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대군 추모식"참석 강민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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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1-05-01 00:00 조회2,63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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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날만 되면 분노를 참을 수 없었죠. 그러나 오늘만은 웃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직 경대를 기억하고 있으니….”
26일 명지대 서울캠퍼스에서 만난 강민조(59)씨는 비감어린 눈으로 교정을 둘러봤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경대 아버님"이라 부른다. 10년 전 이날 부모보다 앞서 먼 길을 떠난 아들의 이름으로 또다른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강경대. 1991년 4월26일, 명지대 1학년생으로 학교 앞 시위 도중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숨졌다. 그의 죽음에 격분해 그로부터 한달 동안 10명의 대학생, 고등학생, 노동자들이 분신하거나 시위 도중 숨졌다.
“경대가 죽은 날,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찾아와 `50억원까지 줄 수 있으니 빨리 화장하라"고 말했던 국회의원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신들은 자식을 돈으로 사고파는 사람들이냐"며 돌려보냈지만, 그 때 생각만 하면 피가 거꾸로 치솟습니다.” 1남1녀를 둔 평범한 가장이었던 강씨는 그 뒤 몇 달을 거리에서 살았다. 감옥까지 다녀오며, 아들이 추구했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10년의 세월을 바쳤다.
`강경대 열사 10주기 추모사업위원회"는 이날 명지대에서 추모식을 열었다. `강경대"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며 그 해 봄을 뜨겁게 달구었던 함성이 영상다큐와 문화제에서 되살아났다.
추모제에서 강씨는 대우차 폭력진압사태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아직도 경찰이 벌건 대낮에 노동자들을 폭력진압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아들과 같은 해에 대학에 입학했던 91학번 91명의 대합창이 추모식장을 채우자, 강씨는 감격어린 박수를 보냈다. “경대는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한 제단에 돌 하나 올렸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었으니 남은 돌은 제가 짊어져야죠.” 아들의 주검을 아직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아버지의 눈가에 언뜻 물기가 비쳤다.
안수찬 기자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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