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전렬차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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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2-12-23 17:02 조회80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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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7 회
37
12월 8일, 깊은 밤.
야전렬차는 쏟아지는 눈발속을 헤치며 중부구릉지대를 달리고있었다.
렬차집무실에서 반시간가량 잠드셨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인츰 깨여나시였다.
고요한 차칸에는 가느다란 렬차의 차바퀴소리만이 단조롭게 울렸다.
그이께서는 겉옷을 입으시고 차칸벽에 붙여놓은 쏘파에 가앉으시였다. 수면장애를 가늠해보시니 겨울철과 무더운 여름철강행군현지지도의 길에서 때때로 엄습하던 가슴이 답답하던 증상과 비슷한것 같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병원원장의 간절한 당부를 생각하시고는 집무탁서랍을 열고 심장안정제알약이 담긴 작은 약병을 꺼내시였다. 알약의 복용법을 꼼꼼히 말해주던 친숙한 원장의 눈물에 젖은 시름겨운 얼굴이 떠오르시였다.
…병원원장은 그이께서 함경남도로 떠나시기 얼마전에 집무실에 찾아들어왔다. 필요한 문진외에는 입을 열지 않는 과묵하면서도 사려깊고 순환기계통의 림상실천경험이 풍부한 의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렬차집무실에서 보실 문건들을 정리하시던 일손을 멈추시고 평상시와 같이 례사롭고 따뜻한 안색으로 그를 맞아주시였다.
《박사선생, 왜 그렇게 버티고섰소? 걸상에 앉으시오. 내 아무리 바빠도 원장선생은 만나고 떠나겠습니다.》
《장군님… 외람된 소청인데…》
원장의 목소리는 안타까움이 슴배여 떨리였다.
《현지지도를 떠나지 말아주십시오. … 이 추운 겨울날에… 가셔선 안됩니다.》
집무실안에 한껏 정적이 서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원장의 실주름잡힌 어진 눈에 너무도 간절한 빛이 어려있어 한순간 거절하는 말마디를 찾지 못하시였다. 하는수 없이 긴쏘파에 먼저 앉으시고 원장의 팔소매를 잡아 옆에 앉히시였다.
《선생, 엊그제 진행한 검사에서는… 별다른 소견이 없지 않았습니까?》
《심장에서 특별한 기질적변화를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전에 약간 우려되던 관상동맥의 피흐름장애도 약물치료에 의해 가셔졌습니다. 그렇지만… 장군님, 심부전이나 협심증 같은 심장질병은 우발적인 병리요인으로 불시에 발생할수 있습니다.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장군님께서는 휴식을 안하시고 련속되는 과중한 사업부담으로 인한 정신적스트레스와 육체적피로가 많이 쌓였습니다.
저희들은 그래서 장군님께서 10월까지 현지지도를 마감하시고 11월부터는 안정하고 쉬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종시 병원의 권고를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허, 그랬던가… 그랬지. 내 사실 10월도 바빴지만 11월엔 할일이 더 많았소. 그래서 의사선생들과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미안스러운 시선을 눈꽃이 날리는 창문쪽에 던지시였다.
함경남도의 일군들과 로력혁신자들, 과학자, 기술자들을 만나신 때로부터 40일 남짓한 날들이 어느 결에 지나가버렸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산처럼 무거운 사업의 중하를 떠메고 수다한 곳들을 다니시며 드바삐 일하다나니 살같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한것이 아닌가. 국방공업부문 공장, 기업소들에 대한 현지지도에 잇달은 군부대들시찰… 돌가공공장, 개선청년공원유희장, 제35차 군무자예술축전 공연관람… 기억나시는대로 꼽아보아도 줄창 현지에 나가있은셈이니 병원에서 걱정을 할만도 하였다.
《박사선생, 너무 마음쓰지 마시오. 별일 없을겁니다. 내가 이번에 약물치료도 받고 검진에도 순순히 응하지 않았습니까.》
《장군님, 12월에 들어와 본격적인 겨울추위가 시작됐는데 안정하셔야 합니다. 이번 혈관조영검사에서 심장상태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지만 약간한 부정맥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심장박동이 고르롭지 못하다는거겠지요?》
《그렇습니다. 부정맥의 기외수축현상인데 정상심장박동사이에 나타나는 때아닌 박동을 말합니다. 기외수축은 심장판막장애나 심근염, 고혈압을 비롯하여 심장혈관계통에 질병이 있는 경우에 생기지만 정신적스트레스가 쌓이고 수면부족과 피로한 경우 그리고 술을 마시는 건강한 사람들에게서도 때때로 발생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원장의 진지한 설명을 다 들으시고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러니 선생의 말대로 하면 나는 그저 일을 하지 않고 침상에 가만히 누워있어야겠구만.》
《정말이지 그래야 하십니다.》
《잘 알겠소. 내 박사선생의 충고를 명심하고 약도 제시간에 먹으면서 주의해서 갔다오겠습니다.》
《장군님… 떠나시면 안됩니다… 들어주십시오.》
원장은 강인한 어조로 말씀올렸다.
《저희들은… 당앞에… 인민앞에 장군님의 건강을 책임졌습니다. 지난달처럼 마음을 조이며 있을수 없습니다. 조선의 운명이신 장군님의 건강을 놓고는 털끝만 한 요행수나 모험 같은것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 원장의 손에 자신의 손을 따뜻이 얹으시였다.
《박사선생, 어찌겠소. 리해해주시오. 날씨도 추운데 이번엔 밖에 많이 나다니지 않겠소. 함흥에 가서 몇군데 돌아보고는 인츰 돌아서겠습니다.》
《장군님께서… 어디… 말씀대로 하십니까.》
원장의 어진 두눈에 그렁그렁 고였던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정말이지… 또 함경남도에… 가셔야 합니까? 안 가면 안되십니까?》
《꼭 가야 합니다. 박사선생, 올해가 경공업발전의 해이고 인민생활향상의 해인데… 내 함남도에서 광업과 화학공업에 힘을 넣다나니 작은 경공업공장, 기업소들은 많이 돌아보지 못했소. 비날론실을 가지고 편직물을 어떻게 짜는지, 구두공장에서 염화비닐을 가지고 신발창이랑 질좋게 만들어내는지 봐야 합니다.》
《장군님, 어쩌면… 자신의 건강을 그리도 소홀히 하십니까. …》
…
김정일동지께서는 차바퀴의 진동음속에 원장의 목메인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리는듯싶으시였다. 의사의 권고를 신중히 들어야 할것이였다. 수면장애가 오고 가슴이 답답해나는것을 보니 부정맥증상이 또 나타난것이 확실하다고 여겨지시였다.
약병을 기울여 진정제알약을 꺼내드시였다. 물을 마신지 얼마 안 있어 가슴이 편안해지시였다.
그이께서는 서랍에서 좀더 큰 약병을 꺼내여 집무탁 한켠 잘 보이는 곳에 놓으시였다. 심장혈관계통과 혈압안정, 순환기질병치료에 효험이 좋은 그 고려약은 병원에서 특별히 제조한것이였다.
자신께서 떠나는것을 막아나서지 못해 너무도 애타서 마치 철없는 순진한 아이마냥 울던 원장인데 다른것은 몰라도 시간맞춰 고려약을 써야 한다던 그의 간절한 당부는 잊지 않을 생각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당중앙위원회청사집무실에서 채 보시지 못하고 가져온 국제정세자료를 다 보시고도 잠이 오지 않아 창가림을 젖히고 눈내리는 어둠속 캄캄한 밖을 내다보시였다.
애기주먹같은 눈송이들이 그칠새없이 몰려와 렬차집무실 창유리에 부딪쳤다가는 날려가군 하였다. 눈 녹은 물방울들이 맺히여 창유리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바깥창턱의 비좁은 모서리에는 벌써 흰눈이 수북이 덧쌓였다.
떠날 때 책임부관이 습한 함박눈이 계속 쏟아지면 렬차운행에 지장이 있다고 걱정했으나 그이께서는 별치않게 여기시였다. 11월 하순경에 날씨가 자주 흐렸지만 싸락눈이 땅을 덮지 못할 정도로 흩날렸을뿐이다.
이 겨울치고는 처음으로 많이 내리는 눈이니 나쁠것이 없었다. 올여름에 비가 적게 내려 농사에 저수지들의 물을 거의나 써버려 바닥이 드러날 정도였다. 산과 들에 눈이 두텁게 덮이면 겨우내 땅이 마르지 않으며 눈 녹은 물이 대지에 스며들어 좋고 저수지물도 얼마간 불어날것이였다.
렬차집무실에는 차바퀴의 끊기지 않는 울림외에는 고즈넉한 정적이 깃들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창유리에 비발치는 눈발의 장막에 시선을 주신채 얼마전 11월에 다녀오신 공장, 기업소들과 만나본 사람들, 군부대지휘관들과 병사들을 상기하시였다.
서부지구에 자리잡은 돌가공공장이 맨 먼저 떠오르시였다. 화강석과 대리석, 휘장휘록암, 사문석을 비롯하여 우리 나라에 무진장하게 매장되여있는 아름답고 질좋은 천연석재자원을 캐내여 건축물과 도시미화에 쓰는 고급건재들을 생산하는 돌가공공장은 얼마나 훌륭한가. 원석을 채취하고 석재품을 가공하는 과정에 나오는 부산물들로는 자갈과 모래를 생산하고 보드라운 가루는 미장재와 블로크생산에 리용한다.
그이께서는 돌가공시에 튀여나는 물보라에 옷이 젖고 돌가루에 손이 덞어지는것도 아랑곳 않으시고 내 조국의 부흥에 크게 이바지할수 있는 석재품들을 기쁨에 넘쳐 만져보시였다.
그날 김정일동지께서는 흥분해서 말씀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대에는 풀과 고기를 바꾸었다면 우리 대에는 돌과 돈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 나라 도처에 매장되여있는 천연석재자원을 잘 리용하면 나라의 경제발전과 인민들의 복리증진에서 많은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 돌가공공업은 자원고갈을 모르는 청춘공업이다.
중단없이 울리는 렬차의 소음속에서 그이께서는 우리 나라를 세계적인 천연석재생산국으로 만들자면 어떤 사업에 더 힘을 넣어야 하겠는가를 따져보시였다. 채석실수률이 낮고 돌자원을 랑비하고있는 돌광산들과 돌가공공장들을 대담하게 정리하고 현대적으로 갱신하자면… 그때도 강조했지만 전기를 보장해주는것이 급선무이다. 그다음엔 자금문제를 풀어주어야 한다.
돈이 아무리 많이 들더라도 현대적인 돌광산과 돌가공공장들을 건설하면 장차 몇십배의 리득을 얻을수 있다. 돌가공이 나라의 번영, 인민의 행복을 위한 애국사업인데 무엇을 아끼겠는가. …
눈보라 이는 한밤중의 대기속에 웅글은 기적소리를 남기며 야전렬차는 경사급하고 구배심한 중부산악지대를 힘겹게 그러나 쉬임없이 달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며칠전에 보셨던 제35차 군무자예술축전공연을 떠올리시였다.
서리꽃중대 군인들의 버들피리합주, 탄피종으로 연주하는 특색있는 화선악기음악은 지금도 귀전에 울리는듯싶으시였다. 조국해방전쟁시기 불타는 전호가에서 자체로 만든 화선악기를 락천적으로 연주하면서 미제를 타승한 영웅적인민군병사들의 조국수호정신은 오늘도 우리 병사들의 심장속에 뜨겁게 울리고있다.
초소에 까치가 울 때면 최고사령관이 오는가 하고 병실에서 뛰여나와보며 안타까이 기다린다는 서리꽃중대 군인들…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합창하는 《초소의 까치소리》는 끝내 장군님의 눈굽을 축축히 적시였다. 공연무대에서나마 중대군인들을 만나보니 마음이 좀 가벼워지긴 하셨지만 공연에 오지 못한 병사들도 있지 않는가. 시간이 나는대로, 일이 바빠 에돌아가는 길이라도 서리꽃중대에 들려보아야 한다… 시찰하셔야 할 군부대, 어제나 오늘이나 한마음으로 그이를 기다리고 사열받고싶어하는 군부대들, 중대들과 초소들이 얼마나 많은가.
야전렬차로 못 가는 령길은 승용차로, 차길이 없으면 걸어서… 눈보라치건 폭우 쏟아지건 병사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찾아가봐야 한다.
새벽 4시경.
눈이불을 흠뻑 들쓴 야전렬차는 눈발이 휘감기는 역구내등이 어슴푸레 비치는 함흥역에 서서히 멎어섰다.
렬차집무실출입문을 열고 책임부관이 들어왔다.
《장군님, 아침까지는 시간이 많은데 숙소에 가시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20분이면 갑니다. 숙소의 온돌방에서 편히 주무십시오.》
《괜찮소. 렬차에 그냥 있기요, 숙소에 가느라 오느라 시간만 허비할텐데. 동문 좀 자라구. 나때문에 밤새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했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책임부관에게 나직이 당부하시였다.
《함흥시민들이 한창 새벽잠을 곤히 자겠는데 기적소리를 울리지 않도록 하오. 려객렬차운행에 지장이 되지 않게 우리 차를 간선에 세우고 조용히 기다리기요. 내가 왔다는걸 도당책임비서한테랑 미리 알리면 그 동무들이 잠도 설치고 달려나올거요. 절대 법석을 피우지 마시오.》
그이께서는 렬차집무실 차창을 밀어올리시였다.
차디찬 청신한 눈냄새가 함박눈송이들과 함께 차칸에 흘러들었다.
온밤 쏟아지는 눈송이에 정화된 신선한 새벽대기는 그이의 심신에 쌓인 무거운 피로를 가셔주고 상쾌한 기분에 젖게 하였다.
그이께서는 역구내에 한뽐도 더 되게 수북이 덮인 희디흰 정갈한 숫눈이며 려명이 트지 않은 검푸른 새벽하늘을 메우고 줄곧 퍼붓듯 내리는 눈갈기에서 정겨운 시선을 떼지 못하시였다.
차거운 겨울날의 새벽, 잔바람에 수증기같은 생눈보라 이는 아름다운 자연은 그이의 심신에 쌓인 피로를 말끔히 가셔주는듯 싶었다.
×
이틀간의 분망한 현지지도일정을 마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떠나기전에 윤정기도당책임비서를 야전렬차로 부르시였다.
황혼이 진 차창밖에서는 희뿌연 구름뭉치들이 땅거미를 몰아오고 낮에 겨우 멎었던 눈꽃이 다시금 흩날리기 시작했다.
어스름으로 하여 은회색빛갈을 띤 눈덮인 산야를 바라보시는 그이의 심중은 가벼우시였다. 엊그제 밤렬차로 함흥으로 오는 도중 쪽잠도 변변히 들지 못하게 말썽을 부리던 심장질환이 퍼그나 가셔지여 현지지도일정을 무난히 치르고 귀로에 오르게 되시였다.
피곤은 하시였지만 가슴이 답답한 느낌은 싹 없어지여 원장의 간절한 당부만 아니라면 며칠 더 머물면서 여러 단위들에 찾아가보고싶기도 하시였다. 그러나 이틀동안의 짧은 현지지도로 만족할수밖에 없으시였다.
함흥시 회상지구 협동농장에 새로 건설한 태양열남새온실, 함흥편직공장, 흥남구두공장, 성천강수출품출하사업소… 그이께서 돌아보신 공장, 기업소들은 크지 않아도 하나같이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현대적으로 꾸려졌고 인민생활에 절실히 필요한 남새며 편직물, 신발, 물고기가공품들을 꽝꽝 생산해내고있었다. 그러니 한결 마음이 놓이시였다.
윤정기는 그이의 사색을 방해할가 저어되여 조심스레 렬차집무실에 들어왔다.
《아, 책임비서가 왔구만.》
창가에 돌아서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반가이 맞아주시였다.
《내 금년에는 함남도에 더 올것 같지 못한데… 헤여지기전에 저녁식사나 한끼 나누자고 불렀소. 책임비서, 그냥 서있지 말구 여기 가까이 와앉소.》
그이께서는 윤정기가 쏘파에 앉기를 기다려 말씀하시였다.
《이번에 눈이 오구 추운데 나를 동행하느라 수고를 했습니다.》
《저는… 장군님을 수행하는것이 영광입니다. 그저 날씨가 나쁜데… 장군님께서 또 오시여 무리하시는것이 걱정될뿐입니다.》
《함남도에서는 어델 가보나 일이 잘돼. 함남의 불길창조자들답게 일을 많이 했다는것이 알리거던. 이제는 함남도에 아주 정이 들어 자꾸 오고싶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흥그러운 기분에 싸이시였다.
《책임비서, 함흥편직공장에서 비날론실로 편직물을 짜내는게 나를 더없이 기쁘게 했소. 수직방사비날론실을 가지구 어른과 아이들이 입을수 있는 보온내의를 많이 생산하니 얼마나 좋은가. 비날론혼방뜨개옷은 녀성들이 즐겨입을수 있지. 이제는 우리 인민이 누구나 값눅은 비날론으로 만든 보온내의를 입고 겨울을 뜨뜻하게 나게 됐소. 흥남구두공장에서 생산하는 신발창도 비날론덕이지?》
《그렇습니다. 염화비닐이 주원료입니다.》
《수지창이 고무바닥 못지 않게 질긴것 같더구만, 가볍구. 이제는 고무원료를 적게 수입해도 온 나라 신발공장들에서 질좋고 값눅은 신발을 얼마든지 생산하게 되였소. 난 비날론이 인민들에게 실지로 덕을 주게 된것을 보고 떠나니… 렬차에서 잠을 푹 잘수 있을거요. 이런것을 두고 행복이라 할수 있지 않겠소. 책임비서, 그렇지 않소?》
《장군님께서… 숨죽은 2. 8비날론련합기업소를 되살리고 비날론솜과 기초화학제품을 생산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로고를 바치셨습니까.》
윤정기는 진정을 담아 말씀올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례사로우신듯 미소를 지으시고 손을 가벼이 저으시였다.
《이젠 다 지나간 일이요. 비날론때문에 누가 어떻게 고생했든 우리 인민이 옷을 잘 입고 좋은 신발을 신으면 되는거요. 우리 일군들은 그저 그걸 보며 시름을 덜고 행복을 느끼면 됩니다.》
그이께서는 잠시후에 생각나신듯 물으시였다.
《흥남구두공장에서 감을 땁니까?》
《예, 오늘 거의 다 땄습니다. 장군님께서 봐주신 감이라고 한알한알 정히 따서 종업원들에게 나눠주고있습니다.》
《참, 마음이 지극한 동무들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못내 감회에 젖어 말씀하시였다. 어제 아침 흥남구두공장에 가셨을 때의 풍경이 선히 떠오르시였다.
야산기슭에 자리잡은 공장구내의 감나무들에는 기이하게도 무르익은 감알들이 가지마다 휘여지게 주렁져 눈속에 묻혀있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너무도 이채로운 풍경이여서 발목까지 빠지는 숫눈을 밟으시며 구내의 감나무에 가시여 하얀 송이눈모자를 들쓴 감알들을 만져보시였다. 계절이 지나 서리맞고 말랑말랑하니 익은 감알들에서는 신선한 아침 숫눈내와 어울려 떫은 맛이 사라진 향기로운 감내가 진하게 풍기였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지금껏 감을 따지 않았소?》
그이의 물으심에 구두공장의 중년나이 녀성지배인은 선뜻 대답을 못올리고 우물쭈물했다.
곁에서 윤정기가 사연을 말씀올리라고 용기를 돋궈줘서야 지배인은 점직해서 띄염띄염 이야기했다.
《저희들은… 이른봄부터… 장군님을 기다렸습니다. 저앞에 있는 흥남비료가스화공사장에 장군님께서 자주 오시기에 우리 공장에도 들리실것만 같았습니다.… 가을이 지나고 이해도 다 갔지만… 종업원들은 장군님이 그리워… 장군님께서 꼭 우리 공장에 오실것만 같아… 감풍경을 보여드리고싶어 따지 않고 두었습니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그랬으랴.
봄에는 공장구내의 수백그루나 되는 감나무와 살구, 추리, 복숭아… 과일나무들에 꽃이 피고 향기가 진동했을것이고 록음이 짙은 여름철에는 과일나무들이 푸르싱싱해서 멋있었을것이다. 가을이 되고 락엽이 지는데도 소원을 이루지 못해 안타까왔을것이다.
겨울날의 눈덮인 감나무풍경, 한알한알의 감알들마다 공장종업원들의 애타는 마음, 인민의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이 실려 아지가 휘늘어지게 열린 아름다운 풍경이였다.
이런 인민의 극진한 마음, 정성에 받들린 자신은 얼마나 행복한가. …
책임부관이 정히 싼 꾸레미를 들고 렬차집무실에 들어와 앞차대에 놓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수 포장을 끄르시고 회색빛갈의 솜옷을 집어드시였다.
《책임비서동무에게 입히자고 만들어온 솜옷인데 한번 입어보오. 짐작으로 만들다보니 몸에 맞겠는지 모르겠구만.》
《장군님!…》
윤정기는 눈굽이 찡해나 장군님의 야전솜옷과 꼭 같은 새 솜옷을 바라보기만 했다.
《어서 입어보라구. 몸에 맞는지 내가 봐야 하지 않겠소.》
《고맙습니다.…》
윤정기는 눈물을 흘리며 솜옷소매에 팔을 꿰였다. 솜옷을 입으면서도 그의 눈길은 줄곧 장군님께서 입으신 낡은 야전솜옷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강행군현지지도의 길에서 날씨가 차질 때부터 늘쌍 입고계시는 회색야전솜옷, 여느때는 친근하신 그이의 풍모에 매혹되여 무심히 보아온 장군님의 야전솜옷이 지금은 자기의 새 솜옷과 대조되여 너무나 낡아보이는것이였다. 얼마나 오래 입으신 솜옷인지 팔소매 가장자리가 다 닳았고 솜이 자서 자락이 얇아진게 추위를 막을것 같지 못했다.
윤정기는 가슴이 미여지게 아파 솜옷을 걸친채 눈물을 삼키며 엉거주춤 섰다.
《쟈크도 닫고 겉단추도 채워보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윤정기에게 다가와 솜옷기장이며 품을 다심스레 가늠해보시였다.
《맞구만, 꼭 맞아.》
《장군님, 신통히… 몸을 재서 만든것처럼 맞습니다.》
윤정기는 목메여 말씀올리며 거친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린애처럼 손등으로 훔치였다.
《솜옷이 맞으니 됐소.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윤정기를 식사칸에 데리고가시며 말씀하시였다.
《재단사가 솜옷치수를 몰라 딱해하는걸 내가 대줬소. 내 함경남도에 와서 동무하고 많이 다녔으니 동무솜옷을 품이며 기장을 어떤 크기로 만들어야 한다는걸 알거던.》
식탁차림은 무척 검소하였다.
《책임비서, 따끈한 국인데 식사를 많이 하오.》
그이께서는 어줍어하는 윤정기가 맘편히 수저를 들도록 따뜻이 권하시였다.
《윤동무가 10월 하순에 평양에서 만났을 때보다 얼굴이 축갔소. 여러날 앓았다지?》
《감기를 좀 앓았습니다.》
《감기를 우습게 여겨선 안되오. 나이많은 사람은 감기에 걸리지 말아야지 페염을 동반하면 큰일입니다. 감기가 거접하는걸 보면 몸상태가 좋지 않다는걸 말하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반찬접시를 윤정기앞에 밀어놓아주시였다.
《겨울이니 신장염이 도지는게 아니요?》
《일없습니다. 정초에 장군님께서 걱정하셔서 저는 초겨울부터 쑥배띠를 둘러 허리부위를 덥게 건사하고있습니다.》
《요즘도 출근시간에 걸어다니오?》
《아침에 회의나 바쁜 사업이 제기되지 않으면 걷습니다.》
《집에서 도당청사까지 걸으면 몇분 걸리오?》
《한 20분 잘 걸립니다. 걸어서 출근하느라면 길목을 지켜 저를 만나고싶어하는 사람들한테서 여러가지 솔직한 사정이야기를 들을수 있어 좋습니다.》
《도당책임비서는 그렇게 군중속에 깊이 들어가 진실을 알고 대책을 세울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12월이고 완전한 겨울입니다. 이제 눈이 멎으면 날씨가 몹시 추워지겠는데 차를 타고 다니는게 좋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잠시 정담은 시선으로 윤정기가 수저를 놀리는양을 지켜보시였다.
《동무는 건강도 시원치 못한데 수소정제탑제작때처럼 생산현장에 사무실을 정하고 밤을 패면서 무리하게 일하지 말아야겠소. 도당책임비서가 쓰러지면 다요. 함남의 불길이 말해주듯이 일군들이 앞장에 서서 군중을 조직동원하면 경제강국의 목표를 빠른 기간에 점령할수 있습니다. 그런것만큼 도당책임비서는 도내의 전반 공장, 기업소의 일군들, 구체적으로 당비서, 지배인들이 앞장에 서서 송풍기의 역할을 해가며 당의 경제정책을 관철하도록 달구고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장군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야지… 내가 함경남도를 중시하는데 도당책임비서가 앓지 말고 건강해야 합니다. 이 음식도 드시오.》
《장군님… 저는 많이 먹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수저를 들고만 계시지 전혀 식사를 못하십니다.》
《난 괜찮소. 요즘 밥맛이 좀 없어 그럴뿐이요.》
윤정기는 장군님의 안색에 피로가 짙게 어리신것을 보고 식사를 끝내기 바쁘게 작별인사를 올리려고 일어섰다.
《벌써 가겠소? 간단 말이지. …》
김정일동지께서는 서운한 낯빛으로 말씀하시였다.
《지금 밖에 많은 눈이 내리고있는데 야전렬차를 타고 함께 가기요.》
《장군님, 전 정말 괜찮습니다.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안절부절하는 윤정기의 어깨를 눌러앉히시였다.
《밤길에 승용차를 타고 가다 미끄러져 사고라도 생기면 어쩌겠소. 다음역이 함흥이니 거기서 내리오.》
야전렬차는 어둠속에서 흰빛을 뿜으며 소리없이 퍼붓는 눈발의 장막을 헤치고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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