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총련 고향방문단 서울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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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1-04-17 00:00 조회1,47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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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총련동포고향방문단 서울 도착
21세기 첫해에 실현된 혈육들과의 상봉
7일부터 3박 4일로 고향방문의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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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7일발 강태성, 강종석기자) 2시간 남짓한 길이였다. 제3차 총련동포고향방문단 성원들은 6일 나리따공항과 간싸이공항의 두조로 나뉘여 인천공항에 각각 도착하였다. 동일본지방 성원들은 《대한》항공 706편, 서일본지방 성원들은 《대한》항공 722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합류하였다.
교직동중앙 채홍열단장을 비롯한 총련동포고향방문단 성원들은 남측 관계자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으며 12시 40분 도착로비에서 그리운 가족친척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였다. 손에손에 꽃다발과 이름을 써붙인 종이판을 들고 로비에 모여 든 가족친척들은 방문단이 들어 서자 《오빠!》, 《삼촌!》이라고 목메여 부르며 서로 얼싸 안고 기쁨과 감격을 나누었다.
21세기 첫해에 실현된 총련동포들의 고향방문. 비록 3차라는 이름은 붙었어도 모두 해방을 전후하여 50∼60년만에 고향을 찾은 동포들이고 6.15공동선언의 발표이후 이제나저제나 고향방문의 날을 기다리던 동포들이였기에 그 감격과 기쁨은 한량없이 컸다.
30여년동안 생사를 모르던 형제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한 동포, 열명을 넘는 일가친척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은 동포, 세월을 거슬러 서로 어릴적의 모습을 찾으려 어리둥절하는 동포. 참으로 방문단 성원들의 고향방문 첫날은 총비서가 안겨 준 극진한 사랑과 배려를 눈물과 감격으로 되새기는 잊지 못할 하루가 되였다.
52년만에 동생들을 만난 차두이동포녀성(혹까이도 도마꼬마이시)의 감흥은 한결 컸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날이 바로 친정아버지의 제사날이였던것이다.
《해방직후에 시집을 가고 얼마없이 아버지께서 돌아 가셨습니다. 그후 일본에 건너 가 아버지의 제사에 가 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뜻밖에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게 되였습니다. 정말 꿈만 같습니다. 통일 위해 싸우다 17년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고향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신분들의 생각을 하니 오늘의 방문이 기쁘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합니다.》
이날 경상북도 대구에서 큰아버지인 신영만동포(이바라기현 거주)를 마중하러 왔다는 신상경씨(41살)는 너무 좋아서 며칠동안 잠도 못이루었다고 하면서 《대구에는 사촌만 해도 21명이 기다리고 있지요. 모두 환영준비를 해서 기다립니다.》고 기쁨을 토로하였다.
또한 이날 저녁에는 제3차 총련동포고향방문단을 환영하는 만찬회가 쉐라톤 워커 힐호텔에서 《대한적십자사》의 주최로 진행되였다.
연회에서는 《대한적십자사》 서영훈총재가 환영사를 하였으며 고향방문단 채홍열단장이 답사를 하였다.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위하여, 6.15남북공동선언의 조속한 리행을 위하여 축배를 올린 참가자들은 민족의 뜻을 모아 통일을 앞당길 결의를 서로 확인하였다.
방문단 성원들은 7일부터 3박 4일의 일정으로 고향방문의 길에 올랐다.[ 조선신보 01 / 4 / 9 ]
21세기 첫해에 실현된 혈육들과의 상봉
7일부터 3박 4일로 고향방문의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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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7일발 강태성, 강종석기자) 2시간 남짓한 길이였다. 제3차 총련동포고향방문단 성원들은 6일 나리따공항과 간싸이공항의 두조로 나뉘여 인천공항에 각각 도착하였다. 동일본지방 성원들은 《대한》항공 706편, 서일본지방 성원들은 《대한》항공 722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합류하였다.
교직동중앙 채홍열단장을 비롯한 총련동포고향방문단 성원들은 남측 관계자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으며 12시 40분 도착로비에서 그리운 가족친척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였다. 손에손에 꽃다발과 이름을 써붙인 종이판을 들고 로비에 모여 든 가족친척들은 방문단이 들어 서자 《오빠!》, 《삼촌!》이라고 목메여 부르며 서로 얼싸 안고 기쁨과 감격을 나누었다.
21세기 첫해에 실현된 총련동포들의 고향방문. 비록 3차라는 이름은 붙었어도 모두 해방을 전후하여 50∼60년만에 고향을 찾은 동포들이고 6.15공동선언의 발표이후 이제나저제나 고향방문의 날을 기다리던 동포들이였기에 그 감격과 기쁨은 한량없이 컸다.
30여년동안 생사를 모르던 형제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한 동포, 열명을 넘는 일가친척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은 동포, 세월을 거슬러 서로 어릴적의 모습을 찾으려 어리둥절하는 동포. 참으로 방문단 성원들의 고향방문 첫날은 총비서가 안겨 준 극진한 사랑과 배려를 눈물과 감격으로 되새기는 잊지 못할 하루가 되였다.
52년만에 동생들을 만난 차두이동포녀성(혹까이도 도마꼬마이시)의 감흥은 한결 컸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날이 바로 친정아버지의 제사날이였던것이다.
《해방직후에 시집을 가고 얼마없이 아버지께서 돌아 가셨습니다. 그후 일본에 건너 가 아버지의 제사에 가 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뜻밖에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게 되였습니다. 정말 꿈만 같습니다. 통일 위해 싸우다 17년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고향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신분들의 생각을 하니 오늘의 방문이 기쁘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합니다.》
이날 경상북도 대구에서 큰아버지인 신영만동포(이바라기현 거주)를 마중하러 왔다는 신상경씨(41살)는 너무 좋아서 며칠동안 잠도 못이루었다고 하면서 《대구에는 사촌만 해도 21명이 기다리고 있지요. 모두 환영준비를 해서 기다립니다.》고 기쁨을 토로하였다.
또한 이날 저녁에는 제3차 총련동포고향방문단을 환영하는 만찬회가 쉐라톤 워커 힐호텔에서 《대한적십자사》의 주최로 진행되였다.
연회에서는 《대한적십자사》 서영훈총재가 환영사를 하였으며 고향방문단 채홍열단장이 답사를 하였다.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위하여, 6.15남북공동선언의 조속한 리행을 위하여 축배를 올린 참가자들은 민족의 뜻을 모아 통일을 앞당길 결의를 서로 확인하였다.
방문단 성원들은 7일부터 3박 4일의 일정으로 고향방문의 길에 올랐다.[ 조선신보 01 / 4 /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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