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제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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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3-03-31 20:05 조회94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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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읍에서 동쪽으로 10리쯤 가느라면 수유림으로 덮인 금산이 성새처럼 우람하게 솟아있는것이 보인다. 드넓은 나무리벌에 줄기도 없는 독산이 솟아있다는것은 지질학적리치에는 맞지 않는다.
기원전 수천년기만 해도 이곳에는 황소잔등처럼 밋밋하게 생긴 언덕이 있었다. 그 언덕이 바로 지상에 드러난 쇠돌광채였다. 사철 쇠녹이 우러나 붉은색을 띠고있는 이 언덕의 금새를 우리 조상들은 일찌기 알아보았다.
금산지구에서 나온 유적유물들을 분석한데 의하면 이곳에서의 쇠돌채취는 우리의 선조인 고조선사람들에 의하여 시작되였다고 한다. 석기시대를 마친 인류가 철기시대로 접어든 초창기에 해당한 시기였다.
고조선사람들에 이어 고구려, 고려사람들도 창, 칼, 도끼 등 철기를 만들기 위해 이곳에서 쇠돌을 캐냈다.
철기의 위력은 대단했다. 철기의 탄생으로 하여 인류는 원시적구속에서 벗어났고 자기를 지킬 수단을 가지게 되였으며 자연을 정복할 위력한 로동도구를 마련하게 되였다. 한마디로 인간은 철기의 도움으로 크게 키돋움을 하게 되였다. 그 앞장에 우리 조상들이 서있다는것은 실로 자랑할만 한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조상들은 처음 로두(쇠돌이 눈에 보이게 드러난 부분)를 찾아다니며 순전히 인력으로 쇠돌을 캤다.
그것을 참나무가 우거졌던 지금의 서림리나 륜하리로 운반해다가 참숯으로 자그마한 도가니에서 쇠돌을 녹여 철기를 만들었다.
이곳에 채굴장이 생겨난것은 로두를 다 뜯어먹은 15세기경부터이다. 조선봉건왕조 말기에 이르러 일제에 의하여 본격적인 탐사가 진행되고 광산이 섰으며 1905~1945년기간에 식민지광산으로 지상의 로두는 다 없어지고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버럭이 쌓이기 시작했다.
해방후 인민의 재산으로 된 재령광산은 철품위가 높고 매장량이 많은것으로 하여 보배광산으로 되였으며 은률광산과 함께 서부지구의 대야금기지들에 쇠돌을 대주는 굴지의 광산으로 되였다.
광산에서 나온 버럭이 오늘은 큰 산을 이루었으니 금산은 인공산이였다.
사람이 산을 만든것은 현실이였다. 사람의 힘은 실로 막강했다. 하지만 그 힘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복이 되기도 하고 화가 되기도 한다. 인간의 힘이 오히려 재난을 가져온다면 그 이상 통탄할 일이 없을것이다.
금산의 연원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광산지구에서 오직 한사람 곱슬머리가 파파 세서 흰 명주실꾸레미를 이고있는것 같은 구순로인 하나뿐이였는데 그는 인공산을 바라볼 때마다 노여움에 속을 태우며 만나는 사람마다 손을 부여잡고 마음속 의분을 헤쳐보이군 했다.
…멋 모르는 짐승도 제 둥지는 중히 여긴다. 둥지안의 깃털 하나도 정히 다루어 비바람 한점 스며들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 광산의 실태는 어떠한가. 박토처리를 선행하라는것은 당의 뜻이다. 그 뜻을 어기고 사방 벌둥지처럼 쑤셔먹기만 하다나니 지금은 온통 물구뎅이 천지다.
봐라, 거기서 나온 버럭이 모여 저 인공산을 이루었다.
농사군이 제 터밭에 각담무지 쌓는것을 보았는가.
그것이 마음에 걸려 몸소 초겨울의 찬날씨에 광산을 찾으신 우리 장군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던가. 굴진과 박토를 선행하라고 하시면서 막장에서 자동차로 실어올려다 버럭더미를 쌓아놓는 방법으로 처리하면 많은 농경지가 못쓰게 되고 오래지 않아 광산가까이에 있는 마을까지 옮겨야 하기때문에 운반거리가 멀어지고 품이 더 들더라도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던가.
벌을 받았다. 장군님의 뜻을 받들지 못하고 조상이 물려준 땅을 어지럽혀놓았으니 벌을 받아 싸다.…
로인은 이 말을 할 때마다 목에 굵은 피대를 세우군 했다. 이러한 그를 두고 주책없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으나 많은 사람들은 로인장으로가 아니라 아바이선생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특별한 경력이나 학력이 있는것도 아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바이선생으로 불리우고있는것은 그가 이야기하기를 좋아했고 그 이야기가 그른데 없이 다 옳고 귀맛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즐겨들었으며 휴식일같은 때는 담배갑이나 술병을 들고 년로보장을 받고있는 그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그는 고루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시국담을 많이 하였다. 사람들은 그의 시국담을 좋아하였다. 아바이의 시국담이라는것은 사실상 신문과 방송에 있는 소리이고 거기에 자기 식의 견해를 좀 붙인것이였지만 사람들은 매우 흥미진진하게 들으며 해박한 식견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나이 여든이 넘어선 오늘까지도 깨알같은 신문을 돋보기도 없이 좔좔 시작부터 끝까지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는 로인이였다.
그가 인류력사에는 크게 세단계의 경제시대가 있었는데 그것은 로동력시대, 자원시대, 지식경제시대라는것, 따라서 지금의 지식경제시대에는 모든 일을 지식에 의거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 리치를 설명하는것을 보면 대단했다. 어떻게 그런걸 다 아는가고 물으면 손가락으로 묻는 사람의 머리를 쿡 지르며 신문을 좀 봐라, 거기에 다 씌여있다고 한바탕 훈시하군 했다.
그는 경력도 남달랐다.
충청북도 진천군의 빈농가의 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1950년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로동판에서 굴러다녔다.
남진하는 인민군대에 의용군으로 입대하여 포병으로 되였는데 어느새 운전기술을 배워 포차운전사로 전쟁 3년간 포연탄우를 헤치며 높은령, 험한 고개를 넘나들었으며 전쟁이 끝나서 제대되자 광산에 배치되여 광석차를 잡았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될 때까지 30년동안 운전대를 놓지 않고 생떼를 쓰는 70나이에 가까운 그를 사람들이 달려들어 강제다싶이 차에서 들어내리웠다.
그는 바로 지난 3월 23일 광산에 오신 김정일동지로부터 《고수》라는 별칭을 받은 광산지배인의 아버지였다. 얼핏 집에 들린 아들로부터 그이를 만나뵈온 소식을 들은 로인은 엉치를 들썩이며 연거퍼 뇌이였다. 고수, 고수… 네가 어릴 때 집에서도 그렇게 불렀다. 고수, 고수…
그리고는 아들을 꿇어앉히고 엄숙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고수는 워낙 이악하느니라. 장군님께서 너에게 고수라는 별칭을 주신것은 이악하게 물을 푸라는 뜻일게다. 장군님과 한달로 약속했으니 하루하루를 목숨처럼 여겨야 한다.…》
아버지의 훈시가 길어질것을 느낀 지배인이 《하루는 벌써 지나갔습니다.》하고 자리를 차고 일어서서 부엌에 대고 안해에게 하루 세끼 밥을 날라오라는 부탁을 하고는 급히 집을 나갔다.
뒤미처 아버지도 며느리에게 부탁했다.
《나는 하루 한끼면 된다. 내 밥도 날라오거라.》
로인은 침수된 승리광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금산봉마루에 올방자를 틀고앉아 해를 지우군 했다.
이렇게 앉아있는 그의 앞에는 그리 길지 않은 장대에 자그마한 공화국기발이 꽂혀있었고 커다란 비닐버치가 놓여있었는데 버치에 담긴 물속에서 크고작은 잉어와 메기가 헤염을 치고있었다.
매우 이채로운 광경이였다.
하루는 림태섭이가 여기로 올라왔다. 그는 내각의 파견으로 황해남북도의 파철수집을 지휘하면서 이따금 여기 물푸기전투장에도 들리군하였다.
도내 양수기들을 운반하기 위하여 발바닥이 닳도록 뛰여다닌 그였다.
지금은 농번기전으로 양수기를 돌려주어 제꺽 가동시키기 위해 짬짬이 양수기정비를 선행시키느라 열을 올린다.
미리미리 정비를 선행시켜 농사일에 지장을 주지 말자는것이다.
《로인장, 여기서 뭘 하십니까?》
매번 광산에 올 때마다 여기 금산봉의 이채로운 광경에 눈길이 갔던 그는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물이 축나는 재미를 보고있지요. 저것 보시우, 하루가 다르게 쑥쑥 내려갑니다.》
《예.》
산마루에서 보니 물이 크게 줄어든것이 알린다. 대형양수기들이 인공호수를 방불케 하는 드넓은 광구를 흡반처럼 물고늘어져 빨아낸 물이 허연 물바래를 일으키며 사품쳐 흘러간다.
무슨 큰 보탬이 되련만 그래도 마음은 그렇지 않아서 비닐소랭이며 바께쯔를 손에 든 사람들이 하얗게 늘어서서 물을 푸는데 개구쟁이 아이녀석들도 덩달아 들까불며 분주탕을 피운다.
반두를 들고 물속에서 튀여나는 물고기잡이에 여념이 없는 애녀석도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맘때면 광구주위를 에돌며 첫물냉이나 달래를 캐던 아낙네들까지도 떨쳐나 치마폭을 접고서서 물을 푼다. 온 광산이 다 떨쳐나선것 같다.
《참 별나지 않소. 장군님께서 다녀가시자 이런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있으니…》
로인은 허연 구레나룻을 내려쓸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장군님께서 몸소 찾아오시여 광부들의 가슴에 불씨를 지펴주시였는데 어련하겠습니까.》
《지당한 말이웨다. 젖은 장작개비에 불이 달릴리 만무하지요.》
《예?》
림태섭은 로인의 곁에 앉으며 《그건 어떻게 하시는 말씀인가요?》하고 흥미를 가지였다. 로인의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끌려든것이였다.
로인은 《예로부터…》하고 그의 물음에 직판 대답하지 않고 이야기를 슬슬 에둘러갔다.
《예로부터 조선사람은 문명하고 총명하고 용맹했지요. 유구한 세월 무슨 경난인들 안 겪고 무슨 일인들 못해냈겠소?》
《예, 력사를 더듬어보면…》하고 림태섭이 말북을 돋구어주자 성수가 난 로인은 《멀리 둘러볼거나 있소.》하고 한마디 던지더니 눈을 지그시 감고 읊조리듯 말했다.
《예로부터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은 인류발상지의 하나로서 여기서 슬기롭고 선량하며 근면하고 례의에 밝으며 성품이 유하고 노래도 유순한것, 색갈도 은근한것을 좋아하는 맑은 아침의 나라 사람들이 살았으니 그들은 일찌기 인류의 4대문명과 함께 대동강문화를 창조했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천문대를 세우고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문명한 민족으로 이름났는데 그 문명도 리치를 따지면 우리 광산과 인연이 없는것이 아니겠은즉 물산이 흔한 대동강류역에 살던 민족이 로천에 드러난 흔한 광채를 보고 그 가치를 가려보지 못했겠는가 하는거외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림태섭은 머리를 끄덕이며 로인의 말에 공감을 표시했다.
로인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그뿐이 아니지요. 오랜 세월 남의 땅을 넘겨다보지 않고 태묻은 제땅에서 산천을 가꾸며 오손도손 근면하게 살아가는 소박한 민족을 우습게 알고 접어들었던 외적은 그 얼마이며 그들의 머리우에 번득이던 우리의 서슬 푸른 칼날은 그 얼마였고 그 숱한 병쟁기들에 든 이 고장의 쇠붙이는 몇천몇만근이였겠는가 하는거외다.》
《물론이지요.》
림태섭의 응수에 로인은 손사래부터 저으며 말했다.
《그러던 칼날에도 녹쓴 날이 있었으니 음풍영월로 세월을 보낸 조선봉건왕조 500년의 굳잠에 나라잃고 땅잃고 조선사람의 말과 글, 성과 이름까지 다 빼앗겼으니 이 땅에 남은것이 뭐가 있었겠소.》
로인은 지써 감았던 눈을 번쩍 뜨더니 불끈 틀어쥔 주먹을 내흔들며 불을 토하듯 계속했다.
그러니 이 나라 조종의 산이 가만있을리 있었겠는가.
드디여 백두의 용암이 불을 뿜었다. 보천보와 무산지구의 불길이 조선사람은 죽지 않았다는것을 가슴후련히 보여주었고 간삼봉과 홍기하골짜기에 쌓인 왜적의 시체더미들이 조선사람이 어떤 민족인가를 등골이 서늘해지도록 가르쳐주었다.
해방후에는 미국놈들이 기여들었지만 이 땅에서 거만한 코대가 꺾어지고말았다.
총창에 찔리우고 총탁에 얻어맞고 복수탄에 맞아죽을 때에야 놈들은 조선사람이 어떤 민족인가를 똑똑히 알았을것이다. 그런 민족이기에 이 나라는 백년이 걸려도 다시 일떠서지 못한다고 뇌까리던 놈들이 기절초풍하게 벽돌 한장 성한것 없는 페허를 털며 천리마가 날아오를수 있게 하였다.
하여 원쑤들의 머리우에 쇠물폭포를 들씌우며 뜨락또르, 자동차, 굴착기, 공작기계들이 줄줄이 쏟아져나왔으니 이 또한 쇠돌을 캐는 우리 광산의 자랑이 아니겠는가.…
로인이 일장설화를 하고나서 말을 끊었을 때 림태섭은 《로인장은 아는것이 대단합니다.》하고 감탄의 말을 하였다.
《아는것이 아니라 넋이지요.》
로인은 당치 않은 말을 한다는듯 찌프린 낯으로 림태섭을 흘깃 바라보았다.
《이전에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넋이라구 하잖나요, 넋은 아무에게나 다 있는거지요. 무슨 일을 했건 상관있겠소!》
《아, 그렇군요, 미안합니다.》
《미안할것까지야… 나에게 대학교사를 하지 않았는가고 묻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요, 헛허… 참, 어른이 나에게 뭘 물은것 같은데?》
《젖은 장작개비란 말이였습니다.》
《옳수다, 예로부터…》하고 로인은 말을 시작했으나 또 곁가지를 펼쳤다.
《예로부터 조선사람은 제것을 중히 여길줄 알았지요. 당초에 남의것은 넘겨다보기 싫어했지요. 작아도 커도, 많아도 적어도 제것을 가지고 이 땅에서 대대손손 오륙을 놀리며 살아왔지요.
하지만 세월이 하두 좋아지니 일부 사람들은 제것 귀한줄 모른단 말이웨다.》
《?!》
《사실 지금 물을 푸고있는 저 역사질도 할노릇을 하고있소? 원래야 이런 역사질을 벌리게 하지부터 말았어야지요. 우리같은 로천광산에서야 배수처리만 미리 예견성있게 해놓았으면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지요.》
림태섭은 로인의 말이 하두 갈피없이 흘러가는 바람에 자못 긴장해졌다.
《생각해보슈, 말은 바른대로 오늘을 내다보고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께서는 광산에 오실 때마다 쇠돌을 우물 파먹듯 하지 말고 박토처리를 선행하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그 뜻을 어겼지요.》
로인은 침울한 낯으로 탄식하듯 말했다.
70일전투가 한창이던 1974년 11월 3일 벌바람 세찬 광산에 찾아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물기가 질퍽한 광구에까지 들어가시여 박토처리문제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 일때문에 우정 바쁘신 시간을 내여 찾아오신 장군님이시였다. 석수 흘러내리고 발파맞은 잔석들이 때없이 굴러내리는 광구에 그분을 모신것만도 죄스러운데 광산의 일군들이 또다시 그이께 심려를 드린것이다. 당면한 생산계획에 목이 멘 일군들은 채굴계단 둬개를 채굴하면 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할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일을 그렇게 하면 안된다, 우에서 처리할수 있는 박토까지 아래로 떨구면 박토처리가 걸린다, 이것은 오늘만 보고 래일은 생각하지 않는 하루살이식일본새다, 래일에 살 우리 후대들을 생각 해봤는가? 쇠돌은 오늘만 필요한것이 아니다 라고 하시였다.
그분의 말씀을 전해들으면서 우리 광부들은 울었다.
대대로 이 땅에서 쇠돌을 캘 우리 후대들에게 벌둥지처럼 뚜져먹은 쇠돌밭이 아니라 번듯한 쇠돌밭을 물려주자고 급한 정사를 다 미루시고 돌부리 험한 광구에까지 오시여 마음쓰시게 하였으니 광부된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하지만》 로인의 목소리가 갑자기 격해졌다. 《그후에도 일부 일군들은 그이의 높은 뜻을 새겨안지 못했지요. 현행생산이 급하다고 하면서 모이쫓는 닭무리처럼 사방 뚱기치며 쇠돌만 골라먹었지요. 나라를 찾고지키는 일에는 손톱눈 하나 적셔보지 못한 사람들이 그 땅을 주무르는데는 능수였수다.
어떻소, 나라 파는건 매국노이고 나라 배반하는건 역적이라면 나라땅을 못쓰게 만드는건 뭐라고 불러야 하오?》
《력사가 그 물음에 대답을 줄겁니다.》
림태섭은 마음이 격해졌다.
《사람들은 말하우다. 장군님의 뜻을 따라 박토를 선행하자구 아글타글한 아무개 일군은 어찌어찌 되고 제 몫채기나 하자구 들쑤셔 먹은 일군은 어찌어찌 되였다고 말이우다. 아무개가 지배인을 할 때에는 이렇게 했고 아무개가 지배인을 할 때에는 저렇게 했다 하구 입가진 사람들은 다 말하지요.》
격해난 로인은 숨소리조차 거칠어졌다.
《그게 바로 세월의 대답이 아닐가요.》
《모르겠수다. 결국 온전하게 제자리지킴을 한건 눈치보기 잘한 사람들뿐이니.》
《쇠돌생산계획을 했으니까요.》
《흥.》
로인은 코방귀를 불며 쓰겁게 내뱉았다.
《제 낯내기를 했겠지요. 글러먹었수다. 문제는 이런 일군들 하나 똑바로 식별 못하는 우의 일군들에게도 있지요.》
오랜 광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거침이 없었다.
《옳은 말입니다. 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림태섭은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내각사업에서 생산위주의 총화가 진행된것은 사실이였다. 현실은 모든 사업을 장군님의 사상과 의도를 기준으로 분석총화되고 평가되여야 한다고 절박하게 호소하고있었다.
《어른의 그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
《전 어른이 못됩니다.》
《원, 무슨 말을. 차를 타고오는걸 몇번 보았소. 참, 잊기 전에 한마디 충고하겠소. 광구로 내려갈 땐 꼭 차에서 내려 걸어가오. 한창 땀흘리는 광부들이 차를 타고오면 곱지 않게 보지요.》
《고맙습니다, 명심하지요.》
가식없는 로인의 그 말에 림태섭은 진심으로 자세를 낮추었다.
《어른들이 우에 잘 보이긴 쉬워도 밑에 잘 보이자면 조련치 않소. 어째야 하는가?》
《말씀하십시오, 로인장.》
《어험, 어험…》
로인은 곱슬곱슬한 백발을 몇번 쓸어올리고나서 주저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은 신문에 씌여있는것이든 지어내서 하는것이든 당의 목소리와 어긋나는것이 하나도 없었다.
일군들이 어떻게 되여야 하는가?
크고 뜨겁고 열정적이여야 한다. 무엇이 커야 하는가? 대세를 보는 눈이 크고 밝아야 한다. 한마디로 시야가 넓어야 한다. 대세란 곧 장군님의 뜻이다. 오늘만이 아니라 먼먼 래일까지 그려보시는 장군님의 구상에 보조를 따라세워야 한다.
뜨거운 정을 지녀야 한다. 계획과제를 붙안고 책상머리에 앉아 목청을 돋굴것이 아니라 로동자들의 해진 신발을 먼저 볼줄 알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수백리길을 드달리는 뜨거운 인간애를 지녀야 한다. 기술에서는 전문가이상으로 해박하고 걸린 문제를 능숙하게 풀어나가는 실력가형의 일군이 되기 위하여 배가의 열정을 기울여야 한다.
아는것이 곧 힘이다.…
이렇게 말하는 로인의 목에 굵은 피대가 살아났고 피아노의 최고음건반이 내는 소리처럼 그의 목소리가 더 오를데없이 높아졌다. 로인은 충고가 아니라 엄하게 요구하고있었다.
《어른, 내 말을 명심하시오. 자기의 걸음이 한발자욱 떠지면 한개 단위가 통채로 뒤걸음치고 자기가 한걸음 앞서면 자기 단위가 그만큼 앞서며 그 걸음들이 모여 조국이 큰 자욱을 뗀다는것을 명심하시오.》
《예.…》
림태섭은 진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에서나 당조직에서가 아니라 마디진 손가락과 말투로 봐서 오랜 광부가 분명한 이름없는 로인에게서 말을 듣고있다는 의미에서 충격이 비할바없이 컸던것이다.
《고맙습니다!》
그는 여위였으나 억센 로인의 손을 두손으로 감싸쥐고 인사하였다.
《고맙긴 나도 같소, 어른!》
이때 림태섭은 로인의 눈시울이 슴벅이는것을 보았고 그래서 뭔가 더 듣고싶었다.
《로인장, 젖은 장작개비이야기를…》
로인은 《아, 이 정신 봤나?》하고 머리를 쳤으나 이번엔 또 비닐버치를 앞으로 당겨다놓으며 그더러 그안에서 헤염치고있는 물고기를 보라고 하였다.
그러나 로인의 입에서는 물고기와 관련된 말들이 아니라 전혀 예상치 않았던 말이 튀여나왔다.
《장군님께서 오시기 전에 한걸음 먼저 온 어른들이 있었지요. 그들이 기껏 결심했다는것이 석달이였소. 석달후에야 광석을 캘수 있다는걸 의미했소. 이건 황철이나 강선도 석달동안 서있으라는 죄되는 소리나 같은거였단 말이요! 조국더러 석달 멈춰서라는것이나…》
순간 림태섭은 머리에 된타격을 받은것 같았는데 그 석달이란 자기가 한껏 용단을 내려 내놓았던 안이였기때문이였다.
그가 정신차릴 사이가 없이 로인의 말이 울렸다. 그것은 림태섭에게 다시 가해진 타격이였다.
《광부들을 젖은 장작개비로 본거지요. 믿지 않았단 말이웨다! 쉽게 불이 달리지 않을거라구… 난사는 이게 큰 난사웨다!》
《…》
《그러나 우리 장군님께서는 믿으시였소. 광부들의 가슴에 불이 달리리라는것을! 무엇을 믿었는가! 우리 광부들의 진정을 믿으시였던거요.》
여기서 잠시 말을 끊은 로인은 버치에 담긴 물고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어른, 이 버치를 들여다보시오. 수염이 한뽐이나 되는 이놈은 증조할아버지, 이놈은 할아버지 또 이 퍼들쩍거리는 놈은 아버지, 요놈 저놈은 아들, 손자… 몇대가 살아왔소. 침수된 광구에서… 이만큼 번식하자면 10년도 더 걸렸을거요. 그 10년어간에 물고기들은 대물림을 하며 자랐지만 광부들의 가슴엔 재가 찼소. 광부들에게도 소박한 꿈이 있소. 번듯한 대처에서 호강하며 살자는게 아니요.
쓸쓸한 버럭더미에서 돌가루먼지만 날려도 여긴 우리가 태를 묻고 자란 고장이요. 나서자란 제고장에서 쇠돌밭을 푼푼히 마련해놓고 대를 이어가며 당을 받들어 나가겠다는것이 우리 광부들의 소원이자 꿈이요. 그 꿈이 물에 잠겨 빛도 없이 스러질 때 우리 광부들의 가슴이 얼마나 아팠겠소. 하지만 어떤 일군도 그 아픈 마음을 알려고 안했지요. 알고도 모르는체 했는지… 장군님께서 오셔서야 정신을 차렸지요. 그것도 큰 재구를 저지른 다음에야 말이우다. 장군님께서 침수된 광구를 돌아보시며 물고기들이 있는가고 물으시자 여기 일군들이 오새없이 큰 물고기자랑을 했다질 않소. 그것이 장군님께 얼마나 큰 심려를 드리는가를 알지도 못하고 말이요.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며 그러면 여기에 양어장을 꾸리는것이 어떻겠는가고 재차 물으셔서야 정신을 차렸다니 이런 망녕된 일이 어데 있겠소. 10년세월 침수된 광구만 보다나니 광부의 넋이 싹 씻겨져버렸던가 보우다. 그런데 숱한 사람들이 10년을 두고 어쩌지 못한 일이 며칠동안에 이루어졌소.
물고기세상을 뒤집어놓은건 안된 일이지만 광부들의 꿈이 살아났단 말이요. 그 꿈을 이어주자고 우리 장군님께서 찾아오시였던거요. 광부들의 타는 가슴에 새 희망의 생명수를 부어주자고 찾아오셨단 말이요. 그러니 어찌 불이 붙지 않겠소.》
무슨 말로 응답한단 말인가. 림태섭은 스승앞에 선 학생의 심정으로 말없이 머리를 숙였다.
《어험, 이만하기요.》
로인은 오금이 저리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예.…그런데 로인장, 저 기발은?》
림태섭은 장대에서 펄럭이고있는 퇴색한 자그마한 기발에도 사연이 있는것 같아 물었다.
《아, 그것 말인가?》
말을 끝내려던 로인은 기뻐하며 또 이야기판을 펼치였다.
그 기발은 로인이 의용군으로 입대할 때 남해기슭에 꽂아놓고 얼른 돌아오라고 하면서 아버지가 준것이였다. 그 기발은 3년간 로인의 포차에서 포연에 그슬렸다. 그러나 기발은 반세기를 넘어 10년가까이 더 흘러간 지금까지 남해기슭에 가닿지 못했으며 오매에도 잊지 못할 로인의 통일념원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러니 기발에는 죽어도 잠들수 없는 로인의 령혼과 불타는 또 하나의 넋이 깃들어있는셈이다.
로인이 물푸기로 벅적거리는 광구의 바닥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여기에 기발을 꽂아놓은것은 저 바닥에서 일하는 내 아들녀석이 보라는거요.》
그 말에 림태섭은 아까부터 묻고싶었던것을 물었다.
《아들이 누굽니까?》
로인의 모색이며 말투, 곱슬머리가 광산지배인과 같아보였던것이다.
아니나다를가 로인의 입에서 아들이 광산지배인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이곳에서는 어른인셈이지요.》하고 로인이 말을 잇는데 표정에 어딘가 못마땅해하는 빛이 어렸다.
《아들녀석더러 물을 다 푼 다음 이 기발을 흔들면서 김정일장군 만세를 부르라고 했더니 참, 답답하기란…》
《아들이 뭐랍니까?》
《그런 만세는 함부로 부르는게 아니라나요. 그래서 냅다 소리쳤지요. 전쟁때 누구 승인받고 김일성장군 만세를 불렀다더냐? 언쟁한건 그뿐이 아니지요.》
《뭐가 또 있습니까?》
림태섭의 물음에 로인은 갑자기 그 어떤 자기 설음에 겨워 한참 눈을 슴벅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에게 몇살 아래인 동생 하나가 있었소. 이게 응석받이여서 어릴 때 노상 업어달라구 칭얼거리였소. 그럴 때마다 나는 줴박아주군 했소. 그후 한날한시에 의용군에 입대해서 싸우다가 광산에 배치받아 한집에서 살댔는데 그만 먼저 저세상사람이 되였소. 지금 지배인을 하는 그애가 태여났을 때 <고수>라고 이름을 붙인건 그 삼촌이였소.
이번에 장군님께서 아들녀석에게 <고수>라는 별칭을 달아주시였을 때 그 동생 생각이 나면서 장군님께 큰절을 드리고싶었소.…》
로인의 슴벅거리던 두눈에 끝내 뜨거운것이 흘러내리였다.
말을 끊고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나서 로인이 계속했다.
《그래서 아들녀석에게 그 생각을 말했더니 또 펄쩍 뛰는게 아니겠소? 장군님앞에 아무나 막 나서는게 아니라나요. 내 원, 기가 막혀서…어른이 되면 속에 뭐가 걸리는게 그리도 많은지?》
《…》
로인이 하는 말을 주의깊게 들은 림태섭이로서도 생각되는것이 많았지만 한마디 간단히 그러나 명백하게 말해주었다.
《그건 장군님의 뜻이 아닙니다!》
4월 23일 새벽 재령광산의 전체 종업원들과 가족들은 물론 가두의 녀성들까지 총동원되여 승리광구바닥에 남은 마지막감탕을 퍼내는것으로써 김정일동지의 명령은 드디여 수행되였다. 이 감격적인 순간에 고수지배인은 아버지에게서 넘겨받은 포연에 그슬리고 사연이 많은 그 공화국기발을 창공높이 휘두르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만세!》라는 구호를 목청껏 웨치였다.
수천수만군중이 이에 화답하였다. 그 만세의 웨침은 광구에서 터져나와 드넓은 나무리벌 멀리까지 울려갔다.
그후 현지에 나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고수, 내 다 보고를 받았소. 참 잘했소!》라고 지배인의 손을 꽉 잡아쥐고 계속하시였다.
《동무의 아버지가 절을 하고싶다고 했다는데 오히려 반대요. 내가 로인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싶소!》
그러시고는 수행한 일군들을 향해 돌아서시였다. 그이의 존안에 지배인을 대할 때 넘치던 환한 웃음은 사라지고 엄숙한 빛이 어리시였다.
《오늘의 대고조는 모든 일군들에게 혁신적안목을 요구하고있습니다.》
그에 대해 뭔가 더 설명하려는듯 하시던 그이께서는 《그것은 새로운 인민관입니다. 돈이나 원자탄보다 강한 무기인 정신력은 위대한 인민, 위대한 민족의것입니다!》하고 짧게 말씀하시였다.
허나 길지 않은 그 말씀은 긴 메아리로 되여 무한한 우주공간으로 끝없이 울려가는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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