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제7회 > 조선문학예술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4년 4월 24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조선문학예술

2009년 제7회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3-03-15 16:37 조회331회 댓글0건

본문



7

강민혁은 한달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김정일동지를 모시고 중요 공업지대를 돌아보았고 내각에 돌아와서는 2009년도인민경제계획을 작성하느라 사무실에서 침식을 했다.

당시 출판보도물들이 력사적인 12월현지지도라고 명명한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에 대한 현지지도때에 또다시 그이를 모시는 영광을 지니였다. 실로 격동적인 한달이였다. 그 한달동안에 있은 일들중에서 제일 잊을수 없는것이 그이께서 어뜩새벽에 전화를 걸어오신 일이였다. 강민혁이 눈을 좀 붙이느라고 사무실의 긴쏘파에 금방 누웠던 어느날 새벽이였다. 전화종소리에 강민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온 내각이 새로 작성하여 올린 계획을 두고 숨가쁘게 그 결과를 기다리고있던 때였다. 강민혁은 황급히 옷매무시를 다시했다.

김정일동지께서 걸어오신 전화였던것이다.

《집으로 걸었더니 받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닙니까?》

《아, 아닙니다.》

강민혁은 엉겁결에 대답올렸다. 될수록이면 그이께 가정일과 관련한 말씀을 드리는것은 극력 피하는 그였다.

《큰 일군일수록 부인들의 마음고생이 클겁니다. 살림도 넉넉치 못하고… 내가 학생때 어느 일군네 집에 몇번 다닌적이 있는데 그 집 부인이 쌀고생을 하고있었습니다. 그때는 쌀이 남아돌아가던 때인데도 말입니다. 큰 일군네 집이니 손님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나도 그 사정을 좀 압니다.》

강민혁은 아무 말씀도 못 올린채 칼칼해진 목으로 마른침만 넘겼다.

자신께서도 그 사정을 아신다는 장군님의 말씀이 가슴에 얹혀 내려가지 않았다. 어느때인가 어버이수령님을 가까이 모셨던 한 일군으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났던것이다.

해방후 수령님댁에는 늘 쌀이 모자랐다고 한다. 때없이 찾아드는 손님들때문에 하루에도 여러차례나 밥을 지어야 했던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쌀을 더 공급받는것도 없었다. 그러다나니 부엌일을 맡아하시는 김정숙어머님께서는 번번이 가마치로 끼니를 에우지 않으면 안되시였다. 보다못해 일군들이 손님접대용식량이라도 추가하자고 하면 어머님께서는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예로부터 손님대접은 주인의 성의랍니다. 나라쌀을 가지고 생색을 내서야 되겠나요?》

한번은 어떤 일군이 한밤중에 수령님댁 마루우에 쌀 한자루를 슬그머니 가져다놓은적이 있었다. 그때문에 혼쭐이 난것은 경리일군들이였다. 김정숙어머님께서 손수 그 쌀자루를 이시고 찾아오셨던것이다.

《성의는 고맙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이라고 해서 나라의 식량규정을 어겨서는 안됩니다.》

어려서부터 근검정신을 체질화해오신 어머님이시였다. 하기에 어머님께서는 일부 간부집녀인들이 아이들에게 당과류봉지를 들려줄 때에도 자제분들에게 가마치나 터밭에서 가꾼 감자를 삶아 들려주시면서 말씀하시였다.

《이제 아버지장군님께서 잘사는 나라를 세워주신단다. 우리 그때 가서 오늘을 옛말하며 먹도록 하자.…》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김정일동지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가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줴기밥을 좀 들었더니 어떤 사람들은 큰일난것처럼 놀라는데 우리라고 특별히 사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관료주의에 대하여 많이 말씀하시였는데 인민들의 말대로 일군들에게 문제가 있는것 같습니다. 일군들이 딴가마밥을 먹으면 인민들이 따르지 않습니다. 나는 자나깨나 이것이 항상 마음에 걸립니다.》

《장군님!…》

강민혁은 목이 메서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 손자, 손녀들에게 사탕을 풍족히 먹이기 위해서라도 가까운 몇해안에 마련을 봐야 합니다.》

《예, 새겨듣고있습니다 》

《난 지금 내각의 문건을 보고있는중입니다. 철과 세멘트 그리고 몇개의 지표들에서 내각이 정한 수자보다 더 높이 잡아야 할것 같습니다.》

《예?!…》

강민혁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튀여나온 말이였다.

《생산을 담당한 동무의 말을 직접 들어보고 결심하자고 전화를 합니다. 3분의 1입니다!》

3분의 1!

이 놀라운 수자를 들었을 때 강민혁의 뇌리에 처음 떠오른것은 심양에 가게 되여있던 리성민이 성강으로 떠났다는 사실이였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으로 얼마나 놀랐던가.

얼마전에 돌아본 서해지구 야금공장들의 실태가 상기되였다. 서해지구의 야금공장들에 정광을 대주고있는 재령광산의 침수, 석탄을 대주고있는 안주탄전 침수… 자기가 정하고 토의하여 보고올린 수자도 사실상 막연한 생각이 없지 않았는데 그 수자의 3분의 1을 더 올려야 한다니?!

강민혁의 뇌리에는 거대한 방전과도 같은 불꽃이 련이어 일고있었다. 그 수자가 전력, 석탄, 철도운수 등 인민경제의 선행부문을 따라세울것을 전제로 하기때문이였다. 결국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부문의 계획수자도 3분의 1을 더 높일것을 요구하고계시였다.

그런데 형편은 어떠한가?

전력만 봐도 수풍, 장진, 부전, 허천 등 대규모수력발전소들의 저수량이 많지 못했다. 북창화력을 비롯하여 큰 화력발전소들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있다. 화력발전소들에 석탄을 대주고있는 탄전들의 생산실태도 시원치 못했다. 굴진이 선행되지 못하여 탄밭을 마련하지 못했고 쇠바줄, 소철레루, 갱목 등 필수적인 자재들이 보장되지 못하고있다.

석탄을 화력발전소들에 날라주어야 할 철도의 형편도 이와 류사했다. 기관차와 화차가 결정적으로 부족했다. 원료와 자재보장을 따라세우고 전면적인 기술개건이 없이는 선행부문의 생산계획을 더 늘일수 없었다.

그 어떤 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거의나 불가능한 일이였다.

강민혁은 고막이 잉- 울리는 소리를 듣고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오랜 시간 생각에 묻혀 아무런 응답도 못 드렸고 그것으로 해서 전화가 끊어지고말았다는것을 의식하며 당황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콤퓨터에서처럼 순간에 흘러지나간것이였다.

전화에서 그이의 힘있는 음성이 울리였다.

《내각사업을 우리가 밀어주겠습니다.》

강민혁이 이날의 전화대화를 잊지 못하는것은 그이의 마지막말씀에서 받은 충격때문이였다. 그는 최근년간 내각사업에 대한 그이의 비상한 관심을 느껴왔으며 지난 한달동안 실지 체험하였다. 사실상 나라의 경제사령부가 그이의 집무실, 구체적으로 《집무렬차》로 옮겨지고있었다.

지금 강민혁은 그러한 사실을 느낌으로가 아니라 그이의 음성을 통해 확인할수 있었다.

그의 몸은 환희로 달아올랐다. 이젠 됐구나! 하는 환희였다.

허나 다음순간 그는 야릇한 아픔을 느끼였다. 그이의 어깨에 실린 짐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생전에 뭐라고 하셨던가?!

김정일동지에게 경제사업까지 맡길수는 없어. 그의 어깨가 너무 무거워! 경제사업은 어떻게 하나 우리가 맡아야 해, 우리가.》

그 우리란 누구인가?

강민혁은 생각이 착잡하였다.

공화국이 창건된 이래 주석제가 나올 때까지 근 30년간 내각수반직은 수령님께서 맡아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국가주석으로 추대되신 후에도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경제사업을 놓지 않으시였다. 근 반세기동안 차곡차곡 쌓아진 경제의 장성은 사실상 불세출의 위인이 계시여 가능했다. 그런데 오늘 우리 경제지도일군들의 형편은 어떠한가?

강민혁은 오늘의 경제적난관이 적들의 악랄한 경제봉쇄와 련이은 자연피해에 의한것이긴 하지만 중요하게는 일군들의 일본새와도 련결된다고 보고있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자신에 대한 질책으로 이어졌다.

수령님의 업적을 고수하여 경제조직지도사업을 했더라면… 이러한 그가 내각사업을 밀어주겠다고 하신 김정일동지의 말씀을 직접 들었고 며칠후에는 당중앙위원회 회의실에서 경제전선을 직접 맡아안으신 그이를 뵈왔으며 그이를 따라 강선에서 경제전역의 첫걸음을 떼였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그러나 그 기쁨은 너무도 큰 자책을 동반하고있었다. 경제사업부담을 끝내 그이의 어깨에 실어드렸던것이다. 너무도 과중한 부담이였다. 제국주의련합세력의 검질긴 침략책동에 맞서 조국수호의 천만리길을 걸어오신 그이께서 또다시 경제전선의 장도에 오르신것이다.

언제인가 눈보라세찬 훈련장을 찾으셨을 때 한 병사가 올린 불돌이야기를 오늘도 자주 외우시는 그이이시였다.

한점 온기가 그리웠던 그날의 불돌이 새로운 경제전역에서 또 나타날지 뉘 알랴. 강민혁은 가슴이 저렸다.

수령님께서 생존해계시였다면 뭐라고 하시겠는가?…

생각할수록 자신에 대한 허무감만 가슴속에 밀물처럼 쓸어들었다.

강민혁은 빈 전실에 홀로 서있었다.

그가 오래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은것은 일때문이기도 했지만 집이 비였기때문이였다. 두 아들은 현역군관으로 집을 나갔고 데리고있는 막내인 딸 선경은 김책공업종합대학 연구사로 성강에 파견되여갔다. 안해가 혼자서 집을 지키고있었는데 보름전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강민혁은 안해의 사망소식을 먼 북변땅에서 들었다. 부관이 내각에서 련락을 받고 그에게 알려주고 김정일동지께도 보고드리려는것을 강민혁은 두팔을 벌리고 막아나섰다. 그는 간청하였다.

《말씀드려도 기회를 봐서 말씀드리시오.》

성강에서 급히 올라온 선경이가 제 어머니의 마지막길을 바래였고 내각사무국 사람들이 장례를 치르어주었다.

안해는 선반공출신으로 강민혁이 로동현장에서 만나 사귄 녀성이였다. 그는 로동계급의 본태를 잃지 않고 평범한 로동자가 부총리로 될 때까지의 남편의 뒤바라지를 성실하게 해주었다.

그는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남편의 일에 늘 근심했고 남편이 책임적인 일을 맡아할수록 그의 근심은 더욱 커졌다. 그는 한생 남편의 눈빛을 보며 조심스럽게 살아왔다. 간부댁티를 낸적이 한번도 없었으며 특전을 바라지도 않았다. 한번은 식량공급소에서 쌀자루를 무겁게 이고나오는 그를 보고 내각운전사가 무작정 빼앗아 차에 실었는데 집근처에 와서는 사람들이 본다고 날이 어둡도록 차에서 내리지 못해 생버릇을 뗐다고 한다. 한뉘 로동에 손이 익은 그는 가내반에 망라되여 숨이 지는 순간까지 일감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 로동의 대가로 받는 푼돈으로 생활보탬을 하였다. 마지막길도 단벌갈음옷을 입고갔다고 한다.

강민혁이 내각에서 《텁텁한 부총리》로 불리우고있는것은 안해의 그 품성이 반사된것으로 볼수도 있었다. 이러한 안해를 잃은것은 강민혁에게서 커다란 상실이였다.

솜외투를 벗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지른채 오래도록 전실에 서있던 그는 겁나는듯 조심스럽게 안해가 거처하던 방으로 들어갔다. 안해의 유물을 말끔히 정리한 빈방에 선경이 차려놓은듯 한 상이 있었다. 상우에는 까만 테를 두른 액틀에 들어있는 안해의 사진이 한가운데 놓여있었고 그앞에 술병과 술잔이 있었다.

술잔밑에 선경은 편지봉투를 깔아놓았다.

불치의 병이라고 너무도 일찍 그의 병을 단정해버렸던것은 아닌가. 의사들에게만 맡겨두고 남편인 나는 무얼 했던가. 안해를 위해 어쩌다 집에 들어왔다가도 길잃은 로인을 위해 시간을 바쳤지.

강민혁은 끝없는 회오속에서 터지려는 오열을 누르며 딸의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아버지…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하였어요.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으셨어요. 어머니의 마지막얼굴엔 미소가 어린듯 했어요. 아버지가 장군님을 가까이 모시는것을 어머니는 제일 기뻐하셨어요. 어머니는 그 기쁨을 안고가신거예요. 그러니 너무 슬퍼마세요.

아버지를 위로해드려야겠으나 그냥 떠나요. 아버지의 근심이 주체철에 있다는것을 잘 아는 이 딸은 성공을 보기 전엔 절대로 돌아오지 않으렵니다.

어머니의 령전에 술을 부어드리세요.

아버지를 제일로 존경하는 딸 선경 씀》

강민혁이 병마개를 따고 잔에 술을 따르려는 때에 전실에서 전화신호가 울렸다. 점점 슬픔에 더 깊이 빠져들며 오열을 누를길 없었던 그는 마침이다싶어 얼른 전실로 나왔다.

《강민혁동무.…》

전화기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가 대번에 그를 놀래웠다. 김정일동지께서 걸어오신 전화였던것이다. 강민혁은 그이께서 지금 북부지구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고계신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 먼곳에서 걸어오신 전화였다.

《사람이 어쩌면 그럴수 있소?》

그이의 음성은 처음부터 뜨겁게 달아있었다.

《장군님.…》

강민혁은 뒤말을 잇지 못했다.

김정일동지의 음성도 끊어지셨다. 한동안이 지나서 다시 이어지셨다.

《나는 일만 시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

다시 끊어졌다가 이어지시는 그이의 음성이 떨리시는듯 했다.

《전대미문의 경제전역은… 정과 믿음으로만 치를수 있는거요! 사죄하시오, 부인에게.… 일만 일이라고 한 나도 마음이 걸리오. 사죄하시오! 당장…》

《장군님!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장군님께서 한가정의 일까지 마음쓰시니…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강민혁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못 들으신듯 하시던 말씀을 되이으시였다.

《사죄하시오, 부인에게… 그래야 하오.…》

강민혁은 끝내 오열을 터뜨렸다.

굵은 눈물이 술잔에 방울져 떨어지고 그의 입에서는 목메인 소리가 울려나왔다.

《여보, 당신은 행복하오! 행복해.…》

강민혁은 밤이 깊어 초인종소리가 울려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뜻밖에도 국방위원회 위원 차철군이 예고도 없이 들어섰다.

《아니, 차동무가 어떻게?》

강민혁은 그가 김정일동지의 이번 현지지도길을 수행하는것으로 알고있었다. 강민혁은 얼핏 밖을 내다보았다. 외등밑에 세워놓은 승용차의 차체는 얼음버캐가 하얗게 덮여있었다.

차철군은 상앞으로 다가가 술을 붓고는 강민혁과 자리를 마주했다.

《어떻게 된 일이요, 차동무?》

강민혁은 그때까지도 서리낀 창가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었다.

《그이께서 보내시여 왔소. 미리 보고올리지 않은게 잘못이지. 그 소식을 들으시고 그이께서는 저녁식사도 번지시였소. 로년상처는 대들보 무너진것과 같은데 그 고정한 사람이 빈방에서 얼마나 쓸쓸해하겠는가,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심정을 다 모를거요, 몰라… 하고 거듭 곱씹으시였소.》

《차동무!》

강민혁은 무너지듯 의자에 주저앉으며 얼굴을 싸쥐였다. 그 누구보다도 엄청난 마음속의 비애를 지니고계시는 그이의 심중이 어려와 가슴을 쳤다. 장군님께서 지니고계시는 그 비애는 아직 몇몇 일군들만이 알고있는 문제였다.

《언제면, 언제면 그이의 정의 세계를 다 알겠는지?》

강민혁이 더듬거렸다.

《우리가, 그이를 가까이 모신다는 우리가 모르는것이 어디 한두가지요. 이번 일만 해도 그이께 걱정을 드리지 않게 해드린다는것이 그만…》

《자! 한잔 들고 오늘은 눈을 좀 붙이오.》

차철군은 운전사가 들여온 자그마한 지함에서 술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럴 땐 가까운 사람이 옆에 있어 말동무라도 해주면 한결 나을거라고 하시면서 그이께서 들려주신거요. 그런데 나야 말주변이 있나? 차라리 이게 낫지.》

차철군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장에 다가가더니 운두높은 고뿌 두개를 가져다 술을 부었다.

《또 <명령주>를 마시려는거요?》

강민혁은 언제까지고 애상에 잠겨있을수 없어 식탁에 나앉으며 분위기를 바꾸었다.

《강동무가 어떻게 그걸 아오?》

차철군이 의아한 낯빛을 지었다.

《아는 재간이 있지.》

차철군과 오래동안 사업상 교제를 이어오면서도 강민혁은 그가 술을 드는것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군부장령들은 그를 가리켜 주량에서 두번째라면 섭섭해할 사람이라고 한다.

알고보니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차철군이 어느 한 군부대에서 부대장사업을 하고있을 때였다. 하루는 군부대참관을 위하여 외국의 고위급군사대표단이 왔는데 단장이라는 사람의 주량이 보통이 아니였다. 그는 군사작전을 할 때도 작전도의 네 귀퉁이를 술병으로 눌러놓고야 한다는 술군이였다. 부대에서는 의례행사로 연회를 차렸는데 그와 대작할 사람이 없었다. 술에 얼근하여 기고만장해진 단장은 조선인민군대는 싸움에서는 이거(엄지손가락)인데 술은 안되겠다고 흰목을 뽑았다.

그 말을 들은 차철군이 무섭게 성을 내며 나섰는데 연회상에 올려놓았던 술을 말끔히 동내여 끝내는 단장을 연회장에서 부축해내가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결국 계획했던 참관은 보류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때문에 차철군이 시달림깨나 받지 않을수 없었다. 중요한 국가외교행사를 망쳐버렸으니 누구를 탓할 계제도 못되였다.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후 차철군은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한창 말밥에 올랐던 차철군은 머리를 싸쥐였다. 드디여 위대한 수령님께까지 보고되였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그가 수령님께서 계시는 정원에 이르렀을 때는 중낮이였다.

수령님께서는 포도나무그늘밑에서 《로동신문》을 보고계시였다. 차철군이 인사를 올렸으나 그이께서는 신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시였다.

차철군은 바싹 긴장해졌다. 된추궁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았다. 그가 꼿꼿이 굳어져 줄땀을 빼고있는데 흰옷으로 정장을 한 남성의례원이 원탁에 다가오더니 원탁우에 술병과 목이 긴 술잔을 받쳐놓고는 소리없이 서있었다.

그제서야 신문에서 시선을 떼신 수령님께서는 마시라는 의미로 차철군을 피끗 바라보시고는 다시 신문에 시선을 옮기시였다.

(이렇게 술버릇을 떼주시누나.) 하는 생각에 차철군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는 군인이였다. 명령받은 술은 마셔야 했다. 그것도 최고사령관이 명령한 술이다. 단숨에 한잔을 마셨다. 지켜서있던 의례원이 또 가득 부어놓았다. 그렇게 마시기를 몇번이제 더는 몸을 가눌수 없다고 생각될무렵에야 벌주가 끝났다.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서신 수령님께서는 알만 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아무말씀 없이 자리를 뜨셨다.

그때 얼마나 혼쭐이 났는지 차철군은 다시는 술을 안 마시겠다고 한생을 걸고 맹세했었다. 하지만 그는 그 맹세를 지킬수 없었다. 몇달후 그는 먼 아프리카나라의 대사관 무관으로 파견되게 되였다.

그제서야 차철군은 자기에게 벌주를 주신 수령님의 의도를 알게 되였다. 그가 가게 된 나라의 대통령은 술이 정도를 넘어서는 고래였는데 술 못하는 외교관들과는 마주서지부터 않는다고 하였다. 차철군은 그곳에서 일생 마실 술을 미리 다 마셔버렸다고 하면서 그 어떤 좌석에서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랬던 그도 오늘만은 례외였다. 그것은 단순한 술이 아니였다. 장군님의 사랑이고 정이였다. 온몸에 스며드는 인정의 샘줄기였다.

차철군이 떠난 후 강민혁은 밖으로 나섰다.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송년의 밤이다. 축등에 오색으로 물든 눈송이들이 꽃보라인듯 아름답게 흩날리였다. 거리는 송년의 밤을 즐기는 사람들로 흥성이고있었다.

강민혁이도 그속에 섞여 거리를 걸었다.

김정일동지의 각근한 위로로 해서 슬픔을 가신 그의 발걸음은 저으기 가벼웠다. 그는 내각청사로 가서 거기서 새해를 맞을 생각이였다. 이제 몇시간후이면 2009년이다. 사람들은 당보, 군보, 청년보의 공동사설을 들을것이고 거기서 새해를 맞이하는 당의 결심과 의지를 알게 될것이며 전에없이 격동될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새해에 치르셔야 할 김정일동지의 신역에 대해서는 다 헤아리지 못하리라!

너무도 큰 중하를 한몸에 지니신 그이이시였다.

강민혁은 김정일동지께서 걸어오신 전화에 대고 불손하다 할 정도로 어성을 높였던 사실을 상기했다. 그것은 몸부림이였다.

강민혁은 장군님의 안녕과 건강을 바라는 자기의 간절한 소원을 달리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 소원은 그의 넋이고 심혼이고 생명일지라도 영원히 풀수 없는것이였다. 그는 이러한 사실앞에 몸부림쳤으며 자기도 모르게 어성을 높인것이였다.

그의 마음은 금시 무거워졌다.

이때 솜외투주머니에 지른 손에 뭔가 잡히였다. 그 순간 강민혁은 아까 집에 돌아왔을 때 주택경비원이 준 쪽지편지를 잊고있었음을 알아차리고 그 어떤 실책을 범한것처럼 당황하여 덤비면서 주머니에서 그것을 꺼냈다. 그리고 가로등빛에서 쪽지의 겉에 씌여있는 글자를 알아보았다.

《선경동무, 권혁 씀.》

권혁? 언젠가 딸이 얼굴을 붉히면서 조심스럽게 꺼내놓던 인민군군관의 이름이였다. 강민혁은 딸이 성강에서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쪽지에 급한 사연이 적혀있을수도 있어서 펼쳐보자고 결심하였다.

그는 가로등밑으로 바투 다가섰다.

《동무가 부탁한 노래가사를 적어놓고 갑니다.…》

그 이상 더 쓴것이 없고 종이 한장에 노래의 제목과 가사 석절을 정자로 꽉 채워놓았을뿐이였다. 군인들속에서 널리 불리우는 노래 《발걸음》이였다.

강민혁은 그 노래가 이미 사회의 청년들속에서도 널리 파급되고있다는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딸의 소행을 통해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충격으로 온몸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지진시대의 지구의 진동과도 같은 땅울림소리를 듣는듯 하여 오래도록 못박혀 서있었다.

미래의 력사가들은 오늘의 력사에 대하여 이렇게 쓸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 2009년 경제전역의 진두에 나서신것은 시대와 력사의 요청에 따른 불가피한 일이였지만 그때까지 큰힘을 기울여오신 군사사업을 이어가실 위인의 출현으로 그것이 가능하였다.…

이것은 미래의 세대들은 물론 오늘에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일대 경사였으며 최대의 행운이였다.…

강민혁이 내각청사가 있는 김일성광장에 이르렀을 때 인민군대렬이 열병식이라도 하듯이 정보로 걸어가고있었다.

때마침 그들이 부르는 대렬합창이 들려왔다.

척척척척척 발걸음 우리 김대장 발걸음

2월의 위업 받들어 앞으로 척척척

발걸음 발걸음 더 높이 울려퍼져라

찬란한 미래를 앞당겨 척척척

뗑- 뗑- 뗑-

인민대학습당의 시계탑에서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2009년 1월 2일.

강민혁은 이날 김정일동지를 한자리에 모시고 설명절을 쇠는 뜻깊은 자리에서 또 한분의 희세의 위인을 뵙는 행운을 지니였다.

미래의 력사가들은 이 사실을 2009년의 사변중에서도 특대사변으로 기록할것이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4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