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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green>[대담]민중작가 윤민석씨</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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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2-03-11 00:00 조회1,4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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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 선수의 금메달 침탈과 함께 해내외 동포들에게 널리 알려진 민중작곡가 윤민석씨. 그가 15시간에 만든 퍽킹 유에스에이(Fucking USA) 작사작곡은 지구촌을 흔들어 놓았다. 미국에 대한 질타, 그것은 정곡을 찔러주는 노래와 가사였다. 유뉴스가 윤민석씨와 가진 대담보도를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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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부시고 노는 부시에게
‘기특한 과자’를 선물로 드려요”
[인터뷰] "Fucking USA" 작곡가 윤민석씨

한양대 이경미 기자
02년 2월 26일 15:38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오후 백악관에서 TV시청 중 과자를 먹다가 목에 걸리는 바람에 잠시 졸도했다가 회복됐던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또 지난달 말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해 발언하는 일이 있었다. 우리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한 작곡가 윤민석씨(84학번)가 이 사건들을 담은 노래‘기특한 과자’와 ‘또라이 부시’를 인터넷으로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방배동, 작은 빌딩 지하에 위치한 작업실‘프로메테우스’에서 “어서 와요”라며 반기는 윤씨는 작은 키에 뿔테 안경을 낀 친숙한 인상으로 그저 아저씨가 돼버린 우리네 선배의 모습이다

노래‘기특한 과자’와 ‘또라이 부시’에 대한 소개

5457_1014696265.jpg▲작곡가 윤민석 씨 / 한대신문
‘기특한 과자’는 저녁에 밥을 먹다가 뉴스를 듣고는 웃겨서 뒤로 넘어갈 뻔했다. 그래서 그저 그때 내가 느꼈던 것을 많이 풍자적으로 표현했다.

그 후에 미국의 발언을 듣고 기가 막혀서 ‘기특한 과자’의 뒤를 잇는 성격으로 ‘또라이 부시’가 만들어졌다. 이 노래에 바람이 있다면 ‘서동요’나 고무줄 할 때 불리는 노래처럼 됐으면 좋겠다. 진정으로 서민들 속에 퍼져있는 그런 노래 말이다. 특징은 둘 다 미국의 민속음악인 컨트리 풍을 띈다는 것이다. 조금은 의도적이기도 하다.

미국에 대해

천주교가 종교이지만 통일이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신앙과 다름없다. 처음에는 박노해 시인의 ‘사랑은 슬픔, 가슴 미어지는 비애 사랑은 분노, 철저한 증오 사랑은 통곡, 피투성이의 몸부림’이라는 시구가 있는 ‘사랑’이라는 시를 읽고 ‘말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자리에 있으니까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남다르다. 내가 한 사람을 굉장히 사랑하는데 그 사람이 감기에 걸렸다면 나는 감기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퇴치방법도 알아보고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우리 조국과 민족이 양키에 의해 두 동강이 나는 상처를 받고 아파하고 있다면 나는 그들에 대해 적대적이 될 수밖에 없는 거다.

두 곡이 모두 인터넷을 통해 확산됐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뉴스가 나온 후 하루만에 작곡하고 작사해서 민중가요 노래패‘우리나라’의 멤버인 이혜진씨가 바로 노래해 현재 운영하고 있는 홈페이지에 올렸다.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최근 ‘민중가요’라는 것이 음반과 적당한지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기특한 과자’ 같은 경우는 시기성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음반으로 나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불가능하다. 유통시장에 들어갈 판돈도 없을 뿐더러 음반 한 장을 구입했을 때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상업음반만큼의 음질을 우리가 줄 수 없다는 한계도 있었다. 그래서 이런 저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재정적인 문제와도 분리시킬 수 있는 MP3를 이용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이 나의 마지막 실험이다.

마지막 실험? 마지막 희망!

3번째로 징역을 살고 나온 95년, 그 해 많이 힘들었다. 나를 믿어주던 사람들이 운동하는 것을 말리기도 하는 등 허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재정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그래도 갈 데 까지는 가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런 저런 실험을 거쳐 이제는 민중가요를 사람들에게 보급시키는데 적당하다고 생각한 인터넷을 활용해 홈페이지(www.songnlife.com)를 운영하고 있다. 이게 마지막 희망이다.

노래하는 전사

후배들이 ‘노래하는 전사’라고 불러주는 것은 아주 고마운 일이다. 내 삶의 이상인 김남주 시인을 난 전사라고 부른다. 그분은 그 이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전사답게 살다 가셨기 때문이다. 나 역시 작곡가라는 호칭보다는 전사라는 호칭이 듣고 싶다. 딴따라 이전에 ‘전사’이고 싶은 거다. 음악이라는 무기가 내가 전사이냐 작곡가이냐에 따라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칼’이라는 도구가 어머니 손에 있다면 그것은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는 도구이지만 강도 손에 있다면 그것은 사람을 해치기 위한 무기일 뿐인 것처럼 말이다.

전사 윤민석의 무기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음악이라는 것이었기에 그것을 무기 삼아 작곡을 했던 거다. 뿌리깊은 나무가 드리는 그늘이 점점 더 넓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다양한 노래들을 담고 싶다. 나가 아닌 우리가 투쟁의 현장에서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라는 무기 말이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민중가요의 미덕을 지키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민중가요와 대중가요의 차이는

민중가요는 대중가요보다는 상업가요와 구분 지어 살펴보는 것이 적당하다고 본다. 음반 한 장에서 ‘진보’를 이야기하고 그 노래를 만들고 부른 사람들이 음반에 실린 진보를 위해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 음악은 진정한 민중가요인 셈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진보가 담겨있는 음반이라 해도 정작 그 노래를 만든 사람들의 생활이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진보가 상품이 된 경우이다. 한마디로 그것을 만들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노래에 걸맞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기준이 될 수 있다. 언젠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라는 노래가 민중가요냐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이것은 민중가요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게 사람들에게 인식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대학 후배들에게 한마디

우선 가슴이 아프다. 내가 운동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마음 없이 되는 일도 없지만 마음만으로 되는 일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재정적인 부분이나 권력적인 부분 등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해서 많이 미안하다. ‘힘내라’라는 말 외에는…

요즘에는 취업이다 뭐다 해서 대학생들이 고민이 많겠지만 우리 때는 시대가 시대니 만큼 다 같은 고민들을 했다. 한번은 모두가 투쟁판에 나가있는데 복학생 7명이 수업을 듣겠다고 강의실에 나갔다가 교수님께 혼이 나고 학점을 모두 F를 맞은 일도 있었다. 그랬던 때였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운동이라고 하면 ‘그래? 옳은 것 같아. 그렇지만 난 싫어! 네가 해’라는 풍조가 만연한 것 같다. 하여간 지금은 시대적으로 안고 가야할 문제들이 복잡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후배들은 어떤 문제이던지 간에 고민을 할 때 가장 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해결방법은 우리가 유치원시절 배웠던 것에 다 들어있다.

[출처:유뉴스 www.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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