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렬상임의장 특별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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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1-12-19 00:00 조회1,63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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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연합 창립10주년 특별인터뷰-오종렬상임의장이 말하는 전국연합10년
"역사의 거대한 산맥을 옮기는 민중의 걸음과 함께
1991년 12월1일 연세대. 2만여명이나 되는 전경에게 철저히 봉쇄당한 채 한 단체가 역사의 대하에 깃발을 꽂았다. 그해 4월은, 명지대 1학년생이던 강경대씨가 집회도중 교문 앞에서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했고 잇따른 학생들의 분신과 한진중공업 박창수 노조위원장의 의문사 등으로 전국은 민중들의 분노로 소용돌이쳤다. 전국의 민족민주운동세력들은 이에 범국민대책회의를 구성하고 연인원 3백여만명의 대규모 장기투쟁을 5∼6월 전국적으로 일궈낸다. 이러한 5∼6월 투쟁의 경험 속에서 민족민주운동세력은 몸과 마음을 하나로 모아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전국연합)"을 결성하게 된다. 당시 갓 출범한 전국연합은 92년 대선을 앞둔 정치적 대변혁기에 노태우 민자당 정권에 맞서 "민주정부" 더 나아가 "민족자주정권" 수립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었다. 역사의 도도한 풍랑 속에 10년의 세월을 "자주민주통일"이라는 기치를 들고 걸어온 전국연합 창립 10주년에 즈음하여 오종렬 상임의장을 만났다. 전국연합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해 들어보았다.

창립 10주년을 맞는 의장님의 감회와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지금도 그때 연세대에 얼마나 많은 경찰 병력이 있었던지 생생합니다. 그 철통같은 포위망을 뚫고 연세대로 들어가 추운 강당 안에서 전국연합을 창건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국대에 있었고 본부만이 연세대에서 성공리에 창립대회를 치뤄냈지요. 그때 우리 마음속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넘쳤습니다. 빛이라 함은 이 나라에 있던 거대 부문조직인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그리고 빈민, 전교조와 지역을 망라해서 8·15 이후 가장 큰 전선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사명감과 긍지였습니다. 동시에 동구사회의 몰락과 소련연방해체는 전세계 진보진영이 퇴조기를 맞이하는 시기였기에 어두운 그림자도 걱정거리로 내 마음에 있었습니다."
전국연합 10년의 역사는 그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시기였으리라 봅니다. 전국연합의 발전과 변화 안에서의 우여곡절이 있었다면 어떤 것일까요.
"10년간 기막힌 우여곡절을 많이 겪어 왔습니다. 동구사회의 몰락과는 다르게 분단 내 조국 남쪽에서는 그 역풍으로 거슬러 민족민주전선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조직적 견고함은 미흡했으나 기초전선은 되었어요. 하지만 미국과 수구세력이 민족민주세력들에 대한 탄압, 민족민주 운동진영의 사상적 혼란은 운동진영의 사람들에게 썰물 빠지듯 빠져나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90년대 전국연합 결성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두 번째, 92년 대선에서 민자당 중심의 수구집단과 야당, 그리고 범민주대단결 진영과의 격돌에서 우리가 지게 되었던 겁니다. 김영삼 정권은 개혁을 시작했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모순인 민족분단과 민중생존권을 꿰뚫지 않는 개혁은 개혁이라 할 수 없었어요.
외세와 분단구조를 그대로 둔 채 개혁과 민족자주로 갈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민족화해와 교류 역시 견우와 직녀처럼 잠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야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개혁인 것을, 이러한 개혁을 보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은 환호하고 주저앉았던 겁니다. 87년 6월 항쟁이 노태우의 6·29선언으로 무너졌던 것처럼 김영삼 정권의 개혁에 우리의 에너지 진출을 거두고 문민시대에 안주했어요. 이것이 어둠이었지요.
세 번째, 부분적인 지방자치가 시작되고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정치마당이 열리고 여러 인사들이 여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전선운동을 청산하고 제도권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어요. 들어가서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기보다는 현장을 청산하고 들어가 부패하고 이성을 상실한 제도권 정치풍토에 동화되어 갔습니다. 또한 때거리로 정치권에 진입한 이후 돌아서 동지들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민족민주 운동진영은 또 한번 큰 시련을 겪습니다. 95년 이북에 큰 물난리가 있었지요. 북은 가장 긴 시간 미국의 경제봉쇄정책 속에서 살아왔어요. 쿠바와 이라크와의 그것과는 비견도 되지 못할 만큼. 이것을 두고 3년 안에 붕괴될 거라는 주장들이 여기저기 무시무시한 전염병처럼 창궐했고 이런 흐름은 운동진영에 마지막 결정타를 안겨주었습니다 또한 젊은이들과의 갈등도 있었습니다. 96년 연세대, 97년 한양대 사건을 거치며 내부분열과 상극의 현상을 보았어요. 97년 출소 후 내가 본 전국연합은 전세계 민족해방 전사들이 세계의 빛으로 우러르던 모습은 없고 산산히 무서진 난파선의 모습이었어요. 그러나 민족의 명운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더 강인하고 확실한 자주민주통일의 전사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이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자주민주통일의 강령을 없애버리려는 그 자리에 다시 깃발을 들었어요. 너무나 심한 상처 때문에 그 회복이 상당히 더디기는 합니다. 떠나가 있던 노동대오도 있고 청년학생도 명목상으로만 복무하고 있지 실질적으로 결합도가 상당히 낮아요. 이런 흐름은 무서운 후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과 함께 영명한 농민군 지도부, 농민 형제들이 함께 하고 있으며 미래의 빛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탄탄대로는 아닙니다. 전국연합이 난파되고 재건 과정에서도 전선재편론이 끊이질 않았어요. 이것이 전국연합 해소론입니다. 전국연합이 오류를 범하던 초기에 무엇이 나왔는지 상기해야 합니다. 제일 먼저 나온 것이 범민련 해소론이었어요. 전국연합 내에서 나왔었지요. 전국연합 내부투쟁은 범민련 해소론에서 시작했다고 봅니다. 지금도 전선재편론과 관련해서 내외적으로 전국연합 해소론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자민통, 이 대강령을 중심에 놓고 조국통일의 상을 핵으로 놓는 전선으로 재편하자면 좋습니다. 그러면 굳이 전국연합을 해소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불거져 나오는 전국연합 해소와 전선재편론은 곧 자주민주통일과 조국통일의 상, 이것 자체를 해소하자는 것 이외로는 해석이 안 됩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안팎으로 끊이질 않는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반드시 척결되고 청산해야 합니다."
의장을 맡은 3년(8기 10기) 동안 어디에 가장 중점을 두고 활동하시고자 했으며 성과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동지들에게 간곡하게 이야기한 것이 몇 가지 됩니다. 하나는 "사상의 뿌리는 깊게, 표현수위는 낮게, 연대의 폭은 넓게, 실천기간은 무궁토록". 이 네 가지를 강력하게 요구했어요. 두 번째, 지도자는 조직위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조직원이 만드는 존재지요. 조직원은 온 힘을 기울여 열성으로 지도자를 만들고 그 지도자는 충실히 조직을 위해 복무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원칙을 저버리고 등한시할 경우 큰 후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지도는 학습과 토론을 통해 만들어지고 지도자는 조직 속에서 육성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조직강화에 모든 관심사를 돌렸고 이것이 내 활동의 핵이었어요..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을 넓고 크고 힘센 조직으로 만들어서 자주민주통일 강령실현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것, 여기에 내 의지가 모여 있습니다. 역사의 거대한 산맥은 민중이 옮기는 것입니다. 민중과 함께 할 민족간부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민족민주운동진영은 통일연대를 구성, 올해 6·15공동선언 1주년 기념행사와 8·15민족통일공동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뤄내면서 통일운동은 새로운 단계로 도약했습니다. 올해 통일운동의 성과와 이후 과제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노동자, 농민들이 금강산에서 만나고 부문별로 통일애국인사들이 만나는 등 여러 만남은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위상 높은 8·15통일대축전이 사실은 아픈 상처를 남겼어요. 45년 8·15 이후 남과 북이 대규모로 만남을 갖는 일은 처음 있는 경사스런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꼭 반성할 지점은 있습니다. 반통일수구세력이 통일의 물길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이를 악물고 할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것에 더 치밀한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을 반성합니다. 의식과 성향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평양에 가는 시점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구반통일세력에 대해 깊게 관찰하고 치밀히 준비하지 못하고 방심한 것에 반성합니다. 이점을 이제는 놓치지 말아야 해요. 군중적 여론몰이 형식으로 법적 장치인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사람들을 가두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통일연대는 양심적 지식인, 종교인뿐만 아니라 시민, 환경운동 등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활동하는 제 단체들과도 손을 맞잡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많이 할 것입니다. 또한 조선일보 같은 반통일언론을 비롯한 반통일 세력들을 압박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지혜와 방법을 동원해 그들의 반민주성, 반민족성을 대국민 앞에 드러내기 위해 우리의 조직적 역량을 투입해 나갈 것입니다. 대언론사업을 펼치는 동시에 국보법 철폐사업 등 군중적 운동을 광범위하게 연대연합을 통해 펼쳐나갈 계획입니다."
전국연합 정책위에서는 지난 9월 "10년의 전망, 3년의 계획"이라는 전국연합의 중장기 발전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9월 테제"라고 불리우는 전국연합의 계획은 무엇이며 향후 전국연합운동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시는지요.
"유기적 통합운동을 벌이고자 합니다. 분산약진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에서 배우듯, 작은 실강이 모여 샛강이 되고 다시 가람이 되어 바다로 가듯이 통합에너지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을 저해하는 분파성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조국이남 땅에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남측본부가 있고 전국연합이 있습니다. 모두 원상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범민련은 7·4남북공동성명의 내용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상과 정견, 종교를 망라한 민족구성원 전체가 함께 하는 연합기구가 범민련입니다. 범민련의 핵심은 3자연대입니다. 그리고 전국연합은 이남 땅의 자주민주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모인 곳입니다. 두 단체는 7·4남북공동성명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6·15공동선언의 내용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범민련과 전국연합의 지향점은 동일합니다. 차이라면 전국연합은 이남민중의 생존권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각자의 지위와 역할을 분명히 하면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민족민주 운동진영에서 10년 전 전국연합의 위상을 어떻게 원상회복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전국연합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오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울타리가 좁으면 넓힐 것이며 또한 통크게 그 울타리를 해소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낮고 작은 민족민주운동전선을 강화하는 동시에 높고 크고 완벽한 조직체계를 구성하기 위한 3년의 계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중사업 속에서 토론하고 학습하고 실천하며 이것을 기약할 것입니다."
내년은 지방선거와 대선이 있습니다. 지금 전국연합에서는 진보정당 특별위원회가 건설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년 선거에 임하는 전국연합의 고민이 무엇인지, 그리고 민족민주세력들은 양대 선거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진보정당건설의 문제는 우리가 해야 할 사업의 요체 중 하나입니다. 우리의 주장을 실제로 만들어 내려면 입법과 집행이 따릅니다. 또한 국회, 정부, 법조계, 지방자치 단체와 의회 등에 진출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한 정당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존재해 온 이권집단적 성격의 정당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강령을 지향하고 그것을 사명으로 하는 정당, 바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정당을 만들어야 하지요. 전선의 강령에 복무하는 정당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확고한 민족민주운동전선의 내용을 함께 하지 않는 진보정당은 통속화되고 맙니다. 내년 양대 선거에 대해 내부적으로 발빠른 고민을 진행중이지만 결론은 아직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소 미흡하더라도 진보진영이 자기 정치세력화를 위해 나설 때입니다."
북미대결이 북의 승리로 끝나고 6·15공동선언이 채택되면서 가까운 몇 해 안에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 실현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이른바 통일시대에 우리 민중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은 무엇입니까.
"분단시대 남북관계는 제국주의 세력에 의한, 골수에 사무치는 "적대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이제 어쩌다 노둣돌 놓아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견우직녀 시대(오작교 시대)"의 단순상봉을 뛰어넘어 동행의 시대로 건너가는 길목에 서 있어요. 시대의 추이를 확실히 잡아야 합니다. 방북하는 수준을 뛰어 넘어 군중적으로 통일을 실천하고 함께 공동행사를 만드는 작업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공동행진으로 가는 시대를 군중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정치적 각성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기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꾼들이 소금 알갱이처럼 대중 속으로 녹아 들어가고 함께 동화되어야 합니다. 6·15공동선언으로 일치되는 작업을 해야지요. 통일조국과 민족의 행복과 번영이 넘치는 민중의 시대가 곧 열릴 것입니다. 그래서 기대하는 바 또한 큽니다."
글 심현실 기자 / 사진 손은숙 기자
[출처:자주민보 11/30/01]
"역사의 거대한 산맥을 옮기는 민중의 걸음과 함께
1991년 12월1일 연세대. 2만여명이나 되는 전경에게 철저히 봉쇄당한 채 한 단체가 역사의 대하에 깃발을 꽂았다. 그해 4월은, 명지대 1학년생이던 강경대씨가 집회도중 교문 앞에서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했고 잇따른 학생들의 분신과 한진중공업 박창수 노조위원장의 의문사 등으로 전국은 민중들의 분노로 소용돌이쳤다. 전국의 민족민주운동세력들은 이에 범국민대책회의를 구성하고 연인원 3백여만명의 대규모 장기투쟁을 5∼6월 전국적으로 일궈낸다. 이러한 5∼6월 투쟁의 경험 속에서 민족민주운동세력은 몸과 마음을 하나로 모아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전국연합)"을 결성하게 된다. 당시 갓 출범한 전국연합은 92년 대선을 앞둔 정치적 대변혁기에 노태우 민자당 정권에 맞서 "민주정부" 더 나아가 "민족자주정권" 수립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었다. 역사의 도도한 풍랑 속에 10년의 세월을 "자주민주통일"이라는 기치를 들고 걸어온 전국연합 창립 10주년에 즈음하여 오종렬 상임의장을 만났다. 전국연합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해 들어보았다.

창립 10주년을 맞는 의장님의 감회와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지금도 그때 연세대에 얼마나 많은 경찰 병력이 있었던지 생생합니다. 그 철통같은 포위망을 뚫고 연세대로 들어가 추운 강당 안에서 전국연합을 창건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국대에 있었고 본부만이 연세대에서 성공리에 창립대회를 치뤄냈지요. 그때 우리 마음속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넘쳤습니다. 빛이라 함은 이 나라에 있던 거대 부문조직인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그리고 빈민, 전교조와 지역을 망라해서 8·15 이후 가장 큰 전선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사명감과 긍지였습니다. 동시에 동구사회의 몰락과 소련연방해체는 전세계 진보진영이 퇴조기를 맞이하는 시기였기에 어두운 그림자도 걱정거리로 내 마음에 있었습니다."
전국연합 10년의 역사는 그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시기였으리라 봅니다. 전국연합의 발전과 변화 안에서의 우여곡절이 있었다면 어떤 것일까요.
"10년간 기막힌 우여곡절을 많이 겪어 왔습니다. 동구사회의 몰락과는 다르게 분단 내 조국 남쪽에서는 그 역풍으로 거슬러 민족민주전선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조직적 견고함은 미흡했으나 기초전선은 되었어요. 하지만 미국과 수구세력이 민족민주세력들에 대한 탄압, 민족민주 운동진영의 사상적 혼란은 운동진영의 사람들에게 썰물 빠지듯 빠져나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90년대 전국연합 결성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두 번째, 92년 대선에서 민자당 중심의 수구집단과 야당, 그리고 범민주대단결 진영과의 격돌에서 우리가 지게 되었던 겁니다. 김영삼 정권은 개혁을 시작했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모순인 민족분단과 민중생존권을 꿰뚫지 않는 개혁은 개혁이라 할 수 없었어요.
외세와 분단구조를 그대로 둔 채 개혁과 민족자주로 갈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민족화해와 교류 역시 견우와 직녀처럼 잠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야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개혁인 것을, 이러한 개혁을 보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은 환호하고 주저앉았던 겁니다. 87년 6월 항쟁이 노태우의 6·29선언으로 무너졌던 것처럼 김영삼 정권의 개혁에 우리의 에너지 진출을 거두고 문민시대에 안주했어요. 이것이 어둠이었지요.
세 번째, 부분적인 지방자치가 시작되고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정치마당이 열리고 여러 인사들이 여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전선운동을 청산하고 제도권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어요. 들어가서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기보다는 현장을 청산하고 들어가 부패하고 이성을 상실한 제도권 정치풍토에 동화되어 갔습니다. 또한 때거리로 정치권에 진입한 이후 돌아서 동지들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민족민주 운동진영은 또 한번 큰 시련을 겪습니다. 95년 이북에 큰 물난리가 있었지요. 북은 가장 긴 시간 미국의 경제봉쇄정책 속에서 살아왔어요. 쿠바와 이라크와의 그것과는 비견도 되지 못할 만큼. 이것을 두고 3년 안에 붕괴될 거라는 주장들이 여기저기 무시무시한 전염병처럼 창궐했고 이런 흐름은 운동진영에 마지막 결정타를 안겨주었습니다 또한 젊은이들과의 갈등도 있었습니다. 96년 연세대, 97년 한양대 사건을 거치며 내부분열과 상극의 현상을 보았어요. 97년 출소 후 내가 본 전국연합은 전세계 민족해방 전사들이 세계의 빛으로 우러르던 모습은 없고 산산히 무서진 난파선의 모습이었어요. 그러나 민족의 명운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더 강인하고 확실한 자주민주통일의 전사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이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자주민주통일의 강령을 없애버리려는 그 자리에 다시 깃발을 들었어요. 너무나 심한 상처 때문에 그 회복이 상당히 더디기는 합니다. 떠나가 있던 노동대오도 있고 청년학생도 명목상으로만 복무하고 있지 실질적으로 결합도가 상당히 낮아요. 이런 흐름은 무서운 후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과 함께 영명한 농민군 지도부, 농민 형제들이 함께 하고 있으며 미래의 빛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탄탄대로는 아닙니다. 전국연합이 난파되고 재건 과정에서도 전선재편론이 끊이질 않았어요. 이것이 전국연합 해소론입니다. 전국연합이 오류를 범하던 초기에 무엇이 나왔는지 상기해야 합니다. 제일 먼저 나온 것이 범민련 해소론이었어요. 전국연합 내에서 나왔었지요. 전국연합 내부투쟁은 범민련 해소론에서 시작했다고 봅니다. 지금도 전선재편론과 관련해서 내외적으로 전국연합 해소론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자민통, 이 대강령을 중심에 놓고 조국통일의 상을 핵으로 놓는 전선으로 재편하자면 좋습니다. 그러면 굳이 전국연합을 해소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불거져 나오는 전국연합 해소와 전선재편론은 곧 자주민주통일과 조국통일의 상, 이것 자체를 해소하자는 것 이외로는 해석이 안 됩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안팎으로 끊이질 않는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반드시 척결되고 청산해야 합니다."
의장을 맡은 3년(8기 10기) 동안 어디에 가장 중점을 두고 활동하시고자 했으며 성과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동지들에게 간곡하게 이야기한 것이 몇 가지 됩니다. 하나는 "사상의 뿌리는 깊게, 표현수위는 낮게, 연대의 폭은 넓게, 실천기간은 무궁토록". 이 네 가지를 강력하게 요구했어요. 두 번째, 지도자는 조직위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조직원이 만드는 존재지요. 조직원은 온 힘을 기울여 열성으로 지도자를 만들고 그 지도자는 충실히 조직을 위해 복무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원칙을 저버리고 등한시할 경우 큰 후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지도는 학습과 토론을 통해 만들어지고 지도자는 조직 속에서 육성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조직강화에 모든 관심사를 돌렸고 이것이 내 활동의 핵이었어요..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을 넓고 크고 힘센 조직으로 만들어서 자주민주통일 강령실현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것, 여기에 내 의지가 모여 있습니다. 역사의 거대한 산맥은 민중이 옮기는 것입니다. 민중과 함께 할 민족간부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민족민주운동진영은 통일연대를 구성, 올해 6·15공동선언 1주년 기념행사와 8·15민족통일공동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뤄내면서 통일운동은 새로운 단계로 도약했습니다. 올해 통일운동의 성과와 이후 과제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노동자, 농민들이 금강산에서 만나고 부문별로 통일애국인사들이 만나는 등 여러 만남은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위상 높은 8·15통일대축전이 사실은 아픈 상처를 남겼어요. 45년 8·15 이후 남과 북이 대규모로 만남을 갖는 일은 처음 있는 경사스런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꼭 반성할 지점은 있습니다. 반통일수구세력이 통일의 물길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이를 악물고 할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것에 더 치밀한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을 반성합니다. 의식과 성향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평양에 가는 시점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구반통일세력에 대해 깊게 관찰하고 치밀히 준비하지 못하고 방심한 것에 반성합니다. 이점을 이제는 놓치지 말아야 해요. 군중적 여론몰이 형식으로 법적 장치인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사람들을 가두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통일연대는 양심적 지식인, 종교인뿐만 아니라 시민, 환경운동 등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활동하는 제 단체들과도 손을 맞잡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많이 할 것입니다. 또한 조선일보 같은 반통일언론을 비롯한 반통일 세력들을 압박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지혜와 방법을 동원해 그들의 반민주성, 반민족성을 대국민 앞에 드러내기 위해 우리의 조직적 역량을 투입해 나갈 것입니다. 대언론사업을 펼치는 동시에 국보법 철폐사업 등 군중적 운동을 광범위하게 연대연합을 통해 펼쳐나갈 계획입니다."
전국연합 정책위에서는 지난 9월 "10년의 전망, 3년의 계획"이라는 전국연합의 중장기 발전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9월 테제"라고 불리우는 전국연합의 계획은 무엇이며 향후 전국연합운동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시는지요.
"유기적 통합운동을 벌이고자 합니다. 분산약진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에서 배우듯, 작은 실강이 모여 샛강이 되고 다시 가람이 되어 바다로 가듯이 통합에너지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을 저해하는 분파성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조국이남 땅에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남측본부가 있고 전국연합이 있습니다. 모두 원상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범민련은 7·4남북공동성명의 내용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상과 정견, 종교를 망라한 민족구성원 전체가 함께 하는 연합기구가 범민련입니다. 범민련의 핵심은 3자연대입니다. 그리고 전국연합은 이남 땅의 자주민주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모인 곳입니다. 두 단체는 7·4남북공동성명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6·15공동선언의 내용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범민련과 전국연합의 지향점은 동일합니다. 차이라면 전국연합은 이남민중의 생존권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각자의 지위와 역할을 분명히 하면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민족민주 운동진영에서 10년 전 전국연합의 위상을 어떻게 원상회복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전국연합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오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울타리가 좁으면 넓힐 것이며 또한 통크게 그 울타리를 해소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낮고 작은 민족민주운동전선을 강화하는 동시에 높고 크고 완벽한 조직체계를 구성하기 위한 3년의 계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중사업 속에서 토론하고 학습하고 실천하며 이것을 기약할 것입니다."
내년은 지방선거와 대선이 있습니다. 지금 전국연합에서는 진보정당 특별위원회가 건설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년 선거에 임하는 전국연합의 고민이 무엇인지, 그리고 민족민주세력들은 양대 선거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진보정당건설의 문제는 우리가 해야 할 사업의 요체 중 하나입니다. 우리의 주장을 실제로 만들어 내려면 입법과 집행이 따릅니다. 또한 국회, 정부, 법조계, 지방자치 단체와 의회 등에 진출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한 정당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존재해 온 이권집단적 성격의 정당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강령을 지향하고 그것을 사명으로 하는 정당, 바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정당을 만들어야 하지요. 전선의 강령에 복무하는 정당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확고한 민족민주운동전선의 내용을 함께 하지 않는 진보정당은 통속화되고 맙니다. 내년 양대 선거에 대해 내부적으로 발빠른 고민을 진행중이지만 결론은 아직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소 미흡하더라도 진보진영이 자기 정치세력화를 위해 나설 때입니다."
북미대결이 북의 승리로 끝나고 6·15공동선언이 채택되면서 가까운 몇 해 안에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 실현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이른바 통일시대에 우리 민중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은 무엇입니까.
"분단시대 남북관계는 제국주의 세력에 의한, 골수에 사무치는 "적대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이제 어쩌다 노둣돌 놓아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견우직녀 시대(오작교 시대)"의 단순상봉을 뛰어넘어 동행의 시대로 건너가는 길목에 서 있어요. 시대의 추이를 확실히 잡아야 합니다. 방북하는 수준을 뛰어 넘어 군중적으로 통일을 실천하고 함께 공동행사를 만드는 작업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공동행진으로 가는 시대를 군중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정치적 각성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기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꾼들이 소금 알갱이처럼 대중 속으로 녹아 들어가고 함께 동화되어야 합니다. 6·15공동선언으로 일치되는 작업을 해야지요. 통일조국과 민족의 행복과 번영이 넘치는 민중의 시대가 곧 열릴 것입니다. 그래서 기대하는 바 또한 큽니다."
글 심현실 기자 / 사진 손은숙 기자
[출처:자주민보 11/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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