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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교수의 대학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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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2-03-21 00:00 조회1,5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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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열지망생이 철학과에 간 사연
[나의 대학시절 ⑩]송두율교수(독일 뮌스터대)


나의 대학생활은 정확히 1963년 봄부터 1967년 2월까지였다. 거의 40년이라는 연륜에 가까운 옛 이야기여서 모든 것이 가물거린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옛 교정을 밟아 보거나, 먼발치로도 본적조차 없었다.

5739_1016418785.jpg그러나 대학건물이 이전된지도 꽤 오래되었고, 이제 그 자리는 주로 젊은이들이 만나는 문화공간이 들어섰다는 이야기는 가끔 들었다. 그래서 지금쯤 피어있을 개나리, 조금 있으면 교정을 덮을 은은한 라일락 향기 그리고 가을이면 밟고 다닌 마로니에 낙엽들이 희미한 옛 기억을 되살리는 촉매제 구실을 하는 것 같다.

이러한 추억 속에서 나의 대학생활을 떠올리면서 만약 다시 대학생활을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보낼까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문뜩 던져 본다.

통일을 위해 진정한 철학이 필요하다 해서 간 철학과

나는 철학과를 들어갔다. 원래 고등학교졸업반에서까지 이공계열지망생이었으니 방향전환이 심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그때 그냥 공대를 택했다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국사선생이 하루는 나를 불러 장래 계획을 물었다, 그리고 공학이야 너 아니라도 할 사람이 많은데 철학을 한번 전공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문학서적은 나름대로 많이 읽었지만 철학에 대해서는 아주 캄캄한 나에게 그 선생은 우리민족이 통일되려면 진정한 철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또 통일되면 그 때의 철학은 인류정신사에 큰 흔적을 남길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것이 동기가 되어 물리학교수였던 아버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철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막상 철학과에 들어가니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교과내용과 분위기였다. 같이 입학했던 동기생 20명 가운데 정치적인 문제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몇몇과는 자주 어울렸고, 과나 학번과는 관계없이 의기투합한 선후배들과 자주 만나 토론도 많이 했고 술(막걸리)도 많이 마셨다.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이를 반대하는 데모나 시위는 그 이전부터 시작되어 학교분위기는 항상 어수선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데모에 휩쓸렸고 학생회임원으로도 활약했다. 또 한편으로 금지된 서적이 하도 많았던 시절이었기에 동대문 헌책방에서 어렵사리 구할 수 있었던 일본서적을 읽기 위해서 일본말도 공부했고, 원서를 해독할 수 있는 수준의 몇몇 외국어의 공부에도 나름대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67년 독일 유학의 길로 돌아오지 못한 한국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의 길을 떠난 67년 여름, 그 때로부터 이 시간까지 서울 땅을 한번도 밟을 수 없었다. 그 까닭에 그때의 친구들이 지금 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그들이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한국사회를 이끌어 온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여러모로 확인할 수는 있다.

이들 중 몇몇은 서울이 아니라 외국 땅에서 만나 회포를 풀을 수 있었다. 어떻든 그 꿈 많았던 20대의 청년이 환갑고개를 전후로 해서 다시 만나 가족사로부터 시작해서 현실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면 모두들 변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된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되기 마련이다. 또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자란 요즈음 세대에 대한 걱정이나 비판의 소리도 나온다. 나는 사실 요즈음 세대가 누리는 <풍요 속의 빈곤>의 내용을 자세히 모르고 있다.

간혹 유학생들을 통해서나 이를 확인할 수는 있지만.... 드디어 <입시지옥>에서 벗어난 대학생활이 그저 낭만과 해방감속에서 부유(浮游)만할 수 없는 사실도 알고 있다.

대학생활이 시작되자마자 취직준비와 고시준비로 대학생활이 휘말리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있다. 대학이 사회의 한 부분이기에 이로부터 독립해서 존재할 수는 없다. 더욱이 오늘날 전 세계를 하나로 만들고 있는 <지구화>의 속도를 내가 경험했던 60년대의 시각으로서 볼 수 도 없다.

오랫동안 <아카데미즘>을 대학의 이념으로 신성시해왔던 독일도 이제 예외는 아니다. 만약 내가 다시 대학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면 하는 가정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서 대답을 구해보면 그러나 무엇인가 잡히는 것 같다. 아마 대학생활의 시작으로부터 지금까지 대학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는, 오래다면 오래다라고 할 수 있는 나의 생활에서 오는 느낌일 것이다.

고전을 읽는 습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서울의 M신문사에서 벌리는 독서 켐페인과 관련, 어떤 기자가 다녀간 적이 있다. 그 기자의 이야기처럼 소설 아니면 영어관계나 취직준비서적이나 팔리고 있는 현실이 곧 사라지지 않겠지만, 우선 대학생들이라도 <입시지옥>때에 너무나도 많이 잃어버린 귀한 시간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독서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고전(古典)을 읽는 습관을 지속적으로 키우는 문제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 무엇이 고전인가? 나는 고전을 그저 <지식>을 저장하는 책이 아니라 <지혜>를 불러 일으켜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고전 - 가령 <노자> 나 <논어> 또는 <화엄경>등과 같은 동양의 고전은 물론, 플라톤의 <향연>, 괴테의 <파우스트>,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등등 - 의 종류와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물론 그 많은 책을 다 읽을 수 없는 노릇이니 대학생활동안 100권 아니면 150권하는 식으로 목표를 세우고, 목록과 계획표를 작성해 보는 것이 어떨까하고 권해 본다. 많은 독서를 하면서, 그래서 깊은 생각을 키우고, 지혜를 하나 하나 쌓아 나가는 길이 결국 나와 세계를 함께 변화시켜나가는 머나먼 길 위에 처음 놓는 노둣돌이 아닐까 생각한다.


송두율교수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독일 유학길에 오른후 74년 재독 반유신단체인 `민주사회건설협의회` 초대의장을 맡으며 유신독재에 항거하다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망명객이 됐다. 또 송규수는 독일유학길에 오르기전 이른바 우리나라 최대의 공안조작사건이라 불리는 "동백림 사건"(1967년 6월 교수·유학생·예술가 등 200여명이 검거된 대규모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공안당국으로 부터 반한인사로 분류됐다.

현재 독일뮌스턴대 사회학부 교수인 송교수의 저서로는 민족은 사라지지 않는다(한겨레신문사), 역사는 끝났는가(당대), 21세기와의 대화 등이있다.

또 송교수는 95년부터 매해 북경에서 열린 <남, 북, 해외 학자 통일회의>를 주도, 남북한간의 "학문공동체"를 실현시키는등 남북화해와 통일을 위해 애쓰고 있다.

한편 송교수는 2000년 늦봄 통일상 시상을 위해 입국할뻔했으나 "준법서약서"요구등 관계기관의 개입으로 무산됐고 2000년 서울대, 2001년 고려대 통일대토론회에도 공안당국의 입국불허조치로 인터넷 화상을 통해 참석하기도 했다.

송두율

[출처; 유뉴스 www.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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