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rown>미주에 사는 젊은이-전진경씨</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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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1-06-13 00:00 조회1,69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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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민보 이창기 발행인은 민족통신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로스엔젤레스 그리고 이곳으로 부터 3천마일이나 떨어진 뉴욕등을 방문하면서 미주내 민족민주운동 각계 인물들을 만나 취재했다. 자주민보 6월호는 그중 몇분을 소개했다. 이번에는 <미주에 사는 젊은이들>가운데 20대의 육영빈-전진경 부부를 O아 대담한 내용이다. [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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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창]
*미주에 사는 조국의 젊은이들
조국을 알고나니
만인 앞에서 떳떳하다
*글:이창기 | 발행인
자주민보는 세계 각지에서 민족을 사랑하고 번영을 일구어 가는 동포들을 구석구석 찾아다닐 계획이다. 특히 내일의 주인인 젊은 청년들의 삶을 계속 찾아 싣고자 한다.[편집자]
미국에 사는 동포들은 그 풍요로운 물질적 혜택과 국가보안법도 없는 세상에서 그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젊은이들이 미국의 최첨단 자본주의, 개인주의 문화에 젖어 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통할 수 있을까 하는 선입견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해외에 사는 동포들이 더욱 민족의 중요성을 느낄 수 밖에 없음을 알 수있었다. 수많은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이기에, 특히 백인들의 타민족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미국에서 살기 때문에 민족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할 것이다.
조국과 민족이 당당해야 해외동포들도 당당할 수 있다. 그것을 느끼게 해준 젊은이가 바로 로스앤젤레스의 한 찻집에서 만난 교포 2세 전진경 씨이다. 이제 막 결혼한 새댁인 전진경 씨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온 관계로 우리 민족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 채 자라왔다. 우리말을 거의 모를 정도로 미국인처럼 성장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은 미국인과는 다른 한민족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조국을 직접 방문하여 여러 곳을 둘러보는 여행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전진경 씨는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여행에서는 주로 조국의 대학생들처럼 농촌봉사활동(농활)도 하고, 장기수 선생님과 정신대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도 듣고 직접 밥을 지어드리기도 했다. 서울역의 많은 실직자들에게 밥도 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전진경 씨는 민족관과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전진경 씨가 실직자 봉사활동을 했다고 하기에 조국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품을까봐 내심 걱정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전진경 씨는 오히려 잘사는 미국사람들이 불쌍하다고 했다. 우리말 표현에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전씨의 이야기 속에는 진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에 500명 넘게 실직자들에게 밥을 해주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설겆이를 다한 다음에 실직자들과 빙 둘러앉아 얘기도 하고 술도 마시며 놀았습니다. 헤어지는 시간에 실직자 한 사람이 기름이 다 떨어진 지포라이터를 선물로 주었죠, 고마움에 보답을 하고 싶은데 이것밖에 없다고 하면서 기름만 넣으면 평생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했어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거리의 실직자가 자신의 전 재산인 라이터를 받는 순간 마구 눈물이 나왔어요”
전진경 씨는 미국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골칫덩어리는 개인주의라고 했다. 미국인들은 에어리언(외계인)들이라는 것이다. 정을 나눈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부자이건 가난뱅이건 모두 고독하다는 것이다. 전씨도 인생이란 원래 고독한 것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조국의 한 실직자에게서 정을 느낀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 것이다.
“가장 인상깊었던 일은 농활이었습니다. 풀베기하고 나면 기분이 좋았어요. 땀흘리고 일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손이 갈라지고 얼굴이 까맣게 그을렸지만, 날이 저물어도 계속 일을 하고 싶었어요. 같이 여행간 친구들 그리고 농민들과 어울려 일을 하면서 서로 교감하게 되고 왁자지껄 떠들면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 정이 생겼죠. 흙도 좋아졌어요. 특히 일을 끝내고 저녁에 마을회관에 모여 농민들과 술도 마시고 얘기도 나누던 그 따뜻한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그래요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느껴보지 않으면 몰라요, 정말 몰라요.”
전진경 씨는 버스 안에서도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버스를 탔는데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가방을 끌어당기는 거예요. 나는 깜짝 놀라 ‘왜 이러죠? 왜이래요’ 했는데 가방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려주었어요,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없어요. 울고 싶었어요. 또 어떤 아저씨는 건물 위치를 물어보았더니 따라오라고 해서 건물 앞까지 데려다 주고 갔어요”
혹자는 뭐 이런 일로 눈물까지 흘리느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진실로 인간에게서 정을 느끼면 절로 눈물이 나온다는 것을, 이런 눈물을 흘려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부유해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 외에도 전남 여수의 횟집 아저씨와 여행간 미국 젊은이들이 정이 들어 그 날 횟집 문을 내리고 노래방가서 같이 놀았던 경험 등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진경 씨는 한국의 산이 너무 아름답다고 했다. 아기자기하면서도 곱고 웅장하다는 것이다. 토마토, 복숭아도 작지만 너무 맛있다고 했다. 미국의 것은 크기만 하지 맛은 이만 못하다는 것이다. 특히 나주의 배는 자신이 먹어본 세계 모든 과일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고 한다. 또 미국에서 먹어본 광어회는 다섯 점을 먹기 힘들었다. 광어가 크기는 한데 씹으면 입안에 향긋이 고이는 감칠맛이 없었다.
필자는 농촌에서 자라 너무나 당연한 경험을 했기에 우리 민족의 정겨운 공동체 문화나 산천을 가슴 저리게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 문화를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던 전진경 씨는 나에게 다시 한번 조국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자신의 뿌리를 모르고 또 사랑하지 못하면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없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존경도 받지 못합니다.”
전진경 씨의 이 말은 두고두고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끝)
[출처:자주민보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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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창기 자주민보 발행인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언론인으로서 그리고 민족시인으로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학시절에 심신문학상, 효원문학상, 임수경통일문학상 등을 수상한바있고 문학계간지 [노듯돌]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고 대학시절에 두리출판사에서 펴낸 그의 첫 시집 『바보 과대표』그리고 『10분 사랑』으로 한국의 청년학생들에게는 그의 필명인 홍치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시인은 대학시절 전대협 활동을 통해 전국 풍물패 연합 건설운동에 기여한바도 있고 졸업후에는 전대협시절 문예일꾼들과 함께 문학예술청년공동체 를 꾸리는 일을 하였고 그 기관지 『사과꽃』편집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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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구입 및 자주민보 구독 문의는 jajum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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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창]
조국을 알고나니
만인 앞에서 떳떳하다
자주민보는 세계 각지에서 민족을 사랑하고 번영을 일구어 가는 동포들을 구석구석 찾아다닐 계획이다. 특히 내일의 주인인 젊은 청년들의 삶을 계속 찾아 싣고자 한다.[편집자]

하지만 나는 해외에 사는 동포들이 더욱 민족의 중요성을 느낄 수 밖에 없음을 알 수있었다. 수많은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이기에, 특히 백인들의 타민족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미국에서 살기 때문에 민족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할 것이다.
조국과 민족이 당당해야 해외동포들도 당당할 수 있다. 그것을 느끼게 해준 젊은이가 바로 로스앤젤레스의 한 찻집에서 만난 교포 2세 전진경 씨이다. 이제 막 결혼한 새댁인 전진경 씨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온 관계로 우리 민족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 채 자라왔다. 우리말을 거의 모를 정도로 미국인처럼 성장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은 미국인과는 다른 한민족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조국을 직접 방문하여 여러 곳을 둘러보는 여행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전진경 씨는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여행에서는 주로 조국의 대학생들처럼 농촌봉사활동(농활)도 하고, 장기수 선생님과 정신대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도 듣고 직접 밥을 지어드리기도 했다. 서울역의 많은 실직자들에게 밥도 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전진경 씨는 민족관과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전진경 씨가 실직자 봉사활동을 했다고 하기에 조국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품을까봐 내심 걱정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전진경 씨는 오히려 잘사는 미국사람들이 불쌍하다고 했다. 우리말 표현에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전씨의 이야기 속에는 진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에 500명 넘게 실직자들에게 밥을 해주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설겆이를 다한 다음에 실직자들과 빙 둘러앉아 얘기도 하고 술도 마시며 놀았습니다. 헤어지는 시간에 실직자 한 사람이 기름이 다 떨어진 지포라이터를 선물로 주었죠, 고마움에 보답을 하고 싶은데 이것밖에 없다고 하면서 기름만 넣으면 평생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했어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거리의 실직자가 자신의 전 재산인 라이터를 받는 순간 마구 눈물이 나왔어요”
전진경 씨는 미국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골칫덩어리는 개인주의라고 했다. 미국인들은 에어리언(외계인)들이라는 것이다. 정을 나눈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부자이건 가난뱅이건 모두 고독하다는 것이다. 전씨도 인생이란 원래 고독한 것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조국의 한 실직자에게서 정을 느낀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 것이다.
“가장 인상깊었던 일은 농활이었습니다. 풀베기하고 나면 기분이 좋았어요. 땀흘리고 일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손이 갈라지고 얼굴이 까맣게 그을렸지만, 날이 저물어도 계속 일을 하고 싶었어요. 같이 여행간 친구들 그리고 농민들과 어울려 일을 하면서 서로 교감하게 되고 왁자지껄 떠들면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 정이 생겼죠. 흙도 좋아졌어요. 특히 일을 끝내고 저녁에 마을회관에 모여 농민들과 술도 마시고 얘기도 나누던 그 따뜻한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그래요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느껴보지 않으면 몰라요, 정말 몰라요.”
전진경 씨는 버스 안에서도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버스를 탔는데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가방을 끌어당기는 거예요. 나는 깜짝 놀라 ‘왜 이러죠? 왜이래요’ 했는데 가방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려주었어요,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없어요. 울고 싶었어요. 또 어떤 아저씨는 건물 위치를 물어보았더니 따라오라고 해서 건물 앞까지 데려다 주고 갔어요”
혹자는 뭐 이런 일로 눈물까지 흘리느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진실로 인간에게서 정을 느끼면 절로 눈물이 나온다는 것을, 이런 눈물을 흘려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부유해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 외에도 전남 여수의 횟집 아저씨와 여행간 미국 젊은이들이 정이 들어 그 날 횟집 문을 내리고 노래방가서 같이 놀았던 경험 등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진경 씨는 한국의 산이 너무 아름답다고 했다. 아기자기하면서도 곱고 웅장하다는 것이다. 토마토, 복숭아도 작지만 너무 맛있다고 했다. 미국의 것은 크기만 하지 맛은 이만 못하다는 것이다. 특히 나주의 배는 자신이 먹어본 세계 모든 과일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고 한다. 또 미국에서 먹어본 광어회는 다섯 점을 먹기 힘들었다. 광어가 크기는 한데 씹으면 입안에 향긋이 고이는 감칠맛이 없었다.
필자는 농촌에서 자라 너무나 당연한 경험을 했기에 우리 민족의 정겨운 공동체 문화나 산천을 가슴 저리게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 문화를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던 전진경 씨는 나에게 다시 한번 조국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자신의 뿌리를 모르고 또 사랑하지 못하면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없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존경도 받지 못합니다.”
전진경 씨의 이 말은 두고두고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끝)
[출처:자주민보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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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창기 자주민보 발행인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언론인으로서 그리고 민족시인으로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학시절에 심신문학상, 효원문학상, 임수경통일문학상 등을 수상한바있고 문학계간지 [노듯돌]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고 대학시절에 두리출판사에서 펴낸 그의 첫 시집 『바보 과대표』그리고 『10분 사랑』으로 한국의 청년학생들에게는 그의 필명인 홍치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시인은 대학시절 전대협 활동을 통해 전국 풍물패 연합 건설운동에 기여한바도 있고 졸업후에는 전대협시절 문예일꾼들과 함께 문학예술청년공동체 를 꾸리는 일을 하였고 그 기관지 『사과꽃』편집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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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구입 및 자주민보 구독 문의는 jajum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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