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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열사 동생 전순옥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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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1-06-29 00:00 조회1,4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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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돌아간 공장은 변한 게 없었다. 이름을 묻지 않는 것이 그랬고, 하루 12~15시간씩을 서서 버티는 것도 같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월급이 턱없기도 마찬가지였다. 70년대 한국노동운동의 새벽을 연 고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으로 최근 영국에서 박사가 되어 돌아온 순옥(46)씨가 서울의 한 의류공장에 취직해 일하고 있다. 그는 조그만 가내공장에서 10명 정도가 종일 옷을 만들어 납품하는 영세사업장의 `3번 시다"다.

0051000081200106192015p107.JPG영국 유명 대학에서 제안한 교수직도 마다한 그는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옷감을 자르고 뒤집고 다림질한다. 앉을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 30분 뿐이다.

그가 한달전 이곳에 취직한 것은 영세사업장 여성 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노동자 출신이여서인지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고 느껴야 진실한 연구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학문을 위한 학문, 통계를 위한 통계조사가 아니라 직접 현실 체험을 통해 대안을 찾는 연구를 하고 싶어요.”

청계피복노조가 만들어지자 공장주들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피할 수 있는 영세사업장들에 하청을 줘 버렸다. 더 열악해진 근로조건에선 일하려는 젊은이들도 없어 30~40대 여공들이 대부분이고, 공장 주인도 고용주라기 보다는 같은 노동자 출신들이기 일쑤였다.

이번에 취직할 때도 이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학교를 어디까지 나왔냐, 그런 거 안 물어요. 이름도 묻지않던데요, 뭐. 사실 미싱번호에 따라 자기 번호가 매겨지거든요.”

그는 노동운동을 하며 청계천과 부평공장에서 일할 때 미싱기술을 배워두지 않았던 게 새삼스레 후회스럽다. 시다 일이 너무 힘들어 부황을 뜨고 침을 맞으며 버틴다.

“그래도 이렇게 직접 일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느낌을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일하는 사람들이 일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해답"을 꼭 찾고 싶습니다.” 박민희 기자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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