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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사랑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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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2-11-19 00:00 조회1,4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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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주》이 글은 참된 삶을 향유하기 위해 모대끼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것이다. 가정을 꾸린 사람들에게는 "참된 가정의 의미"를, 앞으로 참사랑을 개척해 나가야 할 청춘남녀들에게는 "우리시대의 사랑법"을 갖는데 도움을 주고자 함이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우리시대의 사랑시론Ⅱ"을 싣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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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모든 사람들은 예외없이 자기의 "개성화된 장점"들과 가능성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 학자들의 말을 빌리더라도 새싹과도 같은 인간 고유의 개성은 태어나 8개월이면 벌써 보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심각한 사실을 한가지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삶은 그 각자의 고유한 새싹을 올곧게 키우는 방향으로 삶이 개척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그것을 꽃피우려는 것이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인간의 생명적 지향이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권리임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이 사실을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그 "개성화된 장점"들을 온전히 꽃피우며 생을 개척하는 사람은 10%도 채 안된다. 대부분은 자신의 그 내재화 된 종자를 자신의 성장과 비례하여 그 (개성화된)장점들을 현실과 타협하게 되고, 생존 그 자체에 매몰되어 자신을 죽여 간다.
삶의 견지에서 볼 때 이것은 분명 죄악이다. 우리 내청회원들은, 우리 <청년답게> 구독자들은, 나아가 참된 삶을 향유하고자 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본질적으로 내재화되어진 그 "개성화된 장점"들을 현실이라는 이름 하에 내 팽개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 있으되, 죽은 삶이기 때문이다.
<송장>같은 삶을 우린 살 수 없다. 그럴 권리가 그 누구에게도 주어져 있지 않다.

이러한 관점에 기초해 볼 때 우리시대의 사랑법은 우선 청춘남녀의 각자의 이상과 지향이 발전하는 방향에서 결합되어져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사랑은 결혼이라는 형식을 빌어 두 청춘남녀의 결합일 뿐이지 사랑의 승화이고 열매는 아니다. 참사랑은 다음으로 두 청춘남녀의 자주적이며 평등에 기초한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사랑은, 즉 호상성이 없는 일방의 사랑과 내조는 본질적으로 예속이며 불평등이다. 참사랑은 다음으로 순간에 타고 영그는 감정의 충실이 아니라, 자신의 심장의 박동에 맞추는 진실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사랑은 본질적으로 육체적이며 쾌락적인 동물들의 사랑(섹스)나누기이다.
그렇다. 사랑은 우리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감정의 끌림이 아니라 (조국과 민족을 향한)심장의 박동에 충실하는 감동이어야 한다. 수정 같은 한 줄기 뜨거운 눈물같이 얼지 않는 감정이어야 한다. 화장으로 치장하고 맵시 나는 작은 가방을 들고, 섹시한 옷매무새로 핸들핸들 뽐내듯이 다니는, 그런데 눈길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조국과 민족)을 향해 너무나도 깨끗한 양심을 갖고 그 삶을 개척하기 위해 배불러 모양도 곱지 못한 갈색가방을 사시절 들고 다니는 그 청춘남녀에 참사랑의 눈길을 주어야 한다.
여기에는 자신의 안락과 일신의 행복을 위한 하루(살이)의 시간표가 아니라 미래에로 줄달음치는 그 아름다운 꿈이 다 들어 있다. 그래서 삶이 고되고, 무거워 걸을 때 한 쪽 어깨가 기울어져 몸의 균형이 잡혀지지 않지만, 힘든 줄도 모르고서 희망에 넘쳐 밤낮으로 공부하며 탐구하며 (조국과 민족을 위해)투쟁하는 청춘남녀의 모습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 사랑에는 또한 타산이 있어서는 안된다. 삶의 본성적 요구인 사랑은 그 어떤 논리나 타산보다 훨씬 강해야 한다. 무엇이 계산된 사랑이라면, 한 쪽의 이기적인 목적 때문이라면 그것은 벌써 참사랑이기를 그만둔 것이다.
반면 우리는 그렇지 않는 사랑을 해야 한다. 단 하루를 살다 죽는 대도 이런 사랑 속에 삶의 행복이 깃듬을 모르는 그런 사랑이 아닌, 서로가 의지되어 서로의 뜻을 꽃피워 주는 사랑, 그런 사랑을 말이다.
하여 우리 모두는, 어느 사랑의 편에 설 것인가? 이에 대답할 준비를 가져야 한다.

그럼 결혼은 어떤가 ? 여기에는 이 물음부터 한번 출발해 보자. "진정 둘이 합쳐 하나를 성공시켰다고 둘 다 꽃피우지 못한 정당한 이유로 될 수 있는가?"
나는 여기서 가정의 몫과 함께 사회의 몫을 생각해 본다. 사회적 인간의 본성적 요구인 이 몫은 시대와 조국 앞에 엄숙히 지니게 되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아니 되는 公民의 신성한 의무이며 도리임을 유추해 본다. 따라서 그것을 다하지 못했을 때 그가 누구든 삶의 모체인 조직과 조국 앞에 제구실을 못한 불효자로 되는 것이며 슬프게도 이 세상에 태여난 의의를 상실하고 마는 것임을 결론지어 본다. 함박눈이 그 어떤 창가에 붙었다가 물이 되여 흘러내리는 의미조차 못 가지고 흐르듯이 …
그렇다. 명실공히 부부는 어느 한 쪽이 자신을 잃고 또는 희생시켜 하나될 것이 아니라 둘이 서로 도와 더 커진 하나가 되여야 한다 그렇게 건설된 가정, 그 "개성화 되어진 장점"을 키워주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며 제 몫을 바치려 열렬한 사랑으로 서로 돕고 이끌며 피타게 노력하는 가정이어야 한다. 그런 가정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더욱 튼튼히 하는 충실한 세포로 될 수 있는 것이며, 바로 그렇게 사는데 우리 시대 삶의 뜻이 있고 가정의 사명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우리의 시각 속에는 이런 것들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어디 한번 보자. 직장해고 1순위도 여성이며,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여자가 먼저 남편을 위해 그 무엇을 포기해야 하며, 자식이 생기면 여기에도 어머니가 먼저 그 무엇을 포기해야 한다.
이러한 현상에는 다음과 같은 (보지 않을려는)사실이 숨겨져 있다. "도대체 여자에게 그 무슨 큰뜻이 있겠다구…, 설령 있다하더라도 가정을 위해 남편을 위해 자식을 위해 여자가 먼저 포기해야지"라는 지독한 남성중심의 생활관이 말이다.
또한, 아직도 여자에게 무조건 복종할 것을 요구하며 또 그렇게 고분고분하는 여성을 ≪괜찮은 아내≫ 라고 생각하면서 칭찬까지 하는 일부사람들의 뿌리깊은 관념도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의 바탕에는 여성의 책임도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대체로 남편의 말을 고분고분 잘 따르는 것이 여성의 올바른 사랑법이라 생각하는 것, 그것이다. 여성 스스로가 이 굴레에 자유롭지 못하며 우리는 이런 여성의 사랑관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렇게 보아서는 안된다. 이 세상에 꿈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 꿈과 이상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아내)의 꿈과 이상도 소중한 것이다. 특히 그것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사회적 환경과 제도에 의해 여성만이 희생당하고 있을 뿐이다. 생활은 여자, 어머니들 만의 전유물이 아니지 않는가.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평범한 생활속에서 0은 보통 없다는 것을 뜻하지만, 진정 0이 아무런 내용도 없지 않다는 것을. 이는 온도계에서 0도는 0도 이상의 온도보다는 낮고 0도 이하의 온도보다는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한 사람의 희생을 통한 완전한 0이 될 수 없다. 또한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이는 매 사람에게는 자신에 대한 신성한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제 남편의 직위와 명예속에 자기의 인격과 몫이 있다 하더라도, 사회 앞에 지닌 제 의무를 다하기 위해 그 "개성화되어진 장점"을 포기할 권리가 여성(아내)에게 없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 시집을 가면 남편에게 자기의 희망이며 신념까지 다 용해되고 맡겨 버리고 마는 그런 여성이 되어서는 안됨이다. 동시에 그런 것을 당연시 받아들이는 남편이 되어서도 안된다. 오히려 내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내라면, 그 아내를 위해 내 육신이 빠개지더라도 내 아내에게 숨어있는 그 "개성화되어진 장점"을 키우주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 길 우에 사회와 조국, 민중들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시대의 높이에 맞는 사랑법과 가정꾸리기를 하여야 한다. 여성들이 시집을 가는 것은 남편의 뒤받침 하나 때문도 아니며 자식을 잘 키우는 한 가정의 행복만을 위해서도 아니다. 사회의 세포를 풍부히 하고 튼튼히 다지며 사랑의 더 큰 힘으로 더 많은 일을 하자는 데 기본이 있는 것이다.
요컨대 가정이 창조적 삶의 터전으로 되여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는 것이며 부부는 종속이 아니라 동등한 자격과 의무로서 서로 돕고 이끄는 동지적 관계로 되여야 할 이유도 여기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평등은 사랑의 가장 견고한 기초이다.
또한 ≪…아내는 남편에게 무조건 복종할 의무를 진다.≫는 나쁠레옹 법전과 남편은 아내를 지배해야 한다는 3강5륜의 봉건유교 사상에 무장되어 있는 여성관을 이참에 뿌리뽑아야 한다. <<끝>>

김광수(내일을 여는 청년회 부회장/홈피 www.218.55.2.130.naechu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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