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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위원장, 리재룡부부에 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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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2-08-08 00:00 조회1,74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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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총비서께서 비전향장기수 리재룡동지부부에게 친필을 보내시였다
 (평양 7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비전향장기수 리재룡동지와 그의 안해 김금순이 올린 감사편지를 보시고 은정어린 친필을 보내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보내신 친필은 다음과 같다.
 <온 나라 인민들의 축복속에 태여난 애기이름을 축복이라고 지어 줍시다
 2002.7.23>

 비전향장기수 리재룡동지는 은혜로운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안기여 비로소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첫 자식을 보게 된 감격을 금치 못하며 안해 김금순과 함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 다함 없는 감사의 정과 딸애의 이름을 지어 주시였으면 하는 소청을 담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드리였다.

 은혜로운 태양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삼가 드립니다
 꿈결에도 뵙고 싶은 어버이장군님
 불볕 쏟아 지는 무더위에도 강성대국건설과 조국통일성업을 위한 선군령도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 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첫 자식복을 받아 안은 다함 없는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삼가 이 글월을 올립니다.
 어버이장군님께서 배필을 무어 주시여 저희들 부부는 장군님의 따사로운 사랑의 보금자리에서 난생처음 자식을 보았습니다.
 환갑나이가 다 되여 첫 자식을 보게 된것만도 기쁜 일인데 어버이장군님께서는 이를 크게 여기시여 당보와 텔레비죤을 통해 세상이 다 알게 하여 주셨으니 그 고마움을 무엇으로 다 아뢰일수 있겠습니까.
 우리 장기수동네가 온통 기쁨으로 설레이고 온 나라 곳곳에서 축복의 인사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남쪽의 파쑈교형리들은 <빨갱이들은 씨종자까지 말려야 한다>며 전기고문 등 온갖 악형으로 저희들 비전향장기수들의 육체까지 파괴하여 <인간페기품>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감방에서 30년세월 인간의 모든것을 짓밟히우고 <늙은 총각>으로 버림 받았던 제가 당의 품에 안겨 처음으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귀한 자식을 보게 된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꿈만 같습니다.
 안해가 해산했다는 통지를 받고 평양산원에 달려 가 갓 태여난 어린것을 안아 보는 순간 내가 정말 아버지가 되였는가 하는 생각에 먼저 위대한 어버이사랑에 대한 감사의 정부터 북받쳐 올라 뜨거운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습니다.
 남쪽의 감방에서 페인이 되여 출옥한 저희들 비전향장기수들의 병구완을 위하여 어버이장군님께서 사랑의 불사약을 보내주시였을 때 그 은정이 너무도 고마와 흐느껴 울던 일,조국에 돌아 온 그 나날 장군님께서 잃어 버린 청춘을 되찾도록 최상의 치료대책에 갖가지 보약까지 안겨 주시여 또 고마움에 울고 울던 일들이 가슴에 젖어 들어 목이 꽉 메였습니다.
 어버이장군님의 그토록 극진한 사랑이 아니였다면 어찌 남쪽의 비좁은 0.75평 감방속에 갇혀 있던 저희 같은 <먹방인생>들이 사지판에서 구원되여 신념과 의지의 강자라는 영광의 상상봉에 오를수 있었고 영예의 조국통일상표창에 공화국영웅의 금별메달까지 빛내이며 만복을 누리는 오늘의 인생전환에 대해 생각이나 할수 있겠습니까.
 돌이켜 보면 저는 지난 조국해방전쟁때 7살나이에 미국놈들에게 부모를 빼앗기고 주림과 천대속에 남강원도 속초의 외진 어촌마을 골목길을 방황하던 떠돌이고아였습니다.
 목숨을 이어 가려고 14살 나이에 소년어부가 된 저는 고기잡이로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수장될번 했던 그 순간에 인민군대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구원되여 공화국의 품에 안기게 되였습니다.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 펼쳐 주신 고마운 사회주의제도에서 공화국의 평범한 백성들이 아무 근심걱정없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특히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농촌현지지도의 길에 인민군대에서 제대되여 숙천군 열두삼천농장 농장원으로 있던 저의 형님집을 찾으시여 몸소 부엌의 솥뚜껑도 열어 보시고 가마의 무게까지 가늠해 보시며 살림살이를 따뜻이 보살펴 주신 전설 같은 사랑의 이야기에 접하여 저는 북받쳐 오르는 감동과 충격을 금할수 없어 형님을 부둥켜 안고 엉엉 소리내여 마구 울었습니다.
 저는 그때 공화국이야말로 위대한 어버이의 품에서 만백성이 복락하는 참세상임을 마음속깊이 절감하였으며 살아도 이 땅에서 살고 죽어도 이 제도를 지켜 죽을 각오를 다지게 되였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불행과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남녘인민들도 하루빨리 위대한 태양의 품에서 태양의 은혜로운 정치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용약 조국통일성전에 나섰습니다.
 그 길에서 저는 25살 홍안의 나이에 그만 철창속에 갇히여 30년세월 갖은 고초를 다 겪었지만 공화국의 품에 안겨 참삶을 살았던 그 3년이 소중하고 또 소중하여 더더욱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을 그리며 신념을 지켰습니다.
 저는 마침내 머리에 흰서리를 이고 옥문을 나섰지만 남쪽의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란 없었으며 오로지 위대한 장군님의 품,공화국의 품에 안기고 싶은 열망만이 못 견디게 가슴에 끓어 올랐습니다.
 그러나 저의 이 피 타는 념원은 남녘땅에서 한해두해 애절한 꿈으로만 흘러 가 버렸습니다.
 그러던 저희들 비전향장기수들이 그렇듯 바라고바라던 귀환의 열망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몸소 마련하신 력사적인 6월상봉의 그날에 실현될줄이야 어찌 상상이나 할수 있었겠습니까.
 력사에는 교전쌍방이 서로 자기 사람들을 1:1로 교환한 사실은 있어도 우리 비전향장기수들과 같이 한꺼번에 60여명이 자본주의를 버리고 사회주의의 품에 안긴 그런 충격적인 사실은 없었습니다.
 이 경이적인 사변은 오로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친히 위대한 동지애와 혁명적의리로 엮으시고 꽃 피우신 인간사랑의 대전설이고 대화폭입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자식복까지 받아 안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안겨 주신 그날의 잊을수 없는 귀환복,재생복,첫 가정복을 돌이켜 보는 저의 가슴은 장군님에 대한 한량 없는 고마움으로 더욱 뜨거워 오릅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하늘 같은 은덕을 이제 천만년세월이 가고 눈에 흙이 들어 간들 어찌 잊을수 있겠습니까.
 어버이장군님,정말 고맙습니다.
 저희 부부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안겨 주신 대해 같은 사랑과 은정을 심장깊이 새기고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장군님을 위하여 깨끗한 량심과 지조를 바치며 딸자식을 훌륭히 키워 장군님의 선군위업을 받들어 가는 총폭탄전사로 억세게 준비시키겠습니다.
 어버이장군님의 대해 같은 은덕으로 행복의 보금자리에서 처음으로 꽃 같은 딸자식을 보게 되니 이름을 어떻게 지을가 하는 생각으로 망설이고 망설이던 끝에 저희 부부는 무엄한줄을 알면서도 자애로운 어버이장군님께 딸애의 이름을 지어 주시였으면 하는 소청을 정중히 드립니다.
 어버이장군님의 옥체건강은 7천만 겨레의 운명이고 조국통일이며 사회주의강성대국입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무더운 이 여름날씨에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부디 옥체건강하시기를 충심으로 바라고 바라옵니다.

   비전향장기수 남편 리재룡,안해 김금순
   삼가 드립니다
   2002년 7월 12일(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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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축복이도 어느덧 숙녀가 되어 혁명학원에서 재학해 공부중이고 리재룡선생도 칠순을 넘기셨으니 이제는 이들이 계속 화목하게 살날이 왔으면 좋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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