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김선명 선생이 쓴 편지 > 기타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5년 10월 6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기타

북의 김선명 선생이 쓴 편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작성일01-09-09 00:00 조회1,475회 댓글0건

본문

신념과 죽음의 대결 45년/비전향장기수 김선명이 글 발표
 (평양 9월 3일발 조선중앙통신)비전향장기수 김선명이 <신념과 죽음의 대결 45년>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였다.
 그는 글에서 철창속에서의 45년은 한마디로 신념과 죽음과의 대결의 45년이였고 혁명적신념의 승리의 45년이였다고 지적하였다.
 조선인민군 정찰부대에 복무하던 그는 1951년 10월 15일 철원근방에서 임무수행중 불행하게도 미군놈들에게 잡히게 되였다.
 미군정보기관에 끌려 갔다가 남조선륙군특무대에 넘겨 진 그는 1952년 2월경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였다.
 대구형무소에서 근 1년간 사형수생활을 하던 그는 1954년 2월 27일 <서류심사>에서 무기로 감형 받았다.
 그는 전향강요의 첫 시련은 1957년부터였으며 전향강요에 따르는 고문은 중요정치적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더욱 살기를 띠군 했다고 썼다.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의 붕괴를 기회로 놈들의 전향공작은 집요한 회유기만술책으로 넘어 갔다.
 그는 혈육을 통한 적들의 전향심리전은 참기 어려운것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의 가문은 왕의 사위나 형조판서 등 삼국시대이래 력대로 조정의 높은 벼슬에 있은 량반귀족의 세도가문이였다.
 할아버지대까지도 경기도 양평에서 3일간은 남의 땅을 밟지 않고 다닐 정도로 많은 전답을 가지고 살았다 한다.
 적들은 나의 족보에 그 어떤 기대를 걸고 공산주의에 일시적으로 현혹된 부분만 교정하면 쉽게 돌려 세울수 있으리라고 타산했던것 같다.
 그래서 사형수로부터 <서류검사>를 걸쳐 무기수로 감형시키는 회유조치도 취했고 가족친척들을 동원한 전향설복도 더욱 끈질기게 들이댔던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는 위대한 수령에 대한 절대숭배의 암반에 신념의 기둥을 굳게 세울때만이 그 어떤 천지풍파에도 드놀지 않는 불굴의 투사로,의지의강자로 될수 있다는것이 비전향장기수들의 생의 총화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자기의 가슴에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숭배심이 뿌리내리기 시작한것은 12살 잡히던 때부터였다고 지적하였다.
 서울에 갔던 아버지로부터 일본놈들과 정면대결하여 백전백승하신다는 절세의 명장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전설같은 소식은 자기의 어린 가슴을 크게 격동시켰다고 그는 썼다.
 그는 서울해방과 함께 선참으로 의용군에 입대하여 정의의 총검을 잡은것도 그분에 대한 신뢰와 경모의 발현이였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천하명장의 슬하에서 교양육성된 인민군대의 참모습에서 사랑과 믿음과 정을 주는 혈연적인 동지적단결로 험난한 조선혁명의 혈로를 열어 오신 위대한 인간이시고 위대한 동지이신 김일성장군님의 고매한 인품을 읽었다고 썼다.
 더우기 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이북에서 김일성주석님과 함께 김정일장군님께서 정사를 펴시여 조선혁명의 장래가 정말 창창해 졌다는 희소식이 감옥안으로 거듭 전해 왔을 때 자기들의 신념과 지조는 백배로 확고해 졌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태양조국의 품에 안기여 2000년 12월 6일 결혼식을 하였다고 하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45년간 지옥에서 이성을 모르던 <총각할아버지>에게 아득히 꺼져버린 청춘을 안겨주시였다고 썼다.
 그는 사상이 위대하고 인품이 위대한 민족의 령수를 맞이하였기에 귀족유산계급의 둥지를 뛰쳐 난 봉건세습의 반항아가 45년 한생을 바쳐 사회주의신념을 지킬수 있었고 행복과 영광의 단상에도 오를수 있었다고 강조하였다.(끝)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5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