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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연합 서울대표 김진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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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2-03-12 00:00 조회1,4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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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이 사는 길, 품을 넓히고
새로운 영역으로 과감히 도전하는 것"
[열심히 하겠습니다]③ 기행연합 대표 김진실양


사실 지난 해 "학생운동에 바란다"라는 기획을 통해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어볼까"를 선정하는데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2002년 새해를 맞아 "어느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생운동의 새로운 희망과 대안을 엿볼 수 있을까"라는 해답을 찾는 과정은 유뉴스 취재기획팀의 지독한(?) 고민꺼리였다. 몇 차례 회의를 진행하고도 쉽게 결론이 나지 않자 다시금 "학생운동에 바란다"라는 기사를 살펴보았고 "엽기토끼 만든 감수성으로 멋지고 재미있게 운동하자"-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 "정치노선에 집착한 운동 벗어던지고 대중조직답게 거듭나야"-전국연합 정광훈 공동의장, "형식적인 돈키호테식 운동 지양하고 무지랭이 같은 대중속에서도 진리찾아야"-허영구 민주노총 직무대행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이후 다시금 회의를 진행하던 중 어느 기자의 "얼마전 어느 대학 화장실에 갔다가 "전국대학생기행연합 제주기행"이라는 스티커를 봤는 데 그 쪽 취재를 해보는 게 어떨까요"라는 짧은 제안을 듣고 마침내 국투본 구정모 서울대 총학생회장, 대학생 조선일보반대모임 오승훈 대표에 이어 세번째 "열심히 하겠습니다"의 주인공을 선정하게 되었다.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고 취재원들과의 몇 차례 수소문을 거친 결과 어렵사리 전국대학생기행연합(이하 기행연합) 대표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후 취재기자는 곧바로 전화를 걸어 "유뉴스입니다. 혹시 기행연합 대표 맞습니까? 인터뷰에 응해 줄 수 있죠?"라는 물음에 "네. 기행연합 대표 김진실입니다. 그럼 내일 뵙죠"라는 짧은 대답을 듣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조정래 씨의 "한강"을 감동깊게 읽고 있는 그녀


5465_1014716154.jpg기행연합 서울대표 김/진/실.

1분도 안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지막한 목소리, 왠지 무게가 실린 듯 했고 탤런트 "최진실"을 연상시키는 이름 또한 범상치 않았다.
그녀를 만난 건 서울 신길동에 위치한 범민련 사무실이었다. 그녀는 새해맞이 남북공동행사 참가 때문에 통일연대 회의를 마치고 달려오는 길이었다.
"아직 부족한 기행연합인데, 학생운동에 대한 고민을 얼마만큼 이야기 할 수 있을지…그래도 최선을 다해 이야기 해 보죠"라는 겸손한 대답을 시작으로 2시간에 걸친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태어나 부모님, 남동생과 함께 단란한 가정 생활과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영화와 음악을 좋아했고, 보통 고등학생들처럼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적당히 공부하고 놀러 다니는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또한 고등학교 시절까지 워낙에 말이 없고 평범해 "신선"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녔고 아버지가 지어준 "진실"이라는 이름이 내내 부담스러웠다고 전했다.

또한 그녀는 최근 한국근현대사를 조명한 조정래 씨의 "한강"을 열심히 읽고 있는데 "운동하고 있는 입장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당시 민중들의 삶이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남북 분단의 희생양만으로 그려진 부분이 아쉬워요. 하지만 당시 민중들의 삶과 우리 땅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라고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전달했다.

"여행"을 많이 다니면 사람이 성장한다고 했던가?
다음은 흔히 볼수 있는 운동권 특유의 과격하고 어려운 말을 쓰지 않으면서도 현재의 학생운동과 기행연합 활동에 대한 고민을 정리된 언어로 이야기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전국대학생기행연합 서울대표 고려대 김진실(통계학과 97)양과의 인터뷰 1문 1답이다.

선배들 떠나갈 때, 많이 힘들고 외뤄웠습니다

학생운동을 처음 접하게 계기는?
제가 다니고 있는 학과가 통계학과입니다. 입학 당시 통계학과의 경우, 나름대로 학생회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었고 소위 잘 나갔던 과 학생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 행사에 참여하게 되고 학생회 선배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자연스럽게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시절, 한번 쯤 학생운동을 해 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위 친구들이나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무작정 반대를 하는 친구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각자의 길을 가고 있지만 당시 과, 단대 집행부를 하는 저를 보면서 자신들이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미안해 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데모"하러 나가는걸 모르시지만 대학생이 된 만큼 자신이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회 활동을 인정하시는 편이였죠. 물론 과 학생회 집행부가 "데모"하러 간다는 사실을 아셨으면…

힘들어 활동을 그만두고 싶은 적은 없었나?
당연히 있죠. 왜 그럴 때가 없겠습니까? 사실 1, 2학년 때까지는 미팅도 하고, 학원도 다니고, 아르바이트도 하며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유혹이 많았습니다. 한번은 방학 때 헬스 학원에 다녔는 데 도저히 체질에 안 맞아 1주일 쯤 하다가 그만뒀고 흔히 말하는 잠수도 몇 번 탔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친구들과 술 마시고, 놀러다니고….
그리고 좌절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4년 올라갈 때 3학년 때까지 함께 활동했던 선배들이 활동을 그만두고 각자의 길을 가고 있을 때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속상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무슨 마음으로 계속할 수 있었습니까?
사실 힘든 일은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요. "이 일이 내 일이다"고 생각하니 괜찮더라구요. 3학년 때까지는 "운동할까 말까" 고민했는 데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된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고집"도 있었던 것 같구요.
덧붙여 항상 마음 속으로 다짐하는 게 하나 있는데 "1, 2학년 때의 순수한 마음을 갖고 최선을 다할 때를 기억하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는 것이죠.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할 때만이 학생운동에 대한 오해 극복

어떤 대학생들은 학생운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 "쟤들은 학생이 아니라 직업 운동권 아니냐", "운동을 한답시고 떠들고 있지만 자기 만족이다 "라는 지적도 있는데?
사람들이 알고 있는 "운동권"들이 반성해야 할 점들이 있겠죠. 하지만 기행연합 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는데, 예를들어 며칠동안 함께 생활하고 이야기하다 보니 인간적인 유대감과 신뢰가 쌓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오해를 풀 수 있겠되죠. 운동권 김진실이 아닌 자신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인간 김진실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죠. 당장 풀리지 않는다고 해도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다 보면 그런 오해와 지적들은 서서히 극복될 수 있겠죠.

학생운동을 해 오면서 감동받았던 기억이나 원동력이 있다면?
97년 한총련 출범식 당시 동대문 운동장을 비롯한 서울 시내를 가득 매웠던 그때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사실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부당하고 잘못된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이 힘을 모으면 해결해 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게을러지고 힘들때 01학번 후배들이 느끼는 대로 행동하고 감동받으며 눈물흘릴 줄 아는 모습을 볼 때,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좋은 선배가 아니었는데도 "진실이 누나처럼 예쁜 후배들을 키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힘을 얻지요.

역사 기행은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키웁니다

5465_1014794373.jpg▲기행연합 회원들이 성산 일출봉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중. / 서울기행연합 홈페이지 사진자료실(http://my.dreamwiz.com/travel21)

본격적으로 기행연합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 기행연합의 결성 시기와 배경은?
99-2000년을 넘어오면서 새해맞이 행사를 "독도에서 하자"는 의견이 몇몇 대학에서 나왔고 독도 탐사를 준비하면서 전국적인 기행 동아리들의 연합체를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이후 경인지역,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먼저 결성되고 매향리 기행, 제 1회 국토종단 통일대장정 등 준비하고 다녀오면서 전국적인 조직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기행연합의 결성 의의와 주요활동은?
역사 기행이 주요 활동입니다. 조국애, 민족애를 가지려면 우리 국토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 땅을 돌아보며 그 속에 담겨있는 역사를 돌아보면서 올바른 역사관을 키우고 그와 동시에 대학생이 가져야 할 진보적인 생각을 기행을 통해 접목해 봅니다. 예를들어 강화도에 가서는 나라를 지키는 호국정신을 배우고 미군 기지를 가보면 민족의 자주권에 대해 생각해 보지요. 또한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기행 동아리들을 한 데 묶어 대규모 사업들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연합체의 필요성이죠.
얼마전 서울지역은 출범식은 했지만 아직 전국적인 출범식을 진행하지는 못했고 중앙 집행부도 별로 없습니다. 지역별로 지역 기행 연합 동아리를 묶어내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회원규모는 약 5백여명 정도 되죠.
서울지역의 경우 정기적인 회의도 하고 집회나 시위 현장에도 나가죠.

기행연합인데 집회나 시위 현장에 나간다. 왠지 생소합니다.
기행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예를들어 군산 미군기지 폐유 방류를 보면 미군 문제, 경복궁 건설을 살펴보면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 등이 떠오르지요. 그러다 보면 느끼는 것을 바꿔야 겠다는 생각과 함께 시위나 집회 현장에 참여하게 되지요. 물론 전체 회원이 그렇지는 못하지만 말이죠.

고려대에서 과, 단대 학생회 활동을 하다가 기행연합 활동을 하게 된 계기?
사실 학교 다닐 때 동아리 활동, 여행 한번 제대로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중운동을 잘 하기 위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기행연합 활동을 해 보자라고 마음먹게 되었고 대장정에 다녀오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게 됩니다.

망월동, 국토 대장정 활동하며 눈물 흘리는 친구들을 보면
기행연합 활동의 "참맛"을 느낍니다.

지금까지 기행을 다니면서 가장 감명깊은 곳과 기억에 남는 사람은?
제주기행을 갔을 때 "와흘굴"이라는 곳에 갔었습니다. 4.3 제주 항쟁 당시 "와흘리"라는 마을 사람들이 토벌을 피하기 위해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직접 동굴에 가보니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어둡고 캄캄한 동굴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우리 민중들이 몇 달동안 머무르면서 "조금만 버티면 우리 세상이 온다"는 믿음으로 이겨냈다고 생각해보니 4·3 항쟁 중심에 우리 민중들이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사람은 먼저 사람이 극한 상황까지 오면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는 데 제주 기행 당시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어느 01학번 친구입니다. 그리고 군산 우리 땅 되찾기 시민모임에서 활동하시는 분들과 제주도 "동백빌레"라는 4.3 항쟁 관련 단체 분들을 보며 자신의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5465_1014804946.jpg▲기행연합 제주 기행 발대식 장면 / 서울기행연합 홈페이지 사진자료실(http://my.dreamwiz.com/travel21)

덧붙여 가장 뿌듯할 때는 언제입니까?
학생회 활동이나 역사 모임 등 이런 경험을 한번도 하지 않은 학생들이 포스터나 스티커 달랑 보고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 안타깝지만 기행을 다녀온 후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왔다고 말할 때 가장 뿌듯합니다. 특히 광주 망월동이나 국토종단 대장정을 진행하며 그곳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면 저도 가슴이 찡합니다.

사실 기행연합 활동이 단순한 기행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참여도 많이 하고 있는데 회원들의 거부감은 없습니까?
기행을 가기전 처음부터 기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합니다. 조금이라도 본인이 싫다고 하면 절대 강요하지 않고 솔직히 참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하기도 합니다.
지난 해 국토종단 통일대장정에 4백 여명이 참가하고 이후 연세대 통일대축전에 갔는데 사실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필 비도 엄청 내렸지요. 이후 설득도 하고 부탁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냥 가더라구요. 분명 극복해야 할 문제라 생각합니다.

학생운동, 새로운 영역으로 과감한 도전이 필요합니다

현재 학생운동에 대한 견해는?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고 기행연합에 운동을 하지 않는 친구들이 있기에 기행연합 대표로서 대답하는 데 한계는 있을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점이 많지만 그전에 학생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고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역할을 다해야겠지요.
사실 제가 기행연합을 하고 있는 것도 학생운동이 어떻게 나가야 하는가라는 고민 속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학생회와 학교에는 학생운동이 없습니다. 일부 몇몇 대학만 학생운동이 남아있고 대부분 학생회는 학생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생운동 침체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학생운동 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데 너무나 소극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행연합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 기존 학생회 혹은 학회 활동이나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학우들은 상당히 빨리 변하고 있었고 기존의 학생회, 학회 등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들어 기행연합의 경우, 학우들의 요구에 따라 만들었고 이 속에서 진보적인 내용을 담아내자는 것이죠.
학우들의 요구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 그런 부분에 진보적인 내용을 담을 수 있는 데 그런 부분에 많은 시각을 돌리지 못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통일단결, 운동 대중화 등 여러가지 학생운동이 극복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합니다. 학생운동의 방향을 제시한다면?
지금은 기행연합이 한총련 소속 단체는 아니지만, 이런 사람들이나 단체들이 한총련에 자연스럽게 가입할 수 있고, 한총련도 이들이 가입할 수 이는 통크고 넓은 조직이 될 때 학생운동이 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아직 기행연합 회원들이 한총련 이름만 들어도 거부감이 있지만 하나씩 하나씩 한총련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먼저 한총련이 손 내밀고 그런 그릇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덧붙여 이적규정이 하루 빨리 철회되어야 하겠지만 한총련이 진정 대중조직 다운 모습거듭날 때 학생운동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습니다.
하루빨리 기행연합 친구들에게 한총련을 소개할 때 아주 자연스럽게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02년 기행연합의 활동 계획과 포부?
이 포부는 실제 될 지 안될지 모르지만 작년에 국토종단 통일대장정을 하면서 기회만 된다면 기존의 통일선봉대나 국토 순례단과 꼭 함께 활동하고 싶고 멋있는 모습으로 통일 대축전에 참석하고 싶습니다. 저는 바로 이런 기행연합의 활동이 통일운동을 넓혀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국토종단 통일 대장정 끝나면서 회원들이 한결같이 진정한 국토 대장정은 임진각이 아니라 백두산까지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반드시 이룩해야 하고, 올해가 힘들다면 내년에라도 꼭 할 것입니다. 다음에는 북녘 대학생들과 함께 우리 삼천리 금수강산을 다녀야겠지요.

마지막으로 각 대학마다 신생 동아리를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고 많은 동아리들이 함께 활동하면서 진정한 인간관계나 대학생활을 느끼는 공간이 바로 기행연합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국의 대학생 여러분! 부족하지만 꼭 지켜봐 주십시요.

취재후기
2시간 동안 진행된 김진실 양과의 인터뷰. 기대했던 대로 자신의 의견과 견해를 똑똑히 전달했다. 인터뷰 내내 전해오는 웃음과 겸손한 모습, 그리고 제주 기행 때 회비 문제로 분주히 전화를 받는 모습, 고대에서 함께 운동을 하고 있다는 애인 전화를 받는 모습까지.
전국대학생기행연합 김진실 양은 조정래 씨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서 엿볼 수 있는 우리 민중들의 모습과 유구한 역사처럼 늘 한결같은 모습이이다.
끝으로 "진실"이라는 이름처럼 늘 진실되고 우직한 김진실 양이 되길 바라며 나아가 우리 시대 학생운동이 김진실 양의 소망처럼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집기획] 학생운동, 열심히 하겠습니다

① "정치와 복지의 이분법 넘어서야"
- 국투본의장 구정모 서울대 총학생회장
② "학생운동 틈새시장 공략할 것" - 조선일보반대 대학생모임

[출처:유뉴스 www.unews.co.kr 2-27-02]
김성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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