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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제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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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3-05-02 15:21 조회4,6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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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파도가 인다. 사나운 파도가 기슭을 친다. 수천수만갈래로 흩어져오른 물보라는 쉬임없이 하얀 물바래를 일으키며 쾅쾅 기슭을 친다.

장군님께서 친히 보내주신 한점의 그림으로 하여 일약 유명해진 성강의 파도다. 파도는 싸우는 조선의 기상이다. 보통때는 한없이 정답게 백사장을 쓰다듬다가도 일단 바람결만 일면 사납게 노호하는 바다이다.

150일전투에서 가열된 뜨거운 열기가 련이어 벌어진 100일전투로 하여 절정을 이룬 성강로동계급의 뜨겁게 달아오른 기상인양 파도는 억세인 나래를 길길이 쳐들며 파장식으로 몰려와 련이어 기슭을 두드린다.

그 기세에 받들려 성강에서는 오늘 주체철에 의한 우리 식의 종합적인 강철생산공정에 대한 부문별시운전을 성과적으로 마쳤다.

이제 정련로건설만 완공하면 종합적시운전을 하게 된다.

새해에는 우리 식의 철로 만든 강철컵으로 축배를 들자고 호기있게 말하던 성강책임비서의 장담이 빈말로 되지 않게 되였다.

쇠물남비마다에 넘쳐나는 우리 식의 쇠물을 어찌 축배정도에 비기겠는가. 하지만 그 축배를 고배로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다. 그래서는 안될 사람들이다.

쉬임없이 골받이하는 파도에 부대껴 썩살처럼 굳어진 바위들이 웅기중기 널려앉은 도래굽이 바위우에 한 로인이 앉아있었다. 한겨울의 찬바다바람이 허옇게 색이 바랜 그의 머리칼을 쉬임없이 날렸지만 로인은 기척없이 앉아있었다.

로인은 하염없이 바다가 멀리만 바라보고있었다. 그는 지금 오랜 세월 망각속에 묻혀있던 아버지의 얼굴을 그려보고있었다. 리대원로인의 어린시절은 이 바다가에서 흘러갔다.

열두살 어린 나이부터 제강소로동으로 잔뼈를 굳힌 로인이였다.

아버지에게서 남은 표상이란 그가 부르던 노래가락뿐이였다.

백탄석탄 타는데

이내 가슴엔 연기만 찬다

싫증도 안 나는지 술만 마시면 끊임없이 외가닥 노래가락을 제멋대로 뽑아대던 아버지였다.

한때 아버지는 성강일대에서 주먹대장으로 유명짜했다고 한다.

왜놈십장이고 감독이고 그의 주먹에 걸려들기만 하면 뼈마디 한두개쯤은 물러나고야 결판이 났다고 한다. 그러다가 왜놈경찰서에 끌려가 몇차례 주물리우더니 아예 페인이 되고말았다. 그 다음부터는 화술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털이 부르르한 앞가슴을 헤쳐놓고 왕년의 기상이 살아나 술을 사발들이할 땐 옆에서 보기조차 스산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어린 대원이를 감싸안고 어디론가 자리를 피하군 했다. 고주망태기가 되여가지고는 무엇이든 마구 짓뭉개놓고야 직성이 풀려하는 아버지였다. 집안에는 사발붙이 하나 변변히 남은것이 없었다.

대원이는 어려서부터 밥투정은커녕 배고프다는 말조차 제대로 번지지 못하고 자랐다. 하루 세끼 굶기를 밥먹듯 하면서도 새우등처럼 꼬부리고 누우면 누웠지 칭얼댈념을 내지 못했다.

배고프다는 말만 떨어지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네년은 집에서 펄짝하게 앉아 뭘하고 자빠져있는가고 제잡담 주먹부터 휘두르기때문이였다. 그러다가도 술만 깨면 아들에게 너만은 나처럼 살지 말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군 했다.

대원이 12살나던 해 봄 원철로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거미줄처럼 뻗어나간 소철레루에 감전되여 한줌의 숯덩이로 슬라크와 함께 바다에 버려졌다. 밤새 전기에 감전되여 새벽에는 숯등걸로 변해버린 그를 왜놈들이 슬라크무지속에 섞어버렸던것이다.

구질대며 내리는 봄비가 소철레루에까지 고압전류를 흐르게 해놓아 쩍하면 일어나군 하는 사고였다. 너무도 빈번한 사고여서 누구를 탓할 계제도 못되였다. 원망할것은 무심한 하늘뿐이였다.

아버지의 유물을 정리하다 단벌작업복주머니에서 지전 몇장을 발견했다. 근래에 들어와 머리가 들먹해지는 아들에게 까막눈신세만이라도 면하게 해주자고 자주 외우며 즐겨하던 술까지 끊은 아버지였다. 그 지전을 앞에 놓고 어머니는 처음으로 곡성을 터뜨렸다.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가 흘린 눈물이 있다면 이것이 시작이자 마지막이였을것이다. 어머니의 눈물은 다른것에 있었다.

시신도 없는 빈소에 외줄기향불을 피워놓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했다. 너만은 쇠물쟁이신세를 면하게 해야겠다고 하면서 학교에 갈것을 요구했다. 고집이 센 아들에게 애원하다싶이 사정했지만 대원은 머리를 저었다.

병약한 어머니가 여생을 의탁할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생각이 어린 그의 가슴에 옹이처럼 박혀있었다.

어머니는 울며불며 사정했지만 대원이는 코끝을 후비던 향불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일터로 나가고말았다. 어려도 뼈대는 굵은 대원이였다.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어쩌지 못하였다. 향불연기를 마시고는 살수 없는것이다.

아버지는 죽으면서까지 원했건만 리대원은 쇠물쟁이신세를 면할수 없었다. 그런 세월이였다. 그러던 쇠물쟁이가 해방후에는 돌연 온 나라가 떠받드는 나라의 맏아들이 되였다. 용해공이란 말은 어데서나 긍지롭게 울렸다.

이 긍지속에 리대원은 로장으로, 공훈용해공으로 자라났고 아들은 온 나라의 야금업을 총괄하는 일군이 되였으며 손자는 나라의 야금업을 세계첨단으로 끌어올릴 포부안고 외국류학의 길에까지 올랐다. 더 바랄것이 무엇인가.

여생에 더 바랄것이 있다면 자손들이 대를 이어 베풀어지는 나라의 이 은공을 잊지 말고 제 본분을 다하기 바랄뿐이였다.

그런데 그만 아들이 수치를 안고왔다. 사람이 당하는 수치중에서 제일 큰 수치가 자식때문에 당하는 수치라 한다. 이 무슨 수치란 말인가. 리대원은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이럴줄 알았으면 장군님께 편지를 올릴 때 아들녀석의 됨됨을 낱낱이 발가놓아 아예 뿌리채 이곳으로 옮겨놓을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골백번 더 들었다.

자식에 대한 눈먼 사랑이였는가? 스스로가 몇번이고 돌이켜본 생각이였다. 그런것 같지도 않았다. 자식은 겉을 낳지 속을 낳지는 않는다고 그새 너무도 변해버린 아들이였다. 아들네 집에 갈 때마다 풍겨오던 이국산향수냄새도 무심히 생각되지 않았다.

《덜된 녀석 같으니라구.》

리대원은 요새 입버릇처럼 붙은 이 말을 입밖에 흘렸다. 늙으면 자식이 지팽이라 했건만 지팽이는 고사하고 큰길가의 돌부리가 되고말았으니 이 무슨 액운이란 말인가.

로인은 도무지 자신을 진정할수 없었다.

누구인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에 로인은 머리를 들었다.

눈앞에는 아들 리성민이 머리를 숙이고 서있었다.

《배치는 받았냐?》

《예, 회전로에 가서 일하라더군요.》

《잘됐다. 거기가 적합할것 같다.》

새로운 우리 식 주체철생산체계를 두고 머리를 기우뚱대다가 쇠물세례를 받은 아들이였다. 눈앞에서 우리 식의 쇠물이 쏟아지는것을 보았으니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을것이다.

《네 처는 언제 내려온다더냐?》

《그 사람은 인차 내려올것 같지 못합니다.》

《왜?》

《아들배치도 있고해서…》

《배치?》

한껏 쪼프려진 리대원의 눈시울이 푸들푸들 떨렸다. 외국류학을 갔던 손자가 류학을 마치고 곧 돌아온다는것을 리대원도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며느리가 남편따라 성강에 내려오는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네가 아직도 정신이 덜 들었구나. 혼맹이가 쑥 빠졌단 말이다, 혼맹이가.…》

로인의 노성이 쌀쌀한 바다바람을 쩡 가르며 터져나왔다.

《벌을 주었으면 착실하게 받아야지 무슨 흥정이냐, 흥정이. 집안에서 제 처 하나 휘여잡지 못하는 네가 밖에 나와 일을 했으면 얼마나 했겠는지 알만 하다. 명남이(손자)는 당에서 키운 아이야. 너희들이 그 애를 키우는데 몇자루 품을 들였다구 배치요 뭐요 하면서 들구 다녀?》

《아버님, 그런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알속있는 자리로 뽑자구 뒤공작하러 다니겠지. 이런 널 5월17일공장으로 곱살하게 보내준 성강인심도 어지간하다.

나같으면 너같은 녀석을 삼화철공장이 아니라 하수도시궁창에 처넣고말겠다. 부총리어른의 말마디를 걸고들더니 뭐 책임비서어른이 로사고때 현장에서 로동자들에게 술 한잔 돌린것까지 시비를 해?

불은 불로 끄고 독은 독으로 다스리랬다구 화염을 헤쳐나온 로동자들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주자고 술 한잔 돌린것이 그리도 눈에 시더냐? 덜된 녀석 같으니. 네가 책임비서가 어떤 어른인지 알기나 해? 주체철을 성사시켜보자고 밤낮 현장에 붙어살면서 벌써 50대에 이몸이 다 물러앉은 사람이야. 얼마전에는 전쟁시기 남편을 싸움마당에서 잃고 20대에 청상과부가 되여 독수공방하면서 자기 하나를 길러준 어머니를 회전로가 바라보이는 저 바다가언덕에 묻어준 사람이야. 그라고 왜 고생하신 어머니를 해받이언덕에 묻어주고싶은 생각이 없겠니? 하지만 죽어서라도 어머니가 원하던 우리 식 주체철을 보게 해주자고 바람부는 언덕에 묻었단 말이다. 이건 우리 책임비서에게만 한한 일이 아니야. 온 성강사람들이 바라고 온 나라가 요구하는것이 우리 철이야.

그 철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곡절을 겪었는지 네 아느냐? 본의아닌 실수로 벌받은 사람도 있고 한점 연기로 스러진 사람도 있어. 윤택호처럼 가슴에 상처입은 사람도 있고.

오죽했으면 우리 장군님께서 주체철생산체계가 완성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 소식을 들으면 비콕스제철법을 위해 애쓰다 앞서간 사람들이 무덤을 차고 나올것이라고 말씀하셨겠니.

그런데 넌 거기다 찬물을 끼얹었다. 저 하나의 보신을 위해서 훼방을 놀았단 말이다. 일하자는 사람들의 바지가랭이까지 잡아당기면서 말이다. 용서받을수 있는가?》

《아버님, 그만 고정하십시오. 제가 눈이 멀어 그런 망동을… 이번에 검토를 받고야…》

《아니다. 일구이언할것 없다. 그건 네 본심이다. 우에 올라가 한자리 하더니 쇠독은 싹 빠지고 허울만 남았단 말이다. 소경에게 길라잡이를 시킨셈이지. 당에서 제때에 바로잡았기에망정이지 네 소경 막대짓에 하마트면 숱한 사람들이 상할번 했다. 옛날에는 너같은 관리를 사발통문 돌려 지경밖에 내쳤다지만… 후회막급하다. 미리 진속을 알았다면 장군님께 편지를 올릴 때 네녀석을 아예 여기 주저앉히겠다고 했어야 하는걸 그만…》

《그러니 아버님이?…》

《그래, 내가 네녀석을 끌어내리자고 여쭈었다. 쇠독을 올려주자구‥》

《그걸 왜 미리 말하지 않았습니까?》

로인은 아들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어이없는 표정이였다.

《그런것도 우리 장군님께서 일일이 알아서 가르쳐주셔야 채심하겠니? 그럼 네 몫은 무엇이냐? 일군이라면 응당 제 몫을 찾아할줄 알아야지. 하긴 너같이 일하는 일군이 우리 주위에 없는게 아니지. 아래사람들에게는 큰소리나 치고 배운건 쪼개주는 일밖에 모르고… 하지만 인민은 다 알고있다. 눈을 밝히고있어. 아서라, 사람이 그래선 못쓴다.》

《아버님, 전 그런 뜻이 아니라…》

《내 말을 막지 말아. 네가 그래 우리 장군님의 뜻을 모른단 말이냐? 우리 대에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철을 만들어 후대들에게 두번다시 콕스의 멍에를 씌우지 않게 하시려는 장군님의 뜻을 모르는가 말이다. 콕스때문에 그만큼 목조르기를 당했으면 정신을 차려야지. 안되겠다, 안되겠어. 쇠물을 끓이자면 밑불부터 살려야지, 쇠물은 밑불이 약하면 안 끓어. 암, 안 끓구말구.》

로인은 영문모를 밑불소리를 하며 아들을 뒤에 남겨놓은채 휘청휘청 걸어갔다.

가면서 자책했다.

내 여생에 무슨 실책을 범했단 말인가.

장군님께 무엄하게도 다른 대책안소리를 한것이 자신을 후려치고싶도록 후회막급했다.

연방 불어대는 날숨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로인은 품속을 더듬어보았다. 그래도 손자에게서 날아온 편지가 한줄기 위안이 되여 가슴속에 흘러들었다.

…할아버지, 난 귀국하면 할아버지곁으로 갈가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반대하지만 제강소와 멀리 떨어진 평양에서야 야금학을 배운 제가 뭘 하겠습니까? 과학자, 기술자들이 현실에 들어가라는것은 당의 요구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잘 설복해주십시오.

대를 이어 쇠물을 끓여오는 우리 집안의 대야 이어가야지요.

장하다, 내 손자야. 어쩐지 걸음이 비척댔다.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것 같다. 하지만 아직은 쓰러질수 없었다. 여생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로인은 다리에 힘을 주어 꿋꿋이 걸어갔다.

파도는 여전히 쾅쾅 쉬임없이 기슭을 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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