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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학예술

2009년 제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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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3-03-13 06:36 조회2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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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갑자기 바뀌여진 출장지였다.

엊그제까지만 하여도 해외출장준비에 바빴던 리성민은 당분간 출장을 미루고 성진제강련합기업소에 내려가 주체철생산체계를 완성하는 사업을 도와주라는 지시를 받고 한동안 어리둥절해졌다.

일반적으로 주체철은 콕스를 쓰지 않고 철을 뽑는것으로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평생 념원해오신것이다. 우리 나라에 없는 콕스때문에 엄청난 외화를 들여야 했고 자존심마저 상하는 일이 빈번했으므로 수령님께서는 비콕스화를 야금공업의 기본목표로 정하시였다.

그리하여 한때 청강(청진제강소)에서는 철정광에 세멘트를 배합하여 만든 비배소구단광으로 알철을 만들어냈다. 여기서 야금공업의 주체화를 실현할수 있는 귀중한 싹을 보신 수령님께서는 알철을 삼화철로 명명해주시고 그것을 야금공업에 도입하도록 하시였다.

그러나 그 삼화철은 산화배소구탄광을 구워내는 공정이 복잡하고 구워낸 구단광마저 세멘트를 섞었으므로 환원구단광로에 들어가 깨지고 부서지고 쓸모없는 분말상태로 나와 그냥 버리기가 일쑤여서 실리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나라의 경제가 활성화되여있을 때엔 그 삼화철을 가지고 철을 생산할수 있었지만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그마저 생산을 이어갈수 없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성강의 봉화를 지피시여 주체철생산에로 불러주시자 성진제강련합기업소의 로동계급은 분연히 떨쳐나 그 복잡한 공정을 다 간략하고 전적으로 우리의 기술, 우리의 원료와 자재, 우리의 설비로 보다 단순하고 질좋은 삼화철을 만드는데 성공하고 그것을 생산에 도입하였으나 아직 파고철이나 선철을 절반나마 섞어야 하고 절대량의 무연탄을 멀리 평남도에서 수송해야 하는 어려움때문에 주체철생산이 활성화되지 못하고있었다. 다시말하여 엄격한 의미에서의 주체철생산체계는 완성되지 못한것이다. 그러다나니 철생산의 많은 몫은 아직 콕스에 매달리지 않을수 없었다.

리성민의 해외출장도 바로 이러한 사정과 련관되여있었다. 김책제철련합기업소와 같은 덩지 큰 기업소가 콕스에 목이 매여있는것이다.

사실 그는 이번에 콕스탄거래차로 중국 동북의 공업중심지인 심양에 가게 되여있었다. 지금까지는 이 거래를 금속공업성무역회사 일군들이 이 회사의 연길, 도문지사를 통해 진행하여왔었다. 그런데 새계획년도에 콕스탄수입량이 배로 늘어난데다가 대방이 부르는 톤당가격이 엄청나게 높았고 이러저러한 부대조건을 붙이는 바람에 아래일군들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수 없게 되였다.

원래 ××무역유한공사는 중국에서 사영화가 시작될 때 일떠세운 기업으로서 근 20년간 막강하게 성장하여 지금은 굴지의 무역공사로 되였으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 지사를 둔 거래반경이 매우 큰 기업이였다.

공사의 총경리는 우리 나라에 대하여 매우 호의적이였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콕스탄가격을 거의 배로 올리고 무산정광이나 선철로 받던 대금을 미딸라로 받겠다고 하면서 조금도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였다.

부대조건으로 붙인 대금문제는 뒤로 미루더라도 당장 급한것은 가격문제였다. 얼추 계산해보아도 콕스탄 한톤을 사다가 그것으로 크게 보아 선철 2톤을 뽑는다 해도 그 2톤으로 콕스탄 1톤값을 치를수 없었다. 우리에게 돈이 남아서 대방이 부르는 가격대로 콕스탄을 수입해다 선철을 생산한다 쳐도 우리 나라 야금기업들은 적자기업소로 전락되고말것이였다.

이렇게 되면 나라의 금속공업은 망치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제철공업의 명맥으로 되는 콕스탄을 수입하지 않을수도 없는 형편이였다.

사회주의시장이 존재하여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거래가 이루어질 때에도 콕스만은 쌓아놓고 써보지 못했다. 전적으로 수입에만 의존해야 하는 콕스탄이다보니 수입이 한동안만 지체되여도 제철소들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떨쳐나 철길주변과 제철소구내에서 널려진 콕스탄을 수집해들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던 콕스탄을 이제는 이러저러한 부대조건이 많은 시장경제에 의존해야 한다.

소 꼴먹듯 한정없이 먹어대는 용광로의 큰 배를 채워주자면 한시도 중단할수 없는것이 콕스탄수입이였다.

그러지 않아도 로동자들은 사회주의시장이 존재하던 시기 무섭게 용을 쓰던 용광로들이 헐떡거리기 시작하다가 하나둘 멎어서는것을 보고 먹지 못해 쓰러지는 황소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야금공업이 한창 번성하던 그때에 벌써 오늘을 내다보시고 지금은 목이 마르지 않지만 우물을 파라고, 주체철을 완성하여야 한다고 하신 선견지명의 교시를 집행하지 않아 벌을 받는것이라고.

그 벌을 지금 리성민도 받고있는셈이였다.

우리와의 관계가 깊은 총경리는 대금문제는 달리 생각해볼수도 있겠지만 가격만은 그렇게 못하겠다, 왜냐하면 국제시장가격에 준해서도 그렇고 콕스탄수출을 제한하고있는 국가적시책과도 관련되여있으니만치 자기로서는 어쩔수 없다고 하면서 제쪽에서 더 바빠한다고 한다.

세계를 휩쓴 금융해일로 하여 세계시장가격의 파동이 심하고 매장량의 제한으로 어느 나라나 콕스탄수출을 억제하고있는 조건에서 그의 말이 사실일수도 있지만 우리와의 거래가 완전히 될수도 있는 파격적인 요구를 들고나온데는 그들로서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것이 분명했다.

내각과 성에서는 《OM》회사 전용기가 날아온 사실에 류의했다.

《OM》회사는 ××무역유한공사 미국대방으로서 그 거래액이 수십억단위를 넘어서고있었다.

6자회담에서 9. 19공동선언이 발표된 후 미국이 우리 나라에 씌웠던 《테로지원국모자》를 벗기고 제재완화를 선포함으로써 객관적으로 볼 때 우리의 경제건설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듯싶었지만 실지 미국의 검은 촉수는 걷히지 않고있었다.

심양주재 우리 령사관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시당국은 물론 성이나 중앙에서도 전통적인 친선관계, 더우기 이해를 조중친선의 해로 선포한 두 나라 최고수뇌들의 합의를 고려하여 사영업체들이 우리 나라와 무역거래를 하는데 대하여 어떤 조치도 취한것이 없었고 국제시장에서 콕스탄가격이 폭등한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두배로 뛰여오르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호의적으로 나오던 공사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데는 그들로서도 어쩔수 없는 모종의 사정이 있는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고난의 행군시기 미국것들이 공화국의 《붕괴》설을 기정사실화해놓고 우리 경제의 기둥인 제철, 제강소들에서 불이 꺼지기를 기다리면서 가까운 령해에 들어와있는 외국상선의 마스트에 고성능촬영기를 설치하고 기다리던 사실이 결코 오래전의 일이 아니였다. 어리석은 적들이 오늘도 그때의 시점에서 우리를 대하면서 콕스탄수입통로를 차단하려는지 어찌 알랴.

남조선괴뢰역도들의 북《급변사태》 운운도 결코 무심히 볼수 없는것이였다.

내각과 성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금속공업성 부상인 리성민을 파견하기로 하였다. 아무래도 성일군인 그가 가야 문제를 풀수 있다고 보았던것이다. 리성민은 자기에게 출장임무를 주면서 일이 성사되기를 신신당부하던 강민혁부총리의 초조한 표정을 잊을수 없었다. 그의 당부가 없었더라도 콕스탄은 물론 원유와 그밖의 전략물자들의 수입계획과 확보는 2009년도계획작성과 수행에서 내각의 제일 큰 관심사라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는 그였다.

그랬던 출장길이 그만 성강으로 돌려지고말았다. 리성민은 일이 어떻게 되여 이렇게 번져졌는지 알수 없었다. 문득 얼마전 아닌 밤중에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나 책망부터 앞세우던 아버지의 말이 생각났다.

《뭐, 외국출장을 간다면서? 시간이 넉넉한 모양이구나. 바람쏘일 생각까지 다 하는걸 보니.》

아버지는 왜 그런지 려장을 풀기 전부터 속 뒤틀린 소리를 했다. 방안을 휘둘러보는 그의 눈길도 곱지 못했다. 아들을 류학보내고 두내외가 사는 집치고는 지내 크고 요란했다.

리성민은 곁에 앉은 안해를 흘깃 바라보았다. 무슨 쓸데없는 소식을 전했는가 하는 눈치였다. 안해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성강에 살고있는 아버지가 이 모든 내막을 알고있을리 만무했다.

남편의 해외출장을 자랑삼아 알려주었던 안해는 혼겁을 하여 어느 사이에 부엌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예, 외국출장이 제기되였습니다.》

리성민은 방석을 꺼내놓으며 우선우선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출장이 아니라 나들이겠지.》

아버지 리대원은 방석을 밀어놓으며 여전히 속이 개운치 않은 소리를 했다.

《그러지 않아도 공걸음이 될가봐 겁이 납니다.》

리성민은 아버지의 속내를 알수 없어 공손히 대꾸했다.

《겁나는 길은 왜 가? 가슴펴고 다닐 길도 많은데…》

리대원은 버럭 증을 냈다.

무슨 속에 언짢은 일이라도 단단히 얽힌 모양이였다.

일단 속이 뒤틀리면 속에 고인 열물까지도 토해놓고야마는 아버지의 성미를 아는지라 리성민은 대답대신 비주룩하니 웃기만 했다.

《생각해봐라.》

아닌게아니라 아버지는 인차 속내를 헤쳐보였다.

《지금 성강에선 주체철생산체계를 완성하겠다고 온통 들끓고있다. 밥술 드는 사람치구 여기에 눈길 안 돌리는 사람은 없어. 원래 제강소는 제철소에서 대주는 선철을 먹게 되여있어. 그렇다구 누가 탓할 사람두 없구. 하지만 김철에서 선철을 제대로 대주지 못하는 조건에서 입만 벌리고있을순 없지 않니? 그래서 공장지배인, 책임비서도 늘 회전로에 나가산다. 어떻게 하면 삼화철을 가지고 직접 강철을 뽑겠는가 하는것때문에 말이다. 그러니 온 공장이 거기에 달라붙을수밖에… 얼마전 내가 새벽일찍 5월17일공장(삼화철공장)쪽에서 불빛이 보이지 않길래 뒤거두매라도 해줄게 없을가 하여 나갔더니 밤새껏 시험로를 돌리던 사람들이 쉬고있더구나.

어찌나 잠에 몰렸는지 콩크리트바닥이며 슬라크더미에 그대로 쓰러져 곯아떨어졌는데 눈섭이며 수염이며 온통 성에가 하얗게 덮여 사람분간을 못하겠더라. 바로 그들속에 련합지배인과 책임비서도 있었어.

그런데 넌 뭐냐, 간부라는게. 삼화철생산을 위해 로앞에서 새우잠 한번 자봤냐, 쇠장대 한번 잡아봤냐. 그리고도 뭐 제 집안 들여다볼 생각은 않구 남의 집 문전만 넘겨다봐? 아서라, 높은데 있는 사람일수록 밑에서 바라보는 눈길이 많다는것을 알아야 해. 그 눈길에 비추어진 널 보자니 내가 다 부끄럽다.》

《아버지도 참! 제가 이번에 출장가는건 국가적인 사정때문입니다. 성강은 그렇다해도…》

리성민은 아버지의 훈시가 간단히는 끝날것 같지 않아 될수록이면 공손히 자기의 말을 끼워넣었다.

《뭐라구? 국가적인 사정이라구? 그럼 다른 사람들은 개인사정때문에 뛴다더냐? 우에 앉아있다구 함부로 아래사람들을 숙보지 말아. 진짜 국가일에 마음쓰는건 로동자들이야. 그들은 국가에 명줄이 걸려있어. 철이 나와야 자기 본분을 다했다고 할게 아닐가? 네가 그 사정을 알기나 해? 잔뜩 웃자리를 차지하고앉아서 제 혼자만이 아는체 하지 말아.》

리대원이 버럭 어성을 높이는 바람에 밥상을 챙겨들고 들어오던 며느리가 와뜰 놀라 멈춰섰다.

며느리를 본 리대원은 자중하느라 했지만 그루를 박는것만은 잊지 않았다.

《네 일을 우리 책임비서가 알았다간 큰 일 나겠다. 가만있자고 하지 않을게다.》

아버지의 그 말에 리성민도 생각되는바가 없지 않았다. 그도 성강의 전진광책임비서가 주체철생산체계의 완성을 위해 10여년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낮과 밤이 따로 없이 1년열두달 늘 현장에서 살고있다는것을 잘 알고있다. 그러한 그가 리성민의 출장목적을 안다면 얼마나 실망스러워할것인가.

그날 밤 리대원은 밥상에 반주삼아 올린 술 한병을 안주도 없이 맹물켜듯 하고는 웃방에 올라가 밤새 궁싯거리더니 새벽에 간다는 말도 없이 훌 떠나버리고말았다.

워낙 바른소리를 잘하는 아버지인지라 그때는 아들에게 하는 신칙쯤으로 여겼지만 정작 출장지까지 변경되고보니 무심히 스칠 말이 아닌것 같았다.

성강에서 주체철생산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불이 붙었다는것을 야금일군인 성민이 모를리 없다. 하지만 성강은 자기네 산하 지도단위가 아니다. 그리고 성강의 주체철생산체계완성문제는 어디까지나 한개 제강소에 한한 일이지 아직 야금공업전반에 도입할 문제는 아니라고 그는 생각하고있었다. 그런데로부터 관심밖에 놓고있은것도 사실이다. 그때문에 내각과 성에서 여러차례 충고도 받았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불거질줄은 정말 몰랐다.

다음날 아침 그는 평양-두만강행려객렬차의 침대칸에 올랐다. 아직 손님이 오르지 않은 침대 하나는 비여있었다. 안해가 꾸려준 갈아입을 옷가지들과 세면도구, 도중식사를 넣은 려행용가방을 당반우에 올려놓고 웃옷을 벗어 옷걸개에 걸고난 그는 침대등받이에 잔등을 붙이고 한숨 돌리였다.

담배생각이 났으나 차내질서가 있어 참고있다가 끝내 승강대로 나와서 한대 붙여물었다. 미구에 렬차가 미끄러지듯 출발하였다. 거의 동시에 어떤 손님이 역홈을 빠져나와 숨가쁘게 달려오는것이 보였다. 그의 등뒤에서 호각을 입에 문 안내원처녀가 째지게 볼을 불구어댔지만 손님은 곁눈 한번 팔지 않고 승강대에 닁큼 뛰여올랐다. 어찌된 일인지 한겨울인데 솜옷도 안 걸치고있었다. 무엇인가 마구 쑤셔넣은듯 한 배낭 하나를 덜렁 진것으로 보아 몹시 헤덤비는축 같았다.

차에 오르는 순간에 그는 두툼한 입술을 벌리고 벙긋 웃었는데 아마 놓칠번 한 차를 탄데서 온 안도의 웃음인듯 했다.

그러던 그의 입이 갑자기 떡 벌어졌다,

《아니, 이게 부상동지 아닙니까?!》

《이게 누구요?! 리철동무!》

리성민도 그의 어깨를 덥석 그러안았다.

그는 성진제강련합기업소 기사장 리철이였다.

리성민이 한때 성강에서 로장을 할 때 리철은 그밑에서 용해공으로 일했었다. 호리호리한 키에 곱슬머리를 해가지고 쩍하면 황소처럼 올려받기를 잘하던 청년이다. 늘 봐야 꽁무니에 책을 멋처럼 찔러넣고다니군 했는데 끝내 이악하게 공장대학을 졸업하고 오늘은 우리 나라 굴지의 련합기업소 기사장으로 자랐다.

《평양에는 언제 올라왔댔소?》

《한 열흘 됐지요.》

《그럼 집에라도 한번 들릴게지.》

리성민은 낯을 찌프렸다.

《그럴 짬이 있어야지요.》

《그건 그렇구, 그런데 솜옷은 어쨌나? 엄동설한에 랭한훈련이라도 할셈인가?》

리성민은 외투도 없이 홑옷을 걸친 그의 어깨에서 손을 내리지 못한채 물었다.

《저당잡혔지요?》

《저당이라니?》

《그럴만 한 사정이 있었지요, 허허허.》

리철은 선웃음만 터쳤다.

리성민은 그를 자기의 차칸으로 이끌었다.

마침 미리 예약이라도 해놓은것처럼 리철의 좌석도 리성민이 탄 침대칸의 한자리를 차지하고있었다.

《부상동진 지금 어데로 가던 길입니까?》

차칸에 들어와 자리를 잡자 리철이 먼저 물었다.

《성강으로 가네.》

《예?!》

리철의 눈이 대뜸 커졌다.

《왜 그렇게 놀라나? 내가 자기 산하 지도단위도 아닌데 간다고 그러나?》

성강은 자기 산하는 아니지만 같은 야금분야로서 사업상 련계가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그런게 아닙니다.》

퉁명스럽다 할 정도로 푸접없이 한마디 내뱉은 리철은 한동안 입을 다물고있다가 아무래도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것이 있는지 바투 다가앉으며 물었다.

《혹시 우리 공장 료해차로 내려오는게 아니시오?》

《그렇다고도 할수 있지.》

리철의 속내를 알수 없는 리성민은 적당히 대답해주었다.

사실 성강의 주체철을 돕자면 료해부터 앞세워야 하니 틀린 말이라고 할수도 없는것이다.

알만하다는듯 머리를 끄덕이던 리철은 잠시후 피곤하다는 외마디말을 남기고는 옷도 벗지 않은채 자리에 누워버렸다.

묵은 회포라도 나누려던 리성민은 리철의 돌변스러운 행동에 한동안 의아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상하간의 례절은 무시하더라도 오래간만에 만나는 옛친구로서의 정을 봐서라도 문안인사 몇마디쯤은 나누어야 경우가 옳을것이다. 어찌보면 좀 무례하다고 할수 있는 행동이였다.

하지만 솜옷도 못 걸치고 새우등처럼 허리를 꼬부리고 누워있는 그를 보니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평양에 올라와 어지간히 일에 다몰린 모양이였다.

동해선을 향한 렬차들은 거차역에서 양덕고개를 넘는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숨가쁘게 달려온 렬차와 함께 려객들도 마음을 놓는다. 렬차의 손님들은 거차역을 떠나면서부터 점심식사를 시작한다. 아침에 떠난 렬차가 거차역에 도착하면 점심때가 되는것이다. 손님들은 마치 지금껏 자기들이 렬차를 밀고오기라도 한듯 가벼운 기분이 되여 음식꾸레미를 펼쳐놓는다.

리철은 그때까지도 까딱없이 누워있었다. 곤해도 이만저만 곤한것 같지 않았다.

거차역을 떠나자 리성민은 그를 깨울가말가 망설이는데 리철이 먼저 자던 사람같지 않게 벌떡 일어나더니 당반에 올려놓았던 배낭을 내려 부시럭대며 무엇인가 찾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배낭 깊숙한 곳에서 목이 긴 맥주병 하나를 무우밑둥 뽑듯 쑥 뽑아서는 식탁우에 탁 소리가 나게 올려놓았다.

《한잔 합시다.》

《?》

리성민은 의아한 눈길로 리철을 바라보았다.

그는 술은 고사하고 맥주도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달아오르고 숨이 차하는 삼출성체질이였던것이다.

《듭시다.》

주전자옆에 놓인 사기고뿌 두개를 끄당겨놓고 맥주를 똑같이 나누어 부어놓은 리철은 제먼저 식탁에 나앉았다.

리성민도 묵직해보이는 려행용가방쟈크를 열고 도중식사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명태며 낙지, 해삼, 전복, 고추장에다 깨잎절임, 마늘장절임… 토산식료품들이 터진 샘구멍처럼 연방 쏟아져나와 잠간사이에 식탁을 풍성하게 장식했다.

《허, 도중식사치군 과한걸.》

리철은 코날개를 벌름대며 머리를 기웃거렸다.

몇끼 도중식사로 없애긴 너무 요란한 식찬들이였다.

《길을 헛든 식품들이지.》

리성민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것은 남편의 까다로운 식성을 알고있는 안해가 외국출장을 위하여 품들여 장만했던것들이였다.

《그러니 외국출장까지 중지하고 우리 성강을 찾아온단 말이지요?》

리성민으로부터 성강에 내려가게 된 자초지종의 경위를 듣고난 리철은 손을 썩썩 맞비비며 싱글벙글했다.

《됐수다, 이젠 됐어요.》

영문을 알수 없는 소리만 되뇌이던 리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리성민을 붙안고 차안이 좁다하게 빙빙 돌아갔다.

《어지럽네, 내려놓으라구.》

리성민은 아귀센 리철의 손탁에 들어 얼얼해진 팔을 슬슬 문다지며 핀잔을 주었다.

《자네 무인도에서 산 사람같구만. 성강에 출장오는 사람을 처음봤나?》

《오는 사람이야 많지요, 하지만 손님은 돌아서는 발뒤축이 더 곱다고, 에에…》

리철은 무엇이 맞갖지 않은지 손사래를 치며 낯을 찡그렸다.

《왜? 무슨 일이 있었나?》

리성민은 비교적 사람교제가 넓은 리철이 갑자기 사람타발을 하는것이 이상하여 물었다.

《말두 마시오. 지금 성강의 공기가 얼마나 팽팽한지 압니까?》

자리에 앉은 리철은 정색해서 말했다.

열흘전 새로 꾸린 5월17일공장 산소용융로에서 사고가 났다. 시험생산도중 출선구의 내화물이 열에 못 견디여 터져나가면서 로안에 있던 쇠물과 슬라크가 몽땅 쏟아져나와 쇠물바다를 만들어놓았다.

한차지 쇠물을 다 쏟아버렸던것이다.

로주변은 삽시에 쇠물바다가 되였다. 굳어진 쇠물을 들어내기 위하여 여러대의 대산소절단기까지 동원시키지 않으면 안되였다.

사고복구를 위해 한주일간이나 삼화철생산이 중지되였다. 이것은 비상사고였다. 당연한 일로 사고원인규명을 위하여 료해조가 내려왔다. 일이 무난히 진행될 때는 지켜만 보던 사람들이 정작 사고가 발생하자 저저마끔 행장을 꾸려가지고 내려온다. 그리고 입가진 사람은 다 한마디씩 한다. 잘되면 내탓이요, 못되면 네탓이라고 일이 여의치 않으면 내 미리 주의를 주었소. 하고 발뺌을 하자는것인지. …

틀려먹었다. 우의 일군들은 책임을 말로 굼땔수 있지만 현장사람들은 그것을 법적으로 떠안는다. 그리고 로동계급의 량심을 걸고 보상해야 한다.

흥분한 리철은 앞뒤를 가리지 않았다.

《까짓거 툭 털어놓고 말합시다. 난 부상동지가 성강으로 내려간다기에 또 뒤조사나 하러 내려오는 사람인줄 알았수다. 그래서 취중진담이라구 한잔 걸치구 말해보자구 했지요. 맥주도 주자를 달았는데… 차마 건주정이야 할수 있더라구요.》

《헛허허.… 헛손질이 명치끝만 찌른다고 하마트면 내가 그 입도끼에 맞을번 했군.》

리성민은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웃지 마시우. 남은 법앞에 서야 할판인데.…》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가?》

리성민은 리철의 정색해진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을 거두었다

《피해가 크지요. 인명피해까지 났으니…》

리철은 자기도 사고당시 머리에 타박상을 입어 김만유병원에 입원하였다가 성강의 공기가 심상치 않아 도중에 승인도 없이 뛰쳐나오는 길이라고 토설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세상에 진통없이 태여난 아이를 보셨수? 난 우리 주체철만 뽑아낼수 있다면 그런 법정에 열백번도 서겠수다. 참, 우리 책임비서동지가 뭐랬는지 아시우. 실한 자식일수록 산모의 진통은 더 큰 법이다. 하지만 아무리 진통이 심해도 막달찬 자식은 태여나기 마련이다. 라고 하더란 말이요. 명담이지요? 이제는 유능한 의사까지 내려오니 순산은 틀림없을게요. 이제 두고보라니까요.》

앞에 놓인 맥주잔을 들어 가쁜숨을 톺아가며 밑굽을 비운 리철은 화독같이 달아오른 얼굴에 가쁜숨을 쉬면서도 호기를 부렸지만 리성민은 그 흥을 도저히 맞출수 없었다. 어쩐지 이번 성강길이 수나롭게 이어질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성강책임비서의 말마따나 산모의 진통이 순산으로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난산이라는 불가피한 경우도 있는 법이다.

거차를 떠난 렬차는 어둠짙은 굴간속을 련이어 지나며 기세좋게 달렸지만 리성민의 마음은 좀처럼 개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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