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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학생들 백악관 시위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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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1-07-16 00:00 조회1,8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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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옥, 강세나 두 학생(연세대 재학생)은 백악관 앞서 5일간 시위를 전개하고 귀국했습니다. 이 학생들이 민족통신에 보내온 투쟁일지를 소개합니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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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3일 미국 뉴욕 처치센터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저지른 양민학살을 다루는 코리아 전범재판이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남북 해외의 전민족과 세계 18개국의 양심은 미국에게 한국전쟁당시 저지른 양민학살에 유죄를 선고하였습니다.

suchoi_44184_1[3].jpg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에서는 이러한 자리에 연세대학교 인문학부 98학번 정선옥 학우를 한총련 대표의 한사람으로 파견하였습니다. 또한 이 학우와 함께 자연과학부 00학번 강세나 학우를 미국 워싱턴으로 보내어 코리아 전범재판이 끝난 직후부터 백악관 앞 시위를 전개하였습니다. 전범재판을 취재하기 위해 워싱턴에 간 오마이 뉴스 기자 등과 현지 동포분들의 도움을 받아 두명의 학우는 6월 30일부터 7월 4일까지 5일간 미국 땅에서 반미의 소리를 드높였습니다. 이번 시위는 첫째, 코리아 전법재판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것으로 드러나듯 미군이 우리나라 땅에서 저질렀던 양민학살이라는 범죄뿐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에 주둔하며 저질렀던 살인, 강도 등의 잔인한 범죄들을 알려내고 6.15공동선언 이후 통일의 분위기로 나아가고 있는 한반도에는 더 이상 주한미군이 필요없음을 똑똑히 알려내기 위한 시위였습니다. 둘째, 한미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를 경색시켰던 주된 요인인 미 부시행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한반도 뿐 아니라 세계전체의 평화를 위협하는 미국의 MD추진에 반대하는 한국의 소리를 내기 위한 시위였습니다.

정선옥 학우(인문 98)의 백악관 앞 시위 일지
2001년 6월 30일-7월 4일

첫날
6월 30일 토요일

전날 밤 도착한 세나(통일연세 이과대 00학번)와 이것저것 계획을 세우고 마음을 다지느라고 밤을 세워사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오후가 되어서야 백악관에 나갔습니다. 휴일오후라 사람이 많았습니다. 세나가 미국으로 오는 길에 사진들이 없어져버려 계획했던 사진전은 못하고, 대신 영어로 된 벽보(미리 준비해감)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세나는 미리 준비해갔던 영어로 된 유인물(제목: VOICE OF KOREA)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시위 첫날이라 그런지 좀 긴장이 되었는데 백악관 앞에서 20년째 핵반대 노숙투쟁을 벌이셨다는 아주머니가 우리를 반가이 맞아 주셔서 용기가 났습니다. 이전에도 백악관 앞에 집회하러 왔었던 한국교포들을 만났었다며 우리의 시위에 많은 관심을 보이셨는데 "양민학살, 통일"에 대해 많이 알고 계셔서 놀라웠습니다.
시위만 하면 나타자곤 하는 경찰들이 오지 않을까 긴장하던 도중 드디어 미국경찰이 와서 시위에 관한 법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의 시위가 미국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합법적인 것임을 확인시켜주는 순간이었습니다. 미국 경찰은 면티복장에 자전거를 타고 있어서 그런지 위협적인 느낌은 적었고 우리나라 경찰에 비해 다소 친절하고 법도 잘지키는 듯(?) 보였습니다.(일단 첫인상)
비가 오는 바람에 오랜 시간 시위를 하지는 못했고 아까 그 아주머니가 우산을 빌려주셔서 우리는 보답으로 밥을 사드렸습니다. 백악관 앞을 지나는 많은 관광객들이 벽보에 관심을 가져주고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여 우리는 다음날 시위를 더 잘 할 수 있을 자신감을 얻었고 더 열심히 하기로 다짐을 하였습니다.

둘째날
7월 1일 일요일
미국에 사시는 한국 교포분들이 우리들이 잘 곳을 마련해주셨습니다. 그 집에서 우리는 시위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피켓을 만들고 공항에서 잃어버려 속상했던 사진들(사진전 용)도 다운받고 설명을 영작하였습니다. 그곳에서 활동하시는 동포분들이 시위를 하실때 쓰는 피켓도 몇 개 얻었습니다.
코리아 전범재판을 취재하기 위해 함께 오신 오마이 뉴스 기자분들과 KBS 기자 분들, 그리고 민족 21기자 분들도 우리의 시위를 지지하신다며 함께 하시기로 하였습니다. 주로 취재를 해주시기는 했지만..
우리는 예전에 말지에 나왔었던 양민학살 사진과 사진에 관한 설명, 그리고 만들어간 벽보를 앞뒤에 붙여 샌드위치 선전물을 만들었습니다.
한명은 이것을 몸에 걸고 피켓은 양손으로 높이 든 채 백악관 앞 거리를 걸어다니며 시위를 하였습니다. 참고로 벽보를 붙이려고 가져갔었지만 벽보를 붙이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기에 그냥 나누어 주거나 몸이 부착하고 다니기로 하였습니다.
나머지 한사람은 유인물을 나눠주고 도움 주러온 다른 학교 친구들이 현수막 (MD추진, 대북강졍정책 중단하라! 양민학살 미군범죄 주한미군 철수!가 영어로 적혀있는 현수박)을 들고 피켓들을 들었습니다.
다른 교포분들도 우리와 함께 시위를 하셨고 필요할 때 통역을 도와주셨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들은 "당신들 혹시 북한에서 왔습니까?"와 "MD가 뭐냐" 였습니다. 참으로 황당하였습니다. MD를 모르다니.. 미국인들이 얼만큼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지를 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알고 있거나 대부분 들어는 봤을 MD에 대해, 설명을 해도(설명이 부족했을까요?) 대부분 처음 듣는다는 듯한 반응이고 심지어 자신들의 정부가 그런 짓을 저지르지는 않을 거라는 듯이 "그럴리 없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한다" 라고들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남한을 지켜주지 않느냐, 우리가 아니었으면 남한은 공산주의가 되었을 거다" 라고 이야기하는 미국인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은 우리가 결정한다, 제발 우리나라 일에 간섭하지 말라" 라고 제대로 이야기해주고 싶었느나 영어가 부족한게 안타깝고 화가 났답니다.

셋째날
7월 2일 월요일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려고 일찍 일어나 백악관 앞에 나갔으나 역시나 관광객이 훨씬 많았습니다. 시위는 전날과 같은 형식으로 진행하였습니다. 백악관 주변을 경호하는 사람들이 이것저것 묻고 지나갔습니다. 시위를 하면서 분명히 느껴지는 것은 백인들보다 유색인종들이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백인들은 절반이상이 "No, thanks."라며 유인물을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흑인들 중 많은 이들이 우리를 격려해주고 갔고 푸에토리코의 비에케스 문제(미군 폭격장)를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여기 교포 분들에게 듣기로 흑인들이 미국에서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고 했는데 이곳에 온지 얼마안된 제가 보기에도 궂은 일들은 흑인들이 더 많이 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이 날 오후엔 대통령 직무실이 보이는 백악관 뒤편에서 시위를 했습니다.
피켓을 계속 들고 있으려니 몸이 매우 피곤했으나 우리에게 많은 힘을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국인들의 여러 질문들에 대해 확신에 찬 어조로 논쟁을 벌이는 교포아이였습니다. 아직 한국에서 이민온지 오래되지는 않은 그 아이는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나이지만 커다란 백인들의 질문에 너무도 당차게 답하고 논쟁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넷째날
7월 3일 화요일

오늘 시위는 교포분들이 바쁘셔서 함께 하기지 못했습니다. 부족한 영어실력이라 통역이 없어 좀 고생스럽고 힘이 들기는 했으나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은 투쟁일정이라 열심히 하려고 기를 쓰고 서있었습니다. 오늘따라 한국인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양민학살에 대한 우리의 설명을 듣고 다들 힘내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한국에서 시위를 할 때 격려해주시던 시민들을 만났을 때보다 미국땅에서 격려를 받으니 훨씬 더 기뻤습니다. KOREA 화이팅!

다섯째날
7월 4일 수요일
오늘은 미국의 독립기념일! 백악관 앞에 많은 관광객들과 미국 사람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좀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 잘해야 겠다는 다짐을 하며 백악관 앞으로 나갔습니다.
역시나 사람이 무지 많았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날이기에 이상한 사람들에게 봉변당하면 어쩌나 시위를 시작한 이래로 처음으로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미국 올 때 마음과 우리를 보내준 학교 사람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작했습니다.
처음의 긴장과는 달리 다른 어떤 날보다 격려해주는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났습니다.
특히 갑자기 쏟아진 비를 맞으며 시위를 할 때 어떤 한국 여행자가 따뜻한 커피를 사다주어 우리는 또다른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별한 날인 만큼 경찰이 무지 많았는데 (위협적인 경찰도 있더라구요) 법전 같이 생긴 책을 들이대며 우리가 유인물을 뿌리는 것을 막았습니다. 또한 모습이 너무나 잔혹하다며 윤금이 씨(92년 미군에 의해 자궁에 우산과 콜라병이 박힌채 돌아가심) 의 사진을 가려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바로 너희 미군이 한 짓이라며 거부하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이 사진을 가리지 않고는 시위를 계속할 수 없다고 하여 할수 없이 유인물로 사진을 가렸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시위라 끝내기가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같이 시위를 했던 교포친구와 노래부르며 즐겁게 저녁 7시까지 열심히 시위를 했습니다. 미국정부와 IMF미군문제를 공부한다는 미국인이 와서 자신들의 정부를 비판하며 우리의 투쟁을 지지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시위를 마치며 우리는 더 많은 준비를 하지 못하고 온점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또한 한편으로 미국에 의해 자행된 양민학살이 이번 코리아 전범재판을 통해 유죄를 선고받은 만큼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이 더 많이 있겠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고 그러한 일에 이번 시위를 통해 한몫 했다는 자부심도 얻을 수 있는 시위였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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