테말라의 인종말살 현황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UN에 보고 하도록 했다. 이 보고서는5,000명의 좌익분자 학살과 200,000명의 인종말살정책으로 인한 사망을 확인하여 UN에 보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의 Clinton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이 군사독재정권을 지원한데 대한 공식 사과를 했다. 하지만 Clinton 대통령의 사과는 정치적 수단의 말 뿐이고 우익 보수 정권의 횡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2003년에 이르러서 과테말라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저마다 과거에 군사독재 정권이 저지른 과오에 대하여 사죄하는 발언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우익 후보자들의 사죄 발언들은 가소롭고 비겁할 뿐 진실은 없었다.

더욱 가소로운 것은 양민 학살의 장본인 Rios Montt 전대통령이 재출마 한것이다.
쿠테타에 관여한 범죄자는 공직에 출마를 금지 하는 과테말라 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출마를 하였다. 결과는 보기 좋게 낙선 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과테말라 민중이 이제는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 나라 국민들의 사회의식이 성숙해 지고 있었다.

2003년 선거는 제1차 투표에서 아무도 과반수를 얻지 못 하고 제2차투표에서
우익 후보자 Oscar Berger와 중도 좌파 후보자Alvaro Colom이 대결하였으나
아쉽게도 중도 죄파 후보자 Colom이 낙선 되었다.

<독립 이후 최초 민선 대통령 당선>



<##IMAGE##>하지만 2007년11월 4일에 시행된 과테말라 대통령 선거에서는 “희망전국연대”의 중도 좌파 후보자 Alvaro Colom이 52.7%의 득표를 얻었다. 과테말라 독립(1839)이후 최초로 민선에 의한 대통령이 되었다.

낙선을 한 보수주의 우파 후보자Gen. Otto Perez는 막강한 권력과 경력을 과시하는 전육군 장성 정보부장 이다. 하지만 진보적 좌파 후보자에게 패배했다.

Colom 당선자는 2008년1월 14일에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취임식을 하게된다. 그는 카리브지역에서 Nicaragua의Daniel Ortega 대통령의 뒤를 이어 두번째로 좌파 대통령이 된다. 그리고 Colom 당선자는 남미 나라들 중에서10번째 좌파 정권의 대통령이 된다.

Colom 당선자는 당선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선거공약에 이미 발표한 말 그대로 전체 인구1,300만명의 절반 이상이 하루 소득 $2가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 하여 농민과 노동자 근로대중의 빈곤퇴치를 제일 과업을 삼겠다고 힘 주어 말 했다.

그는 남미에 이미 불어 닥치고 있는 반미 좌파정권들과 유대를 강화하고 연대하여 남미 공동의 주권을 회복하는데 힘쓰겠다고 언명했다. 그는 또 과테말라는 남미에서 범죄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서 1년에 평균5,000명이 살인사건으로 사망하는 현실을 감안하여 사회안전책을 제일의 정책으로 삼을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과테말라의 중도 좌파 Colom 후보자의 당선과 그의 당선 소감을 듣노라면 웬지 마음이 설레이면서 다가오는 한국선거를 떠올린다. 말도 안 되는 후보자들이 여론조사 선두를 달린다는 웃기는 선거 판이 목하 진행 중이다. 더운 날의 소나기 처럼 우리를 일깨워 줄 12월을 생각하게 한다.

3. 과테말라의 수수께끼



과테말라의 인구는 1천2백70만 명이다. 인구의 90%이상이 천주교와기독교인 이라고 한다. 미국의 해외 선교사 수는 45,000명인데 이 많은 선교사 대부분이 남미에 파송 되었다. 이들 중 상당수의 신구교 선교사들이 과테말라에서 60년, 80년 대에 걸쳐서 선교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과테말러에서5,000명의 좌경화된 사람들을 비인도적으로 학살 하고 또 아무 죄가 없는 200,000명 인디언 원주민들을 집단으로 학살한데 대하여 그 많은 선교사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많은 책들과 보고 문서를 통하여 밝혀진 바에 의하면 미국 CIA와 선교사들은 남미의 “경제개발과 반공주의”에 있어서 거의 전적으로 밀접하게 동조했다고 폭로했다.

"CIA도 교회는 간다. 하지만 기도하려 가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이 있는 데 이 말은 CIA와 교회의 관계를 잘 설명 해 준다. 미국인 존D.마이크스가 쓴 책에 의하면 CIA 요원들이 비밀공작을 하기 위해서는 닥치는대로 목사이던 신부이던 또는 승려나 수녀라도 필요하면 가리지 않고 이용하고 활용했다고 고백했다.

그가 회견한 사람들 중에서 50% 이상이 CIA와 교회가 비밀로 관련 된 사건들을 직접 보고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또 미국의 CIA 요원이 선교사들의 활동을 감시하고 활용하기 위하여 자신이 <매리놀회>의 신학교에 직접 입학하여 학생의 신분으로 과테말라에 가서 비밀로 선교사들과 함께 활동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과거 냉전 시대에 있어서 남미에서 행동하는 CIA의 모든 불법적인 공작을 시인했다. 미국은 자국의 민주주의 를 수호하기 위해서 타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극히 모순된 나라 이다.

그렇다면 colom 당선자가 앞으로 수행해야 할 과업은 수수개끼 아닌가? 사실 지난 2007년의 과테말라 대선은 사회 안전을 완전히 망가쳤다. 이번 선거 기간에 각 정당들의 무질서한 분쟁으로 인하여 50명이 사망했고, Colom 당선자가 속한 “희망의당”의 당원이 지난 2년 동안에 20명이나 죽었다. 선거 기간동안 치안을 위하여 30,000 경찰과 군인이 동원 되었다.

마약과 깽으로 지난 1년에5,000명이 사망했다. 총 인구의 절반이 되는 700만 명이 하루 수입 $2로 겨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 현상이 있다.
과테말라의 소수의 부자들은 자가용 비행기를 소유하고 있다. 그들은 물론 전부 백인들이며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기업가들 이다. 우익이 아닌 정당은 오레 생존하지 못하고 생겼다가 없어지고 만다.

1985년후 오늘까지 30개 정당이 생겼다 없어 졌다. “민주주의” 혹은 “민족주의” 등 의 명칭을 가진 정당은 오래 가지 못했다. 왜 그런가 ? 뒤에는 미국이 있기때문이다.

노벨 평화상을 탄 인디언 출신 과테말라 여성 지도자가 대통령 후보자로 나서면 3%의 득표율을 받는것이 과테말라의 오늘의 현실이기도하다.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기득권 친미 지배계급에 속하는 과테말라사람들은 Colom 당선자를 달가와 하지 않는다. 영국계든, 불란서계든 스페인계든 관계 없이 Colom 당선자에게는 모두가 힘 버거운 존재들이다.

그래서 Colom 당선자가 <나는 좌파가 아니고 중도 좌파다> 라고 말해 왔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어쨌던 그는 <이스파노아메리카> 에서 10번째 민중을 우선으로 하는 정권을 창 설해 그 방향으로 나갈 것만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투쟁의 힘과 신념은 바로 그의 종교이며 그의 신앙이다.

4. 과테말라의 역사적 교훈


2007년3월 26일에 과테말라에서는 놀라운 역사적 광경이 벌어졌다.<이스파노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 중에서 24개 나라의 토착 원주민 대표들이 함께 모인 큰 대회가 있었다. 수천명의 대표자들이 과테말라에 모여서 장장 2주일간 대회를 진행했다.

놀라운 것은 이 대회의 성격이다. 이대회는 예사로운 토속원주민들 간의 친목과 단합만을위한 대회가 아니였다. 이 대회의 성격은 미래 지향적인 남미원주민 전체가 결합하고 연합하는 대회로써 기본적으로 확실한 <정치적 대회> 이였다.

그리고 이 대회가 하필이면 과테말라에서 원주민을 대량학살한 극악의 독재정권을 물리치고 좌파 후보자 Colom이55%의 득표로 당선된것을 축하하는 2007년에 과테말라 땅에서 남미원주민들의 중요한 정치적 성격의 대회였다.

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대회를 시작하는 개회식 진행 광경이였다. 얼마전에 미국의 부쉬 대통령이 남미 순방 길에서 과테말라를 잠간 통과하여 지나 갔는데, 이 대회에서는 부쉬가 과테말라를 통과해 지나가면서 길에 떨어 뜨리고 간 “더러운 부정” (bad spirits)을 깨끗하게 정화시킨 후 에야 비로소 인디언들의
중대한 대회를 시작 한다는것 이였다.

그리하여 과테말라의 마야부족 종교의 사제가 집례하는 “정화예식”을 마야부족의 성산인Iximche 산에서 아침에 솟아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엄숙하게 진행했다.

반미감정에 사무친 원주민들의 원한을 잘 표현한 의미심장한 “정화예식” 이였다. 남미 원주민들의 과테말라대회는 이런 분이기속에서 진행 되였다.

회의 진행은6개 분과로 나누어서 론의를 진행했는데 분과토의 마다 남미 원주민들의 미래를 정치적 힘을 육성 함으로 타개해 나아가야 한다는데 일치했다.

놀라운 것은 이번 대회에서 볼리비아의 원주민 출신인 Evo Morales 대통령을 차기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추천한 일이다. 원주민 인디언이 남미에서 반미투쟁의 본거지중의 하나인 볼리비아에서 현직 대통령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과, 또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추천을 했다는 길이 길이 남을 역사적 사건이다.


이와 같은 정치적인 원주민들의 대회가 2007년 3월에 있었는데 과테말라에서는 또2007년 11월에 좌파 후보자인 Colom이 미국이 지원하는 막강한 상대자를 물리치고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다.

이와같은 사실을 생각헤 볼때 과테말라의 역사에 있어서 어떤 운명의 전환점을 알려주는 서광의 빛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이 서광의 빛이 말 해 주는 역사적 교훈은 무엇일까?

과테말라의 인구비레는 백인 59.4%, 원주민5개 부족 통합해서 40.6% 이다. 그런데 Colom이52.7%의 득표로 당선이 되었다. 이것은 놀랍게도 원주민들의5개 분파가 완전히 단결하여Colom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증거이다. 원주민들의 놀라운 단결의 힘이 승리를 쟁취했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과테마랄의 백인 유권자중에서 약6%가 원주민과 합세함으로써 좌파 후보자Colom이 당선되었다는 사실이다.

과테말라의 민중들은 수 세기동안 세계에서 지나치게 고립된 상태하에서 스페인의 식민 정권하에서 착취를 당했다. 19세기에 들어서서는 미국의 남미진출로 인하여 독점자본가들에게 양심이 없는 착취를 당하면서 살아 遊.

과테말라에 대하여 역사는 이렇게 말한다.

“불상한 과테말라여, 너는 하늘로부터는 너무 멀리 떨어저 있고 미국에게는 너무 가까이 있다”

하지만 과테말라는 죽지 않았다.
과테말라는 2007년11월에 역사이래 처음으로 민중의 선거혁명을 일으킴으로서 빼았겼던 행복과 자유를 다시 찾았다. 그들의 가슴에서 솟구처 오르는 분노 와 정의는 높이 치솟아 하늘로 가까히 올라갔다. 그리고 미국의 침략의 마수는 점점 멀리 멀리 떨어저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미국에게는 과테말라의 민심을 통한 정세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해야할 과제 만 남아 있을 뿐이다. 미국이 자기 비위에 거슬리는 과테말라에서 무엇이던지 거침 없이 온갖 술책을 다해오다가 마지막에는 무죄한 원주민들을 200,000명 이나 집단 살해하는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기 까지했다.

이제 과테말라는 과거의 어둡고 외곡된 오랜 역사를 “선거혁명”을 통한 민중의 힘으로 주체적으로 과감하게 고쳐 나아 가고 있다.

그렇다. 진실과 정의, 민족의 권리와 인간의 존엄, 오직 이 힘만이 군사대국 미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싸워야 할 과테말라의 최강의 보루이다. 이것이 과테말라 현주소로부터 얻을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이 아닐까. (끝.)

2007년 11월19일

[필자는 은퇴목사로서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상임고문, 범민련 재미본부 고문이며 현재 6.15실천 미국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재미통일운동 원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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