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뉴스,리영희교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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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1-11-08 00:00 조회1,49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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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예속상태에서 통일은 불가능"
리영희, 그의 이름은 지식인 사회에서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군사독재 시절 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었던 『전환시대의 논리』(1974)와『우상과 이성』(1977)에서부터 최근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와 『반세기의 신화』(1999)에 이르기까지 그의 날카로운 펜끝은 늘 시대의 나침반이 되었다.
▶작년 11월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처음으로 언론매체의 인터뷰에 응한 리영희선생. 예리한 논객의 면모는 여전했다.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그러나 최근 아무도 그의 동정이나 글을 접할 수 없었다.
통일뉴스 창간 1주년 기념인터뷰를 간곡히 청하여 만나본 그는 작년 11월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외부 활동을 삼가고 건강을 돌보고 있었다.
단풍 물든 수리산 자락의 그의 자택에서 이젠 73세의 노구를 돌보고 있는 당대의 지성으로부터 21세기의 화두와 우리 민족의 미래를 들어보았다.
일시 : 2001년 10월 25일 오전 10시
장소 : 산본 리영희 선생 자택
대담 : 이계환 편집국장
정리 : 김치관 기자
사진 : 송정미 기자
"세상일에 관심을 다 버리고 살아"
□이계환 : 몸도 불편하신데 말씀을 청해 죄송합니다. 작년 6월 25일자 시사저널에서 김남식 선생과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지면을 통해 뵙지 못했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리영희 : 쓰러진 지가 작년 11월부터 열한달 됐구만.
병이 한두 가진가. 뇌출혈이라고 반신불수 되는 건데 한국의학으로는 중풍이라고. 거기에다 간염있지, 제일 단박에 매일 싸워야하는 건 만성기관지염, 천식인데 노인들은 대개 이것으로 죽어. 옛날에 형무소에서 영하 10도 이런데서 겨울을 나서 생긴 거지만 못고치니까.
뇌출혈만이라면 살살 달래가면서 고쳐나가겠는데 기관지염이 재발하니까 숨을 못쉬니까. 어제도 이름난 한의사한테 뜸을 떴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병원에 물론 진찰 받아야 하고 약도 한두가진가 뭐.
□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시는지 궁금합니다.
■ 오전시간에는 언덕으로 보행하러 나가고 오후에는 (부인에게 운동 나가는데가 어디냐고 묻고는) 뇌신경을 타격받아서 기억력이 상실되어서...... 장애인 복지회관이란 곳이 있는데 운동하고 마비된 곳을 고치는 재활운동 나가고 그리고 병원 가고 침 맞으러 가고. 그런다고 낫는 것은 아니지만 안하고 있으면 큰일나니까.
□ 최근 정세에 대해서는 듣고 계십니까.
■ 읽지도 않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세상일에 관심을 다 버리고 살아.
뇌출혈 환자라는 건 일체 마음을 비워야 돼. 몇 년 걸려 서서히 나아지고 재발하면 그만이지.
□ 선생님의 근황과 지금의 생각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몇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20세기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체제 경쟁 시기로 특징지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지난 20세기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각축은 100년간 인류가 전개한 수많은 여러 현상 가운데 하나이지 20세기를 두 사상.제도의 대립으로만 볼 수 있을까요. 그 밖의 수많은 20세기를 특징짓는 성격들이 있었는데 사상적 이데올로기적 제도적 각축은 많은 것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사회는, 인류라는 것은 수많은 인간들이 집단적으로 살면서 자신의 생존의 환경과 조건을 바꿔나가는 이런 과정은 혁명이라는 과격한 행위로서 변화의 속도를 단락화시켜 가지고 결론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지 않은가 보죠.
이전의 중세나, 노예사회를 보더라도 하나의 제도가 수백년씩의 기간에 그 나름의 조건과 토대 위에서 자기 변화를 해나가는 또하나의 마지막 단계에 서서히 전이 변화했듯이 자본주의도 수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라고 봐요. 사회주의가 하나의 인위적인 제도적 폭력이랄까 변화로 그것을 단락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잘못이라고 봅니다. 일정한 경과적 변화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일시에 변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봐요.
지금의 자본주의, 이런 식의 자본주의 특히 미국이 지배하는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경제제도로 옮겨갈 거예요.
"미국식 반인간적 자본주의는 자기파멸 부를 것"
▶사회주의의 실험 실패에 대해 사회의 전이, 발전은 `단락화`시켜 일거에
단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말한 리영희 선생.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 그렇다면 현재의 자본주의는 어떤 문제로 인해 어떤 모습으로 변해 나갈 것이라고 예상하시는지요.
■ 오늘날의 무한경쟁,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적 인간중심 평등과 이데올로기, 철학, 사상, 제도 이런 것에 대항해서 개인의 이기주의를 철저하게 추구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자기전개과정이죠.
이것은 비(非)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반(反)인간적이고 자연과 우주의 운영원리에 역행하는 반자연적인 것으로 반인간성, 반자연성을 갖고 있어요. 오로지 물질지상주의고 이익추구이고 인간의 동물적인 경쟁에 의한, 그런 결과에서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자기파멸을 가져올 거예요. 그건 인간의 진실된 행복에 반한 것이니까.
변화된 자본주의는 사회주의가 예상했던 방향으로 변화 발전할지 또 우리가 모르는 아직 예상하지 못한 다른 것으로 변화할지 모르지만 변화하죠. 21세기 중반, 후반에 나타나지 않을까요.
□ 그렇다면 21세기에 인류가 나갈 수 있는 바람직한 사회를 어떻게 그려볼 수 있을까요.
■ 첫째는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 질서를 바꿔야죠. 오직 미국식 자본주의라는 것은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 자본주의는 물질적 이윤추구 뿐이니까. 오로지 신을 숭배하듯이 물질적 이윤을 추구하는데 이런 경제 생활양식 체계를 바꾸어야죠.
그리고 근원적으로는 인간이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겠죠. 지금까지 인간성과 우주현상에 자연적인 법칙을 인간이 전부 거역하고 게놈이니 생명공학이니 많이 성취하고 있는데, 인간의 이성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성다운 이성으로 돌아가야죠. 인간지식이 신에 도전하는, 자연의 원리에 도전하고 신의 능력을 인간화하려고 하는 이런 것이 과연 인간의 행복을 가져올 것인가 파멸을 초래할 것인가에 대해 21세기 말쯤 가면 슬픈 결론이 내려질 거예요.
▶미국식 자본주의는 철저히 반인간적, 반자연적이고 아직 변화의
방향은 뚜렷하지 않지만 반드시 변할 것이라고 말한 리영희 선생.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9.11 테러 공습을 받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미국의 제도와 사상과 가치관이 반인간성을 체현하고 있기 때문에 바꾸어야 하는 것은 미국적인 것이죠.
미국은 정치에서 세계를 지배하려는 패권주의, 미국식 생활방식이 선악의 기준이라는 자아독선, 미국의 힘으로 결판 낸다는 힘의 오만, 폭력과 주먹이 신앙인 이런 것이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을 상징하는 것이고 이것을 통해 인류를 지배한다는 것은 2차대전에 못지 않은 인류의 불행이 미국으로 말미암아 오지 않을까 싶어요. 아프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예요.
나는 신은 믿지 않지만 미국식으로 간다는 것은 인류에게 신의 뜻에 어긋나는, 역행하는 불행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유일신 종교라는 것은 오로지 자기의 가치관과 신념을 절대화하고 그것을 배타적으로 정당화 신성화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가치관에 있어서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절대적인 정의, 절대적인 목표가 되는 거예요.
□ 최근에는 북미관계가 다소 우여곡절은 겪겠지만 관계 정상화로 가지 않겠냐는 견해들이 많습니다. 10여년에 걸친 북한과 미국간의 관계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 뭐 북한과 미국이 10여년의 역사밖에 없나요. 45년부터 56년간의 관계지. 일관해서 적대관계죠. 크게 봐야죠 조그만 변화고 접근한게 뭐가 있나요. 미국은 그런 변화를 계속하겠지만 안될 것으로 봐요.
물론 북미간에 관계 개선해야되고 그래야 남북의 평화는 말할 것도 없고 동북아, 세계의 평화가 보장되죠. 아프간 전쟁전까지는 여기가 세계의 폭발고였으니까. 미국이 반성하지 않는한 변함이 없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미국이 한반도를 끝까지 지배하겠다는 거니까. 통일후에도 미군을 주둔시키겠다는 건 무슨 발언이예요. 제국주의도 보통제국주의가 아니죠. 그런데 그걸 좋다고 떠드는 인간들이 많다고요.
□ 한미 관계가 중요한데 한국이 비자주적이지 않느냐는 지적도 많습니다. 정부 당국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해결해야 할까요.
■ 비자주적이라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죠. 본질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죠. 비자주가 아니라 예속이야 그대로. 한미방위조약에 보면 분명히 나와있어요. 우리 남한의 영토, 영해, 영공은 한국 것이 아니라 완전히 미국 거야. 남한의 땅이든 건물이든 무엇이든 청와대라도 미군이 군용으로 쓰겠다면, 달라면 줘야돼요. 식민지관계나 다름없어요.
이때까지 정권이 남한 민중의 뜻으로 들어섰다 나갔다 한 적 있어요? 다 미국의 뜻으로 들어섰다 나갔다 하지. 한국국민들이 자주 주권국가인 것처럼 크게 착각하고 있는데 한미관계의 본질, 본성을 알아야 진실이 보이는데 전혀 못보고 있다고. 남북관계를 하나도 제대로 해석을 할 수가 없어요.
북한이 주저하고 행동이 느리면 폐쇄적이다 뭐다라고 온갖 정의를 내리는 데, 우리는 항상 미국이 지배하는 남한을 놓고 북한과의 관계를 생각해야죠. 최근에 장관급회담, 김 위원장 방문이 늦어지는 것을 모두 북한에 비난을 퍼붓고 하지만 이 조건을 그대로 놓고 우리가 북한의 입장에 서있다고 생각한다면 비로소 그때 이해가 될 거예요.
"통일은 거 아직 멀었어요"
□ 북미간은 적대적, 한미간은 예속적 관계로 정의해 주셨는데요. 6.15 남북공동선언 1년이 지난 지금 이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 클린턴 정권이 앞으로 중국, 러시아 문제를 고려해 동북아에서 큰 판을 짜기 위해 남북한 사이에 전쟁은 다시 일으키지 않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해서 어느 정도 접근이 가능했었죠.
특히 미소 대립, 양진영 대립이라는 2차대전 이후 50년 반세기가 넘는 대립구조가 1990년 전후해서 해소 됐는데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만 유일하게 비대칭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요소죠. 미국도 어느 정도까지는 세계적 상황변화 추세에 맞추려고 한 것이 사실이라고 봐야죠. 한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그때에 비하면 부시 정권 체제는 위험천만한 출발을 했죠. 클린턴 때도 그렇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해보니까 안돼서 바꾼거죠. 부시 정권이 지금 조금 달라진 것도 아프간과 아랍과 대립해서 할 수 없이 그렇지, 달라진 것은 아니라고 봐야죠.
□ 6.15 남북공동선언에 보면 제 1항,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대목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 그것은 잠깐 클린턴 정부 시절에 미국의 동북아정책 추구 시점에서 맞아떨어져 허용된 거죠. 나중에 그것 때문에 김 대통령이 부시 취임 뒤 워싱턴 방문시 얼마나 천대받았어요.
□ 남쪽 사회를 늘 비판해 왔고 북한 사회 역시 비판해 오셨습니다. 통일 후 남북한의 바람직한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요.
■ 북한은 남들이 다 비판하니까. 주로 남한의 자기반성을 촉구해온 거죠. 통일문제를 이야기할 때 통일이라는 것을 나의 화두나 연구, 술화의 중심에 삼지는 않았어요. 항상 민족이 화합함으로써 외세에 자주성을 가져 전쟁을 다시 치르지 않는 평화체제를 모색해 온 것이 내 중심테마였어요.
통일 거 아직 멀었어요. 통일까지의 길이 백 가지의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면 이제 하나 했고 아흔 아홉 개를 꾸준히 해야죠. 통일이라는 목표를 잃어버리면 안되지만 화해와 평화를 쌓아야죠.
□ 남쪽 사회는 선이고 북쪽 사회는 악이라는 2분법적 사고를 경계해 오셨습니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아직도 이러한 경향이 있습니다.
■ 북쪽은 일인 숭배가 국가의 유일가치가 되어있고, 이는 유일신 유일종교와 마찬가지로 위험해요. 김일성 유일사상을 격하해야하고 국민들과 사회의 `사상의 자유`보다는 `사고의 자유`를 줘야 사회도 개방될 수 있는데 김일성 유일사상이 지배하고 있는 한 어렵죠. 큰 건물의 대문만 열고 들어가면 김일성의 좌상, 동상 이래가지고는 사회주의 자본주의를 떠나서 문제죠.
남한은 일제부터 이어받은 친일파를 그대로 이어받아 오늘날까지 이 사회가 완전히 예속사회가 되어있죠. 일본에 이어 미국에 대해 완전히 예속국가가 되어있어요. 민족이 예속된 상태에서 민족의 자주 통일은 거의 불가능해요. 남한은 미국에 의한 거의 전면적인 지배구조에서 자주성을 획득해 나가고 남한적인 철저한 반인간적 사회, 인간생활 형태 이것을 인간적인 사회로 바꿔야죠.
한때 미국이 사회주의 사회를 보고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하라 이런 식으로 윽박질렀는데 지금 미국의 경제구조나 사상이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은 것 몇십배로 남한의 사회는 얼마나 비인간적인가요. 이런 사회를 놓고서는 굉장히 힘들다고 봐요.
나는 한가지 북한이 대칭적으로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에 하나를 보태면 북한이 개방해서 자유로운 선택을 개개인에게 부여하는 사회제도로서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로 가게끔 요구한다면, 남한은 대신 타락하고 잔인한 사회가 되어버린 남한의 총체적인 생활의 변화를 위해서 아마도 사회주의의 도입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생각해요.
개인의 이익을 신성시하는 이기적인 사회가 아니라 그것이 갖는 장점과 더불어 사회 구성원 전체가 더불어 행복을 추구하는, 획득(acquisition)을 행복의 유일한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도 행복의 사회적 범주로 바꾸어 놓는 노력이 있어야죠.
쉽게 말해 서독과 동독이 통일이 가능했던 까닭은 서독에 사회주의 정당이 정권을 담당하기도 하고 사상과 모든 것이 공개되었기 때문이죠. 또 공산주의인 동독과의 관계에서 아무런 마찰 없이 통일이 가능했던 것은 서독의 사회주의적 요소의 존재로 봐야죠.
그에 비해 남한은 반공주의 밖에 없는데 그나마 타락하고 반이성적인, 폭력적이고 타락한 반공주의 밖에 없으니까. 정당이나 정치이념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그래가지고는 평화적 자주적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봐요. 더구나 지금의 야당들이 지난날 골수 반공주의자였다는 것에서 앞으로 남북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요.
□ 북한은 `민족`, `민족주의`, `민족제일주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계화시대에서 민족주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남북은 상대방에 대립적 좌표에서 상대방의 좌표와 정반대되는 대칭적인 성격을 서로 가지려고 했다고 봐요. 남한이 미국에 예속으로 간 것도 북이 자주노선을 걷고 소련 중국과의 관계에서 독립적인 관계로 가니까 그렇게 됐고. 남이 그렇게 가니까 북은 그렇게 가지 않는다고 간 것이 폐쇄적인 것으로 가요.
이제 이런 문제들을 인식한다면 대극점에 가 있는 것을 중심을 향해 접근시켜야죠. 6.15 남북공동선언을 한 김 대통령의 노력도 그런 철학의 바탕에 있고요. 미국이 전쟁으로 남한 지배를 포기한다고 분명하게 하면 북도 오로지 민족주의를 고집하지 않게 되겠죠. 북미관계에서 미국의 행동이 중요하다고 봐요.
"씸플 라이프, 하이 씽킹"
□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마르크스 이론과 모택동 이론을 공부하셨는데, 김일성 이론 또는 주체사상을 공부한 적은 없으십니까.
■ 별로 없는데, 나는 중국과 소련, 제3세계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까 북한에 대한 연구는 하지 않았어요. 맑스나 모택동, 레닌을 원전에 들어가서 학문과 이론에 대해 많이 읽었지만 북한이나 김일성에 관해 거의 손을 대지 않았죠. 이것저것 다 할 수도 없었고.
내가 북한 문제를 얘기할 때 남북과 선과 악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 서로 관계론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보아왔지 김일성 개인의 문제로 추구하지는 않았어요. 연구를 하지 못했다고 할까 거기까지 연구의 범위를 넓히지 못했어요.
□ 8.15 민족통일대축전 평양행사에 대해 남쪽 언론의 보도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알고 계시는지요.
■ 금년 들어서는 병 때문에 일체 신문을 안보고 뉴스도 띄엄띄엄 보니까 잘 몰라. 강정구 교수가 구속되었다 나온 지는 알아.
□ 통일뉴스는 인터넷 신문입니다. 인터넷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며 실제로 이용하시는지요.
■ 별로 생각없고 안써요. 아니 나는 내 인생을 복잡하게 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글로 써서 해온 70년의 생활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지 새로운 것에 덤벼드는 것 좋아하지 않아요.
평생을 항상 더디게 변화시켜 왔는데 볼펜이 나온지 20년이 지나서야 사용하기 시작했죠. 편리한 기능보다는 지닌 바 가치가 있다면 지켜나가는,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지 뭐가 나왔다면 덤비고 오늘은 이것 내일은 저것 하는 번거러움을 안좋아 해요.
어린 학생들도 지갑 여는 것 보면 현금카드 같은게 열두어장씩 있는데 내 인생 삶의 정신이 `심플 라이프(simple life)`야 심플 라이프. 검소하고 단순한 생활, `심플 라이프 앤 하이 씽킹(simple life and high thinking)`. 물질이나 기술은 적당히 알고, 따라가려고 하면 `하이 씽킹` 할 수 없어요. 그건 다른 분들이 하고 나는 안해.
아파트 문패 봤지요. 나는 번호로 남을 표현하는 것을 아주 혐오해요. 너무나 오랫동안 군번으로, 형무소에서 번호로 살아왔어. 몰인격적 몰인간적인 것을 아주 싫어해요. 굳이 나무로 만든 오래전 살던 집 문패를 가져다 붙이는 것은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니라 1202호가 아니라 리영희라는 것이야. 나는 남이 사는 대로 안살아, 내 방식으로 살지.
사람의 재능과 `인텔리전스(intelligence)`, 지능 사고가 개발해 내는 것은 굉장히 소중히 생각하는 거예요. 인간의 본성을 가장 충실하게 발현하는 것이니까. 문제는 인털리전스가 창조 발견해 내는 것을 윤리적으로 인간가치라는 제반 요소들을 떠받쳐주는 방향으로 이용 활용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죠.
물질적인 능력은 인간에게 크게 있는데 정신적, 도덕적, 윤리적 추구는 그에 못미치니까 물질적 프랑켄슈타인이 앞서가는 것이죠. 21세기가 어떤 세기가 될 것인지 예언할 수 없는 까닭이 바로 그것이죠.
□ 말씀 감사합니다. 쾌차하셔서 더욱 많은 말씀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통일뉴스 2001-10-30
[출처:통일뉴스 10-30-2001]
리영희, 그의 이름은 지식인 사회에서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군사독재 시절 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었던 『전환시대의 논리』(1974)와『우상과 이성』(1977)에서부터 최근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와 『반세기의 신화』(1999)에 이르기까지 그의 날카로운 펜끝은 늘 시대의 나침반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아무도 그의 동정이나 글을 접할 수 없었다.
통일뉴스 창간 1주년 기념인터뷰를 간곡히 청하여 만나본 그는 작년 11월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외부 활동을 삼가고 건강을 돌보고 있었다.
단풍 물든 수리산 자락의 그의 자택에서 이젠 73세의 노구를 돌보고 있는 당대의 지성으로부터 21세기의 화두와 우리 민족의 미래를 들어보았다.
일시 : 2001년 10월 25일 오전 10시
장소 : 산본 리영희 선생 자택
대담 : 이계환 편집국장
정리 : 김치관 기자
사진 : 송정미 기자
"세상일에 관심을 다 버리고 살아"
□이계환 : 몸도 불편하신데 말씀을 청해 죄송합니다. 작년 6월 25일자 시사저널에서 김남식 선생과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지면을 통해 뵙지 못했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리영희 : 쓰러진 지가 작년 11월부터 열한달 됐구만.
병이 한두 가진가. 뇌출혈이라고 반신불수 되는 건데 한국의학으로는 중풍이라고. 거기에다 간염있지, 제일 단박에 매일 싸워야하는 건 만성기관지염, 천식인데 노인들은 대개 이것으로 죽어. 옛날에 형무소에서 영하 10도 이런데서 겨울을 나서 생긴 거지만 못고치니까.
뇌출혈만이라면 살살 달래가면서 고쳐나가겠는데 기관지염이 재발하니까 숨을 못쉬니까. 어제도 이름난 한의사한테 뜸을 떴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병원에 물론 진찰 받아야 하고 약도 한두가진가 뭐.
□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시는지 궁금합니다.
■ 오전시간에는 언덕으로 보행하러 나가고 오후에는 (부인에게 운동 나가는데가 어디냐고 묻고는) 뇌신경을 타격받아서 기억력이 상실되어서...... 장애인 복지회관이란 곳이 있는데 운동하고 마비된 곳을 고치는 재활운동 나가고 그리고 병원 가고 침 맞으러 가고. 그런다고 낫는 것은 아니지만 안하고 있으면 큰일나니까.
□ 최근 정세에 대해서는 듣고 계십니까.
■ 읽지도 않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세상일에 관심을 다 버리고 살아.
뇌출혈 환자라는 건 일체 마음을 비워야 돼. 몇 년 걸려 서서히 나아지고 재발하면 그만이지.
□ 선생님의 근황과 지금의 생각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몇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20세기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체제 경쟁 시기로 특징지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지난 20세기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각축은 100년간 인류가 전개한 수많은 여러 현상 가운데 하나이지 20세기를 두 사상.제도의 대립으로만 볼 수 있을까요. 그 밖의 수많은 20세기를 특징짓는 성격들이 있었는데 사상적 이데올로기적 제도적 각축은 많은 것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사회는, 인류라는 것은 수많은 인간들이 집단적으로 살면서 자신의 생존의 환경과 조건을 바꿔나가는 이런 과정은 혁명이라는 과격한 행위로서 변화의 속도를 단락화시켜 가지고 결론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지 않은가 보죠.
이전의 중세나, 노예사회를 보더라도 하나의 제도가 수백년씩의 기간에 그 나름의 조건과 토대 위에서 자기 변화를 해나가는 또하나의 마지막 단계에 서서히 전이 변화했듯이 자본주의도 수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라고 봐요. 사회주의가 하나의 인위적인 제도적 폭력이랄까 변화로 그것을 단락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잘못이라고 봅니다. 일정한 경과적 변화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일시에 변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봐요.
지금의 자본주의, 이런 식의 자본주의 특히 미국이 지배하는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경제제도로 옮겨갈 거예요.
"미국식 반인간적 자본주의는 자기파멸 부를 것"
▶사회주의의 실험 실패에 대해 사회의 전이, 발전은 `단락화`시켜 일거에
단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말한 리영희 선생.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 그렇다면 현재의 자본주의는 어떤 문제로 인해 어떤 모습으로 변해 나갈 것이라고 예상하시는지요.
■ 오늘날의 무한경쟁,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적 인간중심 평등과 이데올로기, 철학, 사상, 제도 이런 것에 대항해서 개인의 이기주의를 철저하게 추구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자기전개과정이죠.
이것은 비(非)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반(反)인간적이고 자연과 우주의 운영원리에 역행하는 반자연적인 것으로 반인간성, 반자연성을 갖고 있어요. 오로지 물질지상주의고 이익추구이고 인간의 동물적인 경쟁에 의한, 그런 결과에서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자기파멸을 가져올 거예요. 그건 인간의 진실된 행복에 반한 것이니까.
변화된 자본주의는 사회주의가 예상했던 방향으로 변화 발전할지 또 우리가 모르는 아직 예상하지 못한 다른 것으로 변화할지 모르지만 변화하죠. 21세기 중반, 후반에 나타나지 않을까요.
□ 그렇다면 21세기에 인류가 나갈 수 있는 바람직한 사회를 어떻게 그려볼 수 있을까요.
■ 첫째는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 질서를 바꿔야죠. 오직 미국식 자본주의라는 것은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 자본주의는 물질적 이윤추구 뿐이니까. 오로지 신을 숭배하듯이 물질적 이윤을 추구하는데 이런 경제 생활양식 체계를 바꾸어야죠.
그리고 근원적으로는 인간이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겠죠. 지금까지 인간성과 우주현상에 자연적인 법칙을 인간이 전부 거역하고 게놈이니 생명공학이니 많이 성취하고 있는데, 인간의 이성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성다운 이성으로 돌아가야죠. 인간지식이 신에 도전하는, 자연의 원리에 도전하고 신의 능력을 인간화하려고 하는 이런 것이 과연 인간의 행복을 가져올 것인가 파멸을 초래할 것인가에 대해 21세기 말쯤 가면 슬픈 결론이 내려질 거예요.
▶미국식 자본주의는 철저히 반인간적, 반자연적이고 아직 변화의
방향은 뚜렷하지 않지만 반드시 변할 것이라고 말한 리영희 선생.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9.11 테러 공습을 받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미국의 제도와 사상과 가치관이 반인간성을 체현하고 있기 때문에 바꾸어야 하는 것은 미국적인 것이죠.
미국은 정치에서 세계를 지배하려는 패권주의, 미국식 생활방식이 선악의 기준이라는 자아독선, 미국의 힘으로 결판 낸다는 힘의 오만, 폭력과 주먹이 신앙인 이런 것이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을 상징하는 것이고 이것을 통해 인류를 지배한다는 것은 2차대전에 못지 않은 인류의 불행이 미국으로 말미암아 오지 않을까 싶어요. 아프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예요.
나는 신은 믿지 않지만 미국식으로 간다는 것은 인류에게 신의 뜻에 어긋나는, 역행하는 불행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유일신 종교라는 것은 오로지 자기의 가치관과 신념을 절대화하고 그것을 배타적으로 정당화 신성화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가치관에 있어서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절대적인 정의, 절대적인 목표가 되는 거예요.
□ 최근에는 북미관계가 다소 우여곡절은 겪겠지만 관계 정상화로 가지 않겠냐는 견해들이 많습니다. 10여년에 걸친 북한과 미국간의 관계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 뭐 북한과 미국이 10여년의 역사밖에 없나요. 45년부터 56년간의 관계지. 일관해서 적대관계죠. 크게 봐야죠 조그만 변화고 접근한게 뭐가 있나요. 미국은 그런 변화를 계속하겠지만 안될 것으로 봐요.
물론 북미간에 관계 개선해야되고 그래야 남북의 평화는 말할 것도 없고 동북아, 세계의 평화가 보장되죠. 아프간 전쟁전까지는 여기가 세계의 폭발고였으니까. 미국이 반성하지 않는한 변함이 없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미국이 한반도를 끝까지 지배하겠다는 거니까. 통일후에도 미군을 주둔시키겠다는 건 무슨 발언이예요. 제국주의도 보통제국주의가 아니죠. 그런데 그걸 좋다고 떠드는 인간들이 많다고요.
□ 한미 관계가 중요한데 한국이 비자주적이지 않느냐는 지적도 많습니다. 정부 당국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해결해야 할까요.
■ 비자주적이라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죠. 본질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죠. 비자주가 아니라 예속이야 그대로. 한미방위조약에 보면 분명히 나와있어요. 우리 남한의 영토, 영해, 영공은 한국 것이 아니라 완전히 미국 거야. 남한의 땅이든 건물이든 무엇이든 청와대라도 미군이 군용으로 쓰겠다면, 달라면 줘야돼요. 식민지관계나 다름없어요.
이때까지 정권이 남한 민중의 뜻으로 들어섰다 나갔다 한 적 있어요? 다 미국의 뜻으로 들어섰다 나갔다 하지. 한국국민들이 자주 주권국가인 것처럼 크게 착각하고 있는데 한미관계의 본질, 본성을 알아야 진실이 보이는데 전혀 못보고 있다고. 남북관계를 하나도 제대로 해석을 할 수가 없어요.
북한이 주저하고 행동이 느리면 폐쇄적이다 뭐다라고 온갖 정의를 내리는 데, 우리는 항상 미국이 지배하는 남한을 놓고 북한과의 관계를 생각해야죠. 최근에 장관급회담, 김 위원장 방문이 늦어지는 것을 모두 북한에 비난을 퍼붓고 하지만 이 조건을 그대로 놓고 우리가 북한의 입장에 서있다고 생각한다면 비로소 그때 이해가 될 거예요.
"통일은 거 아직 멀었어요"
□ 북미간은 적대적, 한미간은 예속적 관계로 정의해 주셨는데요. 6.15 남북공동선언 1년이 지난 지금 이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 클린턴 정권이 앞으로 중국, 러시아 문제를 고려해 동북아에서 큰 판을 짜기 위해 남북한 사이에 전쟁은 다시 일으키지 않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해서 어느 정도 접근이 가능했었죠.
특히 미소 대립, 양진영 대립이라는 2차대전 이후 50년 반세기가 넘는 대립구조가 1990년 전후해서 해소 됐는데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만 유일하게 비대칭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요소죠. 미국도 어느 정도까지는 세계적 상황변화 추세에 맞추려고 한 것이 사실이라고 봐야죠. 한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그때에 비하면 부시 정권 체제는 위험천만한 출발을 했죠. 클린턴 때도 그렇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해보니까 안돼서 바꾼거죠. 부시 정권이 지금 조금 달라진 것도 아프간과 아랍과 대립해서 할 수 없이 그렇지, 달라진 것은 아니라고 봐야죠.
□ 6.15 남북공동선언에 보면 제 1항,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대목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 그것은 잠깐 클린턴 정부 시절에 미국의 동북아정책 추구 시점에서 맞아떨어져 허용된 거죠. 나중에 그것 때문에 김 대통령이 부시 취임 뒤 워싱턴 방문시 얼마나 천대받았어요.
□ 남쪽 사회를 늘 비판해 왔고 북한 사회 역시 비판해 오셨습니다. 통일 후 남북한의 바람직한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요.
■ 북한은 남들이 다 비판하니까. 주로 남한의 자기반성을 촉구해온 거죠. 통일문제를 이야기할 때 통일이라는 것을 나의 화두나 연구, 술화의 중심에 삼지는 않았어요. 항상 민족이 화합함으로써 외세에 자주성을 가져 전쟁을 다시 치르지 않는 평화체제를 모색해 온 것이 내 중심테마였어요.
통일 거 아직 멀었어요. 통일까지의 길이 백 가지의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면 이제 하나 했고 아흔 아홉 개를 꾸준히 해야죠. 통일이라는 목표를 잃어버리면 안되지만 화해와 평화를 쌓아야죠.
□ 남쪽 사회는 선이고 북쪽 사회는 악이라는 2분법적 사고를 경계해 오셨습니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아직도 이러한 경향이 있습니다.
■ 북쪽은 일인 숭배가 국가의 유일가치가 되어있고, 이는 유일신 유일종교와 마찬가지로 위험해요. 김일성 유일사상을 격하해야하고 국민들과 사회의 `사상의 자유`보다는 `사고의 자유`를 줘야 사회도 개방될 수 있는데 김일성 유일사상이 지배하고 있는 한 어렵죠. 큰 건물의 대문만 열고 들어가면 김일성의 좌상, 동상 이래가지고는 사회주의 자본주의를 떠나서 문제죠.
남한은 일제부터 이어받은 친일파를 그대로 이어받아 오늘날까지 이 사회가 완전히 예속사회가 되어있죠. 일본에 이어 미국에 대해 완전히 예속국가가 되어있어요. 민족이 예속된 상태에서 민족의 자주 통일은 거의 불가능해요. 남한은 미국에 의한 거의 전면적인 지배구조에서 자주성을 획득해 나가고 남한적인 철저한 반인간적 사회, 인간생활 형태 이것을 인간적인 사회로 바꿔야죠.
한때 미국이 사회주의 사회를 보고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하라 이런 식으로 윽박질렀는데 지금 미국의 경제구조나 사상이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은 것 몇십배로 남한의 사회는 얼마나 비인간적인가요. 이런 사회를 놓고서는 굉장히 힘들다고 봐요.
나는 한가지 북한이 대칭적으로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에 하나를 보태면 북한이 개방해서 자유로운 선택을 개개인에게 부여하는 사회제도로서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로 가게끔 요구한다면, 남한은 대신 타락하고 잔인한 사회가 되어버린 남한의 총체적인 생활의 변화를 위해서 아마도 사회주의의 도입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생각해요.
개인의 이익을 신성시하는 이기적인 사회가 아니라 그것이 갖는 장점과 더불어 사회 구성원 전체가 더불어 행복을 추구하는, 획득(acquisition)을 행복의 유일한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도 행복의 사회적 범주로 바꾸어 놓는 노력이 있어야죠.
쉽게 말해 서독과 동독이 통일이 가능했던 까닭은 서독에 사회주의 정당이 정권을 담당하기도 하고 사상과 모든 것이 공개되었기 때문이죠. 또 공산주의인 동독과의 관계에서 아무런 마찰 없이 통일이 가능했던 것은 서독의 사회주의적 요소의 존재로 봐야죠.
그에 비해 남한은 반공주의 밖에 없는데 그나마 타락하고 반이성적인, 폭력적이고 타락한 반공주의 밖에 없으니까. 정당이나 정치이념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그래가지고는 평화적 자주적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봐요. 더구나 지금의 야당들이 지난날 골수 반공주의자였다는 것에서 앞으로 남북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요.
□ 북한은 `민족`, `민족주의`, `민족제일주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계화시대에서 민족주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남북은 상대방에 대립적 좌표에서 상대방의 좌표와 정반대되는 대칭적인 성격을 서로 가지려고 했다고 봐요. 남한이 미국에 예속으로 간 것도 북이 자주노선을 걷고 소련 중국과의 관계에서 독립적인 관계로 가니까 그렇게 됐고. 남이 그렇게 가니까 북은 그렇게 가지 않는다고 간 것이 폐쇄적인 것으로 가요.
이제 이런 문제들을 인식한다면 대극점에 가 있는 것을 중심을 향해 접근시켜야죠. 6.15 남북공동선언을 한 김 대통령의 노력도 그런 철학의 바탕에 있고요. 미국이 전쟁으로 남한 지배를 포기한다고 분명하게 하면 북도 오로지 민족주의를 고집하지 않게 되겠죠. 북미관계에서 미국의 행동이 중요하다고 봐요.
"씸플 라이프, 하이 씽킹"
□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마르크스 이론과 모택동 이론을 공부하셨는데, 김일성 이론 또는 주체사상을 공부한 적은 없으십니까.
■ 별로 없는데, 나는 중국과 소련, 제3세계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까 북한에 대한 연구는 하지 않았어요. 맑스나 모택동, 레닌을 원전에 들어가서 학문과 이론에 대해 많이 읽었지만 북한이나 김일성에 관해 거의 손을 대지 않았죠. 이것저것 다 할 수도 없었고.
내가 북한 문제를 얘기할 때 남북과 선과 악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 서로 관계론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보아왔지 김일성 개인의 문제로 추구하지는 않았어요. 연구를 하지 못했다고 할까 거기까지 연구의 범위를 넓히지 못했어요.
□ 8.15 민족통일대축전 평양행사에 대해 남쪽 언론의 보도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알고 계시는지요.
■ 금년 들어서는 병 때문에 일체 신문을 안보고 뉴스도 띄엄띄엄 보니까 잘 몰라. 강정구 교수가 구속되었다 나온 지는 알아.
□ 통일뉴스는 인터넷 신문입니다. 인터넷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며 실제로 이용하시는지요.
■ 별로 생각없고 안써요. 아니 나는 내 인생을 복잡하게 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글로 써서 해온 70년의 생활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지 새로운 것에 덤벼드는 것 좋아하지 않아요.
평생을 항상 더디게 변화시켜 왔는데 볼펜이 나온지 20년이 지나서야 사용하기 시작했죠. 편리한 기능보다는 지닌 바 가치가 있다면 지켜나가는,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지 뭐가 나왔다면 덤비고 오늘은 이것 내일은 저것 하는 번거러움을 안좋아 해요.
어린 학생들도 지갑 여는 것 보면 현금카드 같은게 열두어장씩 있는데 내 인생 삶의 정신이 `심플 라이프(simple life)`야 심플 라이프. 검소하고 단순한 생활, `심플 라이프 앤 하이 씽킹(simple life and high thinking)`. 물질이나 기술은 적당히 알고, 따라가려고 하면 `하이 씽킹` 할 수 없어요. 그건 다른 분들이 하고 나는 안해.
아파트 문패 봤지요. 나는 번호로 남을 표현하는 것을 아주 혐오해요. 너무나 오랫동안 군번으로, 형무소에서 번호로 살아왔어. 몰인격적 몰인간적인 것을 아주 싫어해요. 굳이 나무로 만든 오래전 살던 집 문패를 가져다 붙이는 것은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니라 1202호가 아니라 리영희라는 것이야. 나는 남이 사는 대로 안살아, 내 방식으로 살지.
사람의 재능과 `인텔리전스(intelligence)`, 지능 사고가 개발해 내는 것은 굉장히 소중히 생각하는 거예요. 인간의 본성을 가장 충실하게 발현하는 것이니까. 문제는 인털리전스가 창조 발견해 내는 것을 윤리적으로 인간가치라는 제반 요소들을 떠받쳐주는 방향으로 이용 활용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죠.
물질적인 능력은 인간에게 크게 있는데 정신적, 도덕적, 윤리적 추구는 그에 못미치니까 물질적 프랑켄슈타인이 앞서가는 것이죠. 21세기가 어떤 세기가 될 것인지 예언할 수 없는 까닭이 바로 그것이죠.
□ 말씀 감사합니다. 쾌차하셔서 더욱 많은 말씀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통일뉴스 2001-10-30
[출처:통일뉴스 10-3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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