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green>[인물]방미투쟁단 학생대표</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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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3-01-25 00:00 조회1,58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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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미투쟁단 7명의 일행중 가장 막내인 학생대표를 만나 짤막한 대담시간을 가졌다. 언제나 얼굴에 미소를 담고 있는 이효원 학생(인하대 사회학부 2학년)은 미국방문이 처음이라고 한다.
학생으로서 이번 방문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는 보람을 느낀다면서 이번의 투쟁을 통하여 배운것이 많다고 말한다. "부시 정권이나 그 관리들에 대해서는 실망과 함께 분노를 느끼지만 제가 이번 투쟁을 통하여 만난 미국인 평화애호인사들이 외모는 다르지만 우리처럼 느껴졌습니다"면서 이들 같은 미국인들은 미국인들이면서도 부시의 전쟁정책을 반대하고 효순이 미선이를 추모해 줬다고 지적한다.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하니깐 이들도 나에게 한국말을 못해서 미안하다는 뜻으로 나에게 전하여 줄때 미국인평화애호가들은 내가 증오하고 미워하는 미국의 지배세력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어요. 그래서 우리들만 혼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들도 우리와 같은 입장을 가지고 세계 곳곳에 있는 평화운동인사들과 뜻을 같이하고 연대하고 있다는 현장을 엿볼수 있었어요."
작년 6월23일 전민특위가 미국인평화민권단체와 공동주최로 뉴욕에서 열렸던 코리아전쟁 국제전범재판을 통해 미당국과 주요관리들을 유죄로 평결하여 세계에 고발하는데 기여했던 것도 바로 이들 미국양심인들이 속해 있는 국제행동센터에 소속된 미국평화애호인들이다. 이들은 이번에 뉴욕, 워싱턴 디씨, 로스엔젤레스에서도 방미투쟁단의 투쟁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왔다. 이효원 학생이 이런 분들을 만나고 느낀 소감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같은 동포이면서도 우리 민족의 비극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투쟁기간동안에 방해를 놓았던 일부 극우세력들에 대해 너무 가슴이 아팠다는 것이 이 학생의 상반된 느낌이었다.
"미선이 효순이 문제로 국내에서는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어 이것을 참고 참다가 못참아서 큰마음으로 미국에 왔는데 미당국자들은 이러한 우리 국민들의 분노를 외면했어요. 이걸 목격하고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어요.그리고 미국 일반시민들이 너무도 한국문제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답답했어요. 더군다나 같은 동포들중 일부 할아버지들이 효순, 미선이 사건에 대한 내용을 모르고 호통치는 잠시의 모습도 보았는데 그때 저는 참혹하게 죽어간 미선이와 효순이에게 너무나 미안했어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전보다도 더 열심히 투쟁하여야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어요"
그는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이역만리 미국같은 곳에서 우리 청년학생들이 우리의 뿌리를 잊지 않고 조국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나름대로 투쟁하는 모습들을 확인한 것이 크나 큰 보람이라고 말한다.
"미국을 방문하는 기간 동안 만났던 지역 후원회의 청년학생 친구들, 그리고 신문과 보도, 인터넷으로 보고 집회에 참석하였다는 일반 학생들을 만났을 때 친구가 되었어요. 여기서도 풍물패의 노랫가락을 들을 수 있어 너무 기뻤어요. 어떤 청년들은 저한테 O아와 힘내라고 격려해 줄때 흐뭇했어요.
"한편 제가 또 감동적으로 느꼈던 것은 가는 곳 마다 제 소개를 할때 <한총련>학생 이효원이라고 하면 와와하며 힘찬 박수와 뜨거운 환영의 뜻을 보내줄때 자랑찬 한총련 학생으로서 한층 더 긍지심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미국에 사는 동포들이 이렇게 한총련을 아껴주고 사랑하는지는 몰랐어요"라고 말하며 기뻐하는 표정을 짓는다.
무슨 음식을 좋하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 좋아요"라고 말한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오래 달리기 잘하고 잘웃는것이 특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친구들이 제가 잘웃고 눈도 크고 입도 커서인지 저보고 <하마 개구리>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어요"라고 서슴없이 밝힌다.
때묻지 않은 마음, 온순한 성격, 그러면서도 투쟁결의를 할때는 백절불굴의 투사로 보이는 이효원 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기자는 혼자 중얼거린다. <이러한 학생들이 있기에 우리 민족의 미래는 창창하다> [끝]
[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 12/10/2002]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하니깐 이들도 나에게 한국말을 못해서 미안하다는 뜻으로 나에게 전하여 줄때 미국인평화애호가들은 내가 증오하고 미워하는 미국의 지배세력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어요. 그래서 우리들만 혼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들도 우리와 같은 입장을 가지고 세계 곳곳에 있는 평화운동인사들과 뜻을 같이하고 연대하고 있다는 현장을 엿볼수 있었어요."
작년 6월23일 전민특위가 미국인평화민권단체와 공동주최로 뉴욕에서 열렸던 코리아전쟁 국제전범재판을 통해 미당국과 주요관리들을 유죄로 평결하여 세계에 고발하는데 기여했던 것도 바로 이들 미국양심인들이 속해 있는 국제행동센터에 소속된 미국평화애호인들이다. 이들은 이번에 뉴욕, 워싱턴 디씨, 로스엔젤레스에서도 방미투쟁단의 투쟁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왔다. 이효원 학생이 이런 분들을 만나고 느낀 소감이라고 한다.

"미선이 효순이 문제로 국내에서는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어 이것을 참고 참다가 못참아서 큰마음으로 미국에 왔는데 미당국자들은 이러한 우리 국민들의 분노를 외면했어요. 이걸 목격하고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어요.그리고 미국 일반시민들이 너무도 한국문제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답답했어요. 더군다나 같은 동포들중 일부 할아버지들이 효순, 미선이 사건에 대한 내용을 모르고 호통치는 잠시의 모습도 보았는데 그때 저는 참혹하게 죽어간 미선이와 효순이에게 너무나 미안했어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전보다도 더 열심히 투쟁하여야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어요"
그는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이역만리 미국같은 곳에서 우리 청년학생들이 우리의 뿌리를 잊지 않고 조국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나름대로 투쟁하는 모습들을 확인한 것이 크나 큰 보람이라고 말한다.
"미국을 방문하는 기간 동안 만났던 지역 후원회의 청년학생 친구들, 그리고 신문과 보도, 인터넷으로 보고 집회에 참석하였다는 일반 학생들을 만났을 때 친구가 되었어요. 여기서도 풍물패의 노랫가락을 들을 수 있어 너무 기뻤어요. 어떤 청년들은 저한테 O아와 힘내라고 격려해 줄때 흐뭇했어요.
"한편 제가 또 감동적으로 느꼈던 것은 가는 곳 마다 제 소개를 할때 <한총련>학생 이효원이라고 하면 와와하며 힘찬 박수와 뜨거운 환영의 뜻을 보내줄때 자랑찬 한총련 학생으로서 한층 더 긍지심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미국에 사는 동포들이 이렇게 한총련을 아껴주고 사랑하는지는 몰랐어요"라고 말하며 기뻐하는 표정을 짓는다.
무슨 음식을 좋하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 좋아요"라고 말한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오래 달리기 잘하고 잘웃는것이 특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친구들이 제가 잘웃고 눈도 크고 입도 커서인지 저보고 <하마 개구리>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어요"라고 서슴없이 밝힌다.
때묻지 않은 마음, 온순한 성격, 그러면서도 투쟁결의를 할때는 백절불굴의 투사로 보이는 이효원 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기자는 혼자 중얼거린다. <이러한 학생들이 있기에 우리 민족의 미래는 창창하다> [끝]
[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 12/1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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