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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제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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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3-03-24 09:36 조회6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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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아히 치솟은 랑림산줄기를 에돌며 직승기 한대가 날고있었다.

태고연한 정적만이 흐르던 심산골에 울리는 비행기의 첫 동음이였다. 아직 인간의 발자취가 채 미치지 못한 대자연의 품에서 생활을 영위해가던 뭇생들이 저저마다 놀라움에 몸을 솟구듯 숲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산높고 골이 깊어 수원이 풍부한 랑림산줄기이다.

비행기가 선회반경을 조금만 넓혀도 청천강과 장자강의 상류가 다같이 시야에 든다.

청천강의 시원은 동신군 갑현령이고 장자강의 시원은 룡림군 광성령 서쪽비탈면이다.

직승기에서는 청천강의 지류들인 대룡강, 구룡강, 희천강과 장자강의 지류들인 후지강, 간북천, 남천이 다 내려다보인다.

직승기가 그 강들을 보려고 날고있는지 어쩐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직승기에 누가 타고있는지는 더더구나 모른다. 멀리 고공에서 날고있으니 보는 사람도 없고 볼 사람도 없다.

설사 본다고 해도 비행련습을 하고있는것으로 알뿐이다.

직승기는 오래도록 랑림산맥의 높낮은 산줄기를 누비며 날고있었다. 그것이 불과 몇해전 일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 희천전역을 결심하신것은 바로 그무렵이였다. 그때 그이께서는 당과 국가, 경제기관의 지도일군들을 집무실로 부르시였다.

6자회담에서 9. 19공동성명이 채택됨으로써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듯 하였지만 미제의 대조선정책에서는 달라진것이 없었다. 오히려 회담의 막뒤에서 대조선포위환을 더 바싹 조이고있었다. 우리를 제도적으로 압살하려는것은 미국의 변함없는 국책이였다.

이것을 잘 알고있는 일군들은 누구나 다 변화되는 정세의 추이를 가늠해보며 긴장한 낯빛으로 그이의 집무실에 들어섰다.

그러나 그이의 생각은 다르시였다. 적들과의 치렬한 정치군사적대결속에서도 한시도 경제를 소홀히 하신적이 없는 그이이시였다. 정치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이 따로 있는것이 아니라 하나로 있는것이다. 경제가 없이는 정치도 국방도 없다.

이것이 그이의 지론이시였다.

사회주의시장의 붕괴와 제국주의자들의 경제봉쇄로 하여 기간공업이 흔들리고 제국주의반동들이 딸라를 휘둘러 용광로마저 헐어가려고 할 때 대용단을 내리시여 그것을 지켜내신 그이이시였다.

그이의 단호한 조치로 하여 우리의 기간공업은 명맥이 끊기지 않았으며 생산잠재력을 보존하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조국이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던 그 어려운 나날에도 경제활성화를 위한 소중한 씨앗들을 처처에 심어놓으시였다. 지난 몇해동안만도 수많은 공장기업소들이 현대화되고 중요대상들이 완공되여 인민경제의 물질기술적토대와 생산잠재력이 한층 강화되였다.

주체철의 생산체계가 어떻게 심화되고 CNC기계공업의 맹아가 어떻게 고고성을 터쳤으며 남흥과 흥남, 2. 8비날론의 생산토대가 어떻게 새로 일떠서게 되였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못하다.

이제는 일떠설 때가 되였다. 기간공업의 토대가 굳건하고 우월한 사회주의경제제도가 있는 한 두려울것이 없다. 한해 잘 준비해가지고 2009년부터는 혁명적대고조를 일으켜야 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일군들에게 열렬히 호소하시였다.

《인민경제의 선행부문, 기초공업부문을 추켜세워 사회주의경제강국건설의 진격로를 열어나가자!》

세계적으로는 경제강국의 징표를 국민총생산액으로 꼽고있다. 하지만 우리의 징표는 경제의 자립도이다. 자기의 자원, 자기의 기술, 자기의 힘에 얼마만큼 의거하고있는가가 우리의 기준이다. 이 기준에서 볼 때 우리의 경제강국이 결코 멀리에 있는것이 아니였다.

전력만 보아도 우리 나라에는 우리의 자원에 의거한 수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가 기둥을 이루고있다.

기술자들의 진영도 모두 우리 사람들이다.

우리가 쏘아올린 인공지구위성도 우리 힘, 우리 지혜, 우리 기술의 산물이다.

우리 인민은 세세년년 자기 땅에서 농사지은 쌀로 먹고 살아왔다. 이것은 우리 경제의 자립도의 높이를 말해준다. 자립도의 높이이자 정신력의 높이이다. 백두밀림의 설한풍속에서 자체로 병기창을 설치하고 연길폭탄을 만들어 일제를 전률케 한 우리 인민이다.

우리는 이것을 백두의 혁명정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이라고 말한다. 바로 그 정신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엄혹한 시기 강성국가건설의 휘황한 설계도를 펼칠수 없었을것이다.

이제 금속공업에서 비콕스화를 완전히 실현하고 유기화학공업에서 원유의존도를 줄인다면 우리 경제의 자립도는 훨씬 높아질것이다. 바로 이를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오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바로 이를 위하여 고난의 강행군길을 앞장서 걸으시는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우리 인민은 그것을 주체라는 하나의 사상에 집약화하고 자립이라는 하나의 구호로 정식화한다. 만약 경제의 자립도가 없었더라면 사회주의붕괴와 련이어 덮쳐드는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책동을 이겨내지 못했을것이다.

2009년도 인민경제계획을 짜면서 금속공업의 주체화, 비료의 주체화, 섬유의 주체화를 목표로 내세운것은 가급적으로 인민들의 먹는 문제, 입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와 함께 기간공업을 비롯한 전반적인민경제의 자립도를 높임으로써 경제강국건설을 다그치려는 전략에 따른것이였다.

이것은 우리 당이 오래전부터 추진시켜온 경제전략이였다. 장장 60여년나마 이어온 적들의 악랄한 경제봉쇄책동은 우리 당이 선택한 경제전략이 얼마나 정당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자주 말씀하시였다.

아무리 국민총생산액이 높다해도 외국에 의존한 나라를 경제강국이라고 할수 없는것이다. 《쎄브》에 가입했던 나라들의 경우를 보라. 쏘련이 재채기를 하면 감기에 걸리던 그들은 종당에는 중병에 걸려 운명을 마쳤다. 미국의 손탁에서 놀아나는 나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 미국에서 일어난 《금융해일》에 휘말리워 허우적이는 나라들이 좀 많은가.

우리가 정한 경제강국징표는 진리이다.

지금은 우리가 좀 못먹고 못살아도 절름발이경제를 후대들에게 넘겨줄수는 없다. 진리는 정의이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그 승리를 위하여 그이께서는 또다시 현지지도길에 오르시였다.

이해에 어떤 일이 있어도 자립경제건설에서 기본고리로 되는 중요전선들에서 획기적인 전변을 일으키시려는것은 그이의 확고한 결심이시였다.

인민군군인들을 희천전역에로 부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께서 먼저 희천으로 떠나시였다. 군인들이 따라올 길을 열어나가시는 척후길이라고 할수 있었다. 아직은 그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초행길이였다.

강민혁이도 수행하였다.

전천까지는 도로가 괜찮은편이였으나 전천으로부터 언제가 일떠서게 될 룡림군까지는 오불꼬불한 막길이였다. 전천에서 곽밥으로 저녁식사를 한 일행은 룡림읍까지 오는데 퍼그나 시간을 소비하였다.

길이 나쁜데도 원인이 있었지만 도중에 자주 차를 세우고 협의회를 가졌기때문이다. 간단간단한 협의회였지만 토의된 문제는 어느 하나도 가벼운것이 없었다.

방대한 공사용물동수송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도로확장문제, 침수구역으로 될 동신군소재지를 옮기는 문제, 공사용전력선을 끄는 문제 등 매우 무거운 문제들을 김정일동지께서 재빠른 판단과 단호한 결심으로 제꺽제꺽 결론하시였음에도 불구하고 룡림군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넘어섰다.

룡림군의 일군들이 숙소를 준비해놓고있다가 쉬고가실것을 간청드렸으나 그이께서는 《척후길이란 원래 밤길인거요.》라고 웃어넘기며 행군을 계속하시였다.

룡림읍에서 언제자리로 내정된 지점까지는 먼길은 아니였으나 강변을 따라 길을 내다나니 자동차길이 아니라 소형뜨락또르나 소달구지가 다닐 정도의 비탈진 길이였다. 이 길을 극복하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훤히 밝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얼마쯤 떨어진 구릉진 언덕을 가리켜보이시며 올라가보자고 하시였다. 언덕밑은 겨우내 내린 눈에 싸여 별로 골이 깊어보이지 않았다.

한발 앞서나갔던 부관이 허리치는 숫눈길을 헤치다가 돌아섰다. 가슴노리까지 눈이 묻은 부관을 보고서야 일군들은 키높은 떨기나무우듬지만이 눈판우에서 한들거리는것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여기까지 왔다가 눈요기나 하고 가자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성큼 눈길에 들어서시였다.

《장군님, 눈이 허리를 칩니다.》

부관이 황급히 앞을 막아나섰다.

《그래서 현지지도이지 그렇지 않으면야 무엇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로상에 흘려놓겠소. 차라리 평양에 앉아서 도면을 보는게 낫지. 안 그렇소?》

그이께서는 헌헌하게 웃으시였지만 일군들은 생각이 깊어지지 않을수 없었다. 흔히 사람들은 현지지도라는 말을 너무도 쉽게 입에 올린다.

그속에 어려있는 장군님의 천만로고를 너무도 모르고있다.

나라의 크고작은 모든 시책들을 직접 현지를 밟아보시고야 결심하군 하시는 그이이시였다.

이것은 수령님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어길수 없는 철칙이였다. 오늘도 그 길을 이어걸으시는 그이이시였다.

이윽하여 언덕우에 오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리를 굽히시고 점도록 도면을 현지와 대조해보시였다. 그러시는 그이의 눈에 젖은 야전솜옷자락은 추위에 다시 꾸둑꾸둑 얼어들고있었다.

겨울은 물러가고 봄은 왔으나 날씨는 아직 쌀쌀하였다.

수행원들은 그이에 대한 걱정으로 자기들의 추위는 잊고있었으나 사실은 귀뿌리가 빠질 지경이였다. 멀리 동쪽 산발에 해가 솟아올랐다. 그러자 추위는 한결 더해졌다. 은백색해빛이 얼굴이며 손등, 목덜미에 따끔따끔 잔침질해댔다.

때마침 그이의 음성이 울렸다.

《의견이 없소. 설계가 참 잘되였소!》

그 말씀에 수행원들은 대번에 추위를 잊고 온몸이 후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추위를 몰아온 은백색의 해빛속에서 그이의 존안이 홍조로 빛나고있었다.

그 홍조가 자기들의 언몸을 덥혀주고있음을 의식하면서 그들도 그이를 따라 얼굴에 밝은 빛을 피워올렸다.

그러나 그이의 다음말씀이 그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날려버렸다.

《공사를 10년이 아니라 3년으로 앞당길수 없을가? 3년!》

잘못 들은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너무도 돌연히 울린 음성이시였다. 그도 그럴것이 10년은 국가계획으로 굳어진 공사기간이며 그이께서도 여러차례 결론하신 기간이였다.

그런데 3년이라니?! 10년도 아름찬데… 모든 사람들이 아연해졌는데 오직 한사람 차철군이만은 뜨거운 마음을 안고있었다.

아까 강변길초입에 들어섰을 때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곁에 앉은 차철군에게 말씀하시였다.

《공사기간을 앞당길수 없을가!》

어조는 조용했으나 내심에 무엇인가 세차게 끓고있다는것을 느끼며 차철군은 벌써 몇번째 되뇌이시는 그 말씀을 묵묵히 듣고있었다.

우리 땅을 가로타고앉아 자기네 국토처럼 뻔뻔스럽게 주물러대던 일제는 1930년대말까지 우리 나라의 수력자원에 대한 탐사를 끝마쳤다. 이에 따라 장진, 부전, 허천, 수풍 등지에서 수전공사를 벌려놓았다.

그러나 제일 군침이 도는 희천일대에는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일본의 대재벌 노구찌가 비행기를 타고 돌아보고서는 100년공사라고 포기해버렸다던가.

2년전 김정일동지의 말씀을 받들고 희천일대상공을 돌아본 일군들사이에 오고간 이야기였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노구찌가 비행기를 타고왔댔다는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100년공사로 보았다는것은 사실인것 같다, 그곳 지세가 여간 험하지 않고 공사조건이 매우 불리하다, 일본제국이 가장 번창하던 시기에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것이 우연치 않다고 하시다가 말씀끝에 《그러나…》하고 힘있게 언명하시였다.

《우리는 10년에 해냅시다!》

그때 차철군은 물론 모든 수행원들이 크게 놀라와했다.

동양제패를 꿈꾸던 일제가 100년공사라고 손을 들었던 희천공사를 지금형편에서 착공한다는 그 사실자체가 사변적인것이였다.

일군들이 답변을 못 올리자 그이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그렇게 일을 늦잡다가 우리 대에 완공을 보아낼수 있을가?》

그이께서는 례사롭게 말씀하셨지만 장내는 순간에 얼어붙었다.

《장군님!》

일시에 울음엉킨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우리가 빛을 못 보는거야 문제가 아니지.》

김정일동지께서는 흔연하신 어조로 계속하시였다. 《문제는 후대들이 그 덕을 못 보는거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다음대까지 그 덕을 못 보게 할수야 없지. 우리가 고생하면 후대들이 그만큼 덕을 입을게 아니요.…》

그이의 절절하신 말씀과 세심한 구상에 의하여 공사기간이 크게 단축되였다. 그 기간을 또 줄이려 하신다, 그것도 3년안으로!

그이의 의도와 뜻을 실천하는데 습관된 차철군이마저도 쉽게 대답을 올릴수 없었다.

그가 잠시 머뭇거리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시선을 돌려 앞에 앉은 부관의 어깨너머로 병풍처럼 둘러막힌 험한 령들을 바라보시더니 인차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시고 눈을 감으시였다. 여느때 같으면 운전사 못지 않게 긴장하여 앞길을 살피셨을것이다. 허나 지금은 몹시 지치고 피곤하신듯 하셨다.

새해에 들어와 오늘까지 쉬임없이 강행군을 하시니 어찌 그러시지 않으랴.

미구에 차안이 조용해지면서 고르로운 차소리만 들려왔다. 그러나 지금 차철군은 그 고르로운 차소리도, 방금 안타깝게 동의를 바라시던 공사기간문제도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덧물에 두텁게 얼어붙은 강변의 소로길이 전조등불밑에서 번들거렸던것이다.

온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눈더미까지 군데군데 덧쌓여있어 자칫 잘못하면 차가 지쳐내릴판이였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는것은 캄캄한 하늘뿐이였다.

차철군은 손에 땀을 쥐였다. 차가 당장 지쳐내릴것 같은 공포심에 그는 정신을 잃을 지경이였다. 소로길의 오른쪽은 칼벼랑이고 왼쪽은 얼음속으로 시퍼런 급류가 흐르는 강이다.

고산지대여서 아직 도로에는 전혀 풀릴념을 안하는 얼음버캐가 차바퀴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바퀴에 깔려드는 얼음버캐 깨여지는 소리가 아츠럽게 들려왔다. 차가 조금만 지치거나 뒤뚝거려도 치명적인 일이 터질판이였다.

아무리 요구하신다 해도 이런 길로 그이를 모시고 떠난 후회가 온몸을 사로잡았다. 후회정도가 아니라 도저히 자신을 용서할수 없는 죄의식에 허둥거리며 차철군은 어쩔바를 몰라했다.

《조심! 조심…》

운전사를 타이르는 그의 목소리는 비명에 가까왔다.

오성산의 칼벼랑길을 오르던 광경이 떠올랐다. 그때 지쳐내리는 차를 그이께서도 함께 떠미시였다. 한치만 물러서도 천길낭떠러지에 굴러내릴 위험한 순간이였다. 돌부리를 물어뜯으며 안깐힘을 쓰던 차가 헛바퀴질을 멈추는 순간 뒤로 쏠리는 반충에 몇명의 수행원이 엎어졌다. 톤으로 쏠리는 중량이였다.

그이께서도 흙묻은 어깨를 쓸어만지셨다. 그때 받은 충격으로 그이께서는 오래도록 팔을 쓰기 불편해하셨다.

이것은 차철군만이 알고있는 일이였다. 그런 길을 오늘 또다시 이어가신다. 언제면 이런 길이 끝나겠는지.

차는 최저속으로 번들거리는 얼음길을 극복하고있다.

차안에는 승용차의 발동소리만이 고르롭게 울리고있었다.

이 순간 차철군에게는 그 소리가 자기에게 안정감을 주고있는듯이 느껴지며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 순간에 그이께서 잠드시였다는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차철군은 눈물이 솟구칠 정도로 기뻤다.

언듯 길량옆에 그 어떤 형체가 얼른거렸다. 오른쪽칼벼랑에 웬 군인들이 서로 팔을 겯고 잔등을 벼랑에 붙이고 옹벽을 어루고 서있었다. 왼쪽경사지에는 통나무괴목을 어깨로 받친 군인들이 낭떠러지를 막아 렬을 짓고 늘어서있었다.

전조등빛에 그들이 입은 얼룩덜룩한 전투복이 언듯언듯 드러났다.

인민군군인들임을 알아차린 순간 전천에서 잠시 머물렀을 때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강행군훈련중에 있던 부대지휘관이 승용차행렬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때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지휘관의 얼굴에 그 어떤 범상치 않은 결심이 어렸던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 나타난 부대가 그 지휘관이 인솔한 부대가 아닌가?!

전천에서 여기가 몇리인가? 90리지경 아닌가. 협의회때문에 차가 도중에 몇번 머물러선것은 사실이지만 그 먼길을 달려 차를 앞설수 있단 말인가?!

차철군은 믿을수 없는 현실앞에서 가슴이 터질듯이 흥분하였다.

이때 운전사가 그가 돌아다볼수 있도록 후사경을 돌려놓았다. 그는 이 동작을 매우 침착하게 했는데 차를 몰아야 하는 직분때문에 흥분을 누르는것 같았다.

후사경에 비치인 광경!

10여명의 군인들이 달라붙어 차를 밀고있었다. 그들의 뒤로는 자동차에 붙을수 없는 더 많은 군인들이 따르고있었다. 그들은 두팔을 앞으로 내밀고 자동차를 밀고있는 군인들과 힘과 호흡을 같이하며 소리없이 헐썩이고있었다. 그런 군인들이 스무명인지 서른명인지…

《전천에서 본 동무들이지?》

차안에 조용히 울리는 음성…

그 말씀에 차철군은 후사경에서 시선을 떼고 돌아보았다.

김정일동지께서 이미 사태를 다 짐작하신듯 하셨다.

《그렇습니다, 장군님!…》

차철군은 목이 꺽 메더니 눈물이 왈칵 쏟아져 한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시오! 눈물을 아꼈다 뭘하겠소. 우시오! 실컷…》

그이의 어조에는 그 어떤 격동도 담겨있지 않는듯 하였다. 그러나 그이의 심중에는 피와도 같이 진하디 진한것이 고여흐르고있었다.

자기의 최고사령관에게 끝없이 충실한 우리 군인들의 옹위속에서 얼음길을 극복한 차가 평지길에 들어서서 달리고있을 때 차안에서는 김정일동지의 마디마디 격정에 넘치신 음성이 울리고있었다.

《우리 군인들이 최고사령관이 무엇때문에 애쓰고있다는것을 알고있소. 그들은 우리가 걷는 걸음속에서 부강해질 조국의 래일을 그려보고있단 말이요. 내가 언제인가도 말했지만 빈 밥사발을 놓고 사회주의만세를 부를수는 없소.

그들은 지금 오늘은 좀 어렵지만 자기들의 고향이 선경마을로 꾸려지고 사회주의무릉도원으로 전변될 래일을 그려보고있소. 그속에서 살아갈 자기들의 미래를 보고있단 말이요. 그래서 우리에게 진심을 바치는거요. 사람은 바친것만큼 받아안는거요.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찌기 애국주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자기의 부모형제, 처자들에 대한 사랑, 자기 고향에 대한 사랑, 자기 조국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되는 구체적인 사상감정이라고 가르치시였소.

오늘 우리 군인들은 조국과 인민에 대한 사랑을 최고사령관에 대한 사랑, 최고사령관에 대한 충정으로 표시하고있소. 이 충정심은 지어낼래야 지어낼수 없는 진실한거요! 나는 이것을 고맙게 여기며 그들을 위해서라면 한몸을 기꺼이 바친대도 아까울것이 없다고 생각하오. 차철군동무, 그들의 고향과 부모형제들을 위해서, 그들이 살게 될 강성국가를 위해서 희천발전소건설을 앞당겨야겠소! 3년으로…》

대부분이 장령들인 수행성원들은 3년이라는 사실앞에서 오래도록 굳어져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군인들이였다.

《동무들!》하고 차철군이 대답을 재촉하자 거의 동시에 폭발적인 대답소리가 터져나왔다.

《알았습니다!》

《고맙소!》

김정일동지께서 한손을 높이 쳐들어 그들에게 사의를 표시하시였다.

장령들이 일제히 차렷자세를 짓고 임무를 기어이 수행할 불같은 결의를 다지였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100년으로 잡았던 공사를 우리는 3년에 해봅시다. 이것이야말로 사상과 제도의 대결, 제국주의와의 포성없는 전쟁입니다. 전쟁이니만치 군대가 주타격전선을 맡아야겠습니다. 그들도 우리가 왜 공사기일을 앞당기는지 알것입니다.》

《알았습니다!》

또다시 힘있는 대답소리가 일제히 터져올랐다.

그러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들의 등뒤에 서있는 사민들속에서 강민혁을 찾아내여 앞으로 부르시였다.

《부총리동무, 아름찰수 있는데 군대가 주타격전선을 맡았다는것을 잊지 마시오. 보조를 맞추어야겠소. 특히 세멘트와 강재…》

《알았습니다.》

강민혁이도 차렷자세를 짓고 장령들식으로 대답올리는데 매우 성수가 난 표정이였다.

그 표정을 찬찬히 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 호탕하게 웃으시며 《역시 전기파가 분명해!》하시며 그의 어깨를 툭 치시였다. 《전기파》라는 그의 별칭이 파다하게 퍼진터여서 수행원모두가 소리내여 크게 웃었다. 산정에 울려퍼진 웃음소리는 산악같은 과업앞에서도 끄떡없는 신념과 의지의 표시인듯싶었다.

인민경제선행부문, 기초공업부문에서도 전력에 대한 김정일동지의 관심은 비상한것이였다. 안변청년발전소, 금야강발전소, 녕원발전소, 례성강발전소, 삼수발전소, 백두산선군청년발전소 등 큰 규모의 발전소들이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 일떠섰거나 건설되고있으며 이 기간에 수십, 수백개의 중소형발전소들이 지방자체의 힘에 의하여 건설되였다는 사실만 봐도 알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우리 나라가 전력의 긴장성을 모르고있을 때 벌써 대규모수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건설방향을 제시하시면서 지금은 전기곤난을 모르지만 어느때 가서든 한번은 꼭 땅을 치며 통곡할 때가 있을것이라고 하시였소.

날이 갈수록 긴장해지고있는 전력사정은 수령님의 예견이 얼마나 옳았는가를 현실적으로 보여주고있소.》

이것은 수령님을 잃고 피눈물의 언덕을 넘던 어려운 나날 그이께서 일군들에게 하신 말씀이시였다.

실로 그이께서는 현대산업의 기본동력이 전력에 있다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계시였다.

강민혁에게 별칭을 붙이고 누구보다 각근히 대해주시는것도 이런 각도에서 봐야 할것이다. 그리고 지금 장령들과 인민경제지도일군들이 희천발전소건설을 3년안으로 끝낼것을 힘있게 다짐한것도 그이께서 강성국가건설에 대한 민심의 지향을 체현하고계신다는것과 함께 전력에 대한 그이의 관심을 절감한데 있다고 볼수 있을것이였다.

우리 대에 어떤 일이 있어도 전력공업의 튼튼한 토대를 하나라도 더 쌓아 후대들에게 물려주자는것이 그이의 결심이시였다.

지금 수천수만의 우리 군인들이 그이께서 개척하신 진격로를 따라 기동하고있었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최고사령관을 따르는 길에 승리만이 있다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차넘치고있을것이였다.

한편 평양으로 돌아온 강민혁은 오래간만에 집으로 가서 안해의 사진앞에 한참 서있다가 장군님을 모시였던 그간의 일을 딸에게 알리려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안해를 잃은 후 처음으로 딸에게 쓰는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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