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라덴의 인생과 조직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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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1-09-20 00:00 조회1,47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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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갑부의 아들이 이슬람근본주의에 빠지면서 세계 테러의 역사는 바뀌었다.”
미국 동시다발 테러의 배후로 지목받은 오사마 빈 라덴(44)은 막대한 자본력과 새로운 조직운용 방식을 앞세워 지하드(성전)란 이름으로 세계 30여개국 이상에서 광범위한 테러 활동을 벌이고 있다. 급진 이슬람근본주의자인 그는 이교도인 유대인과 이를 지원하는 미국을 중동지역에서 몰아내는 것을 목표로 자신을 추종하는 수천명의 무장요원을 교육시켜 테러에 이용하고 있다.
아프간 반군활동 영웅부상…인터넷통해테러 원격지시
◇ 인생역정=`세계 최고의 테러분자"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빈 라덴은 점잖고 수줍음을 타는 조용한 성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3억달러(3900억원)가 넘는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는 은신처에서 마른 빵과 치즈·차와 함께 세 조각으로 나눈 달걀프라이를 동료들과 나눠 먹으며 끼니를 때울 정도로 소탈한 성격으로 전해진다. 이는 그의 암울했던 어린 시절과도 연관이 있다. 사우디 최대 건설부호 무하마드 빈 라덴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의 어머니는 10번째 부인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별로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영향으로 오사마 빈 라덴은 조용하고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어린시절을 보냈다.
이슬람근본주의 운동에 푹 빠져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그에게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인생의 커다란 변환점이 됐다. 그는 수천명의 아랍 젊은이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가 반군 저항운동을 벌였고, 10여년간의 반군활동을 통해 그는 아랍세계의 `전설적인 영웅"이 됐다. 당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대대적인 반군 지원도 오늘날 오사마를 만드는 데 큰 구실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후 사우디로 돌아갔던 그는 90년 걸프전 당시 사우디가 미군의 전쟁 거점으로 이용되자 `미국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수단으로 건너갔다가 96년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그는 상속받은 3억달러의 재산과 지도력을 이용해 테러조직 알-카에다를 세계적으로 키워 나갔다.
◇ 조직운용=오사마 빈 라덴은 최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조직을 관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은신처에 컴퓨터는 물론 위성전화와 모뎀·팩스 등을 갖춰놓고 세계에 흩어져 있는 조직원들에게 단추 하나로 테러 지시를 내린다. 최근에는 인터넷 유명 음란 사이트 게시판에 사진을 띄워 놓고 그 속에 공격명령이나 지시를 암호화해 넣는 방법으로 조직원들과 연락을 취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자신의 막대한 자금을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운용하며 무기 구입과 조직 유지에 사용하고 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91년 아프리카 수단으로 건너가 이슬람근본주의 나라들로부터 대형 공공 건설공사를 수주해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또 세계 곳곳에 합법적인 투자를 통한 회사를 세워놓고 이를 조직원들에 대한 지원과 연락을 위한 거점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록 기자myzodan@hani.co.kr
미국 동시다발 테러의 배후로 지목받은 오사마 빈 라덴(44)은 막대한 자본력과 새로운 조직운용 방식을 앞세워 지하드(성전)란 이름으로 세계 30여개국 이상에서 광범위한 테러 활동을 벌이고 있다. 급진 이슬람근본주의자인 그는 이교도인 유대인과 이를 지원하는 미국을 중동지역에서 몰아내는 것을 목표로 자신을 추종하는 수천명의 무장요원을 교육시켜 테러에 이용하고 있다.
아프간 반군활동 영웅부상…인터넷통해테러 원격지시
◇ 인생역정=`세계 최고의 테러분자"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빈 라덴은 점잖고 수줍음을 타는 조용한 성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3억달러(3900억원)가 넘는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는 은신처에서 마른 빵과 치즈·차와 함께 세 조각으로 나눈 달걀프라이를 동료들과 나눠 먹으며 끼니를 때울 정도로 소탈한 성격으로 전해진다. 이는 그의 암울했던 어린 시절과도 연관이 있다. 사우디 최대 건설부호 무하마드 빈 라덴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의 어머니는 10번째 부인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별로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영향으로 오사마 빈 라덴은 조용하고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어린시절을 보냈다.
이슬람근본주의 운동에 푹 빠져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그에게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인생의 커다란 변환점이 됐다. 그는 수천명의 아랍 젊은이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가 반군 저항운동을 벌였고, 10여년간의 반군활동을 통해 그는 아랍세계의 `전설적인 영웅"이 됐다. 당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대대적인 반군 지원도 오늘날 오사마를 만드는 데 큰 구실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후 사우디로 돌아갔던 그는 90년 걸프전 당시 사우디가 미군의 전쟁 거점으로 이용되자 `미국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수단으로 건너갔다가 96년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그는 상속받은 3억달러의 재산과 지도력을 이용해 테러조직 알-카에다를 세계적으로 키워 나갔다.
◇ 조직운용=오사마 빈 라덴은 최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조직을 관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은신처에 컴퓨터는 물론 위성전화와 모뎀·팩스 등을 갖춰놓고 세계에 흩어져 있는 조직원들에게 단추 하나로 테러 지시를 내린다. 최근에는 인터넷 유명 음란 사이트 게시판에 사진을 띄워 놓고 그 속에 공격명령이나 지시를 암호화해 넣는 방법으로 조직원들과 연락을 취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자신의 막대한 자금을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운용하며 무기 구입과 조직 유지에 사용하고 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91년 아프리카 수단으로 건너가 이슬람근본주의 나라들로부터 대형 공공 건설공사를 수주해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또 세계 곳곳에 합법적인 투자를 통한 회사를 세워놓고 이를 조직원들에 대한 지원과 연락을 위한 거점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록 기자myzod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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