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 `열혈 통일시인" 장혜명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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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1-09-19 00:00 조회1,47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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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최선영기자 = 북한 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시인 장혜명씨는 문단에서 `열혈의 통일시인"으로 불린다.
조선작가동맹 기관지인 월간 `조선문학" 최근호(2001.8)는 장씨가 김일성종합대학 시절 시 `남녘의 학우들에게"를 처음 발표한 이후 `통일의 새 아침 안아오리", `옥중수기", 시초(詩抄) `추석날의 무등산"과 `눈물의 상봉" 등 통일의 `열원"(염원)을 담은 수십편의 시를 내놓았다며 이같이 소개했다.
잡지 「통일문학」의 편집국장이기도 한 장씨는 지난달 평양에서 `2001통일대축전"에 참석했던 소설가 황석영씨 등 남한 민족문학작가회의 대표단과 만나 이산의 슬픔을 담은 시 `장벽은 무너져야 한다"를 낭송해 남쪽 언론에도 소개됐다.
잡지 「통일문학」은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101호창작실(연락소)"에서 발행되며, 이 창작실은 남한과 해외동포들을 대상으로 한 문학작품을 창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량강도가 고향인 40대 초반의 장씨는 남쪽에 아무런 연고도 없지만 그의 작품에는 "남쪽 학우들의 수많은 이름이 오른 시와 남쪽 학우들을 다시 떠나보낼 때 눈물 흘리며 지은 시, 항쟁의 거리위에 더운 피를 뿌리다 숨진 청년열사들의 희생 앞에서 부른 노래 또한 많다"고 조선문학은 소개했다.
이 잡지는 장씨가 "분열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땅에서 태어난 세대로 자기 한생의 사랑이고 소원인 통일을 위해, 분열의 장벽을 허물어뜨리고저 불같은 통일열망의 붓을 높이 쳐들었다"며 이것이 그가 통일의 노래를 부른 까닭이고 연유이며 그의 시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시 `남녘의 학우들에게"는 지난 89년 2월 부산대학교 정문에 나 붙었을 정도로 남쪽에도 잘 알려져 있고 시초 `추석날의 무등산"과 `눈물의 상봉"은 북한 시단의 거장으로 지난해 8월 이산가족 방문단원으로 서울을 다녀갔던 오영재씨의 대표작 `복수자의 선언"과 나란히 할 수 있는 우수작품이라고 잡지는 평가했다.
잡지는 또 그가 시인이기에 앞서 "정의감에 불타는 열혈의 청년대학생이었고 동포애와 민족애로 불타는 양심적인 공민이며 동지들에 대한 우정과 사랑으로 심장을 태운 북남 해외학우들의 진실한 벗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에서 시인으로 활동했던 한 탈북자에 따르면 장씨는 대학 1학년때 수작으로 평가된 시초 `대성산 혁명열사릉"을 발표해 문단을 놀라게 했으며 졸업과 함께 작가로 등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씨는 지난 86년께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창작과(현재 문학대학)를 졸업하고 이 대학 교원을 거쳐 조선문학창작사(작가동맹 중앙위 전신)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최근 "101호창작실"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장씨는 또 북한 권력의 실세로 알려진 오극렬 노동당 중앙위원회 작전부장의 사위로 전해졌다.
chsy@yna.co.kr (끝)
2001/09/16 07:10 송고
조선작가동맹 기관지인 월간 `조선문학" 최근호(2001.8)는 장씨가 김일성종합대학 시절 시 `남녘의 학우들에게"를 처음 발표한 이후 `통일의 새 아침 안아오리", `옥중수기", 시초(詩抄) `추석날의 무등산"과 `눈물의 상봉" 등 통일의 `열원"(염원)을 담은 수십편의 시를 내놓았다며 이같이 소개했다.
잡지 「통일문학」의 편집국장이기도 한 장씨는 지난달 평양에서 `2001통일대축전"에 참석했던 소설가 황석영씨 등 남한 민족문학작가회의 대표단과 만나 이산의 슬픔을 담은 시 `장벽은 무너져야 한다"를 낭송해 남쪽 언론에도 소개됐다.
잡지 「통일문학」은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101호창작실(연락소)"에서 발행되며, 이 창작실은 남한과 해외동포들을 대상으로 한 문학작품을 창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량강도가 고향인 40대 초반의 장씨는 남쪽에 아무런 연고도 없지만 그의 작품에는 "남쪽 학우들의 수많은 이름이 오른 시와 남쪽 학우들을 다시 떠나보낼 때 눈물 흘리며 지은 시, 항쟁의 거리위에 더운 피를 뿌리다 숨진 청년열사들의 희생 앞에서 부른 노래 또한 많다"고 조선문학은 소개했다.
이 잡지는 장씨가 "분열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땅에서 태어난 세대로 자기 한생의 사랑이고 소원인 통일을 위해, 분열의 장벽을 허물어뜨리고저 불같은 통일열망의 붓을 높이 쳐들었다"며 이것이 그가 통일의 노래를 부른 까닭이고 연유이며 그의 시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시 `남녘의 학우들에게"는 지난 89년 2월 부산대학교 정문에 나 붙었을 정도로 남쪽에도 잘 알려져 있고 시초 `추석날의 무등산"과 `눈물의 상봉"은 북한 시단의 거장으로 지난해 8월 이산가족 방문단원으로 서울을 다녀갔던 오영재씨의 대표작 `복수자의 선언"과 나란히 할 수 있는 우수작품이라고 잡지는 평가했다.
잡지는 또 그가 시인이기에 앞서 "정의감에 불타는 열혈의 청년대학생이었고 동포애와 민족애로 불타는 양심적인 공민이며 동지들에 대한 우정과 사랑으로 심장을 태운 북남 해외학우들의 진실한 벗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에서 시인으로 활동했던 한 탈북자에 따르면 장씨는 대학 1학년때 수작으로 평가된 시초 `대성산 혁명열사릉"을 발표해 문단을 놀라게 했으며 졸업과 함께 작가로 등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씨는 지난 86년께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창작과(현재 문학대학)를 졸업하고 이 대학 교원을 거쳐 조선문학창작사(작가동맹 중앙위 전신)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최근 "101호창작실"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장씨는 또 북한 권력의 실세로 알려진 오극렬 노동당 중앙위원회 작전부장의 사위로 전해졌다.
chsy@yna.co.kr (끝)
2001/09/16 07:1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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