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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행운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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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8-20 20:15 조회6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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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고향길

6

간단없이 들려오던 포성이 점점 멀어져가고있었다. 전선은 분초를 다투며 남쪽으로 전진해갔다.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남진해가는 아군의 속도는 파죽지세였다. 아군전선부대들의 전진속도가 빠른 그만큼 사단지휘부도 자주 전진이동해갔다. 그러나 정찰대의 움직임에 비하면 사단지휘부의 전진은 너무 완만했다. 그러다보니 정찰대와의 련계가 두절되기가 일쑤였다. 통신거리가 멀어져 전파가 가닿지 않는것이였다. 그것은 때때로 참모장을 비롯한 사단지휘관들의 불만을 자아냈다.

신통한 방법이 없을가 하고 궁리하던 허찬은 무선기를 로획한 윌리스차우에 전개하도록 했다. 멋진 착상이였다.

두대의 무선기를 설치하여 훌륭한 무선차로 둔갑한 윌리스는 정찰과의 이동하는 사무실이 되여버렸다. 허찬은 무선전대장과 무선수를 데리고 그 차우에서 침식까지 했다. 그 덕분에 정찰대와의 련계는 더욱 긴밀하게 이루어질수 있었다. 사단의 행동과 차후 작전에 필요한 적정자료들이 시기적절하게 수집되여 참모부의 작전안수립에 효과적인 도움을 주게 되였고 사단에서는 정찰대사업에 만족을 표시했다. 그것은 물론 허찬과장의 책임성과 수완에 대한 평가였다.

그런데 며칠전부터 이상이 생겼다. 정찰대와의 교신이 갑자기 끊어진것이였다.

허찬의 지시에 의해 무휴통신으로 넘어갔으나 이틀전에 동대―관골방향으로 진출한다는 전파가 날아온 후 정찰대의 소식은 다시 묘연해졌다.

무슨 일이 생긴것일가?

풍을 벗겨버린 윌리스를 백양나무그늘에 들여세운 다음에도 무선수는 참매를 찾느라고 목이 다 쉬였다.

깐깐한 허찬은 자기에게 소속된 인원들에게 좀해서는 마음 늦춰볼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전대장에게는 무선통신외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리용하여 전반적전선형편을 장악보고할 임무를 추가로 맡겼다. 그것은 통신과가 맡은 중요한 사업이기도 한것이여서 그는 군말없이 과업을 접수했고 책임성을 다해 수행해왔다.

지금 그는 종합한 적아의 행동자료에 대해 보고하고있었다.

《붕괴에 직면한 적들은 괴뢰 〈수도사단〉과 14사, 2사, 5사, 7사의 패잔병들을 긁어모아서 14사와 2사로 개편했다고 합니다. 이놈들이 금강계선에서 아군의 공격을 막아보려고 방어진을 형성했습니다.

전선사령부에서는 련속적인 타격으로 금강과 소백산줄기계선을 단시일내에 넘어서며 적 기본집단을 대전과 소백산줄기의 동남부에서 각개포위섬멸함으로써 남해와 대구방향으로의 신속한 진출을 보장할데 대한 제3차작전을 지시하고있습니다. 우리 사단은 지금 천안―조치원과 례산―공주의 두개 방향으로 진군속도를 높이고있는데 당장 문제로 되는것은 앞에 있는 금강입니다.》

앞좌석의 등받이를 제빠듬히 제껴놓고 반쯤 드러누운 허찬은 두눈을 지그시 감고 사단방향참모도 찜쪄먹을만큼 구체적인 전대장의 적정보고를 듣고있었다.

그렇다, 그것은 그자신도 잘 알고있는 전선정황이였다. 적들은 금강계선에서 아군의 공격을 막아보려고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한강방어에서 실패한 후 넓은 지역을 상실당하게 된 놈들은 강하천장애를 리용한 방어가 얼마나 중요한것인가를 절감했을것이다.

집계된 자료에 의하면 놈들은 이미 공주의 금강교와 신촌의 철교들을 폭파했고 금강의 모든 나루터들에서 배들은 물론 가옥에 있는 함지들까지 압수하여 불태운 다음 달아났다고 한다. 금강대안에는 미24사와 괴뢰1군단이 배치되였는데 공주방면에서는 미34보병련대가 《철의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적들은 금강방어선이 《불퇴의 선》, 《최종방어선》이라고 흰소리를 치면서 3년간을 넉근히 지탱할수 있다고 장담했다는것이다.

가장 합리적인 도하지점은 어디인가?

사단에서는 공주와 대평리방향의 2개 지점에서 도하할것을 예견하였다. 그것은 공주에 나루터가 있고 대평리쪽에는 강폭이 좁은 여울이 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그 지점에 배치된 적정자료가 아직 불명확했다. 정찰대가 바로 그 정찰자료를 장악하여 보내주어야 하는것이다.

허찬은 졸음이 실려 무거운 눈거죽을 억지로 들어올리며 무선수쪽에 대고 물었다.

《참매한테선 아직 소식이 없소?》

《예, 계속 찾고있습니다.》

《음―》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그의 내심은 흔연했다. 요즘 정찰대는 호박에 동침박히듯 적후로 뚫고들어가군 한다. 물론 그것은 보다 깊은 종심에로의 무난한 침투를 강조하고 독촉해온 그자신의 공로임을 누구도 부인할수 없을것이다.

개성부근에서의 전투후에 무선으로 짭짤하게 날려보낸 추궁은 시기적절한것이였다. 비록 인천으로 곧추 전진하지 못하고 영등포에서 어물거리게 한것과 지나친 로파심에 사로잡혀 김포지구를 공연히 수색하게 만들어 인천에서 도망치는 적의 꼬리를 놓쳐버린것때문에 추궁은 받았지만 지금까지 련련히 사단의 성과적인 남진을 보장해온것은 정찰대의 공로이자 정찰과장인 허찬 그의 공적으로 되는것이다. 이제 그의 정찰병들은 금강대안에서 값있는 적정자료를 보내오게 될것이다. 그러면 사단참모부에서 정찰과장의 공력이 또다시 높이 평가될것이고…

혼자 속구구에 스스로 흡족해진 그는 몸을 좌석등받이에 마음껏 기대고 석양이 불타는 하늘과 그 아래 태평스럽게 누워있는 푸르른 들판을 새삼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얼마나 목가적인 풍경인가! 가없이 넓은 들판, 서해로 쑥 내뻗은 당진반도쪽에서 불어오는 저녁녘의 서늘한 바람이 기분좋게 귀밑을 간지럽히는데 엷은 저녁노을은 선녀의 비단수건마냥 고운 자태를 드러내고있다. 전쟁통에 농군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여 범이 새끼칠만큼 잡초가 무성하지만 들판은 청청한 푸른빛을 잃지 않은채 온 하루 더위에 시달린 고통을 석양녘의 서늘한 바람으로 애무하고있다. 자연의 저 아름다운 풍경은 가혹한 전쟁과 너무도 인연이 멀다. 이런 저녁을 두고 피가 흐르는 결전을 생각한다는것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미국놈들과 리승만괴뢰《정부》의 학정아래 기를 못 펴고 살던 이 고장, 경찰의 전횡과 《백골단》의 백색테로에 뼈가 부서지고 피고름이 흐르던 땅에서 전쟁이라는 거세찬 폭풍은 파쑈의 더러운 흔적들을 가을날의 락엽처럼 쓸어갔다. 이런 속도로 남진해나가면 저 남해에 착취계급의 오물들을 모조리 쓸어넣을 승리의 날이 며칠내로 올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니 또다시 쾌감에 가슴이 그들먹해지는것이였다.

(이제 남해우에 최종소멸전의 포탄이 작렬하게 될것이며 제주도에 상륙한 참매의 무선을 나 허찬은 부산 동래구쯤에서 지금처럼 윌리스에 앉아 받게 될것이다.)

그때는 또 어떻게 될것인가.

전쟁이 끝나면 련합부대의 눈과 귀가 되여 무훈을 세운 공로로 허찬에게는 큼직한 훈장들이 차례질것이다. 앞가슴팍이 가득 메이게 훈장메달을 달고 나서면 누가 감히 나를 존대하지 않을수 있단 말인가. 나에게는 적어도 총참모부쯤의 중요한 직책이 일임될것이며 어깨우에는 지금의 중성 두알이 아니라 대성이 줄느런히 얹혀지게 될것이다. 그때엔 고향인 서울 명동구에 개선장군마냥 득의양양해서 찾아갈수 있다.

이런 공상에 사로잡히자 해방된 서울에 들리지 못하고 여기까지 내처 올수밖에 없은것이 아쉬웠다. 부대가 전선서부로 진격한 까닭에 그런 기회가 차례지지 않았지만 해방된 고향 동리에 사단정찰과장, 중좌의 신분으로 찾아들어가면 얼마나 멋스러웠을것인가를 그려보니 속이 알찌근해나는것이였다.

해방전에 그의 아버지는 자그마한 철공소를 경영하면서 외아들인 허찬이를 공부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덕분에 서울고보(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법정학교에 입학한 허찬은 인차 머리를 길게 기른 《맑스주의대가》들을 알게 되였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항로는 신기루와도 같은 등대빛을 따라 뻗어가기 시작했다. 그 등대는 명예와 부귀영화를 약속해주었다.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선풍으로 학교내의 맑스주의독서회가 들장나고 막후지도자들인 그 《맑스주의대가》들이 《무산혁명》의 구상을 보따리에 싸안고 상해로, 동북으로 떠나갈 때 그도 청운의 꿈을 버릴수 없어 부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학업을 버린채 용약 따라나섰다. 허나 타향에서의 생활은 그리 순탄한것이 아니였다. 대륙에까지 따라들어온 왜놈들의 탄압으로 행세식맑스주의자들이 말짱 녹아나버린 후 정처없이 떠돌던 끝에 우연히 팔로군에 들어갔으나 왜서인지 불우한 사나이는 늘 외로움과 향수를 이겨내기 어려웠다. 쏘련으로 들어가려고 이런저런 경로를 모색해봤지만 끝내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러던 끝에 조국이 해방되고 동북해방작전이 결속되였다. 김일성동지의 명령에 의하여 중국 동북해방작전에 참가했던 조선인부대들이 관내해방작전에 진입하던 때 그는 병을 빙자하고 고국으로 나오고말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썩 잘한 일이였다. 그 덕에 용맹하기로 소문난 리학문이보다도 높은 직위직무에 앉을수 있은것이였다. 그쯤만 해도 그는 신수가 좋은것이다.

(아무렴! 위훈, 명예! 내가 그런 행운을 타고났다는것을 이제 사람들은 부러움에 겨워 인정하게 될것이다.)

장마철의 뭉게구름처럼 한껏 떠오른 몽상속에서 그는 원쑤를 섬멸해가는 남진의 길 그 한걸음한걸음이 얼마나 값비싼 자욱자욱으로 수놓아지는것인가를 망각하고있었다. 한치한치 승리의 그 길을 열기 위해 병사들은 피와 땀과 지어 목숨을 바치고있었다. 그들이 바친 그 헌신은 결코 위훈과 명예만을 위한것이 아니였다.

《정찰과장동지, 참매의 무전입니다.》

달콤한 공상에 한껏 들뜬 그를 깨우쳐주려는듯 무선수가 쉰 목소리로 웨쳤다. 그토록 응대가 없다가 불쑥 전파가 날아오니 마음속에 옹친것이 없지는 않았으나 부지중 반가움이 들어 허찬은 벌떡 몸을 솟구었다.

역시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정찰대는 벌써 대평리방향의 적정을 알려왔다.

《대평리부근에 일명 〈바위련대〉라고 불리우는 미19보병련대와 미24사포병의 주력이 배치되였다는 보고입니다.》

무선수는 수화기를 벗어들며 웨치듯 말했다. 귀엽게 생긴 방울코가 벌름거렸다. 무척 흥분한듯싶었다. 유생력량의 상태와 포무력의 종류에 이르기까지 나무랄데없이 구체적인 자료가 안받침된 정보였다.

《음, 공주쪽은 어떤가 물어보오.》

대방과 교신하는 목소리가 반복되여 울리더니 또 수화기를 벗어든다.

《미34보병련대가 전개되여있답니다.》

《증강되는 적의 력량이 없는지 확인했는가를 묻는거요.》

《현재는 없다고 합니다.》

《좋소, 그럼 시급히 더 깊은 적종심으로 침투하란다고 하시오. 절대로 총소리는 울리지 말구.》

《알았습니다.》

허찬은 전대장이 연방 부르는 수자와 자료들을 또박또박 박아넣은 전신문을 쥐고 사단참모부가 전개해있는 곳으로 서둘러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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