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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학연구소 한호석소장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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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1-06-13 00:00 조회2,5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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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민보 이창기 발행인은 방미중 통일학연구소 한호석소장과의 대담을 갖고 그의 민족관과 민민운동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취재 보도했다. 자주민보 6월호가 게재한 내용을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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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창

[통일학연구소 한호석 소장을 만나]


광범위한 연대연합으로 통일전선을 구축하자


*글: 이창기 | 발행인


자주민보는 해외에서 우리 민족의 자존과 자긍심을 안고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해외동포들의 소식을 소개할 계획이다. 그 첫번째 인물이 통일학연구소 한호석 소장이다. -편집자-

hanhs.jpg1999년 서해교전이 발생했을 때 전국연합 기관지(‘민’)에 사건의 주모자가 미국이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밝혀 세인들의 관심을 모았고, 이북이 붕괴직전에 있다는 말들이 세간에 오르내릴 때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예리한 분석글을 써내는 등 정력적인 집필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을 5월16일 미국 뉴욕에서 만났다.

‘헛간’, ‘부엌’, ‘뒷간’ 이런 식의 푯말을 붙인 방들이 있는 아담한 사무실은 깨끗하면서도 민족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나이보다는 젊어 보이는 얼굴이지만 유난히 큰 눈에서는 부리부리한 빛이 났다.

신학을 통해 미국의 본질을 깨닫다
55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호석 소장은 서울 감리교신학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 종교학을 전공하다 더 깊게 신학을 연구하기 위해 81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중에 학문적인 관심으로 남미의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을 접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미국 레이건 정권이 남미지역의 민중들과 민족민주전선운동을 얼마나 악랄하게 탄압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 후 이와 관련된 후원단체에서 활동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미국이란 나라의 본질과 제 3세계의 현실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현실’을 알게 되면서 이제는 그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개척해야 하는지에 도전하게 된다. 83년 여름 콜롬비아대 동아시아대학에서 처음으로 이북의 책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해 6, 7, 8월 내내 항일무장투쟁사, 현대조선역사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렇게 이북의 역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대해야 하며 제 3세계 나라에서는 어떻게 해야 해방을 이룰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또한 직접 이북을 방문하여 고난의 행군을 헤쳐 가는 모습을 보고 사회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며 우리 민족의 완전한 자주와 통일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다.

90년대 들어서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면서 민족민주운동도 심각한 혼란에 빠졌다. 이남 운동진영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미국의 여러 운동단체들도 마찬가지였으며 그것은 세계적인 흐름이었다. 게다가 이북도 연속되는 자연재해와 소련과 중국과의 경제교류마저 끊기면서 심심찮게 붕괴설이 나돌았다. 사실 확인을 위해 94년 12월에 이북을 처음으로 방문하여 98년까지 매년 방문했다. 이북을 직접 방문하여 고난의 행군시기를 어떻게 돌파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힘의 원천은 바로 일심단결된 조직력이었다. 이런 단결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그것은 결국 사상의식의 문제였다. 사상의식에 바탕을 둔 강력한 힘의 분출! 그때 이북 붕괴설이 얼마나 허황된 낭설인지를 알았고 반드시 이북은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실제로 지금에 와서는 그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사상과 이론없는 운동은 시들어 버린 꽃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과학적인 인식이 없이는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다. 사상과 이론이 없는 운동은 시들어 버린 꽃병의 꽃과 같다. 무너져버린 동구권과 소련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을 더욱 절실히 하게 되었다.

“누구는 나의 글을 평론가 글이라고 하면서 너무 딱딱하다고 하는데, 엄밀한 과학성에 기초하여 글을 쓰지 않으면 주관주의에 빠지게 된다”며 한 소장은 오히려 민족민주운동세력의 정보력이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정치구호는 있지만 왜 그런 구호가 나왔는지는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스스로 분석하고 계획하는 것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1시간 투쟁을 하기 위해서는 10시간 이상을 사색해야 한다. 주어진 것만 가지고는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할 수 없다.” 한호석 소장은 자료를 찾는데 70%, 사색에 20%, 글 쓰는데 10%의 힘을 분배한다고 설명했다. 정확한 정보에 기초해 깊이 사색하지 않았던 민족민주운동은 세계 어디서나 실패했다는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이론활동을 하기 위해 분단 50년이 되는 1995년 3월에 통일학연구소를 개설했다.

지금까지 6년 동안 통일학연구소 활동을 통해 많은 발전을 이뤘다. 한반도 정세를 보는 관점에 있어서 중심을 깨닫게 된 것이 그 발전의 하나이다. 한호석 소장은 미국,이북, 이남정권, 이남의 민족민주전선, 이 한반도의 네축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정세를 변화시킨다고 밝히며 그 가운데서도 중심축은 북미관계임을 지적했다.

“이남의 자주 민주 통일 운동도 이남의 고유한 운동력만으로는 안되고 북미관계의 흐름속에서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 가야한다. 북미관계를 좌우하는 북쪽의 힘과 결합되어야 민족민주운동을 올바르게 발전시킬 수 있다.” 남북해외의 반제역량 중에 북의 반제역량이 중심이 되어 주한미군을 철거하게 될 것이라며 그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설명했다.

국가보안법 철폐문제는 남쪽 민족민주세력의 독자적인 역량으로 해결해야 할 과업이며 주한미군 철거와 국가보안법 철폐를 이루면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단계로 발전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높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할 수 있으며 연방제 통일 실현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고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일을 승리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내어 통일전선역량을 구축해야 하며 이 일이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실현되지 않고서는 6·15공동선언 실천도 불가능하다며 올해 6·15∼8·15민족통일촉진운동기간을 광범위한 연대연합을 통해 민족민주통일전선을 구축하는 기간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소장과 나눈 몇 가지 질문과 대답

―민족민주운동세력이 김대중 정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김대중 정권을 통일전선의 대상으로 볼 수는 없다. 정권과의 교류는 이북 정권에서 해야 할 일이다. 박정희 정권이나 역대 모든 이남 정권에 대해 이북은 이러한 협상교류를 해왔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 이남 민족민주세력이 무리하게 정권퇴진 구호를 들어서는 안 된다. 물론 박정희 정권이 7·4남북공동성명을 뒤집었듯이 김대중 정권이 6·15남북공동선언을 폐기할 경우에는 대대적으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정권이 한계는 있지만 지금은 6·15선언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6·15남북공동선언을 실천하도록 견인하고 공조관계를 가져야 한다.”

―‘전국연합 기관지(민)’ 4월호에서 북미관계에 의해 주한미군은 철수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남에서는 주한미군철수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인가

“주한미군 철거를 성취하는 핵심 축이 북미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김명철 씨가 앞으로 주한미군이 자신의 지위를 변경할 수밖에 없다는 지론을 폈는데 나도 동의한다. 실제 페르손 스웨덴 총리 겸 유럽연합 의장이 이북에 갔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을 2003년 제네바합의 이행 만료시기까지 연기하겠다고 못박았다. 북미간에 체결한 제네바합의만 이행되면 주한미군의 지위는 변경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최근 한총련의 목숨을 건 30일 반미 단식농성과 같은 반미투쟁에 이견을 갖는 일부 입장이 있는데, 크게 의미가 없다고 보는가

“아니다. 그런 반미 투쟁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서 한호석 소장의 ‘5단계 통일’에 대한 전망이 너무 장기적이지 않는가 하는 말이 있는데.

“통일에 대한 결정적 국면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머지 않아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다. 설령 주한미군이 철수되었다고 해서 통일이 완수되는 것은 아니다. 이남에 자주적 민주정부가 서고 그에 의해 높은 단계의 연방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10년 정도의 시간과 여러 단계를 거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김명철 씨는 결정적 국면에 대해서 주로 말을 많이 했지만 나는 그 통일을 완전하게 이루어내는 과정 전체에 대해서 연구하고 글을 썼던 것이다. 이 부분이 김명철 씨와 다른 측면이다.”

―통일전선구축을 많이 강조했는데, 구체적인 방도에 대한 의견은.

“구체적인 일은 이남의 민족민주운동권이 해결해야 될 문제이다. 나는 이남의 구체적인 상황을 잘 알 수 없고 인터넷상의 정보로 주로 판단을 한다. 다만 광범위한 연대연합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불문하고 6·15남북공동선언을 지지하는 세력이라면 그 누구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새 세기 첫 8·15행사를 남북정부당국이 공동주최하고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행사로 만들어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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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석 소장은 ●1955년 서울 출생●81년 7월 도미●95년 통일학연구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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