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남의 열풍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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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2-09-13 23:31 조회34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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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편
5
김정일동지께서는 고전적인 중량감을 느끼게 하는 큰 건물안으로 들어서시였다. 뿌슈낀명칭 옴스크 국립과학도서관이였다.
《존경하는 김정일국방위원장님!
저희들은 위원장각하께서 로조친선의 따뜻한 해빛을 안고 우리 도시에 오신다는 더없이 기쁜 소식을 듣고 〈조선 - 맑은 아침의 나라〉라는 이름밑에 소박하게나마 전시회를 진행하고있습니다.
여기에 전시된 자료들은 력사적사실을 반영하는데서 너무도 빈약합니다. 그리고 조선대표들에게는 저의 해설이 필요없을것입니다. 왜냐하면 저희들보다도 더 많은것을 알고계시기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선에 없는 조선의 문화보가 하나 있습니다. 저희들은 그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해설을 담당한 로씨야의 중년부인이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전시장 한가운데를 손으로 가리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사뭇 호기심을 안고 그가 안내하는곳으로 걸어가시였다.
《바로 이것입니다. 잘 보십시오. 이것이 1930년대에 옴스크 고리끼사범대학에서 공부한 조선의 유명한 시인 조기천선생의 성적증입니다.》
해설원이 하얀 유리함안에 펼쳐져있는 조기천의 성적증을 가리키였다.
순간 김정일동지께서는 강한 충격에 우뚝 멈춰서시였다. 이 도서관에서 조기천의 대학성적증을 보게 되시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잠시후 한걸음 다가가 시인의 성적증을 들여다보시였다.
70년세월에 종이는 누렇게 뜨고 시인의 성적을 적은 수자들이 허옇게 바래여졌다.
《조기천!》
그이께서는 조용히 입속으로 시인의 이름을 불러보시였다. 그 성적증에서 시인의 얼굴만이 아닌 나라 잃은 조선이주민들의 모습이 다시금 비쳐오시였다.
왜 이 시인이 여기 수천리 먼 이국땅에서 공부하게 되였던가.
며칠전에 보신 두만강물결이 눈에 삼삼하시였다.
나라를 잃고 《내 님》을 부르며 두만강을 건너갔던 시인이였다. 그것은 리조말기 목숨을 걸고 월경한 최은실이네와는 사정이 다른 해외이주였다. 그가 이 도시에서 대학을 다닐 때 빼앗긴 조국을 생각하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모른다. 어쩌면 저 성적증에도 시인의 눈물이 얼룩져있고 그 종이장에서 이주민들의 한숨소리가 들려오는것 같으시였다.
그이의 눈앞에는 레닌을 만난 자리에서 조선이주민들의 자손을 공부시켜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하소하는 홍범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이의 심중에서 일어나는 이런 종심깊은 괴로움을 알수 없는 해설원은 파란 눈에 명랑한 웃음을 띠며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김정일장군님! 저희들은 시인 조기천을 조선의 마야꼽스끼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조기천은 우리 옴스크의 자랑입니다. 그는 참으로 조선의 마야꼽스끼입니다.》
도서관관장도 두팔을 펼치고 손바닥으로 떠받드는 시늉을 하며 해설원의 말에 공감을 표시했다.
(조선의 마야꼽스끼라?)
김정일동지께서는 마야꼽스끼의 이름을 뇌여보시였다. 물론 그것은 시인에 대한 도서관일군들의 최대의 찬사였다. 서사시 《울라지미르 일리이치 레닌》과 《좋다》와 같은 걸작품들을 창작한 마야꼽스끼는 레닌을 끝없이 흠모한 시인이였다.
마야꼽스끼가 1922년 3월 5일 《이즈베스찌야》에 시 《회의꾸러기》를 발표했을 때 레닌은 정치적, 행정적견지에서 《회의꾸러기》만큼 자기에게 만족을 준 글은 없다고 하였다.
《회의꾸러기》는 그 당시에 나타나고있는 관료주의자, 형식주의자, 건달군들을 폭로비판하고 조소한 정치적주제의 시작품이였다.
회의를 소집하고 또 소집하는 《공산주의자》들에 대하여 조롱하고 그런 회의를 무자비하게 야유한 《회의꾸러기》는 그이의 마음에도 드시였다.
로씨야의 평론가 루나챠르스끼는 마야꼽스끼의 말년의 작품인 서사시 《좋다》를 《청동으로 주조한 10월혁명》이라고까지 격찬하였다.
(그렇다고 조기천을 마야꼽스끼에 대비하는것이 옳은가?)하고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문하시였다.
조기천은 어디까지나 조선의 조기천이지 조선의 마야꼽스끼가 아니였다.
오랜 세월 조국과 멀리 떨어져 이국의 물을 마시며 살아온 조기천은 비록 로씨야땅에서 로씨야어로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모국어를 풍부하게 소유하고 자유분방하게 구사하던 시인이였다.
씨비리풍토에 몸과 마음이 절어들기 십상인 그가 조선민족의 풍속과 전통을 피와 살로 익혀두고있은것은 참으로 경탄할 일이였다. 그때문에 수령님께서는 조기천이야말로 애국시인이라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민족의 향기가 짙게 풍기는 조선식서사시와 서정시들을 쓴것, 애국적인 내용과 높은 예술성을 모든 시작품들에 반영한것, 그런것으로 하여 조기천은 조선인민들속에서 최대의 찬양과 사랑을 받고있는 시인이였다.
하기에 그이께서는 시인으로서의 조기천의 지위를 더 높이 올려세우고싶고 또 올려세워야 한다고 생각하시였다. 그런 의미에서 조기천을 굳이 로씨야의 시인에 비긴다면 마야꼽스끼보다는 뿌슈낀에 대비하는것이 옳을것 같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해설원을 정겹게 바라보시며 조용히 그러나 저력있게 말씀하시였다.
《조기천은 조선의 마야꼽스끼가 아니라 조선의 뿌슈낀입니다.》
순간 도서관관장과 해설원은 거의 동시에 얼굴에 강한 파문을 일으키며 탄성을 올리였다.
도서관관장은 자기네가 진작 그이께 만족스러운 말씀을 드리지 못한것을 아쉽게 생각하는것 같았다.
로씨야인들 스스로가 로씨야시인들의 등급을 선정할 때 로씨야 근대문학의 개척자이며 어머니인 뿌슈낀을 최절정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뿌슈낀은 사회주의혁명시대의 시인이 아니고 귀족출신의 사실주의적민족시인이였기때문에 혁명시인 조기천을 그에 대비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뇌리에 깊이 새겨두려고 조기천의 성적증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시였다.
x
이제 한시간 지나면 옴스크를 떠나야 하였다.
리명국이 떠날차비를 하고 옴스크초대소로 갔을 때 김정일동지께서는 홀에 서서 벽에 걸려있는 씨비리대형풍경화를 보고계시였다.
끝간데 없는 나무숲, 원경으로 비친 아득한 눈의 광야, 찬란한 해빛…
리명국은 풍경화를 감상하시는 그이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한옆에 조용히 비켜서있었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서시였다.
《비서동무가 왔구만. 저 그림을 보시오. 조기천은 이 씨비리에서 잔뼈가 굵어진 사람이요. 그런데 그 사람에게선 씨비리빠다냄새가 아니라 조선의 장국냄새가 났거던. 아침에 그의 성적증을 본 다음부터 그가 더욱 머리에서 떠나지 않소.》
리명국이 얼핏 씨비리풍경화를 스쳐보고 입을 열었다.
《조기천은 머리가 참 좋았던것 같습니다. 대학성적증을 보니 공부를 아주 잘했습니다.》
《머리도 좋았고 심장이 뜨거웠지요. 나는 오늘 대단히 기쁩니다. 조기천은 회령출신으로서 수령님보다 한살 아래였습니다. 비서동문 그가 몇살때 로씨야로 갔는지 알고있소?》
그이께서 미소를 지으며 물으시였다.
《어렸을 때 갔다는 말은 들었는데 정확히는 모릅니다.》
《아홉살 때 갔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고려의사로서 침대도 놓고 자유로동도 하고 농사도 지으면서 근근히 살아가다가 가족을 데리고 로씨야로 이주해갔습니다. 조기천은 그때부터 서른두살까지 로씨야에서 살았는데 그처럼 조선어휘를 풍부하게 소유하고 자유자재로 구사하였습니다.
조기천은 민족적자존심이 강한 시인이였습니다.
서사시 〈백두산〉의 머리시를 보시오.》
그이께서는 조용히 시 한구절을 읊으시였다.
…
백두의 주인공 삼가 그리며
삼천만이여, 그대에게
높아도 낮아도 제 목소리로
가슴헤쳐 마음대로 말하련다!
《〈높아도 낮아도 제 목소리로!〉 여기서 보이지 않소. 시인의 민족적자존심과 배짱이. 그때문에 그는 장기간 로씨야에서 살고 로씨야에서 전문학교와 대학을 다니였지만 사대주의가 전혀 없었습니다. 조선을 끝없이 사랑하였습니다. 그의 시어는 백두산의 층암절벽처럼 웅장하고 대하처럼 거창한가 하면 맑은 시내물처럼 정갈하고 담담하기도 합니다. 그의 서정시 〈흰바위에 앉아서〉를 좀 보시오.
〈흰바위에 앉아서 나는 개울물과 이야기하노라
바위에 바위 돌에 돌을 지나
구름인양 내리는 개울물
딩굴어 달리며 쫓으며
무삼이야기 그리도 기쁘뇨?〉… 비서동무 얼마나 좋습니까. 이런 시를 읊으면 마음이 정화됩니다. 그런가 하면 〈두만강〉과 같은 시는 격렬하고 거창합니다.》
그이께서는 《보뚝에서》, 《그네》, 《휘파람》, 《수양버들》, 《분노》 등 여러 서정시들의 시구절을 인용하시였다.
리명국은 김정일동지께서 조기천의 시를 거의 다 암기하고계시는데 놀랐다. 그이께서는 조기천이가 손우로 누이들만 있는 외아들이였다는것과 로씨야에 와서 어머니를 잃고 새 어머니를 얻게 되여 옴스크에서 대학을 다닐 때 기숙사에서 고생을 많이 한 사실에 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알고계시였다.
조기천을 그만큼 깊이 알고계시기때문에 그를 로씨야 시문학계의 최절정에 군림해있는 뿌슈낀에 대비하신것이라 생각하였다.
그저 무턱대고 제 나라 시인이라고 하여 최상의 지위에 올려세우신것이 아니였다. 그것은 가장 과학적인 분석에 기초한 평가였다.
《조기천은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는 정의의 투사이고 열정가였습니다. 한때 라남의 〈93기〉에 대해 시비질한 사람들이 있었듯이 이 서사시 〈백두산〉에 대해서 혹평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반당분자들과 로동계급적미학관을 가지지 못한 일부 평론가들이 혹평을 하다 못해 〈백두산〉을 헐뜯는 글을 신문에 계속 련재하였습니다.
조기천은 그것이 서사시에 대한 비평이기전에 수령님의 권위에 손상을 주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어느날 〈백두산〉을 헐뜯는 글을 쓰는 필자의 방에 뛰여들어 〈이따위 못된 글을 계속 쓰겠는가?〉하고 웨치며 권총을 빼들었습니다. 허허허.》
《권총을 빼들었단 말입니까?》
리명국은 너무 놀랍고 우습기도 하여 입을 벙글써하고 서있었다. 조기천의 권총앞에서 기절초풍하는 평론가의 겁질린 얼굴이 방불히 떠올랐다.
《그렇소. 권총을 빼들었소. 허, 허, 허… 지성인으로서 좀 과격한 행동이긴 했지만 시인이였거던. 시인의 심장이란 그렇습니다. 그러니 불같은 시를 쓰지요.》
하기는 리명국이도 그런 말을 들은적이 있었다. 사랑을 해도 가장 열렬하게 사랑하고 증오해도 가장 무섭게 증오하는것이 시인이라고 하였다.
《그가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쓴 시들을 보시오. 한자한자가 다 불덩이같지요. 장시 〈조선은 싸운다〉를 보시오. 이 시에는 민족제일주의정신이 넘쳐납니다. 조선인민이 어떤 인민인가에 대해 높은 긍지와 자존심을 가지고 세계를 향해 웨쳤습니다. 〈세계의 정직한 사람들이여!〉… 〈지도를 펼치라!〉… 〈싸우는 조선을 찾으라!〉 분화구에서 뿜어나오는 용암같은 글줄을 보면서 실지 세계의 정직한 사람들은 조선인민이야말로 영웅적인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였습니다. 우리 인민군용사들은 이 시를 읊으면서 고지를 지켜냈지요. 한편의 시가 천만자루의 총을 대신한다는것은 바로 이런 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리명국이도 조국해방전쟁시기 《조선은 싸운다》라는 시를 수첩에 적어놓고 무시로 외워보군하였다.
인민군전사들치고 그 시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고지에서도 읊고 행군하면서도 읊었다.
《자기 민족, 자기 인민을 사랑하는 시인이였습니다. 그는 시랑송도 잘하고 선동사업도 정열적으로 하였습니다. 그는 군인들앞에서 시랑송을 많이 했습니다.》
그이께서는 말씀을 끊고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시다가 추연한 표정을 지으며 조기천의 유고작품인 《비행기사냥군》의 한구절을 읊으시였다.
안녕히! 다시 만납시다
그러면 언제나 부지런한 독자 여러분
우리 주인공과 더불어
산으로 고지로 오르라
리명국은 눈굽이 젖어들었다. 이처럼 시인을 사랑하시는 령도자가 어디에 있을가싶었다.
그이께서는 목메인 소리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조기천은 너무도 일찌기 사망하였습니다.
전후복구건설시기 평양에서 첫 대통로가 완공되였을 때 수령님께서 개통식테프를 끊으시며 우리가 전쟁시기 아까운 사람들을 잃었는데 그 한사람이 조기천이였다고 하시였습니다. 그가 살아있으면 이 대통로를 두고도 좋은 시를 썼을것이라고 하셨지요. 나 역시 〈고난의 행군〉때 자주 조기천을 생각했습니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좋은 시를 썼을거라고. 오늘 선군시대는 조기천과 같이 높은 실력을 가지고있고 자기 수령, 자기 조국, 자기 인민, 자기 민족을 불같이 사랑하는 인간들을 요구하고있습니다. 내가 라남동무들을 좋아하는것도 그들이 바로 조기천처럼 높은 실력을 가지고있을뿐아니라 민족제일주의정신이 강한 애국자들이기때문입니다. 민족제일주의정신이 없으면 〈백두산〉과 같은 세계적인 걸작품에 대하여 졸작품이라고 비평한것처럼 〈93기〉와 같은 선군시대의 최첨단기계를 보고도 자랑할 대신 혹평할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는 조선사람들의 손에 금덩이가 쥐여있어도 파철덩이로 보입니다.》
리명국의 머리에 서정후의 편지가 떠올랐다.
그가 바로 세계적인 걸작품인 《백두산》을 문학이 아니라고 시비한 사람들과 똑같은 눈으로 사물을 보아온 사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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