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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전역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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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2-03-01 20:39 조회3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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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 회

세상에 부럼없어라

동 의 희

4

방금전에 아이들의 호실을 돌아보고난 송희는 초소에 있는 윤화의 오빠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어떻게 고향땅의 참변을 쓸가 하고 망설였는데 야영소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느라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래서 윤화의 군대삼촌이야기며 무산땅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소식을 전하고나서 야영소생활도 꼬박꼬박 적어나갔다.

《윤철동무. 윤화네는 지금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에서 꿈같은 나날을 보내고있어요. 야영소에 도착한 첫날 우린 멋들어진 야영각을 보며 서로 꼬집어보기까지 했답니다. 우리가 꿈나라에 온게 아닌가구요. 고산 북부땅이라 고층건물이 없는데서 자란 우리 아이들이 언제 승강기를 타보았겠어요. 스르륵 움직이면 순간에 오르고 눈깜박할 사이에 내리고 하는 승강기를 타느라 잠을 못잔 첫날부터 가지가지 재미나는 일들을 얼마나 겪었는지 모른답니다. 보는것마다 신기하고 희한해서 애들은 한동안 얼이 나가는것 같았어요. 얼마나 재미났는지 수해지역에서 왔다는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어요.

수족관 별수조는 또 얼마나 멋있었다구요. 동화세계에서나 보았던 룡궁에 진짜로 들어선 기분이였어요. 100년이나 묵었다는 거부기가 느직느직 기여가는건 정말 신기하기 그지없었어요. 손내밀면 잡힐듯 스쳐지나가는 상어며 곱등어와 겨끔내기로 따라잡을내기를 하느라 아이들은 연방 환성을 올렸어요. 윤화는 자기보다 더 큰것 같은 가오리를 구경할 때 너무 놀라와서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세상에 물돼지라는것도 있더군요. 말도 처음 들어본걸 우리는 이번에 다 구경했답니다. 정말이지 어느것을 보아야 할지 몰라 떨떨해지더군요.

사실 물은 아이들의 제일 좋은 놀이대상이 아닌가요. 그러나 물때문에 란리를 겪은 애들이여서 처음엔 모두 주춤거리는게 알렸어요. 한동안 지나서야 모두 물속에 뛰여들더군요. 오도카니 앉아만 있던 윤화가 내 손에 끌려 물놀이를 하면서 꺼낸 말이 무엇인지 아세요?

〈흙탕물이 학교며 동네를 삼킬 땐 차고 무서웠는데 여기 야영소물은 따스하고 담요처럼 포근해요.〉

정말 윤화의 말처럼 야영소의 모든것은 우리모두의 가슴에 포근히 안겨들었어요. 이런 속에서 윤화는 하루하루 달라졌답니다.

윤화가 재미를 붙인건 아마 료리실습인것 같아요.

야영기간에 하루 한끼는 자체로 밥을 지어먹어야 앞으로 자기의 살림살이를 알뜰하게 할줄 아는 버릇을 키울수 있다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말씀에 따라 야영생들이 료리실습을 했는데 윤화가 제법이였어요. 글쎄 낙지볶음을 얼마나 잘했겠어요. 내가 정말 맛있다고 칭찬하면서 앞으로 이 언니가 먹을건 윤화에게 부탁해야겠다고 했더니 윤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새뭇거리더군요. 그 칭찬이 싫지 않았던 모양이예요. 그렇게 조금씩 열려가던 윤화의 가슴이 그날 료리실습실과 잇닿은 생일식당을 보고 다시 닫겨질번 했어요.

〈식당이 있는데 생일식당은 뭘하는 곳입니까?〉 윤화가 생일식당이라는 문패를 보고 물었어요.

〈여기 온 야영생들속에서 그달에 생일이 있는 학생들을 축하해주는 식당이야.〉

〈생일?〉 꺼지는듯 한 소리로 되받은 윤화가 살며시 다시 문패를 올려다보고는 고개를 숙였어요.

갑자기 자기 생일이 생각난 모양이예요. 그 애의 생일은 이미 수해와 함께 흘러가지 않았는가요. 할머니가 들려주던 말이 생각났어요. 할머니랑 다 모여앉기로 했다는 윤화의 생일날, 윤화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던거예요.

고개를 숙인채 타박타박 따라오는 그 애를 보니 금시 가슴이 조여들었어요.

그 순간 이번에 윤화와 같이 야영소에 온 봄이라는 아이의 생일이 10월이라는 생각이 가슴에 걸려들었어요. 그걸 생각하니 은근히 겁이 났어요. 윤화도 한책상에 앉는 짝패인 봄이와 꼭같이 생일상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나는 그만 한숨을 내쉬며 윤화의 손목을 잡고 이렇게 속생각을 굳혔답니다.

이번에 돌아가서 내 꼭 윤화를 기쁘게 해주리라. 이미 지나갔지만 생일날에 찍은것처럼 사진도 찍어주고 기념이 되게 해주리라.

이때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지는 바람에 윤화가 다행히 생일생각을 날려버릴수 있었어요. 야영소 소장선생이 이번 야영에는 겨울철이 아닌데도 우리 수해지구 학생들을 위해 마식령등산일정도 마련되여있다는걸 알려주었거던요.

아이들은 콩콩 뛰며 환성을 올렸어요. 윤화도 짝자그르르 박수를 치더군요. 그 애는 지금 마식령생각만 하는거예요.

마식령스키장. 말로만 외워보아도 가슴이 뛰놀았어요. 텔레비죤화면에서나 보았지 어디 구경이나한 마식령인가요. 정말 그래요. 그런걸 우리 야영생들이 가게 되니 얼마나 사기나는 일이예요.

마식령으로 가기 전날밤 우리는 거의 한잠도 자지 못하고 설레였답니다. 그곳은 어떤 곳일가 하는 호기심이 자꾸만 살아나서 말이예요.

윤화가 나에게 자꾸자꾸 물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해주었지요.

그 옛날 산세가 하도 험해서 말도 쉬여간다고 마식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것과 그렇게 높고 험한 령을 깎아내리고 다듬어서 불과 1년 남짓한 사이에 스키장을 건설한 우리 군인건설자들이 제일이라고 말이예요. 그랬더니 윤화가 우리 오빠도 인민군대라고 속삭이더군요.

오빠에 대한 한없는 자랑이 어린 윤화의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겠어요. 마식령등산길에 오른 뻐스안에서 윤화는 동무에 대한 말을 별로 많이 했어요. 글짓기를 잘했다고 칭찬받던 일이며 우리를 따라 식물채집을 하던 이야기며… 그러다가 정작 마식령스키장이 보이자 입올 다물고 차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더군요. 맑고 청신한 공기, 울울창창한 산악들, 그 산악에 그어진 령길을 보며 그 애가 얼마나 기뻐했겠어요. 그러더니 불쑥 유리창에서 눈길을 떼더니 이렇게 말하는게 아니겠어요.

〈우리가 여름철에 왔더라면 여기 마식령엔 못 왔겠지요?〉

그래요. 희한하게 꾸려진 마식령스키장에서 보낸 즐거움, 그 환희로 움을 다 전하기에는 나의 글이 따라서지 못하는게 안타까와요. 그러나 한가지만은 더 쓰겠어요.

마식령스키장에서의 제일 절정이라고 할수 있는건 대화봉에 오르는거랍니다.

대화봉은 너무 높아서 거의 구름이 가셔진적이 없다고 하는 곳이예요.

바로 이 대화봉에 오르려면 삭도를 세번이나 타야 하는데 30분이 넘는 시간이 걸린대요. 아득하게 보이는 저 대화봉에 오르는 설명을 듣기전에 삭도차에 깃든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어요. 글쎄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마식령을 찾는 우리 인민들이 다 여기 절정에 올라와보는 쾌감을 누리도록 삭도차를 놓아주게 하시고 앞으로 우리 인민들이 탈수 있는 안전한 삭도인가를 보시기 위해 친히 타보시기까지 했다는겁니다.

그것도 우리가 탄 삭도차는 안전하게 덮개가 있는것이지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타보신건 《질들이기》작업중에 있던 차디찬 철물의자였다는거예요.

하늘처럼 떠받들어야 할 우리 인민들이 타게 되는건데 내가 안 타보면 되겠는가고 하시면서 일군들이 그처럼 만류하는데도 기어이 타셨다는게 아니겠어요.

윤철동무, 안전설비가 다 되여있는 삭도차에 몸을 싣고 하늘공중으로 둥실 떠서 미끄러져갈 때 우리들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상상해보세요.

눈아래로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마식령의 산발을 내려다보며 터져오르는 감격을 무슨 말로 다 적을수 있겠어요.

하늘을 나는듯 한 환희, 굽이굽이 뻗어나간 산줄기들을 타고앉은듯한 쾌감!

세상에 이름 떨치는 마식령스키장에서 우리 피해지역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랑랑히 울려퍼지고있었어요. 그중에서도 윤화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는 제일 두드러지군 했어요.

폭우에 떠밀리고 감탕에 묻혀 떠내려갈번한 윤화를 비롯한 우리모두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세상의 최절정, 문명의 산악에 한껏 올려세워주셨어요. 노래가 절로 나왔어요.

야영소로 돌아오는 뻐스안에서도 우리는 삭도차에 올라 날아가는 기분에 떠서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답니다.

그런데 그날 야영소에 돌아온 나는 래일 생일연회가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였어요. 금시 이제까지의 기분이 사라지고 랭장고에나 들어간것처럼 온몸이 얼어들었어요. 얼른 윤화네 호실에 들어가보았어요. 아직은 생일상소식을 모르는지 윤화가 코노래를 부르며 실내복으로 갈아 입고있었어요. 다행이예요. 그러나 인차 그 애도 알게 될 생일소식이예요. 그 소식을 듣고 자기의 생일을 생각할 윤화의 얼굴을 그려보니 정말 견디기 힘들었어요. 두번다시 윤화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다는건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예요. 어떻게 할가. 한참만에야 생일연회에는 10월에 생일이 있는 학생만이 아니라 그 애들을 축하해주려 다른 학생들도 참가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지체하지 않고 야영소 소장선생을 찾아갔어요.

아직은 윤화가 생일을 맞는 동무들속에 섞이는것이 좋은 일인지 오히려 더 나쁜것인지는 알수 없어서 토론하고싶어서 말이예요.

조심히 소장방문을 두드리며 열어보니 방이 텅 비여있더군요.

생일상 준비를 보려 식당으로 갔던거예요.

생일식당안으로 들어서던 나는 깜짝 놀랐어요. 이때까지 이런 료리상은 상상도 구경도 못했으니까요. 그런데도 료리사들은 미흡할세라 앞에서, 옆에서 또 뒤에서 보고 또 보며 무엇인가 독촉하기도 하고 다른 료리접시들을 더 내오기도 하면서 상을 차리고있었어요. 마침 소장선생이 누구인가를 만나고있었어요. 그에게 다가간 나는 무턱대고 생일연회에 참가하는 명단을 보여줄것을 부탁하며 윤화에 대한 말을 꺼냈어요.

〈김윤화라구요?〉 이렇게 되물으며 생일대상명단을 다시 찬찬히 훑어보던 소장선생이 〈아니, 그 김윤화가 여기 생일상명단에 있소.〉 하고 말하는게 아니겠어요. 아니, 생일상명단에 윤화의 이름이 있다니. 한껏 놀라는 나에게 소장선생이 차근차근 설명해주었어요. 야영기간에 생일이 있는 야영생뿐아니라 윤화와 같이 수해기간에 생일이 있었던 애들과 부모를 잃은 학생에 한해서는 특별생일상이 차례진다고 말이예요.

얼마나 기쁘고 고마왔던지,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어떻게 생일식당에서 뛰쳐나왔는지 몰랐어요.

기껏해야 윤화의 생일을 기념해줄 생각뿐이였는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량부모를 잃은 윤화와 같은 아이들의 가슴속 그늘까지 헤아리시여 뜻깊은 특별생일상을 차려주도록 하신것이예요.

어쩌면 우리 원수님의 사랑은 그렇게도 자애로우실가요. 어쩌면 그리도 세심하실가요.

그 은혜로운 품속에서 물살에 떠내려갔던 윤화는 자기의 생일을 바로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에서 다시 찾았답니다.

그날 세상의 온갖 산해진미가 다 올라있는 생일상앞에서 윤화가 어쨌는지 아세요.

〈어마나, 스무가지나 돼요. 아니, 또 있네. 스물하나, 스물둘…〉 그 애가 휘둥그래진 눈으로 앞에 놓인 료리들을 하나하나 세여보며 속살거렸어요. 그날 나는 천진하게 웃는 윤화의 얼굴을 또 보았어요. 윤철동무, 이젠 윤화의 얼굴뿐아니라 그 애의 가슴에도 웃음꽃이 피여났어요. 영원히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애한테 다시 피여난 웃음꽃이예요.

생일식당에서 나오는 그길로 나는 윤화의 손목을 잡고 야영소구내로 나갔어요. 이대로는 도저히 잠들수가 없었어요.

밤은 깊어가는데 야영각마다에선 하늘의 별들이 내려앉은듯 불빛이 환했어요.

문득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어요. 입소하는 우리의 눈에 제일 처음으로 띄였던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글발이 지금 우리의 눈앞에서 웃고있었어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야영소를 찾으시여 정말 좋은 구호라고, 이 구호를 생각하면 어려운 일도 웃으며 하게 된다고 뜻깊게 말씀하시였다는걸 저는 야영소에 와서 알게 되였어요.

윤화도 그 글발을 오래도록 바라보더니 난 소쩍새가 다 부러웠댔어요. 그러나 이젠 그 무엇도 부럽지 않아요. 정말 〈세상에 부럼없어라〉노래가 참 좋아요하고 소곤거렸어요.

정말 그래요. 이 노래를 어찌 윤화만 좋아하겠어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다 부르고 온 나라에 울려가는 이 노래에는 얼마나 심오한 생활의 진리가 담겨있는가요. 〈세상에 부럼없어라〉라는 말은 결코 우리의 리상이 아니라 이 땅에서는 말그대로 활짝 꽃펴난 현실이여서 더더욱 사랑하고 목청껏 부르는것이 아니겠어요. 이 노래가 울려가는 한 우리 사는 이 땅엔 비록 재난은 있을지언정 불행이란 있을수 없는거예요.

정말이지 이 가슴 그득히 안겨지는 심정은 말그대로 〈세상에 부럼없어라〉였어요.

윤철동무, 이제 남은 야영기간에 또 어떤 희한한 일이 있을가요. 그건 우리가 상상할수도 없어요. 나는 지금 윤화의 잠자리를 돌아보고 있어요. 생일구럭을 가슴에 안은채 벌써 윤화는 잠들었어요. 발가우리 달아오른 입술이 꽃잎처럼 열려있어요. 얼마나 평온하면서도 행복한 얼굴인가요.

그 모습을 동무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어보내주겠어요. 그럼 오늘은 이만하겠어요. 또 새 소식을 기다리세요.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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