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green>강위원 5기 한총련의장 출소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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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1-08-04 00:00 조회1,41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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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7월27일 밤 11시 경주교도소 정문에는 임시 가설 행사장이 꾸려졌다. 강위원 씨의 8형제와 어머님, 권오헌 민가협 의장과 정연오 한총련학부모협의회 의장 및 오종렬 전국연합 의장과 그외 다수의 내빈이 행사장 앞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으며 전남대 국문과 학생들을 비롯한 한총련 학생 등 약 200여 명이 강위원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곽은경 대구경북양심수후원회 사무국장의 걸출한 사회로 사전집회가 진행되었다.
[사진은 출소한 강위원 5기한총련 의장과 그의 어버니]
집회 전에 만난 권오헌 민가협의장은 "무엇보다도 위원이가 나오게 되어 기쁘다. 그러나 민족민주운동진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학생지도자가 만기출소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유감이다. 하지만 오늘은 기쁜 날이고 위원이가 6·15선언 실천에서 많은 일을 할 것으로 믿는다. 그동안 아드님 때문에 마음쓰시고 고생하신 강의장 어머니께 축하와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정명기 4기 한총련 의장의 아버지인 정연오 한학협 의장은 "먼저 반갑고 환영한다. 앞으로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싸우는 우리 학생들의 출소환영식을 반복하지 않기를 빈다. 이를 위해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해서 열심히 싸우겠다"는 결의로 강위원 씨의 출소를 축하했다. 8월3일 정명기 씨 출소후에도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를 위해 싸우겠는가라고 묻자, "당연하다. 이적규정이 철회되면 내가 싸울 일이 없어질 지 모르지만 그날까지 흔들림 없이 싸우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양은찬 김양무통일애국열사의 미망인이자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공동대표는 "김양무 선생과 만나던 강위원 의장이 눈에 선해요. 그 의젓한 모습을 다시 보게 되어 기쁘고 앞으로 통일운동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라며 반가움과 기대감을 표했다.
사전행사에서 오종렬 의장은 손준혁 씨의 아버님을 떠나보내게 된 아픔과 강위원 씨 출소의 기쁨이 교차하는 착찹한 심정을 힘찬 목소리로 피력했다.
사전행사가 끝나고 12시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도소측에서는 강위원 씨를 도무지 내보내지 않았다. 알고보니 정문대신 쪽문으로 나가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에 분개한 젊은이들은 철문을 향해 육탄돌진을 시작했다. 교도대는 반대편에서 철문을 막느라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결국 교도소측에서는 1시간 넘게 버티다가 철문이 남아날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결국 강위원 씨를 내보내 주었다. 그때 호통을 치며 싸우던 한 민가협 어머니는 "이렇게 내보낼 것을 진작 내보낼 것이지" 하며 꽉 막힌 교도소측의 태도를 한마디 던졌다. 강위원 씨가 나오자 마자 풍물패의 흥겨운 반주와 한총련진군가가 우렁차게 경주의 하늘로 퍼져나갔다.
학생들이 교도소 정문에 달려들어 항의하고 있다
교도소 정문에서 진행된 환영행사에서 강위원 씨의 친형은 "그간 어머님이 "민가협활동을 하시면서 우리 위원이는 아무 잘못도 없다. 장한 아들이다고 하셨다"며 민가협에 감사드린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연단에 나온 강위원 씨의 모친은 "모다들 멀리 멀리서 이렇게 찾아주셔서 너무 너무 고맙소"라며 짧은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이어 강위원 씨가 한총련을 책임지고 있을 때 새내기였다는 최승환 현 한총련 의장이 보낸 축하의 편지가 낭독되었다. 편지에서는 "선배들이 일구어온 한총련을 잘 계승하고 있는지 부끄러움이 많다. 선배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반드시 한총련이 참된 백만청춘의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 바쳐 싸우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명기, 강위원 전 의장님들과 함께 모여 조만간 조촐한 술잔을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꽤 긴 출소인사말을 한 강위원 씨는 "한총련은 가장 간고한 탄압속에서 승리한 승리자임과 변혁운동의 저수지로서 중요한 단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였다. 또 그는 한총련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97년 당시 한총련 투쟁국장이었던 김준배 열사를 장시간 추억했다. "이제부터 강위원이는 김준배다. 신념의 강자, 한총련 전사 김준배정신으로 6·15남북공동선언 실천에 떨쳐나서겠다"는 굳은 결심에 사람들은 이내 숙연해졌다.
이어 경주 동국대 노천극장으로 장소를 옮겨 출소환영 문화의 밤 행사가 진행됐다. 동국대 일꾼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돗자리가 마당에 깔려 있었고 무대에는 조명과 음향까지 소박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이곳에서 새벽 4시 30분까지 약 2시간 가량을 흥겨운 연회행사를 가졌다.
율동패의 힘찬 공연과 풍물배의 가락도 중간중간 흥을 돋구었고 막판에는 강위원 씨의 8형제가 자녀들까지 무대로 데리고 나가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맡형은 울음석인 목소리로 "5년동안 명절만 되면 위원이가 없는 것이 가슴아파 항상 울었다. 이제 따뜻하게 저녁이라도 먹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마지막에 나온 강위원 씨는 자신이 가장 좋하했던 "청춘"이란 노래를 유려한 목소리로 뽑아대면서 축하의 밤 행사를 더욱 신명나게 만들었다. 흥이 오른 강위원 씨는 마이크를 넘겨주고 허리를 돌려대며 춤까지 추기까지 했다.
행사를 끝낸 참석자들은 8월3일 정명기 4기 한총련 의장 출소식에서 다시 보자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이창기발행인(leecg@minbo.com)
[출처:인터넷 자주민보 2001-7-28 www.minbo.com]

집회 전에 만난 권오헌 민가협의장은 "무엇보다도 위원이가 나오게 되어 기쁘다. 그러나 민족민주운동진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학생지도자가 만기출소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유감이다. 하지만 오늘은 기쁜 날이고 위원이가 6·15선언 실천에서 많은 일을 할 것으로 믿는다. 그동안 아드님 때문에 마음쓰시고 고생하신 강의장 어머니께 축하와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정명기 4기 한총련 의장의 아버지인 정연오 한학협 의장은 "먼저 반갑고 환영한다. 앞으로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싸우는 우리 학생들의 출소환영식을 반복하지 않기를 빈다. 이를 위해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해서 열심히 싸우겠다"는 결의로 강위원 씨의 출소를 축하했다. 8월3일 정명기 씨 출소후에도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를 위해 싸우겠는가라고 묻자, "당연하다. 이적규정이 철회되면 내가 싸울 일이 없어질 지 모르지만 그날까지 흔들림 없이 싸우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양은찬 김양무통일애국열사의 미망인이자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공동대표는 "김양무 선생과 만나던 강위원 의장이 눈에 선해요. 그 의젓한 모습을 다시 보게 되어 기쁘고 앞으로 통일운동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라며 반가움과 기대감을 표했다.
사전행사에서 오종렬 의장은 손준혁 씨의 아버님을 떠나보내게 된 아픔과 강위원 씨 출소의 기쁨이 교차하는 착찹한 심정을 힘찬 목소리로 피력했다.
사전행사가 끝나고 12시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도소측에서는 강위원 씨를 도무지 내보내지 않았다. 알고보니 정문대신 쪽문으로 나가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에 분개한 젊은이들은 철문을 향해 육탄돌진을 시작했다. 교도대는 반대편에서 철문을 막느라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결국 교도소측에서는 1시간 넘게 버티다가 철문이 남아날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결국 강위원 씨를 내보내 주었다. 그때 호통을 치며 싸우던 한 민가협 어머니는 "이렇게 내보낼 것을 진작 내보낼 것이지" 하며 꽉 막힌 교도소측의 태도를 한마디 던졌다. 강위원 씨가 나오자 마자 풍물패의 흥겨운 반주와 한총련진군가가 우렁차게 경주의 하늘로 퍼져나갔다.
학생들이 교도소 정문에 달려들어 항의하고 있다
교도소 정문에서 진행된 환영행사에서 강위원 씨의 친형은 "그간 어머님이 "민가협활동을 하시면서 우리 위원이는 아무 잘못도 없다. 장한 아들이다고 하셨다"며 민가협에 감사드린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연단에 나온 강위원 씨의 모친은 "모다들 멀리 멀리서 이렇게 찾아주셔서 너무 너무 고맙소"라며 짧은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이어 강위원 씨가 한총련을 책임지고 있을 때 새내기였다는 최승환 현 한총련 의장이 보낸 축하의 편지가 낭독되었다. 편지에서는 "선배들이 일구어온 한총련을 잘 계승하고 있는지 부끄러움이 많다. 선배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반드시 한총련이 참된 백만청춘의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 바쳐 싸우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명기, 강위원 전 의장님들과 함께 모여 조만간 조촐한 술잔을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꽤 긴 출소인사말을 한 강위원 씨는 "한총련은 가장 간고한 탄압속에서 승리한 승리자임과 변혁운동의 저수지로서 중요한 단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였다. 또 그는 한총련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97년 당시 한총련 투쟁국장이었던 김준배 열사를 장시간 추억했다. "이제부터 강위원이는 김준배다. 신념의 강자, 한총련 전사 김준배정신으로 6·15남북공동선언 실천에 떨쳐나서겠다"는 굳은 결심에 사람들은 이내 숙연해졌다.
이어 경주 동국대 노천극장으로 장소를 옮겨 출소환영 문화의 밤 행사가 진행됐다. 동국대 일꾼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돗자리가 마당에 깔려 있었고 무대에는 조명과 음향까지 소박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이곳에서 새벽 4시 30분까지 약 2시간 가량을 흥겨운 연회행사를 가졌다.
율동패의 힘찬 공연과 풍물배의 가락도 중간중간 흥을 돋구었고 막판에는 강위원 씨의 8형제가 자녀들까지 무대로 데리고 나가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맡형은 울음석인 목소리로 "5년동안 명절만 되면 위원이가 없는 것이 가슴아파 항상 울었다. 이제 따뜻하게 저녁이라도 먹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마지막에 나온 강위원 씨는 자신이 가장 좋하했던 "청춘"이란 노래를 유려한 목소리로 뽑아대면서 축하의 밤 행사를 더욱 신명나게 만들었다. 흥이 오른 강위원 씨는 마이크를 넘겨주고 허리를 돌려대며 춤까지 추기까지 했다.
행사를 끝낸 참석자들은 8월3일 정명기 4기 한총련 의장 출소식에서 다시 보자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이창기발행인(leecg@minbo.com)
[출처:인터넷 자주민보 2001-7-28 www.min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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