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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지도자에게 보답하는 삶 사는 이북 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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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ohkilnam 작성일01-01-02 00:00 조회3,39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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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지 자주민보는 12월호에도 이북바로알기 특별기획으로 미주교포 인물, 홍정자 선생과의 대담기사를 다뤘다. 이 기획보도를 통하여 이북민중들이 지도자에게 보답하는 삶의 일면을 알아본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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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을 바로 알자>

⑤지도자에게 보답하는 삶 사는 이북민중
아이키우는 이북처녀의 환한 웃음

박준영 | 편집위원


hongjungja.jpg홍정자선생은 우리에게 그렇게 낯설지 않다.‘내가 만난 북녘사람들’이 94년 살림터에 의해 출간된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월간 ‘말’에 무용가 최승희에 대한 이야기를 실은 적도 있다. 그녀의 시각은 우리에게 이북을 새롭게 그리고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지금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어머니인 김정숙 여사의 일생을 담은 책을 준비중이다. 노동신문에 언제나 게재되는 것 중 하
나가 이북사람들의 미담에 관한 기사라는 그녀는 이북사람들의 고상한 품성을 담은 책을 이미 미국에서 발간했다.

이남에서 교수를 지낼 정도로 예술적 조예가 깊은 그녀에게서 이북의 예술과 이북사람들의 고상한 품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북에는 어떻게 가게됐는가?

“88년 9월 남편을 따라 처음으로 방문하였다. 일주일간 머물렀는데 떠나는 날 그곳 사람들이 ‘가기 전에 부탁이니 제발 말 한마디만 해봐라’고 할 정도로 남편의 뒤만 그림자처럼 쫓아다녔다.
이북에 처음 가본 사람은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나또한 번개맞은 사람처럼 멍해서 돌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창밖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왜 남의 땅 한가운데에 있는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또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이북을 비방모략한 기사를 어느 신문에서 읽고 무척 화가 났다. 이북을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가슴속에 가득하면서 남편을 설득해 이북을 떠나온지 20여일만에 혼자 평양행 비행기를 타고 몇달간 머물렀다. 그때의 감회를 적은 것이 ‘내가 만난 북녘사람들’이다.”

―이북 예술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줄 수 있는가?

“그들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주체예술’라고 말한다. 즉, 예술은 인민들이 다 같이 잘살고 나라를 지켜나가며 바르게 살기 위한 당의 정책을 반영한다는 의미이다. 이남은 마치도 이북이 예술가의 창작의지를 막는다고 선전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물론 내용은 일관되지만 표현방법에 대해서는 제약이 없다. 하지만 인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전위예술이나 추상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만나본 예술가들은 예술정책에 공감하고 있었고 조금의 불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예술분야에서 수령님의 가르침과 당의 정책을 실현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그들의 머리속에 가득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여년이 넘게 이북을 방문했는데 보고 느낀 이북사회의 특징을 말한다면.

“이북사람들은 ‘우리는 장군님하라는 대로만 하면 아무 걱정 없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집권자와 인민사이가 어찌 저럴까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모습이 많다. 근엄하고 인자한 부모와 아주 효성스러운 자녀의 관계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김일성 주석에 대해 알게되면 이북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한번은 김일성 주석이 시골에 현지지도를 나갔는데 새벽이라서 만날 사람이 아직 자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김일성 주석은 날이 밝을 때까지푹 자게 놔두라면서 차에서 기다렸다고 한다.또 이런 경우도 있다. 이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에서도 드러난 모습이지만 90년대 초반 내가 400여명의 예술단과 함께 북을 방문했는데 김일성 주석이 오찬초대를 했다. 나는 두번째 탁자에 앉아있었다. 그때 김일성 주석이 건배를 하자고 일어서더니
옆사람과 잔을 찍고 또 옆사람과 찍고…. 그렇게 한시간이 걸렸다.”

―현재 이북사람들의 미담을 담은 책을 출간했다고 들었는데 몇가지 소개하면.

“처녀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시집부터 가면 어떡합니까. 좀더 일하고 가야죠. 수령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가야죠’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시집도 안간 처녀들이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이다. ‘수령님의 아들딸들은 자신들의 아들딸’이라고 하면서 고아들을 데려다 키우는데 고아원에 아이들은 없고 데려가겠다는 대기자 명단만 수북히 쌓여있다.
군인들의 미담 또한 많은데 만일 군대에서 친구가 사고로 죽으면 군인들은 제대하자마자 배낭메고 죽은 친구의 집으로 가서 아들역할을 한다.
한번은 평양호텔에서 한 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몸이 정상적이지 않은 영예군인(상이군인을 의미)과 결혼한 부인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휠체어에 앉은 남편의 노래를 불러주겠다며 기타를 요청하는 해맑은 모습과 할일을 한건데 주변에서 잘 대해준다며 웃음짓는 아내의 모습에서 이북사람들의 고상한 품성을 보았다.
이북에 가게 되면 의사나 간호사의 옷을 한번 들춰봐라. 상처가 없는 사람이 없다. 환자에게 살을 떼주거나 헌혈을 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이북이다.”

―사실 ‘고난의 행군’이라고 말하는 어려운 시기에는 그런 마음을 지켜나가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그렇지 않다. 그건 이북사람들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들은 쌀을 무상으로 주는 수령과 당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알게 되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리고 ‘경제가 어려울수록 수령님의 뜻을 이루도록 더욱 분발하자’면서 말썽꾸러기들이 의젓해졌다고 흐뭇해하는 모습도 보았다.
한번은 범민족대회 참가시에 이렇게 어려울 때 찾아와도 문제없냐고 넌지시 물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펄쩍 뛰면서 ‘무슨 소립니까. 아무리 어려워도 할 일은 해냅니다’면서 진심에서 환영하고 자부심에 넘쳐 웃음짓는 그들의 표정을볼 수 있었다.”홍정자 선생은 이북사람들이 자나깨나 바라는 것은 통일이라면서 ‘나라 잃은 백성은 상가집 개만도 못하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식들한테는 뺏긴 나라, 분단된 나라가 아니라 온전히 우리 민족이 주인인 온전한 나라를 물려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정자 선생]

●1945년 4월26일 평북 신의주 출생●이화여대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외국어대 불어과 수학●부산 한성여대에서 5년간 강사활동●현재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거주●저서로는 ‘내가 만난 북녘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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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참고로 홍정자선생님은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의 친누나로 본명은 백정자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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