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합작, 통일운동으로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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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 작성일03-03-17 00:00 조회1,64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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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화해 시대를 맞아 김규식의 좌우합작 운동이 “통일독립운동으로서 가장 현실적인 노선”이라는 역사적 재평가가 나왔다.

이날 학술 발표회는 김규식 전기를 집필한 강만길 상지대 총장, 심지연 경남대 교수,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가 세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발표했으며 강 총장은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해 조철영 교수가 대독했다.
강만길 상지대 총장은 ‘일제시기 김규식의 통일전선운동’에 대한 발표문을 통해 일제 강점시대에 한반도 주민들의 민족해방운동을 시민계급도 노동계급도 독자적으로 추진하거나 지도하지 못할 상황에서 두 계급이 협동전선.통일전선을 이루어 추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이는 김규식이 민족해방운동전선의 역사적 조건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총장은 “민족해방운동 과정과 ‘해방공간’에서의 좌우익 타협노선 및 합작노선은 1990년대 이후 비로소 그 확고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평화통일노선과 일치한다”며 이는 1990년대 이후에 전체 민족사회의 가장 현실적인 노선으로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고 그 역사적 의의를 평가했다.
심지연 교수는 ‘해방정국과 통일독립운동으로서의 좌우합작’에 대해 발표했다.
심지연 교수는 해방정국에서 좌우합작은 비록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민족의 분열과 국토의 분단을 막을 수 있었던 유일한 노선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실제로 48년 4월의 남북협상으로 이어져 남북의 정치지도자들이 한자리에서 통일문제를 논의함으로써 평화적인 통일방안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좌우합작운동의 애초의 목표인 좌우 양 진영의 합작을 통한 임시정부의 수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실패’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지만 이는 합작이라는 측면에서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외세로 인해 생겨난 첨예한 좌우대립과 남북 갈등의 구조 속에서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된 좌우합작은 냉전의 여파로 한반도에서도 미국과 소련이 경쟁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시점에서 미.소의 대화를 요구하고 이를 유도해낸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합작위가 10월 항쟁이 발발한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미군정과 공동위원회를 구성한 것과 미군정으로 하여금 친일관리를 등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재검토하도록 함으로써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일제잔재의 숙청에 기여한 측면, 그리고 좌우합작의 연장선상에서 남북협상이 제안된 것 등을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좌우합작운동은 현대사에서 의미있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일정한 제약성은 있지만 민주주의적 방법에 의한 통일국가수립운동의 일환이며 분단시대의 통일독립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중석 교수는 ‘김규식과 남북협상’이라는 주제 발표에 나서 남북협상에서 통일에 관한 구체적 방안과 전쟁 억지 노력이 공동성명서의 형태로 나올 수 있게 된 것은 김구의 추진력과 김규식의 식견과 뛰어난 통찰력이 결합돼 산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중석 교수는 특히 김규식이 남북협상의 ‘설계사’로서 역할을 담당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서 교수는 북의 역사서에서는 연석회의를 중시하여 ‘4월남북연석회의’의 한 부분으로 공동성명서가 발표되었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4김회담, 두 김회담, 15인회담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남북통일국가수립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한 것도 연석회의가 아니라 요인회담으로, 단적으로 말하면 요인회담만이 남북협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외 김낙중(통일운동가), 이완범(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정병준(목포대 교수)씨가 토론에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이날 학술발표회에서는 김규식의 좌우합작운동이 당시 상황을 더 혼탁하게 만들고 결국 남북을 아우르는 합작이 되지 못한 점, 그리고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는 점등의 한계로 평가 절하되었던 것을 통일독립운동으로 그 의미를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번에 출판된 김규식의 전기는 지난 89년 창립한 우사 김규식 연구회가 2년전 타계한 송남헌씨의 주도 속에 우사 전기 출간을 추진해 온 결과, 이번에 5권으로 완간한 것이다.
우사 연구회 김재철 회장대행 부회장은 “우사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항상 어려운 항일독립운동전선의 중심에 서서 통일단결로 힘있는 독립운동을 위해 노력하였고, 혼란스런 해방정국에서는 분단을 막아 통일독립을 성취하고자 헌신”했다며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로 각오를 새로이 해야겠다고 다짐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우사 김규식은 1881년 경남 동래에서 태어나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에 입양되어 교육을 받았으며 미국에 유학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로 활동했으며 임정 부주석을 지내다 해방을 맞아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을 주도했으나 전쟁시기 납북되어 1950년 12월 사망했다.
송정미기자
[출처; 통일뉴스 3-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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