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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green>[인물]임미정 교수 평양방문기</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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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3-06-23 00:00 조회1,5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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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0일부터 일주일동안 평양에서는 국제친선음악제가 개최됐다. 피아니스트이며 울산대 음대 교수인 임미정씨(홈페이지 www.mijungim.com)는 재미예술단의 일원으로 이번 행사에 참가했다가 지난 19일 귀국했다. 임 교수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연주활동을 하며 세번의 방북연주 등을 통해 남북 민간 문화교류를 해왔고, 작년 그의 순회독주회시 북한의 피아노곡을 우리나라에서 초연했다. 이번 행사에서 방북했던 임 교수가 <오마이뉴스>에 "평양 방문기"를 보내왔다. <편집자주>


평양에서 열린 "우정의 축제"

[국제친선음악제] 피아니스트 임미정 교수의 평양 방문기-1

minifat_109754_1[1].jpg▲ 북한 대사관 로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임미정 교수.

2003년 4월 7일 오전 10시 인천 공항

지금 나는 북경으로 떠날 대한항공 비행기 앞에 앉아 있다. 곧 탑승이 시작될 것이다. 북을 방문하는 것은 네번째이다. 발걸음이 가벼워질 만큼 익숙해진 면도 있지만 이번엔 왠지 모를 중압감이 있다.

그래도, 가장 위험하다고 하는 곳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부드럽게 만날 수 있는지를 나는 그 동안의 방문을 통해 느껴왔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모든 것이 해빙 무드에 있던 작년 이맘 때에 비해 전쟁과 괴질로 인해 훨씬 어려운 상황이지만 말이다.

비행기는 서해바다로 접어 들었다. 보통 만석이 되어 떠나는 시기인데 지금은 전염병으로 인해 좌석이 거의 비어 있다. 몇몇 사람은 벌써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번에 필자가 참석하게 되는 "평양 국제 친선 예술 축전"에 대해 소개를 할까 한다. 북에선 4월 15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 즈음에 전세계 예술인을 초청, 1982년부터 거대한 예술축제를 열어왔다. 2003년인 올해는 21차가 되는데 공식명칭은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이며, 영어로는 "April Spring Friendship Art Festival"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교포 중 북쪽에 가족이 있는 분들은 방문단 겸 후원단을 조직하여 이 축전에 가서 공연하는 재미 예술인들을 후원해왔다. 지난 10여년간 적게는 3명, 많게는 20여명의 재미 예술단이 다른 해외 교포-재일 교포, 재중 교포, 고통련(우즈베키스탄에 사는 고려인), 블라디보스톡 교포 등-들과 함께 참석하여 고국(?) 방문 연주를 해왔다.

거의 100%가 남쪽 출신인 재미교포에게는 북쪽을 방문하는 것을 고국 방문이라 일컫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일단 북쪽에 들어가면 그 쪽 분들은 순수히 연주를 위해 온 다른 나라 예술단과 달리 모든 해외 교포들에 대해 조국을 찾아온 사람들이라고 더 많은 애정과 호의를 베풀어준다.

이 축전에는 전세계 60여개국에서 평균 800~1000명 정도의 예술인이 참석해 약 2주 동안 평양 시내에 있는 10개의 공연장에서 그들의 예술과 문화를 선보여 왔다. 이런 큰 규모의 축제이지만 그 동안 워낙 북한의 내부 행사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기에, 이 축제에 관해선 불과 몇 년 전부터 필자와 또 가수 김연자씨의 참석으로 남쪽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저께 서울의 라디오 방송에서 들으니 "평양에서 열리는 우정의 축제"라고 소개하면서 영국의 소프라노 수잔 클라크가 BBC방송을 대동하고 여기에 참석한다고 한다(결국 BBC는 오지 못했고 수잔 클라크만 참석했다).

사실 스포츠로는 전세계의 체육인들이 올림픽을 통해 만나 우정을 나누지만 다양한 예술인들을 위한 이런 규모의 국제적 행사는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인데, 비록 태양절을 축하하기 위한 목적이라지만 북한-미국으로부터 "악의 축"이라고까지 비난받는 나라의 수도 평양에서 이런 행사가 열린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같은 날 오후 3시, 북경 CTS 플라자 호텔

minifat_109754_1[2].jpg▲ 북경시내의 고려항공 창구

미국에서 곧장 오신 분들과 필자와 같이 서울에서 합류한 우리 재미 일행 6명(예술단 4명, 후원단 2명)은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우리는 여기서 하룻밤을 묵은 뒤 내일 아침 평양으로 가는 고려항공 비행기를 탈 것이다.

나는 LA에서 오신 옥순경 할머님과 함께 한 방을 쓰게 되었다. 그 분은 딸 둘을 1.4 후퇴 때 북에 두고 오신 분이다. 셋째 딸이 두 살이라 11살인 첫째 딸을 동생을 위해 같이 북에 남겨두시고, 둘째만 데리고 남편과 함께 잠시 피난 오셨다가 영영 헤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92년도에 미국 영주권을 받으신 후 북에 가서 따님들을 만나고 그 후 여섯번째 방북이시다.

예술단 및 후원단 합쳐 약 40여명이 참석했던 작년에 비해, 전쟁과 괴질로 인해 이번엔 단 두 명의 후원단만 가시는 것이었는데, 그 중 한 분이시고, 연세가 꽤 드시었음에도 따님들 주실 선물을 가져오시느라 여간 짐이 많으신 게 아니다. 매번 방북을 하면서 가족 방문을 하는 분들을 만나는데, 하나같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계셨다.

나도 아이가 있어 이해할 것 같지만, 아이들을 떨어뜨려 놓고 평생을 살아오신 분들의 가슴은, 겉으로는 정상적으로 보여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보통 잘 모르고들 있으나, 나이드신 많은 재미 교포분들의 미국영주권 취득 이유가 북쪽의 가족 방문 때문이다.

여든이 넘으신 그 연세에도, 전염병이 도는 이 전쟁 중(미국내에선 체감되는 공포가 더 크다고 한다)에도 환갑의 딸을 위해 바리바리 싸가지고 방문하시는 모습, 그리고 매번 방문 후에는 휴유증이 오래 간다는 말씀(많이 울고, 여행에 지치고 하셔서)은 이곳을 갈 때 늘상 접하는, 또 하나의 정말이지 내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북경의 밤

오후에 나는 예술단 단장이자 뉴욕에서 오신 지휘자 이준무 선생님과 북대사관, 고려항공사에 가서 비자와 항공티켓을 받았다. 나는 3년 전 처음 북 대사관에 갔을 때의 전율을 기억한다.

그곳 근처만 가도 나를 잡아갈 것이라는 유년기부터의 두려운 마음으로 대사관 로비를 들어섰을 때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커다란 초상화는 거의 내 숨을 막을 지경이었다. 이번엔 정문과 로비에서 사진도 찍는 여유를 가지고 방문했다.

저녁. 나는 북경의 저녁을 좋아한다.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들,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넓은 광장들, 널찍하게 자리잡은 붉은 등의 음식점들. 뉴욕에서는 느낄 수 없는 우리의 과거를 이 도시가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나에게는 14년을 살았던 뉴욕보다도 잠시 들르기만 했던 북경이 훨씬 더 친밀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과거로의 회귀감도 느껴지는 것 같다. 뭐랄까. 역사에서는 배웠지만 중국은 오랫동안 갈 수 없는 나라였고, 그 중요하다는 20세기 전반의 독립 운동사도 우리에겐 책과 영화에서만 존재했지 직접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았는가.

그러나 북경을 오면서 나에겐 그 부분이 살아 있는 역사로 느껴지게 되었고, 이제 형제를 만나기 위해선 필히 이곳을 통과해야만 하기에 이 도시는 다른 여느 도시와는 정말 다른 감흥을 주는 것이다.

저녁 7시. 우리는 북경 시내에 있는 요리집에서 사천식 매운 음식을 먹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 매운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결국 우리를 안내하는 원 선생만 음식을 즐겼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점을 소개했다고 우리 모두에게 원성을 받아야 했다!

식사 후 우리는 천안문에 산책을 갔다. 실제 북경엔 발병하지 않았다 해서 북경시민들은 걱정을 안하고 있지만, 관광객이 많이 줄어 북경시내는 오히려 평온한 모습이었다. 늘 이맘때면 극성이던 황사는 아직 심하지 않았다. 호텔로 돌아와 이메일을 체크한 후(1층 비즈니스 센터인데 접속 속도가 느려 답답했다) 방으로 돌아왔다.

이제 내일은 긴 하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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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호텔에서 여장 풀다

[국제친선음악제] 피아니스트 임미정 교수의 평양 방문기-2

minifat_109754_2[1].jpg4월 8일 아침
오늘 우리는 오후 1시 비행기로 평양에 갈 것이다. 지난 2주 동안 방북 준비 및 학교강의 등으로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했는데, 1시간의 시차도 한 몫하여 모처럼 느긋하게 아침 나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짐을 싸고 나니 벌써 피곤해진다. 나는 이번에 큰 가방 2개를 가져 왔는데, 연주 드레스 3벌과 한복, 거기에 각각 맞는 구두 등, 항상 연미복 하나면 만사 해결되는 남자들에 비해 여자 연주자는 얼마나 많은 준비물을 챙겨야 하는지 모른다.

호텔에서 다같이 아침식사를 하였다. LA에서 오신 두영균 선생님은 이번에 내가 처음으로 만나는 성악가이시다. 테너이시고 LA에서 20년을 사셨다고 한다. 지휘자인 이준무 선생님은 재미예술단의 단장이시고, 그동안 미국에서 많은 북한 곡을 연주하셨다.

90년부터 이 축전에 참가하셨다. 첼로의 이동우 선생님은 필자와 함께 울산대학교에 재직하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셔서 영어가 훨씬 편한 분이다. 지난해 작고하신 우리나라의 원로 음악인 전봉초 선생님의 사위이다.

그리고 어제 밤 우리를 안내해준 Mr.원은 조상이 청나라 때 중국에 이주한 심양 출신의 교포이다. 현재는 북경에서 여행사를 운영한다. Mr.원을 제외한 우리 네명이 예술단으로, 그리고 LA에서 오신 옥순경 할머님과 뉴욕에서 오신 전군준 박사님이 후원단으로 같이 여행하신다.

오전 10시쯤 북경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단체로 입국하는 인도네시아, 몽골 예술단원들과 함께 체크인을 하게 되었는데, 그분들의 악기 및 의상들 때문에 무척 혼잡하였다. 또 내 가방에서 무엇인가 X-ray에 걸린다고 가방을 다 풀어보여야 했다. 헤어스프레이가 범인이었다.

이렇게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내리고 하는 일은 연주여행을 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일 중의 하나이다. 팔의 근육이 피곤해지고 예민함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연주는 개막식 이후가 될 테니까 적어도 이틀은 쉴 수 있겠지….

고려항공에 탑승했는데 남자 승무원이 같이 가신 후원단의 어르신들을 부른다. 앞의 비즈니스석 두 자리가 비었으니 편히 그쪽에 앉으시란다. 전박사님과 옥여사님이 그쪽에 자리잡으셨다.

지금 우리가 탄 비행기는 JS2151 고려항공이다. 예전엔 조선 민항이라 불렀다고 한다. 비행기안의 여승무원들은 동그란 얼굴의 미인들이다. 차가운 세련미가 아니라 느낌이 따뜻한…. 살짝 사진을 찍었는데 더 이상은 하지 말라고 웃으면서 주의를 준다. 신문과 잡지를 나누어주고…. 로동신문이다.

대충 훑어보니 항상 나오는 김정일 위원장의 동정 이외에 전쟁 이야기, 유엔 이야기, 전염병에 대한 뉴스, 발암 물질을 줄이는 튀기법(튀김법) 등이 소개되어 있다. 또 축전 준비가 막바지에 이른다는 기사도 있다. 각국 대표단이 도착하는 대로 공항에서 찍은 사진이 로동신문에 나올 것이다.

기내에서는 사탕도 나누어 준다. 나는 이 사탕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먹던 사탕맛이 나기 때문이다. 매번 갈 때 마다 많이 사와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점심은 기내식으로 하였다. 딸기 사이다, 룡성 맥주 등이 대접되었고 주요리는 치킨 카레밥이다. 또 샐러드와 계란부침, 소시지도 있고 빵과 케이크도 있다. 한가지 깨달은 것은 북한의 음식은 먹어보아야 안다는 것이다. 색깔이 화려하지 않아 언뜻 보기엔 맛이 없을 것 같은데 먹어보면 꽤나 맛스럽다. 특히 고려 호텔의 음식은 두고두고 기억이 나는 음식들이었는데 벌써부터 기대된다.

순안공항에 도착하여 많은 사람의 환영을 받고 기념 사진도 찍었다. 밴드도 나와 우리가 환영나온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지나갈 때 연주를 해주었다. 항상 이렇게 도열해 있는 분들 앞과 보도진을 지날 땐 쑥스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공항에서 30분 정도 밴을 타고 시내로 들어 와 고려호텔에 왔다. 대개 예술단은 고려, 양각도, 보통강 호텔 등 3개의 호텔에 지정되는데 우리는 시내 한가운데 있는 고려호텔에 묵게 되었다. 제일 먼저 지어져 다른 두 호텔에 비해 산뜻함이 덜 하지만 위치 때문에 편리한 면이 있다.

내 방은 1동 21층 2호. 이번엔 방을 혼자 쓰게 되었다. 동쪽을 향해 있고 시내도 좀 보인다. 고려 호텔은 45층짜리 쌍둥이 빌딩이다. 전면에서 보아 오른쪽이 1동이고 왼쪽이 2동이다.

minifat_109754_2[3].jpg▲ 고려호텔의 저녁 부페.

일단 짐을 푼 후 호텔내에 있는 2층 책 방에서 화보집, 악보 등을 샀다. 잠깐 악보에 대해 언급하자면 북의 음악은 악보를 구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내가 미리 준비해가는 북의 음악은 주로 축전위원회에서 미국에 팩스로 전달하고, 그것을 다시 내게 팩스하기 때문에 악보 상태가 깨끗치 않아 곡을 읽는게 어려울 뿐더러 그냥 주어지는대로 받기 때문에 곡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작년 나의 순회 독주회때 연주했던 ‘내고향의 정든 집’이나 ‘아리랑’의 악보는 그나마 깨끗한 편이어서 심지어 내 악보의 복사본조차도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내가 이번에 연주하려 했던 ‘백두산의 눈보라’ 같은 곡들은 나에게까지 도착했을 땐 읽을 수가 없는 상태여서 포기하고 말았다(그 곡은 지난 추석 남북 합동 공연 때 북의 피아니스트가 연주했던 곡이다. 당시 KBS에서 방송되었다).

물론 이곳에서 직접 원본을 구하면 좋겠는데 피아노 곡으로 출판된 것은 초판 이후 재판이 없어 그 악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주지 않는 이상 원본을 가질 수가 없는 것 같다. 오늘 산 조선음악 대 전집은 피아노와 거의 음역이 비슷한 옥류금을 위한 악보인데 어쩌면 쉽게 편곡할 수 있을지 몰라 구입해 본 것이다. 아무튼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피아노 악보를 구하리라 다짐해보지만 잘 모르겠다….

7시 저녁식사

부페식으로 차려진 고려호텔의 음식은 정말 맛있다. 짜지도 않고, 마치 어렸을 때 나물의 독특한 맛을 처음 맛보았을 때 같은 향취를 가지고 있다. 재료가 자연산이라 그런가 보다. 겉보기엔 색깔이 칙칙해서 맛이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고사리, 도라지, 감자채, 김치 등 평범한 음식이 정말 잘 요리되었다.

부모님이 이북분이라는 이동우 선생님은 바로 이것이 어머니가 해주시던 맛이라고 하신다. 모두들 배가 고파 여러 번 가져다 먹었는데 조심하지 않으면 2주동안 몸무게를 늘려 갈 수가 있다.

minifat_109754_2[4].jpg▲ 평양 고려호텔에서 필자가 고른 첫 식단.

작년인가 가수 김연자씨가 공연중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자기가 원래 스타일이 좋은데 여기 와서 음식 때문에 허리가 굵어져 드레스가 잘 안 맞게 되었다고 말해 청중들이 한바탕 웃었단다.

아무튼, 반찬 수는 10개정도, 국과 상치(여기선 부루라고 한다)는 항상 있고, 모든 음식이 조미료 맛도 없이 깔끔한 것이 일품이어서 이렇게 음식 칭찬을 다시 늘어놓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무척 피곤했다. 하루종일 공항에서 정장차림으로 서서 돌아다녔기에(입국시의 행사 때문에 미리 그렇게 입고 온다) 다들 지쳐 있었다. 그런데도 그냥 자기는 뭐해서 나는 다른 두분에게는 벌써 여러 번 참석했던 고참(?)이므로 호텔내의 여러 곳을 자기 전까지 구경시켜 드렸다. 아직 모든 대표단이 다 도착하지는 않았는지 호텔은 비교적 한산했다.

[출처:오마이뉴스 2003/04/23 ~24]

*평양방문기는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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